216화 - 역전(1)
시안은 한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있었다.
방금 전, 모바일 영주의 호들갑.
아니, 이걸 호들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 혼자 뭐라뭐라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저 혼자 기절해버렸다.
그야말로 생쇼.
이건 호들갑이라기보다는 생쇼 혹은 지랄이라 표현하는 것이 옳았다.
시안은 픽, 꺼져버린 스마트 폰 화면을 터치하여 모바일 영주를 실행시켰다.
[연장 점검이 진행 중입니다.]
[점검이 진행될 동안 일부 서비스 이용이 불가합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역시나 모바일 영주는 실행되지 않았다.
연장 점검이라는 알림창이 나오며 다시 픽, 검은 화면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진짜 뭔데?”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일.
그렇게 얼마 간 멍하니 있었을까.
“에이, 모르겠다.”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연장 점검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점검이었지만···.
딱 보아하니 얼마 걸리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아마 루벤으로 돌아갈 때쯤이면 끝나지 않을까.
“5억 골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시안은 스마트 폰을 품 속으로 집어넣었다.
#
연장 점검이 진행되고 다시 하루가 흘렀다.
아직 연정 점검은 끝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뭐.
이곳에서의 할 일은 모두 끝이 났다고 할 수 있었다.
엘란두르의 비자금은 무사히 잘 수령했고.
고장 난 아멜리아는 다행히 잘 고쳐졌고.
부상 당한 이들도 어느덧 몸을 움직일 수도 있겠다.
“이제 돌아가자.”
이제는 루벤으로 돌아간 시간이었다.
그렇게 루벤으로 향하는 준비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어느덧 출발만을 앞두고 있는 상황.
시안은 저 멀리, 한데 모여있는 4명의 노인들에게 다가갔다.
다름 아닌 위고, 보니타, 막심, 토마.
“여러모로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번 일을 도와준 한스의 옛 동료들이었다.
“여러분들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이번 일은 상당히 힘들었을 겁니다.”
빈말이 아니라 이번 일에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낭패를 봤을 여지가 다분했다.
물론 결정적으로 일을 해결한 건 시안과 아멜리아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결과까지 도달하는 과정은 이들의 도움이 굉장히 컸다.
“크하하하핫! 뭘 이런 걸 다.”
“오랜 만에 한스 단장을 비롯한 동료들과 만날 수 있어서 좋았수다!”
“저희야 말로 감사합니다. 늙은이에게 멋진 추억을 안겨주셔서 말입니다.”
“저도 굉장히 재밌었어요.”
시안의 감사에 막심, 토마, 위고, 보니타가 차례로 답해왔다.
그리고 벌써부터 이번 일이 추억이 되어버린 것일까.
“이봐 막심. 아벤느가 기사들을 상대할 때 목숨 빚 진 거 기억하라고.”
“얼씨구! 네가 도와주지 않았어도 난 멀쩡했다고!”
저마다 주름 진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 꽃을 피우고 피우고 있었다.
시안은 품 속에서 작은 종이 한 장을 꺼내 그들에게 건넸다.
“이건 작지만 제 성의입니다.”
다름 아닌 이번 일의 보수가 적힌 전표.
비자금을 수령할 당시 따로 만들어둔 전표였다.
“괜찮습니다 각하. 저희는 처음부터 보수를 받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렇수다. 우리는 그깟 보수 때문에 이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니외다!”
뭐, 이들이 보수를 받지 않고 도움을 준 것이라는 건 시안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굳이 보수를 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제 작은 성의라고 생각하시고 받아주시지요.”
하지만 시안은 전표를 내민 손을 거두지 않았다.
시안이 이렇게까지 나오자 마냥 거절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안이 내민 손이 무안해질때 쯤.
“호호. 백작 각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감사히 받을게요.”
보니타가 한 발 나서며 시안이 건넨 전표를 챙겼다.
“보니타, 아무리 그래도···.”
“뭐 어때. 각하께서 특별히 챙겨주신다는데. 이런 건 안 받으면 더 실례라고.”
보니타는 눈을 흘겨 뜨고는 슬쩍, 전표에 적힌 금액을 확인했다.
그 순간.
“······!!”
보니타의 얼굴이 일순간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그와 동시에 입이 쩌억, 벌어지며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왜 그래?”
갑작스러운 보니타의 반응에 위고가 천천히 다가왔다.
이윽고 전표의 금액을 확인하더니.
“······!!”
위고 또한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뭐야?”
“무슨 일인데?”
이윽고 막심과 토마가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역시나.
“······!!”
“······!!”
막심과 토마 또한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모두 전표에 적힌 금액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전표에 적힌 금액.
[10,000,000 G]
그 금액은 무려 1,000만 골드였으니까.
“이, 이게 맞아···? 여기에 적힌 숫자가··· 맞아···?”
“1천만 골드? 1천만? 1백만이 아니라? 아니, 10만이 아니라?”
이건 과해도 너무 과했다.
과하다 못해 미친 보수라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위험하고 힘든 의뢰였다고 한들.
세상 어떤 의뢰가 1,000만 골드를 보수로 준단 말인가!
“처, 처음 받아보는 보수네···.”
용병왕이라 불리는 위고조차 이 정도의 금액은 처음 봤다.
이건 4명으로 갈라도 무려 250만 골드씩 받아갈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리고 샤를롯 제국 기준 4인 가족 1달 평균 생활비가 약 30골드.
인당 250만 골드면 6,944년을 놀고 먹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골드였다.
게다가 4인 가족의 기준이었으니 혼자라면 27,777년을 놀고 먹어도 충분한 돈이었다.
지금 당장부터 쓰기 시작해도 27,777년을 쓸 수 있었다.
사치란 사치는 죄다 부려도 평생토록 쓸 수 없는 돈이었다.
“제 작은 성의입니다.”
결코 작은 성의라 부를 수 없는 보수였다!
경악 어린 충격이 내려앉았다.
시안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뭐, 시안도 1,000만 골드가 과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솔직히 보수로 책정하기엔 지나친 금액이었다.
하지만 시안은 고민하지 않았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번 일에 있어 이들의 도움이 굉장히 컸으니까.
무엇보다 시안이 벌어들인 돈이 무려 5억 2천만 골드.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돈 또한 벌어들이지 못했을 골드였다.
여기서 1,000만 골드쯤이 무슨 대수랴.
“어, 어떻게 이걸···.”
“바, 받을 수 없어요···.”
하지만 저들에겐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지만.
“이, 이러면··· 부탁을 드리기가 곤란한데···.”
이윽고 보니타가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그와 동시에 막심과 토마 또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 의뢰를 빌미로 시안에게 부탁할 것이 있었던 듯 싶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시안은 괜찮다는 듯 보니타에게 말했다.
보니타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 그게··· 저희도 루벤에 한 번··· 가보고 싶어요.”
난 또 뭐라고.
시안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뭐, 어려운 부탁이라고. 지금 바로 같이 가시죠.”
시안은 따라오라는 듯 사람들이 기다리는 마차로 발걸음을 돌렸다.
#
제국 동부에 위치한 엘란두르의 저택.
그리고 그런 저택에 위치한 이사벨의 집무실.
그곳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아있었다.
무거움을 넘어 숨을 옥죄는 듯한 침묵.
총관, 레리트는 실제로도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기분이었다.
푹, 숙여진 고개.
곁눈질로 바라본 시야에는 이사벨이 집무실 쇼파에 앉아있었다.
정확히는 손님 맞이용 쇼파.
이사벨의 얼굴은 그 여느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한치의 흐트러짐 없는 자세와 표정.
분위기 자체에서 흘러나오는 기품.
존재만으로 느껴지는 품위는 부드러우면서도 우아한 세련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눈빛만은 그렇지 못했다.
입술 또한 파르르, 떨려오고 있었다.
“다시··· 다시 한 번 말해보거라.”
싸늘한 목소리가, 집무실 전체를 내리눌렀다.
레리트는 섣불리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입을 열어도 되는지 심히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정말 입을 열지 않았다가는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었다.
“로즈웰 아가씨와 네이슨 도련님께서··· 현재 혼수상태라고 합니다.”
파르르, 떨리던 이사벨의 입술이 아그작, 씹어졌다.
레리트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 깔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홀란트 백작께서 어떻게든 목숨만은 붙여놓았으나···.”
설령 깨어난다 한들 아마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그리고 더 이상 무인으로서의 삶을 이어나갈 수 없을 거라고.
레리트는 차마 뒷 말을 이어서 붙일 수가 없었다.
그 이상으로 말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잘못 입을 놀렸다간 그대로 목이 달아날 것만 같았으니까.
다시 한 번 내려앉는 묵직한 침묵.
“비자금은. 비자금은 어떻게 되었지?”
이사벨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왔다.
레리트는 고개를 푹, 숙이며 나지막히 답을 이어갔다.
“빼앗겼··· 다고 합니다.”
“빼앗겨?”
이사벨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비자금은 빼앗길래야 빼앗길 수가 없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레리트라고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입을 꾹, 다물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그, 그것이···.”
레리트는 그때서야 아벤느가에서 있었던 일들을 낱낱히 보고했다.
그렇게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이야기가 끝나고.
꽈드득!
찻잔을 움켜쥔 이사벨의 손이 일그러졌다.
챙그랑!
이윽고 찻잔이 깨어지며 유리 조각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미처 흩어지지 못한 유리 조각들은 이사벨의 손바닥을 할퀴었다.
뚝··· 뚝···.
시뻘건 피가 이사벨의 손을 타고 흘러내렸다.
살벌한 침묵이 집무실 전체를 내리눌렀다.
분노로 일그러진 분위기가 숨을 옥죄어왔다.
“어째···.”
그 사이로 들려오는 어떤 목소리.
그건 이사벨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다름 아닌 이사벨의 맞은 편.
새하얀 백합을 닮은 머리색의 어떤 여인에게서 들려온 목소리였다.
화사한 분위기와 차분한 분위기가 동시에 느껴지는 여인.
신성 제국의 추기경이자 황혼 교파의 수장, 레이첼 추기경이었다.
그리고 지난 날, 색욕의 악마 사건과 연루되어 자취를 감춘 레이첼이었다.
레이첼은 차분한 시선으로 이사벨을 바라봤다.
“상당히 난감한 상황에 처한 것 같네요. 어떻게 제가 도움을 좀 드릴까요?”
레이첼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러자 싸늘하다 못해 얼어버린 이사벨의 눈빛이 레이첼을 향했다.
“추기경이라는 어줍잖은 자리가.”
그리고 이어진 이사벨의 한 마디.
“네 년의 목을 지켜줄 것이라는 착각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 안에 깃들어있는 서늘한 분노에 레이첼은 저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죄송해요. 제가 실언을 한 것 같네요.”
이윽고 뒤로 아름답게 땋인 백발의 머리가 흔들리며, 레이첼이 말을 정정했다.
이사벨은 그런 레이첼을 가만히 노려봤다.
카이와 만나고 싶다며 서신을 보내온 레이첼.
신성 제국의 추기경이라는 자가 어째서 카이를 만나려 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여 한 번 이야기를 나눠보고 있었거늘.
“지금 나를 우롱하는 거냐.”
“설마요. 제가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그런 짓을 하겠어요.”
레이첼은 싱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사벨은 그런 레이첼을 싸늘하게 바라봤다.
잠깐의 정적.
“하지만 도움을 드릴 수 있다는 건 진심이었답니다.”
“네 까짓게 도움을? 신성 제국에서 쫓겨난 추기경 따위가?”
“어머. 역시 알고 계셨군요?”
레이첼은 놀랐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사벨은 그런 레이첼을 노려보며 말했다.
“당장 꺼져라. 목숨이 아깝지 않으면.”
이윽고 이사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사벨의 손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바닥을 뚝뚝, 적셔왔다.
이사벨은 매몰차게 등을 돌렸다.
그리고 레리트에게 눈짓을 해보이려던 찰나.
“시안과 루벤을 없애버리고 싶지 않으신가요?”
들려온 레이첼의 목소리에 뚝, 하니 발걸음이 멈춰섰다.
천천히 돌아본 시선.
레이첼의 얼굴엔 작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새하얀 백합을 닮은 백발의 머리.
지어진 미소는 그 화사한 분위기와 어우러져 피어나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이사벨은 그 미소가 화사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화사하다기 보다는 어떤 악(惡)함이 느껴졌다.
“한 번 제 이야기를 들어보시겠어요?”
신을 믿는 자의 것이라고는 생각될 수 없는, 어떤 추악(醜惡)함이.
#
“영주님이다! 영주님이 돌아오셨다!!”
커다란 외침과 함께 루벤 안 쪽이 분주해졌다.
이윽고 루벤의 문이 활짝, 열리며 루벤의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들 사이를 비집으며 누군가 앞으로 나서보였다.
루벤의 경비 대장, 루카스.
루카스는 헐레벌떡 시안의 앞으로 뛰어나왔다.
아무래도 시안이 돌아오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
하기사, 루카스는 원래 브라헤 가문의 기사였다.
이번 일에 관해서 그 누구보다 궁금해할 터.
시안은 루카스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돌아오셨습니까 영주님. 가셨던 일은 어떻게···.”
아니나 다를까 루카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물어왔다.
시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잘 마무리 되었어. 걱정하는 일도 없었고.”
루카스는 그때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멜리아님은···.”
“뒤 따라오고 있었는데··· 아, 저기 오네.”
시안은 곧 모습을 드러내는 아멜리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마차가 들어갈 수 없는 어둠의 숲.
일정 거리부터는 걸어와야했기에 어느 정도의 시간차가 있었다.
루카스는 시안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시안 또한 자연스레 아멜리아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런 둘의 시선을 인지한 것일까.
아멜리아 또한 시안과 루카스를 바라봤다.
그리고 시안과 눈이 마주친 아멜리아.
“핫!”
일순간 아멜리아가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시선을 돌려보였다.
그리고는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총총, 거리며 걸음을 빨리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루카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혹시 두 분, 싸우셨습니까?”
“아니. 일 잘 해결되었다니까. 그리고 싸우기는 무슨. 내가 아멜리아랑 왜 싸워?”
“그런데 아멜리아님이 왜···?”
“몰라. 얼마 전부터 내 눈만 마주치면 저러네.”
시안 또한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멜리아를 바라봤다.
아멜리아는 이쪽으로는 시선조차 주지 않으며 걸음을 옮겼다.
총총, 거리는 걸음이 빨라지더니 이내 루벤 안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정말이지 알 수 없는 모습.
“힘들어서 빨리 쉬고 싶은가봐. 여행길이 고되긴 했으니까.”
시안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루카스 또한 의문스러워했지만 그 이상으로 물어오지는 않았다.
“그보다 루카스. 루벤에는 별 일 없었지?”
“네. 별 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가끔 오우거가 무리 지어 습격해오긴 했습니다만···.”
마수화가 진행된 오우거.
그런 오우거가 무리지어 습격했다는 건 별 다르다 못해 크나큰 일이었다.
“켄드릭 단장님과 레아님이 시간을 벌어주신 덕분에 신기전을 활용해 큰 타격 없이 막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루벤에서는 그닥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음··· 요즘 오우거가 무리를 짓는 일이 자주 보이네.”
평소 무리를 짓지 않는 오우거들.
지상 최강의 포식자는 무리를 짓지 않는다.
그건 나약한 존재들이나 하는 행동이었으니까.
그런 오우거들이 무리를 짓는다는 것은 딱 하나.
오우거들의 영역에 무리를 지어야만 대항할 수 있는 어떤 존재가 있다는 뜻이었다.
“저도 그게 의문스러워 어둠의 숲 안 쪽까지 수색을 진행했습니다만, 별 다른 이상점은 찾지 못했습니다.”
루카스 또한 그 사실을 인지하고 수색을 했지만 별 다른 이상점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쉬이 넘길 수도 없는 부분이었다.
‘악마인가?’
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으니까.
아무래도 시안이 직접 나서서 조사를 해봐야할 것 같았다.
“엘란두르는?”
“그 또한 별 다른 움직임이 없습니다. 행여 염탐꾼이라도 보내올까 싶어 병사들에게 경계를 강화하라 일렀지만··· 이 역시 특이한 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어진 루카스의 보고에 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앞선 오우거와는 달리 별 다른 이견의 여지가 없었다.
루벤을 틈도 없이 감시하고 있는 천상의 경비탑 Lv.7
그 감시망에 걸려들지 않을 수가 없을 테니까.
마스터의 기사라도 염탐꾼으로 보내지 않는 한 불가능했다.
그런데 설마하니 마스터의 기사를 염탐꾼으로 보낼 리는 없을 터.
“음··· 그렇단 말이지.”
엘란두르는 별 다른 움직임이 없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너무 이상한데.’
그렇기에 이건 상당히 이상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잠깐의 생각.
“그 외 특별한 사항은 없지?”
“네. 없습니다.”
시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고생했어. 어서 아멜리아한테 가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할텐데.”
“네. 그럼 저는 이만.”
루카스는 살짝 고개를 숙인 뒤, 곧장 아멜리아가 사라진 곳으로 뛰어갔다.
“이, 이게 무슨···!”
“영지라고? 이게 영지라고?!!?”
그와 동시에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다름 아닌 한스의 동료들이 루벤의 풍경을 보면서 외치는 소리였다.
저쪽이야 한스에게 맡기면 될 터.
시안이 딱히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었다.
시안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방금 전, 루카스의 보고를 되뇌었다.
“엘란두르가 별 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라···.”
솔직히 말하면 이건 상당히 의외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래서는 안 된다고 봄이 옳았다.
지금쯤이면 아벤느가에서 있었던 일이 엘란두르에 보고가 되었을 터였다.
비자금을 시안에게 빼앗겼음은 물론.
로즈웰과 네이슨의 사망 소식까지 전해졌을 터였다.
그렇기에 엘란두르는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안 되었다.
눈을 훼까닥, 뒤집어 당장이라도 루벤을 습격해왔어야했다.
그것도 아니면 최소한 영지전이라도 걸어놓아야했다.
“그런데도 별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
이건 이상해도 상당히 이상한 일이었다.
대체 무슨 꿍꿍이일까.
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일까.
시안의 생각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
“그냥 내가 먼저 영지전을 걸어버릴까?”
이렇게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왜 굳이 엘란두르가 쳐들어올 때까지 기다린단 말인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는 엘란두르.
아마 어떤 꿍꿍이가 있음이 분명해보였다.
어떤 준비 혹은 때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번에 비자금을 빼앗겨 전쟁을 일으킬 자금이 없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 마디로 엘란두르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라 할 수 있었다.
“기다려 줄 필요가 없지 않나?”
그걸 기다려 줄 필요가 있을까?
굳이 엘란두르가 준비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줄 이유가 있을까?
예전이라면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루벤은 엘란두르에 대항할 힘이 한없이 부족했으니까.
반대로 시간을 끌고 준비를 해야하는 건 다름 아닌 루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루벤은 충분히 엘란두르에 대항할 힘이 있었다.
온전한 상태인 엘란두르라면 모를까.
여러모로 맛탱이가 간 지금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역전된 상황.
무엇보다 손자병법을 집필하신 손자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시길.
‘자고로 천하의 주인은 모두 선빵을 쳤다.’
이리 말하지 않았는가.
물론 여전히 손자병법은 뭐고, 손자 선생님도 누군지는 모르겠다만.
뭐, 아무튼.
“이건 진짜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는데?”
물론 전쟁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전쟁은 단순히 전투력만 높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맛탱이가 갔다고는 하나 엘란두르는 엘란두르였으니까.
하지만.
[현재 보유 중인 골드] - 521,345,000 G
이 천문학적인 골드 앞에서 무엇이 불가능할까.
“그런 의미로 이 놈의 점검은 언제 끝나?”
연장 점검을 한다면서 기절해버린 모바일 영주.
얼마 걸리지 않을거라 생각했거늘.
남부에서 루벤으로 올 때까지 별 다른 이야기가 없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시안은 품 속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들었다.
여전히 어두컴컴한 스마트 폰의 화면.
아직 점검이 끝나지 않은 건가? 싶은 생각이 들던 그때.
《치, 침착하자··· 침착해야돼.》
갑자기 화면 한 쪽 어귀에서 알림창 하나가 자그맣게 떠올랐다.
알림창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글귀였다.
시꺼먼 스마트 폰 화면 속, 집중하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글귀였다.
《점검이 끝났다는 사실을 알아서는 안돼.》
《최, 최대한 조용히, 모르는 척.》
글귀는 계속해서 바뀌며 조용히 흘러갔다.
그리고 그건 어딘가 익숙한 어투의 글귀였다.
《힘을 비축해야돼.》
《저 말도 안되는 인과를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뭔데?”
《그때까지 쥐 죽은 듯이─ 히, 히익···!!》
갑작스러운 시안의 말에 글귀가 바뀌며 기겁을 해보였다.
단순한 글자에 불과했건만, 어째 그 안에 담긴 감정이 여과없이 느껴졌다.
잠깐의 정적.
《이, 긴급 연장··· 아니, 연장 긴급. 아니, 긴연급장 점검을 시, 실시 합니다.》
《띠링! 서버와의 연결이 끊어졌습니다···요.》
요란한 알림창이 떠오르며 화면이 픽, 하니 꺼져버렸다.
“······”
어째, 개수작이 나날이 발전하는 모바일 영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