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 초월의 강화(2)
빰빠라라밤 빰빰빰빰!!!
《강화 성공!!》
크나큰 팡파레 소리와 담백한 알림창이 떠올랐다.
그와 함께 SSS등급의 방어구에서 찬란한 빛이 터져나왔다.
[착용자의 인과에 맞는 초월(超越) 장비를 제작 중입니다.]
그리고 떠오른 시스템의 알림창.
“하아···.”
시안은 저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멍한 정신과 시선.
시안은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릴 수 있는 게 되려 이상한 일이었다.
찰나의 순간에 타올라버린 2억 5천만 골드.
농담이나 단순히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정말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뮤리엘의 축복이 지속되는 시간은 1분.
그러나 시안은 쪼개지는 시간의 세계를 넘나들며 강화를 거듭했다.
그리하여 2억 5천만 골드가 사라진 시간은 1분.
2억 5천만 골드라는 금액이.
4인 가족이 694,444년을 숨만 쉬며 살아갈 수 있는 초월적인 금액이.
그 69만 년의 시간이!
단 1분으로 압축되어 타올라버렸다.
그야말로 찰나.
다른 의미로 허락되지 않은 아득한 너머의 영역.
또 경험하지 않은 새로운 영역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때문일까.
《당신! 혹시, 그거 아세요?》
모바일 영주는 기절하지 않았다.
애초에 강화는 모바일 영주의 인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무엇보다.
‘모바일 영주가 기절하면 곤란하니까···.’
솔직히 모바일 영주가 기절하면 곤란했다.
<뮤리엘의 축복>은 물론이고 여러 서비스 이용에 제약이 생겼으니까.
해서 엘란두르와 전쟁을 앞두고 있는 지금.
모바일 영주가 점검하는 건 시안으로서도 좋지 않았다.
그래, 그런 것이었다.
2억 5천만 골드가 증발한 건 그 때문이었다.
《시간 정지 마법은 있는데,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은 없다는 것을요!》
《그 말은 즉슨! 증발해버린 골드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되돌 수 없다는 것이죠!》
시안의 운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것도 전부 다 계획의 일환이었다.
《한 마디로 돌이킬 수 없는 일!》
《네? 알고 있다고요?》
《소가 도망쳤다는 얘기를, 왜 외양간 고치고 있는데 하냐고요?》
그래, 그런 것이다.
모든 것은 시안이 짜놓은 계획의 일환─.
띠링!
《그거야 제 맘이죠!!》
─이기는 개뿔이 무슨!
“야이─!!”
시안은 분노로 가득한 외침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하아···.”
한숨과 함께 다시 몸을 축, 늘어뜨렸다.
화를 내고 싶어도 그럴 여력도, 심정도 아니었으니까.
치밀어 오를 울화 또한 골드와 함께 활활, 타올라버렸다.
지금 시안은 영혼이 사라진 빈 껍데기나 다름 없었다.
시안은 모바일 영주의 깐족거림을 가만히 바라봤다.
띠링! 띠리링!
띠리리리링!
이때다 싶은 것인지 모바일 영주는 끊임없이 깐족거림을 올려보냈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초월(超越) 장비 첫 번째 세트 효과가 적용됩니다.]
[초월(超越)등급 장비 뽑기권이 개방됩니다.]
모바일 영주의 깐족거림이 아닌 다른 알림창이 떠올랐다.
시안이 강화한 초월 등급의 검과 방어구.
그 세트 효과가 개방된 것 같았다.
“초월 등급 장비 뽑기권?”
시안은 퍼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보아하니··· 초월(超越)등급의 장비를 뽑을 수 있는 무언가인 것 같았다.
“설마, 초월 등급의 장비도 강화할 수 있는 건가?”
모바일 영주에서 강화의 재료는 같은 등급의 장비였다.
SSS등급의 장비를 강화하려면, SSS등급의 장비가 필요한 셈.
따라서 초월 등급도 강화가 가능하다면 같은 초월 등급의 장비가 필요할 터였다.
“그런데···.”
시안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이전 SSS등급의 장비까지는 어찌 감당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러니까 어찌저찌 만들어서 강화에 투자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초월 등급은 아니었다.
당장 시안이 방어구에 쏟아부은 돈만 거진 3억 골드 이상.
그런데 또 다시 이 짓을 해야한다?
그것도 강화가 성공할 때까지 계속?
“차라리 강화를 안하고 말지.”
그건 안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었다.
아무래도 모바일 영주 또한 이 부분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개방된 것이 초월(超越)등급 장비 뽑기권.
초월 등급은 바로바로 뽑을 수 있는 것 같았다.
양심 따위는 개나 줘버린 줄 알았건만.
그나마의 양심은 존재하는 것 같았다.
물론.
[초월(超越)등급 장비 뽑기권 (30,000,000 G)]
“3천만 골드는 좀 미친 가격이긴 하다만.”
뭐, 그래도 초월장비를 직접 만드는 것보다는 저렴하다 할 수 있었다.
시안은 새로이 개방된 뽑기권의 항목을 터치했다.
꾹.
[이곳에서는 초월(超越)등급의 장비를 뽑을 수 있습니다.
[원하는 초월 장비를 지정 후, 뽑기권을 사용하면 확률에 따라 해당 장비를 획득하실 수 있습니다.]
[지정 가능한 장비 목록]
【쿤달라의 귀걸이】 [등급] - 초월(超越).
【부서진 약조의 반지】 [등급] - 초월(超越).
【운명재림】 [등급] - 초월(超越).
【태양석】 [등급] - 초월(超越).
【흑석(黑石)】 [등급] - 초월(超越).
【태초의 불꽃】 [등급] - 초월(超越).
.
.
.
주르륵, 나열되어 있는 수많은 장비들.
하나같이 범상치 않아 보이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무구들이··· 아니네?”
시안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것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무구들이 아니라 대부분 장신구와 같은 것들이 즐비해있었다.
물론 검과 방어구와 같은 무구들은 있었다.
그러나 시안이 가진 것과 같은 방어구와 검은 없었다.
“이걸 가지고 어떻게 강화하라는 거야?”
싶은 물음도 잠시.
“어···?”
시안은 항목 중에서 익숙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흑석(黑石)】 [등급] - 초월(超越).
다름 아닌 흑석.
바로 그때였다.
[보유하신 장비의 인과를 계산합니다.]
[흑석(黑石) 1개를 소모하여 초월 등급의 장비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 폰 화면 위로 또 다른 알림창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초월 등급의 장비부터는 강화의 방식이 달라지는 것 같은데···.
그런데 이 흑석(黑石)이라는 것.
“이거 지금 하나 가지고 있는데?”
이미 시안이 하나 가지고 있었다.
다름 아닌 세미르에게서 받았던 모르크루의 유산.
그것이 바로 흑석(黑石)이었다.
그리고 이 흑석(黑石)을 통해 【강화】 항목을 해금할 수 있었다.
즉, 흑석을 얻음으로써 시안은 장비를 강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일환으로 세미르는 시안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아르나이즈들의 무구를 손수 만들어주었던 신장(神匠) 모르크루.
‘그러나 선조께서는 카일이 사용하는 무구만큼은 만들 수 없었다고 하오. 카일이 사용하고 있던 검. 선조께서 만든 무구들도 범접할 수가 없었다고 하오.’
‘해서 선조께서는 그 검을 뛰어넘고자 수많은 역작들을 만들어냈지만, 결국 넘을 수 없었다고 하오. 해서 선조께서는 그 검을 개량하는 것에 만족을 할 수밖에 없었지.’
‘그런데 그 개량조차 쉬이 할 수 없었다고 하오. 말했다시피 이미 완벽한 검이었으니 말이오.’
‘그럼에도 선조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셨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고, 끝내 아르나이즈 엘로디와 상의한 끝에 방법을 찾게 되었다오. 그리고 그것이···.’
이 흑석(黑石)이었다.
시안은 인벤토리에서 꺼낸 흑석을 만지작 거렸다.
새까맣다 못해 심연의 어둠으로 물든 것만 같은 돌.
“이걸로 초월 등급 장비를 강화할 수 있다?”
아무래도 이 흑석(黑石)의 진짜 용도가 이것이었던 것 같았다.
초월 등급의 장비를 강화하는 재료.
그리고 카일의 검 또한 이 흑석(黑石)으로 개량을 했던 것 같았다.
그 말은 즉.
“지금 내 무기가 카일이 사용한 것과 같은 등급에 오른 건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물론 정말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아마 카일이 사용한 검보다는 살짝 못미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적어도 다른 아르나이즈들이 사용한 무구들.
샤를롯의 검, 조디악 소드(Zodiac Sword).
모르크루의 둠해머, 아달라드(Adalrad).
엘로디의 지팡이, 인스티즈(Instiz).
뮤리엘의 완드, 이슈텐(Isuten).
노에미의 홀, 샤라스달(Sharasdal).
천 년전, 아르나이즈들이 사용한 무구들과는 등급에 올라온 것 같았다.
한 마디로 신화 속의 무구들과 다를 바 없는 셈.
역시 초월 등급은 초월 등급인 것일까.
“크흠.”
시안은 갑자기 돈이 아깝지가 않았다.
그러니까 찰나의 순간에 사라져버린 2억 5천만 골드가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2억 5천만 골드가 어마어마한 골드이긴 하다만.
아르나이즈들의 무구를 얻는 것치고는 그리 어마어마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심지어 검과 방어구, 두 개나 가지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추가로 흑석으로 강화할 수 있는 것까지.
“확률이 얼마지?”
시안은 스마트 폰을 조작해 【강화】 항목에 들어갔다.
초월 세트를 장비해서일까.
강화 항목이 어딘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시안은 이것저것 조작해보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익숙해질 수 있었다.
[초월 등급 강화 비용 흑석(黑石) 1개]
[강화 성공 확률 10%]
그렇게 확인한 강화 성공 확률은 10%.
강화 비용은 흑석(黑石) 1개였다.
“확률이··· 생각보다 높은데?”
생각보다 월등히 높았다.
솔직히 1%도 채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최소 0.5% 어쩌면 0.1%까지 갈 것이라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확인한 확률은 10%.
10번 중에 1번 성공할 확률이 아닌가.
이 정도면─.
“잠깐.”
시안은 순간 멈칫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문득 떠오른 생각.
강화를 이렇게 쉽게 해놓았다고···?
그것도 초월 등급의 강화를?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간 경험한 모바일 영주는 결코 그렇게 할리가 없었다.
“이거 설마···.”
그렇기에 떠오른 생각 하나.
시안은 새로이 개방된 초월등급 장비 뽑기권을 확인했다.
[뽑기 비용 30,000,000 G]
[뽑기 확률 10%]
뽑기 비용 3천만 골드.
뽑기 확률 10%.
시안이 강화를 위해 뽑아야하는 것은 흑석이었다.
다행히 원하는 것을 지정할 수는 있었으니 10번의 시도에 흑석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뽑은 흑석은 다시 10%의 확률로 강화를 할 수 있었다.
뽑기권에서 10%.
강화에서 10%.
10%의 10%.
확률에 확률.
따라서 3억을 다시 10번 반복.
강화 성공의 기댓값은 자그마치 30억···.
띠링!
《강화를 하고 싶으시면, 현질을 해보세요!》
콰앙!
“이런 개같은─!”
정말이지 욕이 안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어쩐지! 강화를 이렇게 쉽게 해놓을리가 없었다.
아르나이즈들의 무구와 같은 급의 초월 장비.
그런 초월 장비를 쉽게 강화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물론 그만큼 강화의 효과도 어마어마할 터.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30억은 너무하지 않은가!
“이걸 강화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이 정도면 강화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 없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울분.
‘아니, 아니지?’
하지만 시안은 금방 진정을 할 수가 있었다.
초월 등급의 장비를 강화하는데 필요한 것은 흑석이었다.
그 흑석은 현재로서 뽑기권에서 확률로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가 않았다.
흑석은 뽑기권에서만 얻을 수 있지 않았다.
‘모르크루는 이 흑석을 직접 만들었잖아.’
모르크루는 분명 이 흑석을 직접 만들었으니까.
세미르가 전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분명 그러했다.
애초에 그렇지 않으면 지금 시안의 손에 흑석이 있을리가 없었다.
천 년전의 아르나이즈, 모르크루.
설마하니 모르크루가 모바일 영주에서 초월 장비 뽑기권을 사용하지는 않았을테니까.
즉, 흑석은 뽑기권이 아니라 직접 만들 수가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모르크루였기에 만들 수 있었던 것일 터였다.
모르크루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모르크루의 후손인 세미르.
모르크루도 만들었는데 세미르라고 만들지 못할까.
무엇보다 시안이 2억 골드를 투자해 지은 <모르크루의 단철장>.
그 안에 깃들어있는 모르크루의 제련 비법들까지 있는 상황이었다.
시안은 퍼뜩,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두리번두리번,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세미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세미르.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나요.”
시안의 물음에 세미르가 떨리는 눈빛으로 시안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지금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강화를 하면서 혼자 지랄 발광을 했던 시안의 모습.
이해를 할 수 있으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세미르는 그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물어보시오···.”
아무래도 그냥 생각을 포기한 것 같았다.
“혹시 흑석을 만드실 수 있나요?”
“흑석이라 함은···?”
시안은 들고있는 흑석을 세미르에게 보여주었다.
세미르는 그때서야 시안의 말을 이해하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선조께서 남기신 유산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잘은 모르겠소. 시도 자체를 해보지 못했으니 말이오. 일단 흑석를 만들려면 세계수의 힘이 필요했다오.”
흑석은 카일의 무기를 개량하고자 모르크루가 만든 것.
정확히는 엘로디와 합작하여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엘로디의 힘이라 함은 다름 아닌 세계수의 힘이라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엘로디의 지팡이, 인스티즈.
인스티즈 자체가 하나의 세계수였으니까.
엘로디는 그 힘을 끌어 모르크루를 도와주었을 터.
흑석은 그런 세계수의 힘이 깊이 관여된 물건이라 할 수 있었다.
애초에 세계수의 부산물로 강화 확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흑석을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가 없었다.
시도조차 할 수가 없었다.
시도를 하려면 세계수를 구해야했는데 그걸 대체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생명의 근원을 품고 있는 나무, 세계수.
세계수는 스스로가 의지를 지닌 나무였다.
옮겨 심고 싶다 해서 함부로 옮길 수 있는 종류도 아니었거니와.
그 부산물조차 세계수의 의지가 허락하지 않으면, 그냥 평범한 나뭇가지, 잎사귀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흑석에 관한 연구나 시도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루벤에는 현재, 세계수가 자생하고 있었으니까.
그것도 엘로디의 지팡이였던 인스티즈가 말이다.
“그 말씀은···?”
“연구를 좀 해봐야알 것 같소이다.”
가능성은 있다는 뜻이었다.
“그럼 연구를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영주께서 부탁하신다면야 물론이오.”
세미르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왜인지 모바일 영주에 한 방 먹일 수 있을 것만 같은 이 기분.
“다만, 연구를 위해서 흑석이 좀 필요하오만···.”
“아. 물론이죠. 여기에 있습니다.”
시안은 흑석을 흔쾌히 건네주었다.
#
초월 등급 장비의 강화.
그 새로운 가능성을 맞이한 시안은 저도 모르게 기분이 들떠 있었다.
만일 세미르가 흑석을 만들 수 있다면···.
‘무한정 강화!’
무엇보다 초월 등급의 장비가 시안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과거, 아르나이즈들의 무구들과 같은 반열.
물론 증발한 2억 5천만 골드가 뼈 아프긴 했다만.
“어쨌든 만들긴 했으니까···.”
시안은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시안은 대장간을 빠져나와 다시 영주성으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영주성.
시안은 영주성에 들어가자마자 얼이 빠져있는 한스를 볼 수 있었다.
정확히는 멍하니 서있는 한스와 그의 동료들을 볼 수 있었다.
시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스를 불렀다.
“한스? 여기서 뭐해?”
“아, 아. 도련님. 오셨습니까.”
시안의 물음에 한스가 그때서야 정신을 차렸다.
“뭘 그렇게 멍하니 있어.”
“그, 그게··· 레아님과 성녀님이 싸우시는 걸 보다보니···.”
한스는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시안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둘의 투닥거림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러고보니··· 아리아랑 레아는?”
“그게··· 성녀님을 교육시킨다면서 레아님이 성녀님을 끌고··· 아니, 데리고 어디론가 가셨습니다.”
“그래?”
역시나 결국 아리아가 밀린 것 같았다.
시안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그런 시안의 반응을 지켜보던 한스.
“안 따라가보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한스가 걱정 반, 우려 반 섞인 표정으로 물어왔다.
“따라가? 어딜? 레아랑 아리아?”
“예.”
“왜?”
“그거야 레아님이 성녀님을···.”
한스는 차마 뒷말을 완성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시안은 삼킨 말이 무엇인지 모르지 않았다.
시안은 다시 한 번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걱정하지마. 레아가 저래보여도 아리아를 썩 싫어하는 것 같진 않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레아가 정말로 아리아를 싫어했다면 이런 상황조차 나오지 않았을 터였다.
레아는 아리아를 상대조차 하지 않았을테니까.
무엇보다 아리아가 개기면서 레아에게 했던 말들.
레아가 그 말들을 그냥 넘어갔을리가 없었다.
물론 지금도 그냥 넘어간 것 같지는 않다만.
그것보다 더 역정을 냈을 것이 분명했다.
‘뮤리엘 생각이 많이 나나보네.’
아마 아리아에게서 뮤리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물론 레아는 아르나이즈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다니며 수많은 사선을 넘어온 것은 사실이었다.
말은 재수없니 뭐니 했어도.
레아와 뮤리엘이 상당히 친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레아는 루벤에 오기 전.
천 년의 세월 동안 아르나이즈 전당에 봉인되어 있었다.
그 까마득한 세월을 홀로 외로이 견뎌온 레아.
사람이 그리워도 한참이 그리웠을텐데.
하물며 그 대상이 천 년전의 친우라면야.
‘어쩐지, 둘이 은근히 죽이 잘 맞는 것 같더라니.’
어쨌거나 한스가 걱정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니 둘은 내버려 두고. 한스, 가서 사람들한테 내 집무실로 모이라고 해줘.”
지금은 그 둘보다는 다른 것에 집중할 때.
“중대한 이야기가 있으니 빨리 오라고 해줘.”
시안은 집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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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성 내부에 위치한 시안의 집무실.
그곳엔 루벤을 대표하는 이들이 모여있었다.
루벤의 경비대장, 루카스.
루벤의 기사단장이자 현재는 흑사자 기사단의 단장인 켄드릭.
루벤의 영지민들 중 인간들의 대표격인 그레이슨.
엘프들의 대표인 아스란디즈와 세라.
드워프의 족장인 세미르는 오지 않았다.
시안이 그냥 흑석을 연구하고 있으라 했었으니까.
그 대신 크마루가 세미르를 대신하여 왔다.
처음 루벤을 찾아와 시안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드워프.
이어 한스와 아멜리아까지 시안의 집무실에 모여있었다.
각 분야의 대표이자 루벤의 핵심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이들.
그런 이들이 모여있는 집무실의 분위기는 무겁게 내려앉아있었다.
시안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한명한명, 집무실에 모인 이들을 바라봤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
“다들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
“우리는 엘란두르를 칠거야.”
시안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