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266화 (266/322)

266화 - 그가 남긴 것(2)

높디 높은 산 정상의 풍경.

“야!! 같이 가!!”

아래 쪽으로 아리아가 소리쳐왔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 아리아가 숨을 헐떡거리며 따라붙었다.

“뭐가 이렇게··· 하아···! 빠른거야···.”

“그러게 따라올 필요 없다니까.”

시안은 좌우로 고개를 흔들어보였다.

“너 혼자 보냈다가··· 갑자기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래? 하아···! 너··· 일주일 동안 기절해있다가 방금 깨어난 거 몰라?”

“일주일? 내가 일주일 동안 기절해있었어?”

“참 빨리도 물어본다.”

아리아는 어처구니 없는 눈빛으로 시안을 바라봤다.

이윽고 달뜬 숨을 갈무리하며 몸을 바로세웠다.

“아무튼. 너 혼자 보냈다가 내가 걱정돼서 못 견뎌.”

이어진 아리아의 말에 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현재 상태도 썩 좋은 편은 아니었으니까.

움직일 수 있다 뿐, 괜찮다라고 말할 상태는 결코 아니었다.

“그래도 일주일이면 생각보다 금방 깨어났네.”

“뭐? 그게 왜 그렇게 돼?”

“죽었다 살아난 것치고 일주일이면 짧지.”

아리아는 뭐라 한 마디 하려다 입만 버끔거렸다.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존재 자체가 붕괴되었던 시안의 상태였다.

일주일이 아니라 7년이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만큼 드래곤 하트의 힘이 어마어마하다는 뜻.

동시에 시안의 존재가 상당히 안정을 찾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여간···.”

아리아는 눈을 흘기며 바라볼 뿐이었다.

시안은 그런 아리아를 뒤로 한 채 카르제의 둥지로 시선을 돌렸다.

정확히는 카르제의 둥지로 향하는 숨겨진 공간.

하지만 카르제가 없는 지금, 그 공간은 굳건히 닫혀있었다.

“어떻게 들어가게?”

“기다려봐.”

시안은 오른 손을 옆으로 뻗어 멸살의 검을 소환했다.

그리고는 가볍게 카르제의 둥지로 향하는 공간을 내리그었다.

서걱─!

허공 속에서 자그마한 절삭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쩌어억─! 닫혀있던 공간이 열리며 카르제의 둥지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뭐, 뭐야? 어떻게 한 거야?”

뒤에서 아리아가 놀라 소리쳐왔다.

시안은 터벅, 열린 공간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안은 공간 바로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들어가지 않고 가만히 그 앞을 서성였다.

그런 시안의 모습에 뒤에서 아리아가 물어왔다.

“왜 안 들어가?”

“이거 못 들어갈 것 같은데.”

“응? 그게 무슨 말이야?”

“한 번 들어가봐.”

아리아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앞으로 나서보였다.

이윽고 열린 공간으로 발을 내딛으려던 찰나.

파지직─!

강한 스파크가 일며 아리아를 향해 쏘아져왔다.

쏘아지는 스파크에서 상당히 강한 마력이 느껴졌다.

시안은 아리아를 황급히 등 뒤로 잡아당겼다.

그리고 아리아 앞을 막아서며 멸살의 검을 휘둘렀다.

서걱─!

“역시.”

시안은 베어져 사라지는 스파크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무래도 카르제의 둥지가 봉인된 것 같아.”

그도 그럴 것이 이 둥지는 카르제의 마법으로 구현된 공간이었다.

주인의 존재가 사라지자 그 둥지는 스스로를 봉인한 것 같았다.

“그럼 어떻게?”

아리아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물었다.

평범한 봉인이었다면야 그냥 뚫어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이건 평범한 봉인이 아니었다.

별 다른 설명이 필요 없었다.

최후의 드래곤, 카르제의 둥지.

드래곤이 직접 구현한 공간이 어찌 평범할 수 있을까.

“뚫어내는 건 어렵지 않은데···.”

그럼에도 뚫어낸다면야 할 수는 있었다.

카르제의 둥지가 구현된 공간 자체를 무너뜨리면 그만이었으니까.

물론 이 역시 평범한 일은 아니었지만 시안은 충분히 가능했다.

“문제는 둥지가 아예 무너질 수가 있단 말이지.”

그러면 안에 있던 보물 또한 같이 매장당해버릴 위험이 있었다.

“흐음···”

시안은 둥지 앞, 열린 공간 앞에서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라면 둥지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떤 방법이 있을 것임은 분명했다.

괜히 전설 업적 보상으로 주어지지 않았을테니까.

‘잠깐.’

설마, 이거··· 상속세를 지불해야하는 건 아니겠지?

그러면 상당히 곤란했다.

곤란한 정도가 아니라 미친 수준이었다!

상속세가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10%라 쳤을 때.

시안이 지난 번에 본 둥지 안의 보물은 못해도 수 십억이었다.

최소치만 잡았을 때 수 십억.

어쩌면 100억에 달할 수 있는 어마어마어마어마한 보물들이었다.

그럼 10억이었다.

상속세만 무려 10억을 내야만 했다!

여기에 20%로 치솟으면 20억.

30%면 자그마치 30억이었다!!

못 낸다. 아니, 안 낸다!

어떻게 탈세의 방법을 찾으면 찾았지 절대로! 결단코! 못 낸다!

물론 정말로 상속세가 있는지는 모르겠─.

띠링!

《상속 받고 싶으시면, 현질을 해보세요!》

그와 동시에 ‘Loading···’ 이라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유산 상속과 관련한 사항을 업데이트하는 것 같았다.

“······”

시안은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어쩐지.

보상으로 카르제의 유산이 주어졌을 때 잠잠하다 싶었다.

발작이란 발작은 죄다 일으켜도 모자랄 판에 태평하다 싶었다.

그리고 왜 카르제의 유지와 카르제의 유산.

이 둘을 따로 분리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

지랄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지랄이라고밖에 설명이 불가했다.

상속세가 얼마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절대로! 결단코 낼 수 없었다!

시안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며 온갖 탈세의 방법을 강구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방법이 있을리가 없─.

‘어? 잠깐만.’

그 순간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생각해보면··· 이 둥지는 이렇게 봉인되어서는 안되었다.

이 둥지는 카르제의 마력으로 구현된 공간.

따라서 카르제의 죽음과 동시에 소멸했어야할 공간이었다.

공간을 구현할 마력의 주체가 존재하지 않게 되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이렇게 봉인으로 그친 이유.

아마 상속과 관련한 어떤 시스템이 작동한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화면에 떠있는 ‘Loading···’이라는 알림창.

업데이트가 끝나면 상속세를 지불할 수 있는 시스템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속'이라는 개념이었다.

한 쪽이 사망했을 때 재산과 관련한 권리를 계승하는 의미.

그런데 본인이 직접 온다면 상속할 이유가 있을까?

본인이 직접 수령한다면 상속세 같은 건 필요가 없지 않은가.

물론 카르제는 분명히 죽었다.

하지만.

시안은 터벅,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봉인된 공간 위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두근!

심장이 크게 요동치며 시안의 생각이 크게 부풀었다.

박동의 소리가 전신을 울리며 내재된 마력을 끌어올렸다.

시안의 존재에 각인된 드래곤 하트.

그 안에 내재된 카르제의 유지.

콰아아아아아아아─!!

쏟아지는 초월의 마력은 존재마저 붕괴시킬 아득한 힘을 품고 있었다.

“이, 이 무슨···?”

그 힘에 아리아가 크게 떨어보였다.

자신을 해하지 않음을 알고 있었건만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시안은 쏟아지는 마력을 철저하게 통제했다.

통제된 마력을 의지로 이끌어 공간의 봉인을 헤집었다.

시안이 지닌 초월의 마력.

그리고 카르제의 의지가 깃든 힘.

확실히, 주인의 존재를 인식한 것일까.

파지직─!

봉인된 공간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그 균열이 커져가더니 이내 파장창!

봉인이 산산히 깨어져 부서졌다.

일순간 적막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지금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는 듯한 생각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까무러치는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이 화면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번엔 왜일까.

〈······ 미친?〉

얼탱이가 나간 듯한 시스템의 알림창까지 떠올랐다.

#

“세, 세상에나!!!”

아리아는 두 눈을 부릅, 뜨며 경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눈앞에 보이는 풍경.

넓다··· 라기 보다는 광활하다. 라고 표현함이 바람직한 이 공동.

카르제가 10명? 10마리?

아무튼 10 카르제가 들어가도 널널할 정도로 큼지막한 이곳.

이 광활한 공동에 보물들이 빼곡히 쌓여있었으니까!

진짜 어마어마어마어마하게 많았다.

교황청의 보물들과 성물들을 죄다 끌어모아도 택도 없었다.

본 적은 없지만 샤를롯 제국이 가진 보물들을 더해도 소용 없을 터였다.

아마 세상의 모든 보물들을 쟁여놓아야 맞붙을 수 있을까.

“이게 대체···!”

경악 어린 아리아의 충격은 쉽사리 가시질 않았다.

아리아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시안을 바라봤다.

돈에 딱히 관심이 없는 아리아도 경악을 금치 못하는 보물들이다.

하물며 돈에 미쳐버린 시안이라면 기절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정신이 미쳐버맀을 수도 있었다.

아리아는 경악 반, 걱정 반이 섞여있는 얼굴로 시안을 바라봤다.

그런데··· 대체 왜일까.

“······”

시안은 어째서인지 아무런 감정 변화가 없어보였다.

기절초풍하며 신들린 떨림을 보여도 이상할 것 없건만, 시안은 담담한 표정으로 자리에 서있을 뿐이었다.

정확히는 약간의 침울한 기색도 섞여있었다.

아.

아리아는 그때서야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보물들을 가져다 놓은 지금의 풍경.

어림짐작으로만 계산을 때려도 수 십억 골드에 달하는 보물들이었다.

그럼에도 시안이 기뻐하지 않는 이유.

다름 아닌 카르제가 남긴 유산이라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드래곤으로서 불명예스러운 죽음.

그로써 남긴 카르제의 유지.

어찌 마냥 기뻐할 수만 있을까.

그렇기에 시안은 경건함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있을 뿐이었다.

참··· 보면 볼수록. 겪으면 겪을수록.

정말이지 믿음직스러운 남자였다.

시안을 바라보는 아리아의 눈이 묘하게 물들었다.

그런 아리아의 심정과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 미친!!!!!’

시안은 지금 황홀경에 빠져있었다!

아. 미쳤다.

이건 미쳤다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수 십억은 가뿐히 넘어갈 듯한 천혜의 보물들.

정확한 건 아멜리아에게 맡겨봐야 알 것 같았다.

그런데 100억이라는 말이 정말 농담은 아니었다.

정신이 버티질 못하고 끊어졌다.

악마 군주의 광기마저 어찌하지 못한 정신이건만 지금 느껴지는 황홀감은 시안의 정신을 끊어버렸다.

그 때문에 시안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혼(魂)이 승천한 백(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

‘아··· 아아아아···!!!’

오직 승천한 정신만이 신들린 떨림을 반복할 뿐이었다.

띠링!

《아··· 안돼애애애애···!!!》

떠오르는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이 부르르, 떨려올 뿐이었다.

〈오류는··· 아닌데··· 왜지?〉

〈어째서 오류가 아닌거지?〉

띠링!

〈내가 오류난 건가?〉

그 뒤로 알 수 없는 시스템의 알림창도 연달아 떠올랐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끊어진 정신이 다시 이어지며 암전된 시야가 되돌아왔다.

되돌아온 시야로 아리아의 얼굴이 보였다.

아리아는 어째서인지 묘한 눈으로 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안은 애써 그 시선을 무시했다.

아리아가 보물을 조금만 나눠달라는 것 같았으니까!

시안은 아리아의 시선을 무시하며 터벅, 걸음을 내딛었다.

10 카르제가 들어가고도 남을 공간.

그 공간에 빼곡히 쌓여있는 보물들.

이 많은 것을 옮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쉽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거진 불가능하다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시안에겐 그렇게까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공간 주머니, 인벤토리(Inventory)가 있었으니까.

인벤토리의 공간에는 끝이 없었다.

담으면 담는대로 무한히 들어가는 아공간 주머니였다.

고민하고 지체할 것이 무얼까.

시안은 곧장 보물들을 인벤토리에 담아았다.

손을 빗자루 삼아 앞선 보물들을 모조리 쓸었다.

쓸리면 쓸리는 대로. 담으면 담는 대로.

촤라라라락.

인벤토리에 보물들이 거침없이 담겨졌다!

한 번 쓸어내리면 1억.

두 번 쓸어내리면 2억.

세 번 쓸어내리면 3억!

그럼에도 보물들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아아아···!!’

시안은 황홀경에서 도무지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시안은 미친 사람처럼 보물들을 쓸어담았다.

그렇게 얼마 간의 보물들을 쓸어넣었을까.

갑자기 턱, 하는 걸림이 느껴졌다.

그리고는 인벤토리에 더 이상 보물들이 들어가지 않았다.

“응? 뭐지?”

싶은 물음과 동시에 띠링!

《인벤토리의 공간이 부족합니다!!!》

스마트 폰 위로 알림 경고창이 떠올랐다.

“공간이 부족해···? 아 맞다.”

생각해보니 인벤토리에 한계가 있었지.

물론 무한히 들어간다, 라는 개념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공간 5칸 확장 업그레이드] - 5,000 G

[수납 무게 1% 감소 업그레이드] - 5,000 G

다만, 골드가 좀 필요할 뿐이었다.

그래서일까.

《인벤토리가 부족하시면, 현질을 해보시든가요!》

이때다 싶은지 모바일 영주가 깐족거리며 소리쳤다.

시안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인벤토리 확장은 오랜만에 보는데.”

언제였던가···?

제국 서부에서 늘린 뒤로 사용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딱히 필요한 상황이 없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모바일 영주에서 사용되는 인과.

그러니까 골드는 인벤토리 공간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골드가 아닌 이러한 보물들은 아니었다.

공간 1칸에 일정 부피 혹은 무게가 들어가면 다른 공간을 필요로 했다.

“5칸에 확장에 5천 골드.”

싸다고 할 수 있는 금액은 아니었다.

시안은 남아있는 골드를 확인했다.

[현재 보유 중인 골드] - 80,915,200 G

카일의 유산과 노에미의 유산을 상속받으며 지불한 상속세.

2억 골드를 지불하고 남은 금액이었다.

원래는 이보다 20만 골드가 더 남아있어야했다.

하지만 역시나 유지 관리비로 빠져나가 있었다.

유지 관리비가 미쳐돌아가고 있었다.

해서 이 모든 금액을 현질할 수는 없었다.

유지 관리비가 없으면 루벤에서 가동 중인 시설들이 멈출테니까.

어느 정도 골드를 남겨놓아야만 했다.

“아, 몰라. 다 때려넣어.”

하지만 시안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제정신이라 할 수 있었다.

이 보물들을 눈앞에 두고 뭔 헛짓거리란 말인가.

설령 관리비가 부족해서 시설들이 가동을 멈춘다치자.

아니, 아예 박살이 나서 무너진다 치자.

“이 보물들로 다시 짓지 뭐.”

시안은 남아있는 모든 골드를 인벤토리 공간 확장에 쏟아부었다.

무게 감량 따위는 필요 없었다.

이 보물들을 모두 담으려면 공간 확장에 쏟아부어도 부족했으니까.

꾸구구구구구국.

《꾸에에에에에에에엑!!!》

신들린 터치와 함께 모바일 영주의 비명 소리가 터져나왔다.

당연하게도 시안은 멈추지 않았다.

공간 확장 5,000 골드.

보유 중인 골드 약 8,000만 골드.

그 돈을 모두 쓰려면 무려 16,183번의 터치를 해야했다.

꾸구구구구구구구구국.

시안은 초월의 마력까지 터트리며 터치를 반복했다.

그렇게 한 1,000번 되었을까.

《그, 그만···! 그만···!!》

모바일 영주가 애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시안은 계속해서 터치를 반복했다.

그렇게 2,000번. 3,000번.

다시 5,000번쯤 되었을 때.

《자, 잘못해써요···! 그만 해주세요···!》

모바일 영주가 빌기 시작했다.

누르비아가 애걸하던 모습과 겹쳐보이는 건 왜일까.

시안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그 순간에도 역시나 터치 버튼을 멈추지 않았다.

아직 남아있는 11,183번의 터치가 있었으니까.

《그만둬어어···!!!!》

터져나오는 모바일 영주의 비명.

꾸구구구구국.

그러나 시안은 터치를 멈추지 않았다.

#

그렇게 인벤토리 확장이 끝이 나고.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기절한 것인지 아니면 기절한 척 하는 것인지.

“뭐, 인벤토리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으니까.”

다시 가볼까.

시안은 다시 보물들을 휩쓸어담았다.

천 년의 세월 동안 카르제가 모아온 보물들.

대부분은 보석과 같은 재화에 치중되어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당장 모바일 영주의 인과로서 인정되지 않는 보물들이었다.

간혹 골드로 인정되는 인과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리 많지는 않았고 곧장 인벤토리를 확장시키는데 써버렸다.

어쨌거나 보물들은 대부분 보석과 같은 재화가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응?”

문득 시안의 시선에 묘한 물건이 비쳐보였다.

“책?”

그건 어떤 책자였다.

그것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있는 책.

설마하니 카르제가 책을 보물로 여기지는 않았을 터.

그럼 이곳에 있는 이유가 있는 책일 터였다.

시안은 책을 집어들어 살며시 펼쳐들었다.

그리고 책자 안에는 요상한 글자가 써져있었다.

“뭐지?”

알아 볼 수 없는 글자였다.

한 마디로 생전 처음 보는 글자.

그런데 어째서인지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카르제의 기억인 것 같은데···.

“라 - 아크리스 오즈 사므 에미르···?”

이렇게 읽는 건가? 싶은 의문이 들던 찰나.

화아아아아악!

돌연 시안의 손에서 찬란한 빛이 터져나왔다.

악(惡)을 몰아내는 절대적인 힘.

“신성력···?”

이건 신성력의 힘이었다.

“뭐야···? 너 방금···.”

그런 시안의 생각을 확증이라도 하듯 아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아리아가 두 눈을 크게 떠보이고 있었다.

“신성력을 어떻게 네가···?”

역시, 방금 그 힘은 신성력이 맞는 것 같았다.

아리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시안을 바라봤다.

“그러··· 게?”

그리고 시안 또한 마찬가지였다.

누누히 말하지만 시안은 마(魔)를 다루는 기사다.

그런데 신성력이라니. 그 뭔 웃기지도 않는 소리란 말인가.

무엇보다 신성력은 선천적으로 타고나야했다.

또한 오러를 사용하는 기사는 신성력을 사용할 수 없었다.

신성력과 오러.

이 둘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었으니까.

정확히는 물과 기름.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배척 관계라 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오러란 기사들이 행하는 믿음의 결과물.

세계와 현상의 법칙 따위는 무시해버리는 그야말로 터무니 없는 힘이었다.

그야말로 기적의 힘이라 할 수 있었다.

헌데 사제들은 태어날 적부터 거룩한 힘을 보았다.

그것은 곧 ‘신’이 실존함을 증명하는 것이리라.

자신이 행하는 기적의 힘은 신에게서 빌려온 것이요.

그것이 눈앞에 실존하니 그 믿음 또한 확고한지라.

그러나 오러는 현상의 법칙을 비트는, 오직 인간이 갖는 확고한 믿음의 산물이자 하나의 기적.

허나, 기적을 행하는 신이 이미 실존하거늘.

어찌 인간 따위가 그 기적의 힘을 부릴 수 있으랴.

신성력을 타고난 이들은 오러라는 현상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고.

해서 사제들과 신성 기사들은 오러의 힘을 다룰 수가 없었다.

······ 라는 것이 엘로디가 정의내린 개념이었다.

드래곤을 뛰어넘은 엘로디였으니 아마 맞을 것이다.

그렇기에 오러를 다루는 시안은 신성력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방금 터져나온 힘은 분명한 신성의 힘.

‘이게 뭔···.’

“잠깐, 그보다 너 방금 뭐라고 했었어?”

그렇게 멍하니 있자니 아리아가 재차 물어왔다.

“몰라. 그냥 책자에 적힌 글을 읽은 건데.”

“책자?”

시안은 아리아에게 책자에 적힌 글을 보여주었다.

아리아는 성큼, 다가와 책자를 유심히 살폈다.

“난 무슨 글자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이걸 읽었다고?”

“나도 잘 몰라. 그런데 그냥 읽히더라고.”

라 - 아크리스 오즈 사므 에미르.

시안은 중얼거리듯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화아아아아악!

다시 한 번 시안의 손으로 신성의 힘이 터져나왔다.

뭔데 진짜.

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이거 설마···.”

아리아는 무언가 알고 있는 눈치였다.

“신어(神語)··· 인 것 같은데.”

“신어?”

아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여러 복잡하고 구구절절한 설명.

한 마디로 요약하면 신의 언어라는 뜻이었다.

물론 진짜로 신(神)의 언어는 아니라고 한다.

다만, 어마어마한 신성의 힘이 깃들어있었고, 그 힘이 가히 신(神)에 필적하기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하지만 신어는 천 년전에 소실되었는데?”

그리고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

“뮤리엘은 신어를 사용했지만···.”

아르나이즈 신녀(神女), 뮤리엘이 사용했고.

“뮤리엘 말고 아무도 사용하지 못했다 하더라고.”

또 뮤리엘 이외에 그 누구도 사용하지 못했으니까.

사용되지 않은 힘은 점점 기억 속에서 잊혀져갔고, 천 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 기록조차 희미해졌다.

“그런데 네가 어떻게···?”

아리아는 두 눈을 크게 뜨며 시안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런 아리아의 설명 때문일까.

‘아, 이거 설마···.’

시안은 방금 전의 기현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시안은 신성력이 없었다.

그럼에도 방금 전의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유.

‘용언(龍言)··· 때문인가?’

용언(龍言).

술식이나 마법진이 필요 없이 오직 언어로서만 마법을 구현하는 방법.

그리고 강대한 신성의 힘이 담긴 신어(神語).

아무래도 용언의 힘이 신어의 힘을 발동시킨 것 같았다.

신성력이 없어도 신어가 가진 신성의 힘을 발동시킨 것이었다.

해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

‘내가 용언을 사용할 수 있다고?’

시안은 용언을 사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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