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 일자천금(2)
갑자기 알현실 안에서 일어난 소란.
다급한 목소리와 더불어 우당탕탕, 하는 굉음까지 들려오자 밖에서 대기 중이던 로열 나이츠들이 알현실로 쏟아져들어왔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그리고 보인 알현실 안의 풍경.
“뭐가 어쩌고 저째? 네 이놈의 놈팽이를 그냥···!!”
분기탱천하며 소리치는 발루아가.
“폐, 폐하!! 진정하시옵소서!!”
그런 발루아가를 붙잡으며 필사적으로 뜯어말리는 콘라드.
“그, 그러니까 추가로 1억 골드만 결제하시면···! 아, 아니 그러니까 그게···.”
마지막으로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뭐라뭐라, 변명을 하는 시안의 모습까지.
“······”
“······”
알현실로 로열 나이츠들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대충 보아하니··· 황제가 시안의 사지를 찢으려 드는 것 같았다.
딱히 나설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달칵.
로열 나이츠들은 그대로 알현실의 문을 다시 닫았다.
그렇게 한바탕 소란이 이어지고.
“후우···!”
시안은 우여곡절 끝에 알현실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시안은 시선을 내려 팔과 다리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천만다행히도 사지들이 멀쩡히 잘 붙어있었다.
“휴우···.”
시안은 그때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콘라드가 옆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런 콘라드가 필사적으로 발루아가를 붙잡아주었기에 망정이었지.
“이번엔 정말로 죽을 뻔했네.”
그게 아니었다면 정말 사지가 찢겨져나갈 뻔했다.
“그래도 뭐···.”
시안은 씨익, 웃음을 지었다.
비록 사지가 찢길 위험이 있었다만, 그래도 2억 5천만 골드를 약속 받을 수 있었으니까.
복원에 필요한 1억 5천만 골드.
시간 단축의 추가 결제로 1억 골드.
본래 2억 골드에서 5천만 골드를 더 받아낸 성과였다.
그 과정에서 약간의 사기(?)가 더해졌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게 사기는 또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샤를롯의 검술이 뚝딱, 하고 나오는 건 아니었으니까.
실제로 시안은 레아와 함께 밤잠을 설쳐가며 샤를롯의 검술을 복원했다.
그 수고비를 받는다 생각하면 솔직히 사기는 아니었다.
물론 그럼에도 과한 금액이긴 했다만···.
그럼에도 해볼 만한 승부인 건 맞았다.
발루아가뿐만 아니라 시안 또한 도박을 한 셈.
그 판돈으로 시안의 사지를 내걸어야 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결국은 잘 되지 않았는가.
시안은 어깨를 한 번 으쓱여보였다.
달칵.
이윽고 알현실의 문이 열리며 콘라드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퀭한 두 눈.
뭐라 할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은 것일까.
“자네는 정말···.”
시안을 바라보는 콘라드의 목소리에는 힘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시안은 그런 콘라드를 향해 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는 품 속에 손을 넣는 척.
인벤토리에서 2권의 책자를 꺼내 슬쩍, 콘라드에게 건넸다.
“이게··· 뭔가?”
콘라드는 얼떨결에 시안이 건네는 책자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가장 겉표지에 써져있는 제목을 확인했다.
[샤를롯의 검술 - 실전본]
[샤를롯의 검술 - 해례본]
“······?”
뭔가 싶은 것도 잠시.
콘라드는 받아든 책자를 펼쳐보였다.
먼저 실전본이라 적혀있는 책자.
그곳엔 검을 휘두르는 사람의 그림이 그려져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어딘가 눈에 익은 자세였다.
다름 아닌 콘라드가 레아에게서 배웠던 동작들.
그러니까 콘라드가 맛보기로 배웠던 샤를롯의 검술과 같았다.
이어 해례본의 책자에는 실전본에 그려져있는 동작과 자세들.
그 동작들에 따른 해석과 묘리들이 아주 상세히 적혀있었다.
한 마디로 이건 샤를롯의 검술을 배울 수 있게 제작된 책자였다.
또한 그런 책자가 지금 콘라드의 손에 들려있다는 것.
“이미 복원을 완료한 상태였다고···?”
“폐하께는 절대 비밀입니다.”
시안은 검지 손가락을 들어보이며 중얼거렸다.
콘라드는 멍하니 시안을 바라봤다.
뭐라 할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출타하는 콘라드의 정신과 어이.
“내가 정말 혹시나 해서 묻는 거네만··· 자네 정말 미친 것이 아닌가?”
“미치다니요. 전 항상 제정신입니다만.”
“제정신인 사람이 지금··· 아니, 아니네.”
콘라드는 뭐라 말을 하려다가 그냥 입을 꾹, 다물었다.
따져봐야 괜히 머리만 아플 것이니까.
그 간의 경험상 생각을 포기하는 게 편하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무엇보다 시안은 약속을 지킨 것이었으니까.
물론 발루아가는 이것이 샤를롯의 검술인지 의심했다.
하지만 콘라드는 이것이 진짜 샤를롯의 검술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기에 따지고 보면 시안을 책할 이유가 하등 없었다.
도리어 끊겨진 황가의 명맥을 잇게 해준 것.
그것에 감사를 하면 해야했지 책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물론.
“2억··· 5천만 골드라 했었나?”
2억 5천만 골드는 많이 골치가 아팠지만.
“이것도 혹시나해서 묻는 거다만··· 일부 금액을 영토로 하사하는 건 안되겠는가?”
“에이, 전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저 현찰로밖에 안 받는다는 거.”
단호하다 못해 철벽 같은 시안의 답에 콘라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콘라드는 한탄 섞인 한숨만 내뱉을 뿐이었다.
아무리 황가라고는 하나 2억 5천만 골드는 어마어마한 돈.
쉽사리 지출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그럼 난 바로 일을 처리하러 가보겠네.”
하지만 또 지출하지 못할 돈은 또 아니었다.
애초에 샤를롯의 검술 값이라 생각하면 거저 먹는 것이나 다름 없었고.
이윽고 콘라드가 천천히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콘라드가 다시 한 걸음을 떼려던 그때.
“아, 참. 전하, 처리하시는 김에 이것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시안은 그런 콘라드를 붙잡듯 말을 건넸다.
멈춰선 콘라드의 발걸음.
콘라드는 의아한 표정을 짓는 한편, 말하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시안은 품 속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내들어 콘라드에게 건넸다.
콘라드는 곧장 그 내용을 살폈고.
“엘란두르와의 영지전 신청서···?”
금방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멍해지는 정신.
뭐··· 알고는 있었다.
시안이 엘란두르에게 선빵을··· 아니, 선제 공격을 하려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내심 흘려버린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엘란두르에게 선빵이라니.
어느 누가 이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겠는가.
그렇기에 그냥 해본 소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늘.
“······ 진심이었는가?”
지금 보니 정말로 진심이었던 것 같았다.
“그렇습니다.”
시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잠깐 망설였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번 작위식에서 보인 듀라크의 모습.
그러니까 루슈리아의 기운이 느껴졌던 듀라크의 모습.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으나 듀라크는 악마 7군주와 관련이 있다.
지금 루벤을 공격하지 않은 이유도 그러한 이유이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듀라크가 왜 작위식까지 찾아온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왠지 시간을 주면 안될 것 같단 말이지···.’
그리고 전쟁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법.
마침 샤를롯의 검술을 판매해서 얻은 2억 5천만 골드도 있겠다.
시안은 끝내 엘란두르에게 선빵을 치기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런데 초월 등급 방어구를 만들면··· 돈이 부족할 것 같은데.’
듀라크와 대적하기 위해 필요한 강황.
그리고 혹시 모를 악마 7군주를 생각한다면 초월 등급의 강화는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고 지금 시안이 벌어들인 2억 5천만 골드에 달하는 초월적인 골드.
하지만 초월 등급의 강화 또한 말 그대로 초월이었다.
뭐, 어디까지나 확률이었기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정말 혹시나.
정말로 혹시나 모르크루의 기운을 100% 찍어 버린다면···.
띠링!
《운이 없으시다면, 현질로 매꿔보세요!》
어쩌면 2억 5천만을 전부 쏟아부어야할 수도 있었다.
아니, 지금까지 모으고 지른 돈이 얼마인데.
어떻게 또 돈이 모자르다는 말이 나올 수 있는 거지?
“하아···.”
절로 새어나오는 한숨.
그런데 뭐 어쩌랴.
부족하면 또 모아야지.
‘그런데 한 두푼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그 돈을 대체 대체 어디서···.’
바로 그때였다.
일순간 시안의 감각으로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시선을 들어 바라본 그곳.
저 멀리, 익숙한 모습의 두 사람이 시안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새하얀 수염이 인상적인 노인.
그리고 파란 머리가 인상적인 사내.
“로르실트 가(家)의 가주, 에그리트 로르실트.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로르실트 가(家)의 파나트 로르실트.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다름 아닌 에그리트와 파나트였다.
갑작스러운 두 사람의 등장.
콘라드가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에그리트에게 물었다.
“에그리트 후작께서 어인 일로?”
“그것이··· 여기, 시안 백작과 할 이야기가 있사온지라.”
“시안 백작과 말인가?”
콘라드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에그리트 후작이 시안을 만날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심지어 이렇게 직접 찾아오기까지 할 이유는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에그리트 후작이 직접 말이다.
하지만 곧 들려온 시안의 말.
“혹시 추가 결제와 관련해서···?”
“아.”
콘라드는 금방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다름 아닌 추가 결제라는 말.
에그리트 후작도··· 뭔가에 물린 모양인 듯 싶었다.
그러니까 콘라드가 샤를롯의 검술에 물린 것처럼.
에그리트 후작도 뭔가에 단단히 물린 것 같았다.
하지만 에그리트 후작은 다를 수 있었다.
에그리트는 로르실트 가(家)의 가주, 8위계(位界)에 닿은 대마법사이자 현자.
아무리 시안이라도 에그리트와의 협상은 쉽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콘라드는 아주 잠깐뿐이었지만.
“크흠. 그··· 현재 로르실트의 재정이 썩 좋지 않은 터라 말이네···.”
그런 희망을 잠깐이나마 품었다.
슬금슬금, 시안의 눈치를 보는 에그리트 후작.
콘라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기사, 황제인 발루아가 마저 저 시안을 어찌할 수가 없었거늘.
에그리트 후작이라고 뭐가 다를까.
‘······ 힘내시게, 에그리트 후작.’
콘라드는 속으로 에그리트 후작의 명운을 빌어주며 슬쩍, 자리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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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리트와의 협상은 생각보다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일단 기본 1억 골드에 상응하는 지식을 알고 싶네만···.”
그도 그럴 것이 일단 맛보기로 기본 1억 골드만 결제하고자 했었으니까.
그러면서 로르실트의 재정이 어쩌구.
요즘 상당히 힘들다느니 어쩌구 하는 말을 첨언했지만···.
누가 봐도 맛보기로 결제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결제해보고 괜찮으면 추가 결제할 생각.
어쨌거나 1억 골드를 벌어들인 건 변함 없었다.
가뜩이나 돈도 필요한 상황이겠다.
시안으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죄송하지만, 관련 지식들을 지금 당장 드릴 수가 없습니다.”
다만, 엘로디의 지식은 지금 바로 만나 볼 수가···.
아니, 지금 바로 알려줄 수가 없었다.
샤를롯의 검술이야 미리 준비를 하기도 했었거니와.
샤를롯의 검술은 시안이 관여할 수 있는 ‘검’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엘로디의 지식은 ‘마법’의 영역.
이는 아스란디즈와 세라의 도움을 받아야했다.
물론 대충 짜깁기해서 알려줄 수야 있었다.
하지만 시안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탕은 해도 사기는 치지 않는다.
이것이 시안의 철칙이었으니까.
《퍽이나요!》
어디선가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이 들려온 것 같았지만···.
뭐, 아무튼.
콘라드에게 준 샤를롯의 검술처럼 이론과 해석까지.
완벽하게 적어서 책자로 만들어 줄 필요가 있었다.
‘그걸 보고 또 추가 결제를 할 수도 있으니까.’
이렇게 샤를롯의 검술로 2억 5천만.
엘로디의 지식으로 1억.
도합 벌어들인 금액은 3억 5천만.
다만, 시안의 수중에 들어오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해서 작위식도 끝났겠다.
지금 당장 할 일도 없겠다.
똑똑.
“아리아. 나야. 안에 있어?”
시안은 황궁의 귀빈실에 있는 아리아를 찾아갔다.
다름 아닌 성물에 관련한 정보를 얻기 위함이었다.
-들어오세요.
안 쪽에서 청량한 아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안이 가볍게 방 문을 열자 보이는 아리아의 모습.
그런데 또 왜일까.
착, 가라앉은 분위기가··· 어째 참한 미소녀처럼 느껴졌다.
그에 따라 갑자기 마기가 다시 한 번 들끓는 기분.
“야, 너 또 조신한 척 지랄하려고?”
“뭐, 뭐? 조신한 척 지랄? 너 이씨···!”
그러자 아리아가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소리쳤다.
시안은 그때서야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아리아에게 다가가자 아리아가 시안을 쏘아봤다.
“뭐야. 생각보다 멀쩡하네?”
그리고 들려온 아리아의 말.
“응? 생각보다 멀쩡해?”
“작위식에서 축복 받고 기절할 것처럼 굴더니··· 생각보다 멀쩡하네.”
“잠깐. 너 그 말은···.”
역시나, 일부러 그랬던 것 같았다.
시안은 순간 울컥, 하는 심정에 입을 열었지만 금방 입을 꾹, 다물었다.
이미 지난 일이기도 했거니와.
괜히 말씨름 하면 피곤한 건 이쪽이었으니까.
“하여간, 못되쳐먹어가지고는.”
“뭐라고? 너 진짜···!”
“됐고. 그보다 그 로라라는 분은? 아까 작위식에서 너랑 같이 있었던 것 같았는데?”
아리아는 새침한 표정으로 시안을 쏘아봤다.
하지만 금방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잠깐, 할 일이 있다고 자리를 비웠어.”
“또? 그럼 성물에 관한 건···.”
“걱정하지마. 네가 궁금해하는 건 내가 알아왔으니까.”
뭐, 그렇다면야.
시안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아리아의 앞에 앉았다.
잠깐의 정적.
이내 아리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악마 제구와 관련한 성유물은 없었어. 하지만 아르나이즈와 관련한 성유물은 있었어.”
“아르나이즈의 성유물이 있다고? 누군데?”
천 년전에 활동한 아르나이즈는 모두 6명.
그들 중 아리아가 말한 아르나이즈는···.
“예상했다시피, 뮤리엘과 관련한 성유물이야.”
역시나 뮤리엘이었다.
어찌보면 당연하다 생각될 수 있었지만 이게 또 그렇지가 않았다.
“뮤리엘? 그런데 유적에서는 아무것도 없었잖아.”
지난 날, 시안이 찾아갔던 뮤리엘의 유적.
그곳에는 뮤리엘이 남긴 유산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지금 아리아가 차고 있는 장신구.
신성력을 2배 가량 증폭시켜주는 사기적인 장신구였다.
하지만 성물과 관련한 것은 없었다.
뮤리엘과 관련이 있다면 응당 뮤리엘의 유적에 있었어야할 터.
뭐, 교황청에서 이미 가져간 것일 수도 있었다만.
“뮤리엘이 만든 성유물이긴 한데. 뮤리엘이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었던 모양이야.”
어째,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아리아는 곧장 말을 이었다.
“로라가 말해준 바로는 뮤리엘과 관련한 성유물이 하나 전해져 내려온다고 해. 그런데 무엇인지는 로라도 모르나 봐.”
“그게 무슨 소리야? 그 로라라는 분이 성유물을 관리한다며.”
“그게··· 교황청에도 없는 성유물이거든.”
“······?”
시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교황청에 없는 성유물?
그런 시안의 의문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아리아가 말을 이었다.
“뮤리엘이 다른 이에게 그 성유물을 맡겼거든.”
“다른 이에게 맡겨?”
“그런가 봐. 그래서 로라는 물론. 뮤리엘 이후로 교황청의 그 누구도 본 적이 없대.”
시안은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뮤리엘 이후로 그 누구도 본 적이 없다는 성유물.
그렇다는 건 천 년동안 아무도 본 적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럼 그 성물의 존재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건데?
아니 뭐, 그래.
그건 대충 넘어간다 치자.
“그럼 뮤리엘이 누구한테 맡겼다는데?”
이어진 시안의 물음에 아리아가 잠시 뜸을 들였다.
시안은 그런 아리아의 말을 기다렸고.
조금의 시간이 지나 아리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몰라.”
“······ 뭐?”
“누구에게 맡겼는지 몰라. 그러니까 로라도 모르겠대. 뮤리엘이 누구에게 성물을 맡겼는지. 그저 다른 누구한테 성물을 맡겼다. 이렇게만 알려져 있다고 하던대.”
누군가에게 성물을 맡겼는데 그게 누군지 모른다?
“그게 뭔···.”
전해져내려오다 만 듯한 이야기가 있단 말인가.
마치 중요한 일을 하다 끊긴 이 기분.
“로라도 그렇고. 내 생각도 그렇고. 아무래도 의도적으로 감춘 게 아닐까 싶어.”
“의도적으로 감추었다고? 누가? 뮤리엘이? 그리고 뭘?”
“뮤리엘이 성물을 맡긴 누군가 말이야. 의도적으로 그 존재를 감춰서 성물의 위치를 숨길려던 것 같아.”
뭐··· 그럴 수는 있었다.
“그럼 끝까지 감출 것이지. 왜 관련한 이야기는 전해져내려오는건데?”
“마냥 숨겨서도 안되었던 것 같아. 아마··· 누군가는 알아야만 하는 정보였던 게 아닐까 싶어. 그런데 완전히 밝히기엔 또 밝혀져서는 안되는 물건이었던거고.”
“음···.”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다시 이어진 아리아의 말.
“하지만 그럼에도 교황청에 맡기는 편이 좋았을텐데. 왜 다른 이에게 맡기면서까지 감춘건지는 나도 잘···.”
그도 그럴 것이 교황청은 샤를롯 제국으로 치면 황궁과도 같은 곳이었다.
대륙에서 그곳 만큼 안전한 곳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기에 아리아는 심히 의문을 표하고 있었지만.
‘이거···.’
시안은 그때서야 어찌된 일인지 대략적인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천 년 전, 뮤리엘은 믿을 만한 이에게 그 성물을 맡기기로 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알지 못했다.
성물을 뮤리엘 스스로가 지킬 수 없다 판단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지.
어쨌거나 뮤리엘은 자신이 아닌 다른 이에게 성물을 맡기기로 한다.
그리고 뮤리엘이 살아있을 당시.
교황청은 믿을 만한 이들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천 년전.
카일이 자신을 따르는 검은 사자 기사단들에게 내린 명령.
‘교황청의 사람들을 죽여라.’
이와 관련하여 카일이 켄드릭에게 말하길.
‘한 가지 알려줄 수 있는 건, 교황청의 세력이 악마와 관련이 있다는 것뿐. 너희들에게 과한 짐을 안겨준 것 같지만··· 부탁한다. 현재로서 믿을 만한 이들이 너희들밖에 없구나.’
그렇게 카일은 떠나갔고.
켄드릭과 검은 사자 기사단은 끝내 교황청을 습격했지만, 뮤리엘에 의해 그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들은 지하에 갇혀 끔찍한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했고.
그 원한은 그들을 데스 나이트로 부활시켰다.
그리고 천 년의 세월이 흘러 끝내 시안을 만나게 된 것.
어쨌든 천 년전의 교황청은 악마와 연관이 있었다.
뮤리엘은 아마 그런 교황청을 믿을 수 없었던 것.
해서 뮤리엘은 교황청이 아닌, 다른 이에게 성물을 맡긴 것 같았다.
그리고 관련한 전설이 반만 도려내서 전해지는 이유.
“음···.”
정황상 추측건대.
메인 스토리 퀘스트에서 말하는 성물은 이게 맞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뮤리엘이 성물을 맡긴 누군가.
그 누군가를 찾으면 해결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대체 누구야?’
그게 누구인지 도무지 알 방법이 없었다.
해당 일은 무려 천 년전의 일.
남아있는 단서가 있다 하더라도 이미 세월 속에 묻혀 사라졌을 터였다.
‘정황상 카일이지 않을까 싶긴 한데···.’
현재로서 추측할 수 있는 바로는 이러했다.
카일은 믿을 만하고 또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였으니까.
그렇기에 높은 확률로 카일이지 않을까 싶었다.
‘문제는 카일은 또 어디에 있냐는 거지.’
그런데 카일은 또 어디서 찾느냔 말이다.
그러니까 이미 천 년전에 죽은 존재를 어디서 찾느냔 말이다.
애초에 카일을 찾을 수 있었다면 이 고생을 할 필요도 없었다.
되려 복잡해진 퀘스트의 행방.
바로 그때였다.
띠링!
일순간 시안의 품 속에서 스마트 폰의 알림음이 들려왔다.
모바일 영주가 깐족거리는 건가···?
싶었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안의 수중에 들어올 3억 5천만 골드.
모바일 영주가 깐족거릴 타이밍도, 상황도 아니었다.
‘그럼 뭐지?’
시안은 살며시 품 속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확인한 화면.
‘퀘스트가 갱신되었다고?’
다름 아닌 퀘스트가 갱신되었다는 알림창이 떠올라 있었다.
시안은 곧장 알림창을 터치했다.
그렇게 확인한 갱신된 퀘스트.
『[스토리 메인 퀘스트] - ‘풀리지 않은 의문’
▶최후의 드래곤을 찾으세요.』
<보상: ???>
.
.
.
“······ 드래곤?”
그곳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 떠올라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