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화 - 성동격서(1)
꽈르르릉─!
어둠이 짙게 떨린다.
휘몰아치는 검은색의 선들이 풍경을 유린한다.
듀라크는 어둠에 대항하며 가진 바 마력을 폭사시켰다.
콰아아아아─!
듀라크의 마력이 주변을 새파랗게 물들었다. 그러나 어둠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스터 상급에 달하는 오러의 힘.
그러나 시안의 어둠은 그 힘에 굴하지 않았다.
어둠은 듀라크의 오러를 집어삼킬 뿐이었다.
보다 높은 경지의 무엇처럼.
완전한 어둠이 찾아왔다. 짙은 어둠 속에서 시안의 검은 칠흑의 불빛을 발하고 있었다.
마치 흑뢰(黑雷)를 형상화한 듯한 모습.
어둠 속에서 휘둘러지는 흑뢰는 마치 검은색의 번개가 내려치는 것만 같았다.
콰콰쾅! 콰르르릉─!
뇌명(雷鳴)이 터져나온다. 찰나의 순간에 이어지는 수 백의 일격.
그것은 벽력을 터트리며 오로지 소리만으로 공간을 뒤흔들었다.
과연.
듀라크는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그리고 인정했다. 동시에 생각을 지워버렸다.
마음 깊숙한 곳. 절대 그럴리가 없다는.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어떤 생각.
그런 편협한 생각을 지워버렸다.
생각이 지워지자 시안이라는 존재가 눈앞에서 지워진다.
듀라크는 더 이상 시안을 상대하지 않았다.
대등한 경지의 강자.
그 존재만이 눈앞에 있을 뿐이었다.
듀라크의 기세가 일변한다.
분노가 가라앉고 냉철한 이성이 자리한다.
폭사하던 마력이 다듬어진다.
마구잡이로 휘둘러지는 검이 일정한 검로를 따라 움직인다.
보다 효율적으로, 보다 예리하게.
끌어올린 거대한 힘이 시안을 향해 쏘아져갔다.
꽈아아아아아앙!!
충돌한 힘이 공간을 뒤흔들었다. 뒤흔들린 공간 사이로 어둠이 흩어진다.
흩어지는 어둠 사이로 시안의 몸이 휘청거렸다.
강하다. 확실히 다르다.
엘릭서로 증폭된 마력.
메긴기요르드로 증폭된 감각.
초월 등급으로 강화한 멸살(滅殺)과 불멸(不滅).
그러나 듀라크는 듀라크인 것일까.
듀라크를 압도할 수가 없었다.
몰아붙일 수는 있었지만 완벽하게 압도할 수는 없었다.
대륙 제 1의 검. 모든 기사들 위에 군림하는 자.
듀라크는 대륙의 모든 기사들 중에서 최강이라 불리는 이였다.
그렇기에 듀라크를 몰아붙인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그런 감상을 허락하지 않았다.
시안은 슬쩍,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아래로 내려다 본 시선으로 듀라크의 손이 비쳐보였다.
그리고 성물이 보이지 않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듀라크가 들고 있었건만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시선을 다시 앞으로 돌려 감각을 확장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성물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성물 옆에 자리한 누군가의 기척 또한 인지할 수 있었다.
카이 엘란두르.
카이는 성물의 곁을 지키며 이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묘하다.
시안은 순간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시안은 카이의 수준을 알고 있었다.
수준을 알고 있다 못해 직접 검을 맞대어 본 경험이 있었다.
물론 꽤나 오래 전의 일이었다.
그 시간 동안 시안이 성장을 한 것처럼 카이 또한 성장을 했을 터였다.
그런데 묘하다.
정확히는 비정상적이다.
카이의 모습을 하고 있되, 카이가 아닌 것만 같은 모습.
이유는 모르겠다.
시안은 듀라크보다 카이의 존재가 더욱 거슬렸다.
“대열을 갖춰라! 물러서지 마라!”
“감히 이것들이···!”
주변으로 치열한 전장의 소리가 들려왔다.
루벤과 하얀 늑대 기사단들이 펼치는 전쟁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카이는 나서지 않았다.
하얀 늑대 기사단들이 불리한 형세를 이어감에도 나서지 않고 있었다.
카이는 그저 차분한 눈으로 시안과 듀라크의 싸움을 관망하고 있었다.
시안은 이를 까득, 깨물었다.
현재 상황만 놓고 본다면 루벤 쪽이 상당히 유리했다.
일단 시안은 듀라크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또한 루카스와 루벤의 전력들도 하얀 늑대 기사단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이대로만 간다면 승기는 이쪽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하면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지금 가져온 유리함은 <뮤리엘의 축복>을 통해 얻어낸 이점이었으니까.
그리고 <뮤리엘의 축복>이 지속되는 시간은 단 10분.
10분이 지나면 버프는 사라진다.
따라서 10분 안에 이 싸움을 끝내야 한다.
“대열 앞으로 전···!”
“어딜!”
그러나 쉽지 않았다.
버프를 받았다고는 하나 하얀 늑대 기사단의 저력은 무시할 것이 못 되었다.
10분이 지나면 전황은 완벽하게 뒤집어진다.
그러나 10분 안에 하얀 늑대 기사단을 완벽히 제압하는 것은 불가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이쪽에서 먼저 끝낸다.’
카이가 거슬리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힘을 아끼며 상황을 지켜볼 여유가 없다.
사아아아아─!!
시안의 전신으로 어둠이 솟구친다.
솟구친 어둠은 세상 전체를 물들이며 퍼져나간다.
“······!”
듀라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시안과 마주하는 지금 이 순간. 지금 듀라크가 서 있는 이 공간.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묻어나온다.
듀라크는 힘을 터트리며 어둠을 베어냈다.
그러나 베어내지지 않는다.
휘둘러지는 힘이, 검이, 마력이 그대로 어둠에 삼켜진다.
예감이 짙어진다.
어쩌면 이곳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예감.
그 불길한 예감이 짙어진다.
막아야 한다. 지금 당장 저 힘을 억제해야한다.
그런데 대체···.
바로 그때.
번쩍!
터져나오는 빛무리와 함께 한줄기 푸른 섬광이 시안을 향해 쇄도해갔다.
꽈아아아아아앙!!!
공간이 무너지는 듯한 폭발과 함께 피어난 어둠이 일시에 흩어졌다.
흩어진 어둠 사이로 비틀거리며 휘청거리는 시안이 보였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싶은 것도 잠시.
“성물을 지키라는 명을 거역한 죄를 용서하십시오.”
어둠을 가르며 카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안돼!”
아리아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루벤과 엘란두르와의 전쟁.
그리고 시안과 듀라크와의 싸움.
아리아는 둘의 싸움을 지켜보며 전율을 금치 못했다.
저게··· 정녕 인간들이 맞는 걸까.
시안도 그렇고, 듀라크도 그렇고.
저건 도무지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될 수 없는 무위(武位)였다.
그리고 시안이 약간이나마 앞서고 있었다.
작은 차이에 불과했으나 시안은 분명 듀라크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갑작스러운 카이의 개입.
비틀거리며 물러나는 시안의 모습.
아리아는 신성력을 끌어올리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안돼요 성녀님!”
그 뒤로 로라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그러나 개의치 않았다. 지금 당장 시안을 도와야한다.
아리아는 그 생각만 할 뿐이었다.
“시안 백작님이 절대 나서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그러나 재차 들려온 로라의 외침.
아리아의 움직임이 뚝, 멈추었다.
“성녀님이 나서시면···.”
로라는 끝내 말을 완성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아리아는 그 의미를 모르지 않았다.
시안이 철저하게 당부했으니까.
지금 이것은 루벤과 엘란두르의 전쟁.
타국의 성녀가 개입할 수도, 해서도 안되는 일이었다.
물론 제국의 국경 밖에서 행해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문제 삼을 여지는 충분했다.
아리아는 자신이 신성 제국 소속인 것이 처음으로 후회되었다.
차라리 악마라도 개입되어있었다면.
그랬다면 아리아가 나서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은 더 꼬이고, 상황은 지금보다 더 힘들어지겠지만 아리아가 나설 명분은 충분했다.
그런데 지금.
꽈드득!
아리아는 애먹은 주먹만을 쥐어보일 뿐이었다.
#
“쿨럭···!”
입가로 터져나오는 붉은 선혈.
젠장.
시안은 이를 까득, 깨물었다.
카이가 나설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다만, 듀라크를 빠르게 제압할 생각이 먼저였을 뿐이었다.
상황에 따라 카이가 나설 가능성은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식일 줄은 몰랐다.
콰아아아아아아아─!!
흩어지는 어둠의 잔재.
휘몰아치는 어둠의 폭풍우 속에서 카이의 푸른 오러가 그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무리 틈을 노린 일격이라고는 하나 이건 예상치 못했다.
어둠의 힘을 뚫고 들어올 것이란 생각은 못했다.
듀라크와 동급. 어쩌면 그 이상.
그것이 아니면 도무지 설명 불가능한 현상이었다.
그런데 그게 말이 되나···?
쉽사리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직접 검을 맞대었음에도, 눈앞으로 보이는 현실임에도 당혹스럽다.
시안이 마지막으로 본 카이의 수준은 마스터 중급이었다.
물론 그때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불과 몇 달만에 상급의 경지에 발을 들였다?
불가능하다. 이건 단언할 수 있었다. 불가능하다.
마스터 초급과 중급.
마스터 단계의 한 단계는 단순한 한 단계가 아니었다.
평생을 걸쳐 노력해도 오를까 싶은 경지였다.
그러나 카이는 불과 몇 달만에 그 경지를 넘어버렸다.
묘하다.
정확히는 비정상적이다.
시안은 카이에 대한 감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키이이잉─!
한쪽으로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돌릴 틈도 없이 번쩍! 빛이 터져나오며 무언가가 시안을 향해 쇄도해온다.
소리가 따라오지 못하는 일격은 마혼무영보를 밟을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시안은 마기를 폭사시키며 검을 크게 휘둘렀다.
쩌어엉!
고막을 울리는 굉음. 듀라크의 검이 시안의 검에 가로막혀있었다.
맞닿은 검 사이로 푸른빛이 터져나오며 맹렬하게 타오른다.
멸살의 검 위로 내리누르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진다.
“합공하겠습니다.”
그 압박감은 나지막히 들려오는 카이의 목소리에 더욱 가중되었다.
꽈아아아아아앙!!
찾아온 밤의 시간이 물러난다.
피어나는 푸른빛에 어둠이 흩어져 사라진다.
타닥.
틈을 비집으며 시안이 앞으로 뛰어들었다.
그런 시안의 앞으로 파바바박, 수없이 많은 검격이 덮쳐온다.
듀라크와 카이의 합공.
두 마스터가 행하는 합공은 눈으로 좇을 수도, 감각으로 인지할 수도 없었다.
콰자자자자자자작─!!
앞선이 공간이 모조리 할퀴어진다.
수 백, 수 천, 수 만.
셀 수도 없는 검격들은 공간 자체를 박살내고 있었다.
빠져나갈 틈이 없다. 회피할 공간조차 보이지 않는다.
반응하는 것조차 불가하다.
하지만 피하지 않는다.
콰르르르르릉─!
멸살의 검에서 뇌명이 터져나온다.
검은색의 번개가 휘몰아치며 요악한 힘이 모여든다.
멸살의 검에 깃든 마(魔)의 힘.
들끓는 어둠이 파도처럼 터져나오며 앞선 검격들과 부딪혔다.
꽈아아앙!
시야가 뒤흔들리며 공간이 폭발한다.
아니, 공간이 폭발해서 시야가 뒤흔들린 것인가.
“쿨럭···!”
어느 쪽인지 알 수도, 중요하지도 않았다.
시안은 몸을 휘청거리며 크게 뒤로 물러났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피는 끝내 입밖으로 쏟아져나왔다.
안 된다.
시안은 빠르게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듀라크와 카이의 합공을 이겨낼 수 없었다.
지난 날, 시안은 로즈웰과 네이슨의 합공을 이겨낸 바 있었다.
그러나 이건 아니었다. 둘과는 차원이 달랐다.
비교조차 불가하다.
‘뮤리엘의 축복을 받는다면···.’
그러면 어찌 가능할 터였다. 업적 보유자의 신체 능력을 7,000% 올려주는 버프.
그 버프를 받는다면 듀라크와 카이의 협공을 받아낼 수 있었다.
현재 [효과 2]가 적용되고 있었지만, 지금이라도 [효과 1]로 전환하여 버프를 받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된다면 루벤의 병사들이 위험하다.
버프가 사라진 루벤의 병사들은 하얀 늑대 기사단들을 당해낼 수 없을테니까.
뮤리엘의 축복으로 듀라크와 카이를 어찌할 수 있다고 한들. 그 이후는 대처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효과 1]의 지속시간은 고작 1분이었고, 이 마저도 이미 [효과 2]에서 상당한 지속 시간을 소모했다.
지금 얼마의 시간이 남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전환한다 한들 남아있는 시간은 촉박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조차,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다.
여유가 없다. 시간도 없다.
이대로 가다간 모두 자멸한다.
그러니 선택해야한다.
어쩔 수 없지만 해야한다.
“루카스!!!”
지금은 승부수를 띄워야한다.
루카스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루카스는 현재 에런과 대적하고 있었다.
버프를 받고있다고는 하나 대답을 할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시안의 말을 듣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루카스가 시안의 말을 들었기를 바랄 뿐이었다.
“지금 당장 병사들과 함께 도망쳐!!!”
루카스의 움직임이 멈칫거렸다.
다행히도 시안의 말이 들린 것 같았다.
하지만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머뭇거리며 망설이고 있었다.
“망설이지마!!! 지금 당장 움직여!!!”
시안은 재차 소리쳤고, 그때서야 루카스가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에런과의 거리를 벌리며 주저없이 등을 돌렸다.
“전군! 싸움을 멈추고 퇴각하라!!!”
루카스는 병사들을 통솔하며 황급히 퇴각하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당황했지만 금방 루카스를 따라 등을 돌려 퇴각했다.
그리고 당연하다고 할 만큼 하얀 늑대 기사들이 추격해왔다.
“우리를 우습게 보는 것도 정도가 있지.”
“순순히 놓아줄 것 같으냐!”
에런을 비롯한 하얀 늑대 기사단들이 퇴각하는 루카스와 병사들을 따라붙었다.
바로 그때.
콰아아아아아아아─!!
휘몰아치는 어둠의 참격이, 루벤과 하얀 늑대 기사단들 사이를 갈라버렸다.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제 1식(第 一式).
극(極) - 수라천살(修羅天殺).
.
.
.
꽈아아아아아아앙!!
섬뜩한 굉음에 공간 전체가 박살이 나버렸다.
풍경이 양단되어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그 섬뜩한 힘을 뚫고 다가갈 수가 없었다.
에런을 비롯한 하얀 늑대 기사들은 추격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어서 가!!!”
그 사이로 들려오는 시안의 외침.
루카스는 지체없이 몸을 움직여 아리아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지금 당장 도망치셔야 합니다!”
“하지만 시안이!”
아리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시안이 만들어준 틈은 충분히 도망칠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시안은 아니었다. 이대로 도망치면 시안은 고립된다.
그리고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아무리 시안이라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지금 시안은 스스로가 희생하여 사람들을 살리려하고 있었다.
그 의도를 알았기에 아리아는 차마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영주님의 명입니다! 지금 당장 도망치셔야합니다!”
“그러면 시안이 죽어! 어떻게 시안을 버리고···!”
“영주님을 믿으십시오!”
루카스가 소리쳤다.
바라본 루카스의 눈빛엔, 어떤 신뢰가 깃들어있었다.
누가 봐도 방법은 없었다.
지금 시안은 스스로를 희생하여 루벤의 사람들을 살리려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루카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루벤의 병사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시안이라면 어떤 방법이 있을거라는 확신.
반드시 살아돌아올 것이라는 신뢰.
병사들은 주저없이 시안의 명을 따라 퇴각하고 있었다.
아리아는 꽈득, 주먹을 움켜쥐었다.
여전히마음이 쉽사리 결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죽지마! 죽으면 진짜 죽여버릴꺼야!!!”
아리아는 끝내 등을 돌려 떠나갔다.
#
죽으면 진짜 죽여버릴거야!!
메아리를 타고 아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었는데 어떻게 또 죽인다는 걸까.
설마하니 신성력으로 부활시켜서 죽인다는 의미는 아니겠지.
꽤나 웃음을 흘릴 법한 농담이었지만, 아쉽게도 시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어리석구나.”
듀라크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병사들의 퇴로를 만들어주기 위해 시전한 극(極) - 수라천살(修羅天殺).
그로 인해 다행히 병사들은 무사히 퇴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시안이 오롯이 짊어져야했다.
쐐애애애액!!
소리가 찢어지는 듯한 파공음.
그것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듀라크의 검이 코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그 옆으로 카이의 검 또한 쇄도해오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듀라크와 카이는 시안을 가만 두지 않았다.
시안이 병사들의 퇴로를 만들어줄 때까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시안은 둘에게 크나큰 틈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극(極) - 수라천살(修羅天殺)로 인한 반동.
시안은 날아오는 듀라크의 검을 막을 여력도, 힘도, 여유도 없었다.
파삭─!
듀라크의 검이 끝내 시안의 목에 닿았다.
그리고 듀라크는 모든 것이 끝이 났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쩌어어엉─!
이 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크나큰 굉음에 손아귀로 저릿한 통증이 일었다.
무슨···? 이라는 의문이 들기도 전.
쩌어어어엉─!
뒤이어 쇄도한 카이의 검 또한 시안의 목을 베어내지 못했다.
듀라크와 카이의 검은 시안의 목을 가르지 못하고 멈춰있었다.
“······!!”
“······!!”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스터의 오러 블레이드는 모든 것을 절삭하는 절대적인 힘.
그 힘을 막아선다는 것은 같은 오러 블레이드밖에 없었다.
이런 연약한 인간의 피부 따위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래 전에 멸종된 드래곤이라면 가능할까.
아니, 단호히 고개를 저을 수 있었다.
별도의 실드 마법을 겹친다면 가능하겠다.
그러나 이런 식은 아니었다.
드래곤조차 맨 피부로 오러 블레이드를 막는 것은 불가하다.
오러 소드라면 또 모를까 오러 블레이드는 아니었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 어떻게···.!
듀라크와 카이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경악이 깃들어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인간의 피부로는 오러 블레이드를 막을 수 없었다.
최후의 드래곤, 카르제도 단순히 깡 피부로만으로는 오러 블레이드를 막지 못한다.
그럼에도 시안이 두 개의 오러 블레이드는 막을 수 있었던 이유는 별 반 다른데 있지 않았다.
『<불멸(不滅)>
[효과] - 시전 시, 5초 간 착용자에게 가해지는 모든 피해를 무효화 시킵니다.』
.
.
초월 장비, 불멸의 초월 스킬.
시안은 찰나의 틈을 비집으며 몸을 앞으로 쏘아보냈다.
당황하는 듀라크와 카이의 표정이 선명하게 보인다.
시안은 몸을 비틀며 손에 쥔 멸살의 검을 꽈득, 움켜쥐었다.
멸살에 깃들어있는 또 다른 초월 스킬.
『<멸살(滅殺)>
[효과] - 시전 직후, 단 한 번. 착용자가 주는 피해가 +200% 증가합니다.』
.
.
‘지금!’
일순간 시안의 두 눈이 번쩍, 떠진다.
번쩍 떠진 두 눈빛으로 칠흑의 어둠이 쏟아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강력한 억제력이 시안의 몸을 붙들었다.
시안은 전신을 억누르는 힘을 뿌리치며 마(魔)의 힘을 폭사시켰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
형용할 수 없는 힘이 시안의 전신으로 쏟아져나왔다.
치솟는 어둠은 주변의 모든 것들을 집어삼키며 세상을 검게 물들었다.
“······!!!”
“······!!!”
듀라크와 카이의 표정에 뚜렷한 당황이 새겨졌다.
에런을 비롯한 하얀 늑대 기사단의 얼굴으로 경악이 떠올랐다.
지금 보이는 시안의 모습.
그 주위로 터져나오는 거대한 힘.
그것은 시안으로 하여금 인간의 모습을 앗아가고 있었다.
저건··· 저건···.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이 아니다.
도무지 같은 인간이라고 믿겨지지 않는 무엇이었다.
어둠보다 더 어두운 어둠.
악귀보다 더 악독한 악귀.
반항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저항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저 경이로운 힘에, 저 아득한 너머에.
감히 대적할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바로 그때.
흠칫!
시안의 몸이 크게 떨려왔다.
지금 감각으로 느껴지는 소름끼치는 사념(死念).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며 치명적인 본능이 경고한다.
본능이 피부 끝을 파고들어 공포를 자아낸다.
사방으로 피어오르는 흉측한 악의(惡意).
천천히 시선을 돌려 바라본 그곳엔 한 여인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시안의 기억 속에 있는 여인이었다.
【뭐야···.】
세미르와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으나 악마에게 잠식된 비운의 여인, 헬렌.
그리고 헬렌을 잠식한 악마.
【네가··· 네가···.】
나태의 악마, 누르비아.
누르비아는 시안을 바라보며 경악하고 있었다.
흔들리는 두 눈동자는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네가 어떻게 이 힘을···!!】
누르비아가 발작하듯 소리쳤다.
이윽고 검붉은 마력이 누르비아의 전신으로 터져나왔다.
모든 세포 하나하나에서 쥐어짜낸 듯한 광기.
그것이 드리운 어둠을 새빨갛게 물들인다.
땅거미 마저 가려진 완전한 어둠의 장막 속.
물결치는 어둠에 덧칠하듯, 사념이 새까맣게 몰려온다.
성물을 찾았다는 소식에 찾아온 찰나였다.
그런데 지금 마주한 상황은 누르비아를 당혹스럽게 했다.
특히나 지금 느껴지는 이 힘.
눈앞으로 보이는 어둠.
그것은 누르비아로 하여금 지난 날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허나, 지난 번과는 다르다. 그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건 마치 천 년전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누르비아의 악의(惡意)가 끓어오른다.
죽여야한다. 여기서 죽여야한다.
상황이 대체 어떻게 흘러간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시안에게 상당히 불리해보였다.
그러니 지금.
여기서 죽여야한다.
【죽여주마!!!】
끔찍한 악의를 흩뿌리며 누르비아가 달려든다.
시안은 이를 까득, 깨물었다.
어째서 누르비아가 이곳에, 그것도 갑자기 나타났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계획을 바꿔야만 한다. 생각의 흐름을 바꾼다.
이쯤이면 루벤의 병사들이 멀리 도망쳤을 터.
《<뮤리엘의 축복> [효과 2]가 적용 중입니다!》
《[효과 2]의 남은 지속 시간 (3분 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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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를 변경하시겠습니까?》
《효과 변경 시, 재시전까지 다시 변경할 수 없습니다.》
시안은 망설임 없이 Y버튼을 눌렀다.
꾹.
《뮤리엘의 축복 [효과 2]가 [효과 1]로 변경되었습니다!》
《업적 보유자의 모든 신체 능력이 +7,000% 상승합니다!》
《지속 시간은 [효과 2]의 남은 시간에 비례하여 차감됩니다!》
《[효과 1]의 남은 지속 시간 (19초)》
전신으로 뮤리엘의 신성이 차오른다.
시안의 세계가 부서지며 시간이 뚝, 멈춘다.
인지의 영역, 그 너머.
휘몰아치는 초월의 힘을 차마 제어할 수가 없다.
이 까마득한 힘을 통제할 수가 없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제어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보이는 모든 존재가, 적이었으니까.
다만, 이 이후의 반동과 여파 또한 어찌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은 해야할 때였다.
시안은 앞선 풍경을 향해 천천히 검을 휘둘렀다.
단 한 번의 베기(斬).
단 한 번의 찌르기(衝).
이어져서는 안되는, 모순적인 하나의 일격.
그리하여 펼쳐지는 지옥도(地獄圖).
세상의 윤곽이 붕괴하며, 모든 것들이 마(魔)로 화한다.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제 1형(第 一形)
아수라(阿修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