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 뜻밖의 손님(2)
커너는 지금 굉장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기분이 좋지 않다기보다는 몹시 귀찮다고 해야할까.
“하아···.”
절로 새어나오는 한숨.
“잠깐 이야기 좀 해.”
그건 옆에서 들려오는 어떤 목소리 때문이었다.
커너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보인 것은 한 은발의 여인.
“······ 이번엔 또 뭡니까?”
다이애나의 모습에 커너가 힘빠진 목소리로 답했다.
“잠깐 이야기 좀 하자니까.”
“전 분명 더 이상 도움을 드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만.”
“그런 거 아니야. 정말 이야기만 하려는 거야.”
“그럼 여기서 하면 되잖습니까.”
“보는 눈이 많잖아.”
커너는 천천히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런 시선으로 병사들의 시선이 한껏 집중되어 있었다.
흔치 않은 은발의 여인.
특히나 다이애나의 미모는 평범하지 않았다.
평범은 커녕 쉬이 찾아볼 수 없는 미모라 볼 수 있었다.
시선이 집중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 볼 수 있었다.
“하아··· 알겠습니다.”
커너는 한숨을 쉬며 주변의 병사들에게 말했다.
“나 잠깐 자리를 비울테니까. 일들 마무리 해.”
“어디 가십니까. 설마 데이트···?”
“커너 교관님 여자친구 있으셨습니까?”
“엄청 이쁘십니다! 진짜 부럽슴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기다렸다는 듯이 병사들이 소리쳤다.
커너는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답했다.
“데이트는 무슨. 이 분이 누군지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누구십니까? 굉장히 아리따우신 분이라는 건 알겠습니다만···.”
“진짜 예쁩니다!”
“있어 이것들아. 알면 다치니까 그냥 그러려니 해.”
커너는 다시 시선을 돌려 다이애나에게 말했다.
“애들이 멋도 모르고 한 소리입니다. 괜한 신경쓰지 마시죠.”
“신경 안 쓰니까 걱정하지마.”
“정말입니까?”
“그렇다니까. 오히려 네가 신경쓰고 있는거 아니야?”
이어진 다이애나의 답.
커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걸음을 옮겼다.
다이애나는 그런 커너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도착한 한적한 장소.
“이제 말씀하시죠. 무슨 이야기를 하자는 겁니까.”
커너의 물음과 동시에 다이애나가 물었다.
“그··· 시안 백작은 어떤 사람이야?”
“그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말 그대로야. 시안 백작.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커너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영주님과 이야기 나누시고 오신 거 아닙니까?”
“그건 그렇긴 한데··· 사실 쫓겨났어.”
“네? 쫓겨나요?”
“정확히는 생각 좀 해보겠다고 하더니 쫓아냈어.”
“그 뭔···.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셨길래 영주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겁니까?”
커너는 물었지만 다이애나는 답을 하지 않았다.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리며 커너의 눈을 은근슬쩍 회피했다.
“설마 영주님을 암살하려고 했습니까?”
“아니야. 내가 왜 시안 백작을 암살해?”
“하기사, 그랬다면 길드장께서 지금 살아계실리 없으시겠죠.”
커너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이애나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다이애나는 시안을 암살하고자 했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으니까.
암흑가의 정점에 있는 다이애나는 그 실력 또한 정점이라 할 수 있었다.
농담이 아니라 마스터의 기사조차 암살할 수 있었다.
하물며 시안이라면야 순식간이었다.
물론 예전처럼 시안이 천하의 둔재는 아니겠다만 그래도 정도가 있었다.
다이애나는 마음만 먹으면 시안을 암살할 자신이 있었다.
“행여나 그럴 생각이시라면 꿈도 꾸지 마십쇼.”
그런데 커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다이애나는 살짝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 사실을 꼬집지는 않았다.
“암살 같은 거 안해. 그냥··· 좀 도와달라 했던 것뿐이야.”
“도움이요? 영주님께 말입니까? 어떤 도움을 말씀이십니까?”
커너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리고 다이애나는 이번에도 답을 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하자고 부르신 거 아닙니까?”
“그, 그건 그렇긴 한데···.”
다이애나는 괜시리 커너의 시선을 회피할 뿐이었다.
커너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행여 제게 도움을 바라진 마십시오. 어떤 것이든 전 영주님의 결정에 전적으로 따를 뿐입니다.”
단호하다 못해 매몰찬 커너의 말.
그리고 그 말에는 시안을 향한 굉장한 신뢰가 깃들어 있었다.
신뢰를 넘어 맹목적인 믿음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예전의 커너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한때 커너의 상관이었던 다이애나였기에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의 커너는 과거의 커너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시안 백작을 많이 믿고 있나봐.”
“길드장보다 훨씬 더 믿고 있습니다.”
다이애나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약간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니 행여 영주님께 해코지를 가할 생각일랑 마십시오.”
“야, 나도 너 거두어주었거든?”
“그 은혜는 이미 갚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대체 뭘로 갚았다는 건데? 난 왜 네가─.”
“그런 게 있습니다.”
커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이애나의 말을 끊었다.
“할 이야기 더 없으시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리고는 주저없이 등을 돌려 떠나는 커너였다.
다이애나는 그런 커너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예전과는 달라진 커너의 모습.
정말 이유는 모르겠지만 괜시리 질투나고 울컥하는 심정이 드는 것은 왜일까.
무엇보다 커너를 이대로 떠나보내서도 안 되었다.
“너 혹시 나 좋아하냐?”
다이애나는 떠나는 커너의 등에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커너의 발걸음이 뚝, 하고 멈추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아본 커너의 표정은 정말이지 가관이었다.
정말이지 미친년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
“미치셨습니까?”
역시나 딱 그런 표정이었다.
“논리 구조가 어떻게 되어있길래 사고의 흐름이 그쪽으로 흐르는 겁니까?”
“왜 좋아하는 사람을 괜시리 괴롭힌다고 하잖아. 남자들은 그런다던데.”
“그런건 어린 애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그리고 제가 길드장을 언제 괴롭혔다고 그럽니까?”
“지금. 절대 안 도와주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잖아.”
“그게 괴롭히는 겁니까? 아니, 그리고 제가 길드장을 괴롭힌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어디 죽을 일 있습니까?”
“야, 설마하니 날 괴롭힌다고 죽이기까지─.”
“제 눈으로 본 것만 수 십명입니다만.”
“······”
다이애나는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물론 그 새끼들은 사람이라기보다는 범죄나 저지르는 개새끼나 다름 없었습니다만.”
커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보였다.
다이애나는 커너를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나 정도면 괜찮지 않아? 실제로 길드 내에서도 나 좋아하는 사람 꽤 있었던 걸로 아는데.”
커너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부정을 해보이지는 않았다.
솔직히 맞는 말이긴 했으니까.
암흑 도시, 베네르에서 다이애나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암흑가의 정점에 선 인물기이도 했거니와.
다이애나의 미모가 쉬이 찾아볼 수 없는 미모였으니까.
달빛을 머금은 듯한 은발.
그 은발과 어울어진 다이애나의 아름다운 외모는 사뭇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해서 다이애나를 남몰래 짝사랑하는 길드원들이 많았다.
다만, 문제는 이놈들이 암흑가 출신의 범죄자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범죄자 새끼들이 치근덕거리는 방식이야 뻔했다.
그들은 다이애나에게 온갖 몹쓸 짓을 하려고 했고.
그 결과야 어떻게 되었는지 또한 뻔하디 뻔할 뻔자였다.
아무튼 다이애나의 미모는 객관적으로 봐도 아름다웠다.
“그런데 자기 입으로 그런 말을 합니까?”
“못할 건 뭐야.”
“못할 건 없지만 그런 사람치고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을 못 봐서 말입니다.”
“뭐? 지금 내가 제정신이 아니란 뜻이야?”
“암흑가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 제정신이라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
다이애나는 다시 한 번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리고 저 좋아하는 사람 따로 있습니다.”
“뭐? 누군데?”
“길드장은 모르는 사람입니다. 루벤의 사람이거든요.”
“루벤이라면··· 지금 네가 살고 있는 영지?”
“네.”
커너는 쑥쓰러운지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커너의 모습에 다이애나는 괜시리 장난기가 발동했다.
“나보다 예뻐?”
“무슨 질문이 그럽니까?”
“나는 거들떠도 안 볼 정도면 나보다 예쁘다는 거 아니야?”
“길드장님보다 안 예쁩니다. 대륙에 길드장님보다 예쁜 사람이 어디 흔한 줄 아십니까?”
“뭐야. 역시 너도 나를 좋아···.”
“그런데 길드장님은 제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아니, 왜?”
다이애나는 순수한 궁금증으로 물었다.
커너는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듯 말을 이었다.
“길드장께서 저 어릴 때 거두어 주신 거 모르십니까? 아무리 길드장이 예뻐도 제게는 그냥 어머니나 다름 없습니다. 아니, 그리고 외모만 젊을 뿐이지 실제 나이를 따지면···.”
“야야, 됐어. 그냥 농담 삼아 물어본거야. 농담삼아 물어본 거에 죽자고 달려드네.”
“저도 농담 삼아 말씀드린겁니다. 길드장께서도 죽자고 달려드시는군요.”
어째, 한 마디도 지지 않는 커너였다.
이제는 그림자 달 소속도 아니고 부하도 아니다 이거지.
아주 그냥 루벤의 사람이 다 되었다.
어쩌면 그래서일까.
“너. 예전이랑 좀 달라진 거 같다?”
다이애나는 달라진 커너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뭐가 말씀이십니까?”
“예전의 커너라고는 생각되지가 않아. 내가 알고 있는 커너는 세상 비관을 짊어진 커너였는데 말이야. 마치 내 인생에서 재밌는 일따위는 하나도 없다는 듯이 말이야. 그런데 지금은···.”
“한 때는 그랬었죠.”
커너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믿을 곳 하나 없던 암흑가의 생활.
커너는 부모의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했다.
커너가 기억하는 유년기의 시작은 암흑가의 골목.
굶주림과 헐벗음 그리고 생존의 처절함 뿐이었다.
이후 다이애나를 만나 암살자가 되었지만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되려 더욱더 깊어져만 갔다.
의뢰를 수행하면서 제국 전역을 돌아본 커너.
커너가 보고 또 느낀 이 세상은 썩어있었다.
추잡한 욕망만이 가득한 세상에 불과했다.
세간에 선(善)이라 알려진 위대한 일도 그 이면을 들춰보면 결국 위선에 지나지 않았다.
세상에 아름다운 일 따위는 없었다.
이런 세상에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커너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스스로 죽을 용기는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의뢰에 열중했는지 모르겠다.
암살자의 의뢰 실패는 곧 죽음.
그렇게 살다가 죽으면 그걸로 족하다, 그리 생각했었다.
그러다 루벤이라는 곳을 만났다.
시안이라는 이상한 영주를 만났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있었던 수많은 사건과 경험들.
그 경험 속에서 루벤을 좋아하게 된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그 사건 속에서 루벤의 사람들을 좋아하게 된 자신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라며 말하는 자신을 문득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니 세상이 조금은 달리 보이더군요.”
루벤에서 올려다 본 하늘.
그 하늘은 너무도 청명했다.
어둠의 숲에 위치한 루벤.
암흑가에 위치한 베네르.
척박한 둘의 환경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올려다 본 하늘은 너무도 달랐다.
루벤은 서로가 서로를 배척하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알고 보듬을 줄 알았다.
그 과정에서 위선은 없었다.
암흑가의 개새끼들과는 달랐다.
썩어문드러진 세상의 이면과도 달랐다.
이들은 함께 앞으로 나아갈 줄 알았다.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썩어빠졌다, 가 아니라.
세상이 아름답다, 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까지 들더군요.”
아, 나는 어쩌면 암살자로서의 시선으로만 세상을 바라본 것이 아니었을까.
커너는 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정말이지 세상 비관을 짊어지던 커너였거늘.
저런 웃음 같은 건 지을 줄 모르는 줄 알았거늘.
“······ 확실히 달라졌네”
그리고 그런 커너를 달라지게 한 것.
다이애나는 루벤과 더불어 시안이라는 자가 더욱 궁금해질 뿐이었다.
“반면에 길드장은 변한 게 하나도 없네요.”
“그러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이애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런 다이애나를 바라보던 커너.
“주제넘은 말일 수도 있습니다만···.”
커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길드장도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라···.
다이애나는 피식,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커너는 마주 웃음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한 번 주제 넘은 김에 한 번만 더 넘어도 되겠습니까?”
“무슨 말을 하려고?”
“그냥 길드장을 도와드려고 합니다.”
“도와줘? 언제는 절대 도와주지 않겠다더니?”
“마음이 변했습니다. 저도 어머니께 효도라는 것을 해보고 싶어서 말입니다.”
“너 자꾸 어머니, 어머니 할래?”
다이애나는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곧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뭔데.”
“길드장께서 영주님과 무슨 이야기를 하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혹시 영주님께 무슨 부탁을 하시려거든··· 반드시 돈을 준비하십시오.”
“돈? 골드를 말하는 거야?”
“네.”
잠시 멍해진 정신.
“얼마를 말하는 건데?”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요즘은 거진 억 단위가 움직이는 것 같긴 합니다만.”
“뭐, 뭐? 억?”
다이애나는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떠보였다.
억단위가 뉘집 개이름도 아니고.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란 말인가.
“없으십니까?”
“없지! 있는 게 이상한 거 아니야?”
아무리 제국 최고의 정보 길드라도 억 단위의 골드는 무리였다.
하물며 거진 해체 직전까지 치달은 지금에는 더더욱.
“음··· 그럼 억 단위의 골드를 끌어올 곳도 없으십니까?”
“세상에 그런 곳이 있을─.”
순간 다이애나가 멈칫, 움직임을 멈추었다.
억 단위의 골드를 끌어올 곳.
다이애나의 머릿속으로 어떤 장소가 스쳐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다름 아닌 수호자의 둥지.
직접 가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이애나가 듣기로는 수호자의 둥지에는 어마어마한 보물들이 잠들어 있다고 한다.
각종 보석들은 물론이고 신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진귀한 물건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고 한다.
소문으로는 천 년전, 세상을 구원한 6명의 영웅.
아르나이즈들의 유산들이 잠들어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거짓말이라 치부될 수 있었지만 수호자라면 진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수호자는 신화를 직접 경험한 절대적인 존재였으니까.
그 모든 보물들의 값어치는 추정 불가.
억은 물론 어쩌면 수 십억 단위까지 갈 수 있었다.
현재로서 다이애나가 억 단위의 돈을 끌어올 수 있는 방법은 그것이 유일했다.
하지만 동시에 불가능한 방법이기도 했다.
수호자의 보물을 탐낸다니. 그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란 말인가.
“굳이 길드장이 나서지 않아도 됩니다.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영주님께 넌지시 말씀해보십시오.”
그 사실을 아는 지 모르는지 커너는 알 수 없는 말을 해올 뿐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말만 해주면 시안 백작이 알아서 훔쳐온다는 뜻이야?”
“그런 게 있습니다. 어쨌든 도움을 바란다면 꼭 영주님께 언급하시길 바랍니다.”
“아니 그러니까 그게 무슨─.”
바로 그때.
“커너 교관님!!
저 멀리, 커너를 부르는 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재차 들려온 병사의 목소리.
“영주님께서 아리따우신 여성분을 찾으십니다!!”
다름 아닌 다이애나를 찾는 목소리였다.
“마침 영주님께서 부르시는 군요. 그럼 전 이만.”
커너는 그 말과 함께 자리를 떠나갔다.
“야, 야! 커너! 하던 말은 하고 가야지!”
다이애나가 붙잡았지만 커너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순식간에 멀어지는 커너의 모습.
“저 새끼가 아주 이제 지 길드장도 아니라 이거지.”
다이애나는 한숨을 푹, 내쉴 뿐이었다.
다이애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시안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한 걸음, 두 걸음.
걸음을 옮길 때마다 왜일까.
다이애나의 머릿속으로 방금 전 커너와의 대화가 스쳐지나갔다.
‘저는 어쩌면 암살자로서의 시선으로만 세상을 바라본 것이 아니었을까.’
‘길드장도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커너가 무언가를 알고 말한 것이 아닐 터였다.
그러나 저 말이 다른 의미로 들리는 건 무슨 이유일까.
루나라는 이름과 다이애나라는 이름.
나도 루나로서 세상을 바라봤다면.
그 이름을 버리지 않고 살아왔다면.
어쩌면 나도 다른 삶을 살아올 수 있었을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 에이 씨.”
밍숭맹숭한 마음.
“쟤는 괜히 쓸데 없는 말을 해가지고는.”
다이애나는 억지로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떨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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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남은 막사 안.
시안은 가만히 막사 안의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었다.
아까 전, 다이애나가 해준 이야기.
“엘란두르가 수인족의 왕국을 찾고 있다라···.”
그 이야기는 시안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솔직히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그러나 마냥 거짓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일단 다이애나가 용인족이라는 사실이 그러했고.
“어쩐지 하얀 늑대 기사단들이 코빼기도 안 보인다더니.”
지금까지 엘란두르의 최정예 전력이 보이지 않는 것이 그러했으니까.
사실 하얀 늑대 기사단을 필두로 한 최정예 전력은 진즉에 그 모습을 드러내어야만 했다.
“그럼 정말로 엘란두르가 수인족의 왕국을 찾고 있다는 건데···.”
그것도 하얀 늑대 기사단을 전부 동원하면서까지.
굳이 이 긴박한 전쟁 통에서 말이다.
그것에는 크게 2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하얀 늑대 기사단이 나서지 않아도 루벤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나.
“아니면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거나.”
출혈을 감수하고서라도 수인족의 왕국을 찾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거나.
그리고 루벤이 엘란두르를 밀어버리고 있는 지금.
답이야 멍청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백성들을 내세워 시간을 끌려던 것이 이 때문이었나?”
엘란두르의 최정예 전력이 부재 상태였기 때문에.
그들이 되돌아오기 전까지.
그들이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전까지.
시간을 끌어야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었다.
엘란두르가 수인족의 왕국을 찾는 이유는 모르겠다.
수인족의 왕국을 찾아 무얼 하려는지 또한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수인족들을 도와주어야할 이유는 없다.
그것보다는 엘란두르와의 전쟁에 집중하는 것이 옳은 판단이다.
“······”
그러나 왜인지 찜찜한 이 기분.
파죽지세로 밀리고 있는 와중에도 엘란두르는 요지부동이었다.
어마어마한 출혈이 있음에도 계속해서 수인족들을 찾고 있었다.
확실하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했다.
하지만 어쩌면 엘란두르는 수인족의 왕국을 찾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전선이 밀리고 있음에도 최정예 전력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지금.
지금 이 상황도 어쩌면 전략의 일부분이 아니었을까.
엘란두르는 연막 작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곳은 어쩌면 이곳이 아니었던 것이 아닐까.
“······”
깊어지는 생각.
바로 그때였다.
똑똑.
-영주님. 그··· 아리따운 여성분이 찾아왔습니다만.
막사 밖에서 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아리따운 여성분?
“누구···.”
라는 생각도 잠시.
시안은 아리따운 여성이 곧 다이애나임을 알 수 있었다.
물론 다이애나 말고도 아리따운 여성이라 불릴 만한 이들이 있었다.
세라를 비롯한 다크 엘프들은 충분히 아리따운 여성이라 불릴 수 있었다.
하지만 세라나 다크 엘프들이었다면 이름으로 말했을 터.
“들어오라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