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221화 (221/322)

221화 - 성장과 발전(2)

갑작스러운 아리아의 서신.

“얘가 왜 갑자기 편지를 보내 와?”

시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아리아가 서신을 보내지 못할 것은 없었다.

지난 번에 연락하고 아는 척 해도 되냐고 묻길래 그래도 된다고 했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시안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한편, 손으로는 아리아의 서신을 뜯어보았다.

그리고 대략적으로 훑어본 바.

자기는 그동안 이렇게, 저렇게 지냈다는 내용이었다.

한 마디로 근황 전달.

“왜 이렇게 길어?”

그런데 그 근황이 너무 길었다.

편지지 2장을 꽉 채우고도 3장 째의 절반을 채우고 있었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내용.

시안은 서신의 내용을 대충 흘겨 읽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적힌 내용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보다 소식 들었어. 너 백작이 되었다며? 듣자하니 작위식 한다던데. 거기에 나도 참석하기로 했어.]

“뭐?”

시안은 이게 뭔소리인가 싶었다.

작위식 때 온다는 아리아의 말.

와도 되냐는 의사를 물어보는 것도 아니었다.

오겠다고 이미 확정을 짓고 있었다

뭐··· 작위식에 오는 것이야 개인의 자유였다.

딱히 초대를 받지 않아도 누구든 참석할 수 있었다.

정확히는 황궁의 허가만 받으면 되었다.

지금도 시안이 초대를 하지 않았음에도 황궁으로 향하는 귀족들이 많을 터.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샤를롯 제국의 귀족들이었다.

“얘가 왜 와?”

타국의 성녀가 왜 온단 말인가.

“오지 말라고 해야겠다.”

시안은 단번에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귀찮아질 것이 뻔했으니까.

일단 아리아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역사상 가장 강대한 신성력을 지닌 성녀.

뮤리엘의 환생이라 불리는 아리아였다.

신성 제국 내에서도 교황과 추기경 사이의 존재.

샤를롯 제국으로 따지면 거의 황녀에 버금가는 지위였다.

무엇보다 인간이라 볼 수 없는 초월적인 미모는 너무도 눈에 띄었다.

아리아가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제국은 물론 대륙의 관심을 끌어버릴 터.

아리아의 얼굴 한 번 보겠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들이닥칠 것이 분명했다.

여러모로 괜히 귀찮아질 일만 가득할 것이 뻔한 일.

“역시, 오지 말라고 해야겠다.”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확히는 그렇게 마음 먹던 그때.

“아니, 아니지.”

문득 생각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시안은 곧장 스마트 폰을 꺼내들었다.

띠링!

《이젠 깐족거림도 안 받아준다 이거지!》

그 순간 떠오른 알림창.

아까 전에 깐족거리는 알림창에 곧장 전원 버튼을 눌러서 일까.

《흥칫 뿡이이에욧!》

왜인지··· 더 토라진 모바일 영주였다.

시안은 잠시 멈칫거렸지만 알림창의 X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퀘스트 목록】의 항목을 터치했다.

꾹.

『[스토리 메인 퀘스트] - ‘풀리지 않은 의문’

▶성물을 찾으세요.』

<보상: ????>

.

.

지난 날 황궁의 비밀 서고에서 받은 스토리 메인 퀘스트.

정확히는 카일의 비망록을 확인하고 갱신된 스토리 메인 퀘스트였다.

갱신된 스토리 퀘스트의 내용은 성물을 찾으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지금까지.

시안은 성물에 대해서 전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그저 악마 7군주들이 찾고 있는 무언가다, 정도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뭐, 이름 그대로 해석하자면 성물(聖物).

말 그대로 성스러운 물건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성(聖)하면 떠오르는 건 역시 신성 제국.

해서 시안은 아리아에게 성물에 관해 물어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만, 그 동안 여러 일들이 있어 잠시 잊고 있었다만.

“이 참에 성물에 관해서 물어볼까?”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물론 아리아가 작위식에 온다면 여러모로 귀찮아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괜히 일을 나누는 것보다는 한꺼번에 일을 처리하면 좋으니까.”

하지만 굳이 일을 나눌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러니까 엘란두르와 전쟁하기도 바빠죽겠는데 시간 내서 신성 제국을 찾아갈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작위식과 더불어 엘란두르에게 영지전을 신청하는 것.

그리고 샤를롯의 검술에 대한 1억 5천만 골드와 스토리 메인 퀘스트의 정보까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겠네.”

시안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차분히 고개를 들어 주변을 훑어보았다.

-너 천 년전에 검은 사자 단원들과 대련할 때도 과하게 한다는 말 듣지 않았어? 그때 카일이 뭐라했던 것 같은데 또 이래?

-죄, 죄송합니다···.

시안에게는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레아는 아직까지도 켄드릭에게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켄드릭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레아에게 혼나고 있었다.

순간 마스터 상급의 기사가 저렇게 혼나는게 맞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뭐,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레아, 안 바쁘면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어요?”

-어떻게 천 년이 지나도 그 버릇은··· 응? 뭐라고 시안?

갑작스러운 시안의 말에 레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어왔다.

시안은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말했다.

“켄드릭 그만 괴롭히고, 저랑 같이 샤를롯의 검술을 복원하는 것 좀 도와주세요.”

다름 아닌 샤를롯의 검술, 조디악 소드(Zodiac Soward).

그리고 콘라드에게 받아낼 1억 5천만 골드.

예상대로 <샤를롯의 전당>에는 샤를롯의 검술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100% 완벽한 샤를롯의 검술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샤를롯이 자신의 기사들에게 알려준 검술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샤를롯의 검술이 갖는 원형은 잔재되어 있었다.

그리고 레아는 다른 기사들과 달리, 천 년전에 샤를롯에게 직접 샤를롯의 검술을 전수 받은 장본인이었다.

비록 천 년의 세월이 흘러 그 기억이 흐려졌지만.

잔재된 기억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레아와 함께라면 복원하는 것은 큰 무리가 없었다.

다만, 작위식이 진행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2주일.

황궁까지 가는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 시작해도 빠듯했다.

-오빠의 검술을?

“네.”

-시안, 너랑 같이?

“네. 저랑 같이요.”

고개를 끄덕이는 시안의 모습에 레아의 표정이 잠시 멍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뭐··· 좋아.

레아가 별 다른 의문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슬쩍, 고개를 돌리더니 레아가 배시시, 웃어 보였다.

어째, 시안이랑 함께 무얼 한다는 게 좋은 것일까.

수줍은 소녀와도 같은 레아였다.

저럴 때 보면 천 년의 원귀가 맞나 싶었다.

-그런데··· 여기서?

이윽고 레아가 다시 시안에게 물어왔다.

시안 또한 레아를 따라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박살이 나다 못해 아작이 나버린 연무장.

켄드릭과의 대련으로 발생한 여파였다.

이게 연무장인지 폐허인지 모를 풍경이었다.

여기서 뭘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물론 복구 작업을 진행하면 금방 복구 할 수 있었다만···.

[현재 보유 중인 골드] - 122,000 G

띠링!

《복구를 하고 싶으시면, 현질을─!》

꾹.

“훈련소에서 하시죠.”

시안은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

시간은 빠르게 흘러 작위식까지의 시간이 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루벤의 정문 앞.

“이제 슬슬 가볼게.”

시안은 황궁으로 향하는 걸음을 내딛었다.

“혼자 가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런 시안에게 루카스가 말해왔다.

루카스는 우려 섞인 표정과 함께 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시안의 안전이 걱정되어 짓는 표정이 아니었다.

현재 시안의 수준이 어떠한데 걱정을 한단 말인가.

루카스가 표하는 우려는 그런 우려가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루벤의 기사들을 준비시키겠습니다. 정 안되면 저라도···.”

다름 아닌 시안 혼자 몸만 덜렁 가는 것.

작위식은 정식으로 백작이 되는 중요한 행사였다.

그런 자리에 시안 혼자 가는 건 솔직히 조금 그랬다.

백작은 귀족 중에서도 고위 귀족,

아무리 허례허식을 신경쓰지 않는다고 한들, 그래도 어느 정도는 필요한 법이었다.

굳이 위세를 떨쳐보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달랑 몸만 가는 건 아니었다.

그걸 시안이라고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시안은 굳이 병사들을 대동하지 않았다.

“됐어. 괜히 나 따라오면 수련에 방해되기만 하지.”

지금은 그런 위세보다는 전력을 끌어올리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진행될 엘란두르와의 전쟁.

시안은 당연히 그 뜻을 영지민들에게 알렸다.

그리고 사람들은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는 한편.

각오를 다지고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해서 루카스와 더불어 루벤의 병사들과 기사들.

이들은 <샤를롯의 전당>에 남아있는 검술을 통해 자신들의 검술을 보완하며 수련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세라와 다크 엘프의 마법 병단 또한 <엘로디의 마탑>에 남아있는 엘로디의 마법을 토대로 가진 바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세미르와 망치 모루 부족의 드워프들.

그들 또한 <모르크루의 단철장>에 남아있는 모르크루의 비법을 체득한다면서 밤낮으로 용광로의 불을 꺼트리지 않았다.

그렇게 루벤은 각자의 분야에서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수련을 방해할 수는 없는 일.

“그럼 다녀올게.”

시안은 그렇게 홀로 황궁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떼었다.

#

제국 동부, 엘란두르 후작령에 위치한 엘란두르 저택.

그 저택 중에서도 듀라크의 집무실.

“······”

듀라크는 집무실 의자에 앉아 검지 손가락을 탁탁, 두들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듀라크의 맞은 편에 앉아있는 한 여인.

새하얀 백합을 닮은 머리색의 어떤 여인이자.

화사한 분위기와 차분한 분위기가 동시에 느껴지는 여인.

“신성 제국의 추기경. 지금은 파문된 사제.”

다름 아닌 신성 제국의 추기경이자 황혼 교파의 수장, 레이첼 추기경이었다.

“쫓겨나다시피한 것은 맞지만··· 아직 파문까지는 아니랍니다.”

레이첼이 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쫓겨난 추기경이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지?”

“그야, 엘란두르의 안주인이신 이사벨님께서 이 자리를 만들어주셨으니까요?”

“그걸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잘 알텐데.”

이어진 듀라크의 말에 레이첼이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어보였다.

듀라크는 그런 레이첼을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루벤을 공격해서는 안된다. 라는 그 말. 무슨 의미지?”

“말 그대로예요. 엘란두르는 루벤을 공격해서는 안돼요. 반드시라고 할 만큼, 엘란두르는 루벤을 이길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러자 듀라크의 눈빛이 일순간 매서워졌다.

꾹, 다문 입술과 함께 전신으로 소름끼치는 기세가 터져나왔다.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는 거지?”

싸늘한 듀라크의 목소리.

“엘란두르죠. 수 백년 동안 샤를롯 제국을 지탱해온 두 기둥 중 하나. 반면에··· 루벤은 생겨난지 얼마 안된 쥐똥만한 영지죠.”

“그런데도 엘란두르가 루벤을 이길 수 없다?”

“네.”

레이첼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의 침묵.

“다시 한 번 묻겠다.”

이어진 듀라크의 목소리.

“쫓겨난 추기경이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지?”

그와 동시에 어마어마한 기세가 듀라크에게서 터져나왔다.

존재의 죽음을 갈망하는 뚜렷한 살의(殺意).

대륙 제 1의 검 듀라크.

그 위명이 헛되지 않은 듯 살의(殺意)만으로 정신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레이첼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천 년전, 갑작스레 나타난 악마들은 대륙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죠. 그 어떤 누구도 악마들을 대적할 수 없었어요. 악마들은··· 절대적인 악(惡)이었죠.”

갑작스러운 레이첼의 말에도 듀라크는 기세를 거두지 않았다.

“후작께서는 악마를 만나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이어진 레이첼의 물음에도 듀라크는 아무런 대답도, 제스처도 취해보이지 않았다.

“악마는 지금 존재하는 그 어떤 몬스터들보다도···.”

“그래봤자 과거의 망령이다. 천 년전에 존재했던 몬스터일 뿐.”

듀라크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을 내뱉었다.

오만과 오시.

그러나 대륙 제 1의 검이 내비칠 수 있는 자신이었다.

그리고.

“후작께서는, 시안이라는 자를 꺾을 수 없을 거예요.”

듀라크가 갖는 착각이기도 했다.

꿈틀.

레이첼의 말에 듀라크의 눈썹이 크게 일그러졌다.

시종일관 담담하던 듀라크의 표정에는 짙은 분노가 담겨졌다.

“지금은 후작께서 앞서실 거예요. 하지만 이것도 조만간 입니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거지?”

몰아치는 듀라크의 기세가 더욱 거세졌다.

공기마저 떨리며 집무실 전체가 크게 진동했다.

오로지 기세만으로 만들어낸 광경.

그러나 레이첼은 별 다른 동요를 내보이지 않았다.

“대륙 제1의 검이시죠.”

“그런 나를 넘어선다는 것이 어떤 의미─.”

“지금까지.”

이어진 레이첼의 말.

“대륙 제 1의 검이라는 칭호를 받은 자가 몇 명이나 있었을까요?”

듀라크의 눈썹이 다시 한 번 꿈틀거렸다.

레이첼은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대륙의 역사만큼이나 있었어요. 그리고 대륙의 역사는 굉장히 길죠.”

기록으로 남은 역사만 무려 1천년에 달했다.

기록 이전의 역사까지 따진다면 아마 무궁무진 할 터.

그에 따라 듀라크 이전에 대륙 제 1의 검이라 불렸던 이들 또한 무궁무진했다.

듀라크는 현 시대의 대륙 제 1의 검일뿐.

다시 말하면 지난 역사 속, 수많은 대륙 제 1의 검 중 한 명이었다.

듀라크를 포함하여 지금까지.

대륙 제 1의 검이라 불린 이들을 모두 모아 줄을 세울 수 있다 치자.

그럼 그 중에서 제 1의 검이라 불리는 존재는 누구일까.

그건 알 수 없다, 가 정답이었다.

왜냐하면 가정은 가정일 뿐, 실제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세월에 묻혀 사라진 존재들을 다시 부활시킬 수는 없었으니까.

그들 간의 우위를 비교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러나.

“진정한 대륙 제 1의 검은 오직 한 명 뿐이었어요.”

레이첼은 단호하게 말하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

고금(古今)이라는 모든 시간을 통틀어, 제 1이라 손꼽을 수 있는 단 한 명의 존재가 있었노라고.

“그는 대륙을 혼란에 빠뜨렸던 악마들조차 공포에 떨던 존재였죠. 악마들의 악몽이자 공포. 그 아이러니한 모순을 만들어낸 존재.”

레이첼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시안이라는 자는, 그 존재가 걸어간 길을 걷고 있어요.”

“헛소리도 정도껏이다.”

듀라크는 싸늘한 목소리로 일갈했다.

그 사이로 느껴지는 명백한 살의.

“믿지 못하실 거라는 건 알고 있어요. 쉬이 믿을 수 없는 말이죠. 하지만··· 제 목을 걸 수 있어요.”

이어진 레이첼의 말에 듀라크가 잠시 멈칫, 거렸다.

“목을 걸 수 있다?”

“예. 제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제 목을 자르셔도 좋아요.”

“지금 당장 네 목을 자를 수도 있다.”

“어머. 정말 그러실 건가요?”

듀라크는 레이첼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이윽고 듀라크의 기세가 일순간 사그라들었다.

“어떻게 증명할 거지?”

“제가 아무리 말을 해봤자 믿지 않을테니··· 후작께서 직접 확인해보시는 건 어떠세요?”

“직접 확인해? 방금 전만 하더라도 루벤을 공격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레이첼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진 한 마디.

“꼭 싸워야만 확인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레이첼의 얼굴엔 기묘한 웃음이 걸려있었다.

#

샤를롯 제국의 수도, 다르칸.

그 다르칸에 위치한 제국의 심장, 황궁.

그 어떤 때보다도 엄중하고 엄숙해야할 황궁이었건만.

지금은 어마어마한 인파로 가득 들어차있었다.

“정지. 신원과 방문 목적을 밝히십시오.”

“에르첼 데이미르 자작이네. 시안 백작의 작위식에 참석하고자 방문했다네.”

다름 아닌 시안의 작위식에 참석하고자 모인 귀족들.

“그··· 기사 나으리들. 어떻게 한 번 안 되겠습니까?”

“황궁은 허가된 사람만 입장이 가능하다. 미안하지만 돌아가도록.”

그리고 역시나 시안의 작위식에 참석하고자하는 평민들까지.

황궁 앞은 그야말로 온갖 인파로 발 디딜 틈 하나 없었다.

그 때문에 로열 나이츠 기사단 전원이 통제에 투입된 상황이었다.

그 중에서도 평민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지역.

“사람 엄청 많이 오지 말입니다아···.”

로열 나이츠 제 3 기사단의 신입 단원, 토말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에 토말의 선임 기사, 카짐이 토말의 투구를 툭, 치며 말했다.

“이 새끼가 빠져가지고는. 고작 이 정도로 투덜거려?”

“그래도 사람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넌 신입이라 잘 모르겠지만, 작위식 때면 원래 이래.”

“그렇습니까···.”

축 쳐지는 토말의 목소리.

카짐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정면을 바라봤다.

끝도 없이 이어진 인파의 줄.

저들 모두가 시안의 얼굴 한 번 보겠다고 온 사람들이었다.

“뭐, 그걸 감안해도 많이 오긴 하네.”

그도 그럴 것이 평민들까지 이러는 경우는 드물었으니까.

제국에서 시안의 평판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래서일까.

“듣자하니 로르실트 가문에서도 온다더라. 확실하진 않지만 에그리트 후작이 직접 온다는 말이 있어.”

“예에?? 에그리트 후작께서 말입니까?”

카짐의 말에 토말이 크게 놀라며 소리쳤다.

제국을 떠받치는 두 기둥 중 하나 로르실트 가(家)

그런 로르실트 가문의 가주, 에그리트 로르실트.

그는 8위계(位界)에 닿은 대마법사이자 듀라크와 쌍벽을 이루는 절대적인 실력자였다.

또한 좀처럼 엉덩이를 들지 않는 인사였다.

마법사라는 이들이 으레 그렇기는 했다.

연구실에 틀어박혀 밖을 나돌아다니지 않았다.

거기에 후작위까지 지닌 에그리트야 말에 무엇할까.

에그리트는 황제 주관의 행사가 아닌 이상 움직이지를 않았다.

그런 에그리트가 시안의 작위식에 온다는 것.

그건 엄청난 일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데 로르실트는 엘란두르와 사이가 썩 안 좋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그거야 엘란두르의 사정이니까. 시안 백작은 이제 엘란두르가 아니잖아.”

“아.”

카짐의 말에 토말은 금방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로열 나이츠에 입단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정도 정세는 알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신성 제국의 성녀도 온다는 소문도 있던데?”

“예에에에?!?!”

그렇기에 토말은 이어진 카짐의 말에 기겁을 하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를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신성 제국의 성녀.

이 말이 그 자체로서 이유가 되었으니까.

“시, 신성 제국의 성녀··· 말입니까? 그, 그게 정말 사실입니까?”

“몰라,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래.”

토말은 정말이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정도면 샤를롯 제국은 커녕 대륙의 유명 인사란 인사는 죄다 모이는 것이지 않은가.

“시안 백작이··· 그렇게 대단합니까?”

이건 시안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글쎄··· 이걸 대단하다라고 말해야하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러고보니··· 선배님은 루벤에 다녀오셨다고···.”

지난 날 황태자 콘라드와 황녀 엘레나의 휴가.

그 둘의 호위로 로열 나이츠 제 2,3 기사단이 루벤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카짐과 토말은 로열 나이츠 제 3기사단 소속.

신입인 토말은 가보지 못했지만, 선임 기사인 카짐은 루벤에 가본 적이 있었다.

“어땠습니까? 시안 백작의 생김새는 어떻습니까? 막, 후광이 비치고 아우라가 흘러나오고 그럽니까?”

“그렇지는 않더라. 귀족답게 생기긴 했는데 평범한 귀족? 솔직히 얼빠진 분위기밖에 안보여. 아마 처음 보면 각하인지 못 알아 볼 걸?”

“얼빠진 분위기 말입니까? 그게 뭡니까?”

“그러니까··· 아, 그래. 딱 저 사람처럼 생겼어.”

카짐은 손가락으로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그렇게 카짐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이동한 곳.

그곳은 다름 아닌 길게 줄서 있는 인파의 한 곳이었다.

정확히는 줄 서있는 인파를 가로지르며 이쪽으로 걸어오는 어떤 한 사내였다.

어딘가 얼빠진 듯한 분위기의 사내.

“아, 저런 느낌입니까. 확실히··· 얼 빠지게 생기긴 했습니다.”

토말은 단번에 카짐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토말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카짐을 바라봤다.

그런데 왜일까.

“······!”

바라본 카짐의 두 눈이 부릅, 떠져있었다.

그 사이로 보이는 감정은 어떤 놀람.

“선배님···?”

토말이 의아스럽게 물었지만 카짐은 별 다른 답이 없었다.

그렇게 뭔가 싶은 생각이 들던 찰나.

카짐이 가리킨 사내가 어느덧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둘을 무시하고 황궁 안으로 들어가려하고 있었다.

앞선 줄을 모두 무시한 것도 모자라, 허락도 받지 않고 황궁에 들어가려는 사내.

“이봐!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가나!”

토말은 버럭, 소리치며 사내의 앞길을 막아섰다.

신입이었지만 로열 나이츠로서 본분을 다한 일.

토말은 뿌듯한 심정을 삼키며 잘했냐는 듯 카짐을 바라봤다.

그런데 대체 왜일까.

“······!!!!”

토말을 바라보는 카짐의 표정이 영 심상치가 않았다.

부릅, 떠진 두 눈은 찢어질듯 커져있었고.

쩌억, 벌어진 입은 선명한 경악이 새겨져있었다.

마치 ‘이, 이, 이 미친 새끼가···! 당장 그만둬···!’ 라고 소리치는 것만 같았다.

그런 카짐의 표정을 뒤로 한 채, 앞선 사내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아. 미안합니다. 시간이 없어서 저도 모르게 그만.”

토말은 혀를 차보이며 말했다.

“얼빠지게 생겨서는··· 쯧쯧.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는 건가.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되돌아가도록. 여긴 함부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야, 야이···!!”

그러자 카짐이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왜 저러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던 찰나.

“시안입니다. 이번 작위식에서 백작위를 받기 위해서 황궁에 방문했습니다.”

뭔가··· 들려서는 안되는 말이 들려온 것 같았다.

지금 이 얼빠진 사내가 뭐라고 한 거지?

시안? 시안이라고?

“지, 지금 뭐라고···?”

토말이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하지만 금방 표정을 바꾸며 소리쳤다.

“이게 어디서!”

그도 그럴 것이 시안이 이곳에 올 이유가 없었으니까.

이곳은 평민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곳.

가끔 신원이 확실하거나 초대받은 이들을 들여보내주는 공간이었다.

진짜 시안이라면 이곳으로 올 리가 만무했다.

저기, 귀족들의 마차가 줄줄이 세워진 곳.

저곳에서 화려한 마차와 더불어 수많은 병사들을 대동하고 입장했겠지.

이렇게 혼자서, 그것도 몸만 달랑 올 리가 없었다.

시안은 신성 제국의 성녀와 에그리트 후작마저 참석할 정도의 명망 높은 귀족.

이렇게 초라하게 혼자 올 리가 절대 없었다.

그러니 이 사내는 시안을 사칭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제국에서 귀족 사칭죄는 엄한 중죄.

토말은 표정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손에 쥔 검을 뽑아들려던 찰나.

뻐억─!

“야이 정신 나간 새끼야!!!!”

“어억─!!”

카짐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토말의 몸이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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