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화 - 역지사지(1)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던 생명의 기운.
그 기운마저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다.
흐레스에겐 더 이상 말을 할 생명도, 기운도 없어보였다.
“도망··· 치십시오···! 지금 당장··· 도망···치셔야 합니다···!”
그러나 흐레스는 필사적으로 다이애나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그만 말해! 그만 말하라고!”
“빨리··· 빨리 도망···.”
털썩.
흐레스는 끝내 말을 완성하지 못하고 정신을 잃어버렸다.
축, 늘어진 흐레스의 몸.
“아, 안돼···.”
다이애나의 얼굴로 어마어마한 충격이 내려앉았다.
다이애나의 직속 부하이자 심복 중의 심복.
흐레스는 루나라는 이름을 사용할 때부터 자신과 함께 해왔다.
“아니야··· 아니야···.”
다이애나는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머릿속이 하얘지며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마음 한 구석에서 무언가 무너진 듯한 충격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들려온 어떤 목소리.
어느새 다가온 시안이 흐레스의 몸을 이곳저곳 확인하고 있었다.
솔직히 죽은 것이 아닐까 싶은 흐레스의 상태였다.
시안은 감각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며 흐레스의 몸을 살폈다.
그리고 아주 미약하지만 뛰고 있는 흐레스의 심장을 인지할 수 있었다.
“아직 죽지는 않았습니다.”
“······”
그러나 다이애나는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아직 살아있다한들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음을 알고 있었으니까.
흐레스는 죽었다.
시안의 말처럼 아직 죽지 않았다 한들 그건 죽음을 잠시 나마 체불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흐레스를 살릴 방법은 없었다.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흐레스를 살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건 시안도 인정하는 바였다.
인벤토리에 구비되어 있는 엘리의 특제 치료약.
웬만한 중상도 치료하는 약이었지만 흐레스는 아니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건져 올릴 수는 없었다.
세계수의 축복을 받는 루벤이었다면 모를까 이곳은 안되었다.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한 불가능했다.
말 그대로.
“아리아. 가능하겠어?”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말이다.
“걱정하지마.”
시안의 말에 아리아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이미 준비하고 있던 모양인지 금방 아리아의 전신으로 신성력이 터져나왔다.
화아아아아아악!
역사상 가장 강대한 신성력의 성녀.
혹자들은 그런 아리아를 일컬어 살아 움직이는 기적이라 말한다.
아리아는 계속해서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위중한 흐레스의 상태만큼 신성력 또한 그 기운이 거세졌다.
죽음과 싸우는 강대한 신성.
시안은 슬쩍, 뒤로 물러났다.
‘언제 쯤 익숙해질련지.’
계속 곁에 있다간 부글부글, 들끓는 속을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뭐, 딱히 시안이 할 일도 없었다.
이곳은 아리아에게 맡기면 될 것 같았다.
시안은 뒤로 물러남과 동시에 가만히 눈을 감았다.
흐레스가 왜 여기에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왜 저런 위중한 상처를 입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흐레스가 입은 위중한 상처.
저건 사실상 죽은 것이나 다름 없는 상처였다.
살아있다 한들 얼마 버티지 못할 상처였다.
그리고 실제로도 흐레스는 그러했다.
그 말은 즉.
흐레스의 상처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따라서 흐레스가 유언처럼 남긴 말.
도망쳐라.
그리고 하얀 늑대 기사단.
흐레스는 하얀 늑대 기사단에게 상처를 입었고.
다시 말해 하얀 늑대 기사단은 이 근처에 있다는 뜻이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그곳은 아마 수인족의 왕국일 터.
사아아아아─!
시안의 전신에서 짙은 어둠이 피어올랐다.
철저히 시안의 통제 아래 놓인 근원의 마(魔).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다이애나는 분명 조금만 더 가면 나올 것이라 했었다.
시안은 기감을 최대한으로 확장하며 마기를 흩뿌렸다.
공간을 잠식하며 시안의 어둠이 퍼져나간다.
어둠은 순식간에 어둠의 숲 영역을 휘감았다.
그리고.
움찔.
시안의 감각으로 기이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정확히는 어둠에 장악된 공간 사이로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각.
‘찾았다.’
시안은 펼친 어둠을 거두었다.
그리고 한 켠에서 대기 중인 루카스에게 말했다.
“루카스. 병사들과 함께 이곳에서 대기해.”
감각으로 걸리는 건 없었지만 만일의 사태라는 건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루카스와 1,000에 달하는 루벤의 병사.
웬만한 상황이 닥쳐오더라도 걱정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루카스는 금방 시안의 말을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안은 마주 고개를 끄덕이며 루카스 뒤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질서정연하게 도열해있는 루벤의 흑사자 기사단.
“흑사자 기사단은 나를 따라온다.”
그 말을 끝으로 시안의 몸이 어둠으로 흩어졌다.
#
수인족들의 왕국 지하 깊숙한 곳.
그곳엔 일련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아니, 사람··· 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모습들이 비쳐보였으니까.
뾰족한 고양이의 귀가 달려있는 이가 있는 반면.
사람이라 생각될 수 없는 날카로운 이빨이 있는 이도 있었고.
길쭉길쭉한 귀는 물론, 우락부락한 근육의 사람까지.
사람처럼 보이나 동물의 특색이 두드러진 사람들.
다름 아닌 수인족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거북이의 특색을 지닌 귀인족(龜人族)이자 수인족의 장로 파벨.
“어떻게. 어떻게 되었나.”
파벨은 다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나 입을 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시선을 아래로 떨군 채, 고개를 젓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
“모두··· 당했다는 건가···.”
파벨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수인족들의 왕국을 습격한 인간 침략자들.
어떻게 이곳을 알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이제 와 썩 의미 없는 질문이기도 했다.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그들이 수인족들의 왕국을 침략했다는 것은 변함 없었으니까.
수인족들은 각 종족에서 가장 강력한 전사들을 모아 침략자들과 싸웠다.
그리고 모두가 당해버렸다.
압도적인 전력 차.
수인족들의 전사들은 인간 침략자들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현재 이렇게 땅 속에 숨어지내는 것만이 유일한 도피처였다.
두더지의 특색을 지닌 언인족(鼴人族).
그들이 파놓은 땅굴이 아니었다면 상황은 진즉에 끝나고도 남았을 터였다.
“수호자께서는. 수호자께서는 아직도 답이 없으신가?”
“여전히··· 저희를 만나주시지 않으십니다.”
침울하게 들려오는 답.
파벨은 푹, 고개를 숙였다.
그와 동시에 적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모두가 입을 꾹, 다문 채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정적.
“차라리 저들이 원하는 것을 주면 안 됩니까?”
그 침묵 사이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쥐의 특색을 지닌 편인족(蝙人族)의 말이었다.
편인족들은 어쩔 수 없지 않냐는 눈빛으로 저마다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럴 수는 없네.”
그러나 파벨은 단호히 고개를 저어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수인족의 사명을 져버릴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저희부터 일단 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사명을 들먹이기엔 지금의 상황은 너무도 심각했다.
“수인족의 전사들이 처참하게 당했습니다.”
“수호자께서도 저희를 외면하시고요.”
“대족장이라도 계셨다면 모르겠지만, 대족장도 실종되신 마당에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저들은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살육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사명이든 뭐든. 멸족만은 피해야하지 않겠소 파벨 장로.”
여기저기서 수인족들의 말들이 쏟아져나왔다.
“······”
그리고 이번엔 파벨은 쉽사리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저들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으니까.
수인족에게는 대대로 내려오는 한 사명이 있었다.
6명의 아르나이즈 중 한 명이자 수인족의 초대 대족장, 노에미.
노에미로부터 시작되어온 수인족들의 사명.
“성물 같은 건 그냥 넘겨줘도 괜찮지 않소이까.”
파벨은 여전히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종족의 위기보다 앞서는 사명은 없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도 생각을 해야하지 않겠소.”
계속해서 이어지는 수인족들의 말.
파벨은 끝내 고개를 떨구었다.
부정할 수 없었으니까.
사실 파벨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아무리 숭고한 사명이라도 종족의 사활보다 앞서는 것은 없었다.
결국.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파벨은 흘러가는 어떤 운명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쿠구구구구궁─.
갑자기 지진이라도 난듯 땅굴이 크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서, 설마 인간 놈들이 이 땅굴을 찾은 건가?”
수인족들은 크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파바바바박.
한쪽에서 흙이 파헤쳐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폭, 하고 천장 위로 한 사람의 얼굴이 솟아나왔다.
두더지의 특색을 지닌 언인족(鼴人族), 밍구.
밍구는 수인족들이 있는 현재 이 땅굴을 판 장본인이기도 했다.
밍구는 눈이 잘 보이지 않는지 사람들이 코앞에 있음에도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둘러보았다.
그러다 코를 킁킁, 거리더니 파벨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어딘가 묘한 밍구의 표정.
“지금 지상에 아주 난리가 나부렀어!!”
밍구가 다급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
피비린내가 진득한 전장.
축, 늘어져 산처럼 쌓여있는 수인족들의 시체들.
“죽여라···.”
그리고 힘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바라본 그곳엔 견인족의 전사가 축, 늘어져있었다.
개의 특색을 지닌 견인족(犬人族).
그리고 역시 개는 개인 것일까.
“입 한 번 더럽게 무겁군.”
견인족의 전사는 그 어떤 고문에도 입을 열지 않았다.
수인족들은 동물의 특색을 지닌다더니.
이 견인족의 전사는 충성이라는 덕목을 그대로 빼다박았다.
“소원대로 죽여주지.”
하얀 늑대 기사단의 부단장, 케이든은 검을 들어보였다.
이 정도까지 했음에도 입을 열지 않으면 더 할 수 있는 건 없었으니까.
바로 그때.
“부단장님.”
한 쪽에서 케이든을 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일련의 기사들.
케이든의 수하들이자 엘란두르를 대표하는 하얀 늑대 기사들이었다.
케이든은 치켜든 검을 잠시 내려놓았다.
“어떻게 되었지?”
“단원들과 함께 추적을 했습니다만···.”
하얀 늑대 기사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놈의 은신술이 워낙 기묘한 바람에 놓쳐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일순간 케이든의 기세가 일변했다.
싸늘한 눈빛에서 쏘아지는 섬뜩한 기세는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하얀 늑대 기사단의 부단장, 케이든.
비록 단장인 에런보다 한 수 밀리는 실력자였다.
그러나 케이든 또한 마스터(Master)의 반열에 오른 기사.
“끄윽···!”
“큭···!”
하얀 늑대 기사들은 케이든의 기세에 고통 어린 신음을 흘렸다.
전원 엑스퍼트로 이루어진 하얀 늑대 기사단.
이들 또한 모두가 엑스퍼트의 실력자였다.
그러나 케이든의 기세를 쉽사리 당해내지 못했다.
엑스퍼트(Expert)와 마스터(Master).
그 둘의 차이는 단순히 한 단계의 차이로 가늠할 것이 아니었다.
“하, 하지만···!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습니다···!”
“아마···! 멀리 못가서 죽었을 겁니다.”
기사들은 황급히 말을 내뱉었다.
잠깐의 정적.
“쯧.”
케이든은 혀를 한 번 차보였다.
그리고는 흩뿌렸던 기세를 거두었다.
하얀 늑대 기사단을 뒷조사 하던 쥐새끼.
보아하니 꽤나 실력있는 놈인 것 같았다.
그러나 대상을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다.
결국 쥐새끼는 그 꼬리가 밟혔고 당연하게도 그 결과는 척살이었다.
다만, 그 쥐새끼를 놓쳤다는 사실이 조금 마음에 안들었지만···.
“이번만은 그냥 넘어가겠다.”
딱히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쥐새끼 하나 살아서 간다고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듣자하니 죽음만 확인하지 않았다 뿐이었다.
사실상 죽은 것이나 다름 없는 것 같았다.
케이든은 단원들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바라본 시선 아래로 견인족의 전사가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잡친 기분.
“이 놈은 너희들이 처리해라.”
케이든은 터벅, 걸음을 옮겨 단원들을 지나쳐 걸어갔다.
단원들은 안도의 한숨과 더불어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리고는 검을 들어 천천히 견인족의 전사에게로 다가갔다.
그렇게 한 걸음. 다시 두 걸음.
그리고 막 세 걸음을 떼려던 찰나.
사아아아아─.
케이든의 귓가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바람이 흘러가는 듯한 희미한 소리였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소리였으나 묘하게 케이든의 청각을 자극했다.
뭔가 싶은 생각이 들던 찰나.
번쩍!
갑자기 한줄기 검은 섬광이 케이든의 시야로 스쳐지나갔다.
콰직─!
그리고 들려온 섬뜩한 파육음.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곳엔 하얀 늑대 기사가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있었다.
숨을 헐떡거리던 견인족이 아니었다.
그 견인족을 죽이려던 하얀 늑대 기사가,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있었다.
“······!!”
케이든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갑작스럽게 쓰러지는 하얀 늑대 기사.
말 그대로 갑작스러운 일이었으나 케이든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검은 섬광 때문이다.
방금 전에 번쩍인 검은 섬광이 이 상황을 만들었다.
그런데···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케이든이 본 것은 번쩍, 하는 검은 빛.
그것이 전부였다.
마스터의 감각으로도 대응은 커녕 인지조차 할 수가 없었다.
만일 저 섬광이 자신에게 향했다면··· 대응할 수 있었을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케이든은 스스로에게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케이든은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내 쓰러지는 단원 뒤로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사내는 케이든의 기억에 있는 얼굴이었다.
“너, 너는···!”
케이든의 두 눈이 찢어져라 부릅 떠졌다.
그도 그럴 것이 저 사내는 이곳에 있으면 안 되었다.
이곳이 아니라 엘란두르와 전쟁을 벌이고 있어야했다.
그것도 아니면 루벤에 틀어박혀 숨어지내고 있어야했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모습은 틀림없는 기억 속의 사내였다.
한때는 엘란두르의 일원이었던 망나니였고.
지금은 엘란두르의 공적이 된 사내.
시안 루벤.
“네, 네가 어떻게 여길···!”
케이든의 표정은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시안은 차분히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런 시선으로 숨을 헐떡거리는 견인족의 모습이 보였다.
곧 죽을 것처럼 그 숨소리는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또한 주변으로 무수히 쌓여있는 다른 수인족들의 시체를 볼 수 있었다.
보아하니 하얀 늑대 기사단들이 저지른 짓인 것 같았다.
엘란두르가 수인족들의 왕국을 찾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찾은 것도 같았다.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거지?”
그런데 이렇게 수인족들을 학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안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울려퍼졌다.
그리고 케이든을 비롯한 하얀 늑대 기사들은 답을 해오지 않았다.
그저 경악어린 표정으로 시안을 바라볼 뿐이었다.
“뭐, 순순히 답해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어.”
시안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애초에 순순히 말해준다고 해도 믿지도 않을 거긴 했지만.”
사아아아아─!
일순간 시안의 전신으로 짙은 어둠이 피어올랐다.
피어난 어둠은 가슴부터 시작해 어깨와 다리 그리고 얼굴까지.
시안의 전신엔 풀 플레이트 갑옷이 덧입혀졌다.
짙은 어둠을 베이스로 황금빛이 치장된 갑옷.
시안의 모습은 마치 어둠의 기사와도 같아 보였다.
“뭐, 뭐야···.”
“저, 저게 무슨···.”
케이든을 비롯한 하얀 늑대 기사단들의 경악이 더욱 짙어져갔다.
시안은 그 경악 사이로 터벅, 걸음을 옮겼다.
철컥, 하는 갑옷의 소리와 함께 시안이 오른손을 옆으로 뻗어보였다.
파지직─!
뻗은 시안의 손으로 검은색의 전류가 튀어올랐다.
튀어오른 검은색 전류는 시안의 손을 휘감았다.
그리고 전류 사이로 어떤 형체가 서서히 잡히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검은 번개, 흑뢰(黑雷)를 형상화 한 듯한 검이었다.
투구 속에서 번뜩이는 시안의 눈.
그것은 오롯이 케이든에게로 향한다.
“너한텐 물어볼 게 있으니까, 휩쓸려서 죽지는 마라.”
콰콰콰콰콰콰콰콰콰─!!
그와 동시에 터져나오는 초월의 마(魔).
“멸살로는 처음 시전해보는 거라, 힘 조절이 잘 안 되거든.”
그것은 휘둘러지는 멸살(滅殺)과 함께, 앞선 공간 전체를 휩쓸어버렸다.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제 1식(題 一式).
극(極) - 수라천살(修羅天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