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262화 (262/322)

262화 - 이어지는 유지(2)

이상하다. 너무도 이상하다.

허공을 부유하는 감각에 누르비아가 처음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부유하는 시야로 터져버린 내장 조각들이 하늘 위로 흩뿌려지고 있었다.

꽈아아앙!

크나큰 소리와 함께 누르비아의 몸이 거칠게 바닥으로 쳐박혔다.

누르비아는 비틀비틀 일어나 어벙한 얼굴로 정면을 바라봤다.

그곳엔 시안이 서 있었다.

짙고도 짙은 마기를 흩뿌리며 오연히.

칠흑의 검을 옆으로 길게 늘어뜨리며 홀연히.

어둠으로 번들거리는 시안의 두 눈이 누르비아의 전신을 훑었다.

······ 저게 시안이 맞는 건가?

누르비아는 느껴지는 위화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시안이라는 존재와 더불어 공간 자체에 위화감이 묻어나왔다.

감각 전체가 떠오르며 알 수 없는 공포가 새겨졌다.

사아아아아─!

소리 없는 어둠이 흐른다.

누르비아는 저도 모르게 주춤, 뒷걸음질 쳐보였다.

이상하다.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

지금 느껴지는 이 힘. 전신을 내리누르는 듯한 압박감.

아까 전까지만 해도 한낱 인간이었다.

인간이라는 한계를 넘어선 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그래도 인간이었다.

그리고 시안은 누르비아와의 격차를 넘어서지 못했다.

누르비아와 시안 사이에는 커다란 벽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벽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아아─!!

내딛는 시안의 발걸음에 어둠이 휘몰아쳤다.

누르비아는 양손으로 옆으로 펼치며 마력을 끌어모았다.

번뜩이는 누르비아의 두 눈이 더욱 붉게 물들었다.

끝없는 마력의 세계가 다시 한 번펼쳐진다.

마력은 더욱 강대해졌고, 손톱은 무엇이든 찢을 것처럼 날카로웠다.

시안은 그 마력의 틈 속으로 몸을 밀어넣었다.

검(劍)이 갖는 모든 형태의 근원.

카일의 마혼수라검이 추구하는 베기, 참(斬).

휘둘러지는 멸살의 검 아래로, 붉은 마력의 결계가 깨어졌다.

붉디 붉은 세계가 일시에 어둠에 찢겨진다.

또한 누르비아가 미처 인지하기도 전.

멸살의 검은 이미 끝까지 휘둘러져있었다.

파삭, 하는 절삭음이 들려왔다.

누르비아의 얼굴에 당황이 새겨졌다.

주르륵, 붉은 선혈이 입가를 비집으며 새어나온다.

대체 어느 틈에······?

주춤, 물러서는 발걸음.

스르륵, 사선으로 누르비아의 몸이 갈라지며 떨어졌다.

쩌어어어어억─!!

그 순간 거대한 심연의 아가리가 시안을 향해 덮쳐왔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탐(貪)의 권능.

그러나 시안은 피하지 않았다.

사아아아─!

드리우는 어둠과 함께 시안의 모습이 일시에 사라진다.

어디지? 싶은 생각이 들기도 전.

우악스러운 손길이 굴네리아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 입.”

그대로 땅에 내려꽂으며, 시안이 나지막히 속삭였다.

“닫아.”

꽈아아앙!

크나큰 소리와 함께 굴네리아의 몸이 거칠게 바닥으로 쳐박혔다.

쳐박힌 대지가 쩌저적, 균열을 새기며 무너져내렸다.

【커허헉!!】

굴네리아의 아가리에서 다시 한 번 피가 왈칵 쏟아져나왔다.

흔들리는 시야로 보이는 시안의 두 눈은 새까만 어둠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부조리한 강함.

그것이 굴네리아의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었다.

【죽어─!】

그 틈에 잘려진 신체를 회복한 누르비아가 시안에게 달려들었다.

마력을 두른 손톱으로 앞선 공간을 모조리 할퀴었다.

시안은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굴네리아를 짓누른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다른 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쥘 뿐이었다.

꽈드드득!

깡통이 우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누르비아의 참격이 일시에 소멸했다.

이윽고 시안이 팔을 가볍게 당겨보이자, 공간의 축을 잡고 뒤흔드는 듯.

누르비아의 몸이 쭈우욱, 하고 딸려들어왔다.

정신을 차렸을 땐 누르비아의 목이 시안의 손에 붙잡혀있었다.

【켁···! 케륵···!】

누르비아의 목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끊임없이 내뱉어졌다.

【크헉···!】

바닥에 깔려 억압된 굴네리아의 입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쏟아져 나왔다.

두 명의 악마 군주가 지금 시안에게 붙잡혀 있었다.

누르비아와 굴네리아는 이 상황을 도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상하다. 말도 안된다. 이럴리가 없다.

이건··· 이건 너무도 부조리하다.

부조리할 정도로 강하다.

일순간 누르비아와 굴네리아의 두 눈이 마주쳤다.

말을 내뱉을 수 없었지만 마주치는 눈빛에는 어떤 의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피처럼 끈쩍한 마력이 두 군주에게서 터져나왔다.

【끄아아아아아아아─!!!】

【끄아아아아아아아─!!!】

터져나오는 비명.

그 사이로 가히 무한에 가까운 마력이 폭사했다.

힘이 명백한 살의를 띠고 악독하게 움직인다.

지금껏 보았던 힘과 차원, 그 자체를 달리했다.

[저건···!]

카르제가 당황하며 소리쳤다.

저 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지 않았으니까.

타격을 감수하고 끌어내는 본연의 힘.

본체가 갖는 영혼의 손상을 각오하고 군주들은 본체의 힘을 강제로 끌어쓰고 있었다.

여기에 깨어진 성물로 어느 정도 힘이 회복된 상황이었다.

정확히는 제약의 일부분이 해금된 상태였다.

여기서 두 군주가 타격을 감수하고 힘을 이끌어낸다는 것.

그건 사실상 제약을 지워낸 군주의 힘이라 봐도 무방했다.

이 힘 앞에서 카르제 또한 대항할 수 없었다.

존재를 짓눌러 죽이는 살의가 공간을 잠식한다.

그 어떠한 것보다 끔찍한 공포가 내리누른다.

오로지 죽음만을 갈망하는 악(惡).

누르비아는 끝없는 악을 폭사시키며 생각했다.

이유는 모르겠다만 지금의 시안은 부조리했다.

방금 전과 완전히 다른 존재처럼 느껴졌다.

이대로라면 당하는 것은 이쪽이다.

그러니 위험을 감수한다.

그 이후의 여파가 걱정되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 일이 끝나면 성물은 완전한 해방을 맞이한다.

무엇보다 지금 당장 시안을 찢어버릴 수만 있다면, 아무렴 상관없었다.

완연한 힘을 개방한 누르비아와 굴네리아의 두 눈이 붉게 일렁였다.

붉디 붉은 광기가 번뜩이며 행동에 나섰다.

그리고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것이 크나큰 착각이자.

뻐어어어억─!!

명백한 실수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무언가 터지는 소리.

누르비아의 몸이 쭈욱, 뒤로 밀려났다.

크하하학─!!

비명은 차마 내뱉어지지 못한다.

생각 안에서만 맴돌고 맴돌아 스러진다.

충격을 버티지 못한 전신의 뼈가 그대로 으스러졌다.

비명을 내뱉을 턱관절이 남아있지 않았다.

콰직─!

아득한 의식으로 무언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흐릿한 시야로 시안이 굴네리아의 아가리를 위 아래로 잡아 찢어버렸다.

허용 범위 이상으로 찢어진 아가리가 너덜너덜 입가에 걸려버렸다.

와그작─!

그 순간에도 굴네리아는 탐(貪)의 권능으로 시안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꽈앙!

세상을 담던 공간이 깨진다. 탐(貪)의 권능이 으스러진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렸을 때.

굴네리아는 누르비아의 옆으로 거칠게 쳐박혀있었다.

누르비아는 다시 한 번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몸이··· 몸이 도무지 움직이질 않는다.

【아··· 아아···.】

소리조차 새어나오지 않는 경악이 누르비아의 얼굴로 드리운다.

쫓아갈 수가··· 없다.

인지의 영역을 넘어선 저 아득한 속도.

누르비아는 방금 전에 아무것도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다.

그렇기에 감히 닿을 수조차 없었다.

처음엔 누르비아와 시안 사이에 두툼한 벽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시안이 넘어서지 못했던 벽이었다.

그러나 찰나의 순간에 뒤집혀버렸다.

도무지 넘을 수 없을거라 생각했던 그 벽이 뒤집혀버렸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 뿐이라 생각했다.

해서 이번엔 누르비아가 다시 벽을 뒤집었다.

타격을 감수하고, 영혼의 힘을 끌었다.

벽을 허물고 다시 격차를 벌렸다.

그런데 아니었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보인 것은 또 하나의 벽이었다.

벽이··· 하나가 아니었다.

시안과 누르비아 사이의 벽은 하나가 아니었다.

수 십, 수 백, 수 천개의 벽.

아니, 그 이상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많았다.

그것은 굴네리아가 가세해도 달라지지 않았다.

굴네리아는 고작 하나의 벽을 더 허물어버릴 뿐이었다.

터벅.

시안이 발걸음을 내딛는 소리가 아득하다.

누르비아는 털썩,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주저앉은 자세로 주춤주춤, 도망치듯 뒤로 물러났다.

이제야 알겠다.

지금 보이는 존재가 누구인지.

그것은 정말이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너는··· 너는···.】

누르비아는 그 생각을 차마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

“마, 말도 안돼···.”

경악 어린 아리아의 말이 흘러나왔다.

비단 아리아뿐만 아니라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그러했다.

모두가 싸움을 멈추고 시안이 두 군주와 싸우는 광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니, 싸울 필요가 없다는 말이 정확하겠다.

물론 그럼에도 도와줘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감히 도와줄 수가 없었다.

저 초월적인 싸움에 감히 개입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시안을 도와줄 이유 또한 전혀 없었다.

실로 압도적인 무위.

“······”

“······”

소리없는 충격이 내려앉아있었다.

[이건···!]

그리고 카르제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쉽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군주들이 영혼을 불태웠을 때.

카르제는 솔직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시안의 모습.

뻐어억─! 꽈아앙!

콰지직! 서걱─!

고백하건대, 카르제 또한 저 싸움에 차마 개입할 수가 없었다.

괜히 시안의 발목만 잡을 것 같아 용언(龍言)조차 함부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카르제는 용안(龍眼)을 활성화하며 시안을 바라봤다.

마력의 구조와 흐름 한 눈에 파악하는 권능, 용안(龍眼).

그런데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 끝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용안으로 바라본 시안의 존재는 그야말로 초월적인 존재였다.

저것이 과연 이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에게 허락된 힘이란 말인가.

실로 경이롭다라는 말이 절로 새어나왔다.

오래 전, 그때의 남자가 머릿속에서 떨쳐내지지 않을 만큼.

그러나 완전하지 않다.

그 힘을 담아내는 그릇이 너무도 위태로웠다.

그럼에도 시안은 버티고 있었다.

이 일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시안은 주저하지 않았다.

허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끝을 맞이할 터.

[······]

카르제는 홀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

【우, 웃기는 소리하지마···.】

누르비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머릿속을 떨쳐내지지 않은 생각을 계속해서 부정했다.

지금 피부 끝을 아려오는 듯한 힘.

드래곤조차 넘볼 수 없는 압도적인 존재감.

【네가··· 네가 그럴리가 없어···.】

이 힘을 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누르비아는 다시 시선을 들어 시안을 바라봤다.

전신이 떨려오는 압도적인 공포에 시야가 흐릿하다.

그러나 누르비아는 분명, 묘한 이질감을 인지할 수 있었다.

다름 아닌 파르르, 떨리는 시안의 손.

비단 손뿐만이 아니었다.

시안의 전신이 미묘한 떨림으로 가득차있었다.

무리하고 있다.

누르비아는 단번에 그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어디서 저 마력을 끌어왔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존재에게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하는 법.

시안은 그 한계를 억지로 늘린 것 같았다.

물론 한계를 늘린다한들 이 마력은 말이 안되었다.

한계는 말 그대로 한계.

본래라면 그릇이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붕괴해야만 했다.

지금 버티고 있는 것조차 말이 안되는 일이었지만 조만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릇은 깨어진다.

지금도 보라.

군주의 권능인 마안(魔眼)으로 바라본 시안은 굉장히 위태로웠다.

존재를 구성하는 그릇에 심한 균열이 새겨져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조차 그 균열은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시간을 끌면 되었다.

시안이 스스로 자멸할 때까지 버티면 되었다

그렇게 시안이 자멸하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이 상황도 곧 절망으로 일그러질 것이다.

그 광경을 상상하니···.

치밀었던 분노와 짜증 그리고 공포가 일시에 사라진다.

당황으로 가득했던 얼굴에 다시금 웃음이 걸린다.

누르비아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시안에게 말했다.

결국 필멸의 존재였다.

역시 저 녀석은···.

“알아.”

그 순간, 누르비아의 생각을 꿰뚫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전부 다 알─.”

뻐어엉─!!

말이 끝까지 들려오지 않았다.

입에서 내뱉어진 시안의 말이 누르비아의 귓가에 닿기도 전.

시안의 움직임이 소리를 뛰어넘어 누르비아의 인지를 부서버렸기 때문이었다.

머리가 재생하며 다시금 사고가 돌아온다.

크하학─!

돌아온 시야로 굴네리아의 비명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바라본 그곳엔 몸이 찢어져 다시 재생하는 굴네리아가 보였다.

누르비아의 인지가 끊어진 그 찰나의 순간.

그 순간에 굴네리아 또한 누르비아와 같이 일격을 당한 것 같았다.

그 짧은 순간에 두 명을 동시에 억압했다···?

심지어 누르비아는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굴네리아 또한 그러한 것 같았다.

누르비아의 두 눈이 파르르, 떨려온다.

덥썩.

생각의 틈 바구니를 헤집으며, 우악스러운 손길이 누르비아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이거 놔···!!】

누르비아는 악을 쓰며 팔을 휘둘렀다. 시안은 발길질로 누르비아의 몸을 걷어차버렸다.

뻐어엉! 터지는 소리와 함께 몸뚱이가 저 멀리 날아갔다.

다만, 시안이 붙잡고 있는 머리는 그대로 붙잡혀있었다.

분리된 몸과 머리.

몸뚱이에 붙어있는 누르비아의 두 팔이 애꿎은 허공을 휘저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시안은 검을 사용하지 않았다.

누르비아는 이를 까득, 깨물며 비명을 참아내었다.

버틴다. 버티면 된다.

시간을 끌어 시안이 자멸할 때까지만 버티면─.

콰직!

섬뜩한 파육음에 다시금 사고의 흐름이 정지한다.

시안은 땅에 내리찍은 누르비아의 머리를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시안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굴네리아가 두 눈을 파르르, 떨며 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다고··· 무슨 의미가 이, 있을 것 같으냐.】

굴네리아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스스로가 공포라는 감정을 느낀다는 자각도 하지 못했다.

굴네리아는 떨리는 눈빛으로 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라본 시안의 두 눈.

그 사이로 번들거리는 어둠은, 무저갱의 무언가를 마주한 것만 같았다.

시안은 그런 굴네리아를 가만히 바라봤다.

“쉽게.”

그리고 나지막히 말을 이었다.

“안 끊어지더라고.”

안 끊어진다···?

굴네리아는 잠시 시안의 말을 생각했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설마 그릇과의 연결을 말하는 거냐?】

시안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굴네리아는 그 의미가 맞음을 알 수 있었다.

누르비아를 담고 있는 인간, 헬렌.

굴네리아를 담고 있는 수인족의 대족장, 카리스.

지금 이 둘은 두 군주의 지배 아래 놓여있었다.

그리고 성물의 해방과 동시에 완전해졌다.

불완전했던 누르비아의 지배도 완전해졌다.

군주와 그릇의 정신은 끝내 하나가 되었다.

그렇기에 이 두 연결을 끊는다는 것은 불가하다.

2는 1과 1로 분리할 수 있으나.

1은 0.5와 0.5로 분리할 수 없다.

【우리를 죽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거다.】

결국 군주를 죽여야만 끝나는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의 죽음일 뿐이었다.

백 년, 천 년 그리고 수 천년.

언제고, 반드시 군주들은 다시 돌아온다.

【네 행동은 아무런 의미가─.】

“그래서 말했잖아.”

시안은 터벅, 굴네리아 앞으로 다가왔다.

“쉽게 안 끊어지는 것 같다고.”

반드시 구해주기로 약속했는데.

뻐어어엉─!

굴네리아의 사고가 일순간 정지한다.

시야가 다시 암전한다.

다시금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땐.

【아아아아악!!!】

회복한 누르비아가 악에 받친 비명을 터트리고 있었다.

“이미 정신이 하나로 된 것 같은데··· 그래도 다행히 공존은 하고 있더라고..”

시안은 누르비아의 머리를 짓밟으며 입을 열었다.

누르비아는 비명만 내지를 뿐, 아무런 행동도 내보이지 않았다.

아니, 저항할 수가 없는 것일지도.

“하나만 묻자. 너희 악마들도 백치가 된다는 개념을 알고 있냐.”

그리고 누르비아가 대답을 하기도 전.

뻐어억─!

누르비아의 몸이 일시에 축, 늘어졌다.

끅끅, 거리며 꿈틀거리는 몸만이 생명의 신호를 보내올 뿐이었다.

【너, 너 설마···.】

굴네리아는 그때서야 시안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계속해서 누르비아와 굴네리아를 억압하는 이유.

그것도 최대한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억압하는 이유.

군주의 정신과 그릇의 정신.

합일이 된 두 정신은 이미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분리할 수 없다 뿐.

하나이되 둘인 상태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시안이 행하는 것.

콰직─!

시안의 공격은 굴네리아와 누르비아의 정신에 타격을 주고 있었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시안의 공격은 하나하나가 군주의 영혼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육체를 지배하는 정신을 끊임없이 구속하는 과정.

억압하며 부러뜨리고, 깨어날 때마다 고통을 주고 있었다.

【헛된 생각이다!】

하지만 의미 없다. 시안이 억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릇의 육체였으니까.

악마의 본체는 그릇과는 동떨어져있었다.

그릇의 육체를 억압한다하더라도 악마에게 본질적인 타격을 줄 수 없었다.

육체의 머리가 잘리고 내장이 터져도 재생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기에 시안의 공격이 영혼에 타격을 준다하더라도 정신 자체를 붕괴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되려 그릇의 정신을 더욱 갉아먹히게 하는─.

덥썩.

생각을 끊어내며, 시안의 손이 굴네리아의 어깨를 내리눌렀다.

굴네리아는 이를 까득, 씹으며 광기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버티면 이긴다.

군주의 정신을 붕괴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그러니 시안이 자멸할 때까지 버티면─.

“맞아.”

그 순간 들려오는 시안의 목소리.

“원래는 불가능 했었어.”

그와 동시에 어마어마한 마(魔)의 힘이 사방을 드리웠다.

피워올린 광기의 마력은 저 근원의 힘에 굴복하며 사라졌다.

대항할 수 없는 힘.

“그런데 너네.”

그 사이로 아득한 시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체의 힘을 끌어왔잖아.”

정말 고맙게도.

꽈아아아아아앙!!

일순간 굴네리아의 생각이 툭, 끊어진다.

그리고 다시 일궈진 생각이 파르르, 떨려왔다.

생각이라는 표정에 경악이라는 감정이 뚜렷이 새겨진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은 듯한 절망이 떠오른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어느 순간부터인가 시안은 검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어느 순간은 다름 아닌 두 군주가 본연의 힘을 끌어낸 직후부터였다.

설마, 이걸 노리고 있었다고···?

실수···다.

본체의 힘을 끌어왔으면··· 안 되었다.

본체의 힘을 끌어오는 대가는 영혼의 실질적인 타격이다.

그릇을 넘어 군주의 영혼에 직접적인 타격이 가능해진다.

물론 그 대가로 군주는 초월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 그만··· 그만···!】

지금은 하등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진정한 초월(超越)의 힘.

저 앞에서 가짜는 아무런 빛을 발하지 못했다.

오로지 부작용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지금 행해지는 모든 일격들이 영혼의 타격으로 이어지는 끔찍한 부작용만이 남아있다.

【이, 이건··· 이건···!】

굴네리아의 입이 쩌억, 하고 벌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탐(貪)의 권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그만··· 그만해줘···!】

누르비아가 공포에 떨며 애걸해왔다.

시안은 그런 둘의 모습에서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두 군주는 천 년전, 대륙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던 존재들이었다.

존재만으로 대륙을 공포에 떨게 한 절대적인 악(惡)이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다고 해야할까.

정작 군주들은 그러한 감정을 느낀 적이 없어보였다.

스스로가 공포스러운 존재이기에, 공포는 군주들을 억압하는 일이 없었다.

그리하여 지금 두 군주는 참으로 맑았다.

공포와 두려움에 오염되어 있지 않은, 맑디 맑은 정신을 보유하고 있었다.

“어디 한 번 끝까지 버텨봐.”

뻐어어어억─!!

두 군주의 정신이 다시 한 번 끊어진다.

그리고 다시 생각을 회복했을 때.

방금 전, 시안이 따귀를 때린 것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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