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271화 (271/322)

271화 - 금의환향(2)

다들 어디가 있는 거야.

시안의 중얼거리는 듯한 외침이 메아리처럼 울려퍼져왔다.

그래, 시안의 외침이었다.

지금 들려오는 이 목소리는 분명한 시안의 것이었다.

-시안···? 정말 시안이라고?

하지만 레아는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느껴지는 이 기운.

보다 강대한··· 아니, 레아조차 공포를 느끼는 이 기운.

이건 결코 시안의 것이라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들려오는 목소리는 확실히 시안의 것이었다.

정신을 집중하니 기운에 가려져있던 시안의 존재 또한 확실히 느껴졌다.

-이게 대체···.

레아는 머릿속이 굉장히 혼란스러워졌다.

이윽고 레아가 말없이 회의실의 벽을 뚫고 밖으로 나갔다.

끌어올린 사념을 유지한 채, 레아는 루벤의 하늘을 가로질러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

레아는 기운의 존재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어? 레아!”

반갑게 손을 흔드는 시안의 모습을 말이다.

시안은 다가오는 레아를 향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다들 어디가고 레아만 와요? 경비탑에도 사람이 안 보이고··· 분위기는 왜 이렇게 휑하죠?”

그러면서 시안은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둘러보았다.

조금 어벙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모습.

확실히 레아가 알고 있는 시안과 다르지 않았다.

-어, 어떻게···?

레아는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 엉켜왔다.

확실히 시안이었다. 의심할 건덕지도 없이 시안이었다.

누군가 둔갑을 하거나, 악마 따위가 변신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시안 같지가 않았다.

다른 건 다 차치하고서라도 지금 느껴지는 기운.

떨림이 가시질 않는 이 존재감.

이 전신을 찍어누르는 듯한 압박감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시안이··· 맞아?

레아는 끝내 떨리는 목소리로 시안에게 물었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내가 알던 시안이 아닌 것··· 같아.

“제가 떠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아, 이 기운 때문에.”

그러자 시안이 이해했다는 듯 멋쩍게 웃음을 흘렸다.

“오는데 마수들이 귀찮게 달려들길래요. 일일이 상대하기도 귀찮아서 잠시 존재감을 개방했어요.”

그리고 이어진 시안의 말.

레아의 머릿속이 계속 뒤죽박죽 엉켜들어왔다.

어둠의 숲의 마수들은 일반적인 몬스터와 다르다.

광폭화(Over Drive)가 진행된 마수들은 이성의 영역이 도려내어져 있었다.

마수들에겐 두려움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성이 없으니 그저 대상을 먹잇감으로만 인식할 뿐이었다.

그런데 시안은 그런 마수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는 뜻이었다.

그 말은 즉.

이성이 아닌 본능의 공포를 자극했다는 말인데···.

그게 가능한 일이던가?

물론 가능은 했다. 당장 레아도 가능했으니까.

그러나 어디까지나 사념을 끌어올렸을 때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힘을 이끌었을 때나 가능한 일었다.

절대로, 결단코.

이렇게 단순한 존재감만으로는 마수를 공포에 질리게 할 수 없었다.

이 세상에 그것이 가능한 존재는 없었다.

정확히는 그 존재는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만물 위에 군림하는 최강의 포식자, 드래곤(Dragon).

오직 드래곤만이 존재감으로 대상을 짓누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천 년전에 드래곤은 모두 악마들에게 사냥당했다.

애초에 시안은 인간이었─ 잠깐.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하나.

레아는 감각을 세우며 시안의 기운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곧 그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드래곤 프레셔···?

드래곤 프레셔(Dragon Pressure).

최상위의 포식자들만이 지닐 수 있는 권능, 피어(Fear).

그리고 그 피어의 정점이라 부를 수 있는 권능, 드래곤 프레셔.

드래곤 프레셔는 생명체에 각인된 본능마저 질리게 하는 절대적인 힘이었다.

오로지 기세만으로 존재를 짓눌러 죽일 수 있는 권능 중의 권능.

천 년전에 직접 겪어봤기에 레아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틀림없는 드래곤 프레셔다.

그런데 도무지 말이 되질 않았다.

그건 말 그대로 드래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권능이었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그런 레아의 의문을 아는지 모르는지.

“번거롭긴 했는데, 괜히 수인족들이 다치면 곤란해서요.”

시안이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그와 동시에 전신을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이 일시에 사라졌다.

레아의 떨림 또한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수인족···?

하지만 머릿속은 그보다 더 복잡하게 얽혀왔다.

레아의 물음에 시안이 몸을 옆으로 비켜서보였다.

그와 동시에 우그극, 쩌적.

시안이 딛고 있는 땅이 갈리며 찌그러졌다.

뭐지? 싶은 의문도 잠시.

시안이 몸을 비켜서며 보인 뒤쪽의 풍경은 더 가관이었다.

발걸음마다 풍경이 아작이 나있었으니까.

지면이 통째로 아작이 난 어둠의 숲이 펼쳐져있었다.

그 위로 자생하는 나무들이 죄다 쓰러져있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길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길 위로 어마어마한 인파가 뒤따라있었다.

응? 인파···?

레아는 눈을 가늘게 떠보였다.

인파는··· 인파였다.

다만 인파를 의미하는 인(人)이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뿐이었다.

-수인족···?

진짜 수인족이었다.

심지어 한 두명이 아니었다.

인파라는 말에 걸맞게 수 천명에 달하고 있었다.

-아, 아니···.

레아의 머리는 이제 생각이라는 것을 포기해버렸다.

그리고 바로 그때.

-주군···?

레아의 뒤쪽으로 켄드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켄드릭의 뒤로 한스, 세미르, 아멜리아, 그레이슨, 세라, 제리 등.

루벤의 주요 인물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뭐, 뭐죠···?”

“저들은 대체···.”

“이게 무슨···.”

그리고 보이는 풍경에 저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물음표를 찍어버렸다.

오직 한 사람.

“······!!!”

세미르만이 경악 어린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세미르의 시선은 오직 한곳에 고정되어있었다.

그리고 그런 세미르의 시선이 고정된 곳.

“헤, 헬렌···.”

다름 아닌 헬렌이 있는 곳이었다.

세미르의 중얼거림에 헬렌이 세미르를 바라봤다.

아니, 그 전부터 헬렌의 시선 또한 세미르에게 고정되어있었다.

두 사람은 아무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그저 멍하니, 서있을 뿐이었다.

집중되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도 그 둘은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쉼없이 떨리는 둘의 눈동자만이 그들의 심정을 설명해줄 뿐이었다.

터벅.

이윽고 세미르가 한 발을 내딛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세미르의 입이 뻐끔거렸다.

그러나 소리는 새어나오지 않았다.

터벅. 터벅.

세미르는 그저 계속 앞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헬렌 또한 그런 세미르를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걸음은 점점 빨라졌고, 끝내 둘이 맞닿았을 때.

와락!

소리없는 포옹만이, 그 자리에서 들려올 뿐이었다.

무려 100년이 넘도록 기다려온 두 사람의 해후.

그 어떠한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소리없는 포옹만이 보일 뿐이었다.

시안은 그런 둘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게 뭔가 싶었다.

진짜 뭔가 싶었다.

악마에게 잠식된 헬렌.

그런 헬렌을 기다려온 세미르.

그 둘의 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게 뭔 일이란 말인가.

사람들은 멍하니, 두 사람의 해후를 지켜봤다.

이윽고 한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시안에게 다가갔다.

걸음을 옮기며 수많은 의문들이 떠올랐다.

그동안 왜 연락이 되지 않으신 겁니까.

그리고 이게 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헬렌이 어떻게 왜 여기에 있는거죠?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그렇게 한스가 시안 앞에 서보였을 때.

한스는 그저 입만 벙긋거릴 뿐이었다.

어느 것부터 물어봐야할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한스의 머릿속은 너무도 혼란스러웠다.

“아, 한스. 잘 지냈어?”

이어진 시안의 안부에도 뭐라 대답할 말이 없었다.

시안은 반가운 얼굴로 한스에게 말했다.

“루벤은? 내가 없는 동안 루벤에 별 일···.”

그리고 슬쩍, 보이는 한스의 얼굴.

“있었나보구나.”

시안은 스스로 답을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한스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짙게 내려앉은 다크 서클과 퀭한 두 눈.

푸석푸석하다 못해 메마른 피부.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는 얼굴이었다.

“드릴 말씀이 많습니다. 여쭤볼 말도 많고요.”

아니나 다를까 한스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영주성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시죠.”

“아니, 여기서 이야기 하자.”

시안은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나도 그러고 싶긴 한데. 지금 루벤으로 들어갔다간 루벤의 지반이 전부 무너질 것 같아서.”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라고 물으려던 찰나.

우그극, 쩌적.

갑자기 시안의 아래로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한스는 살며시 시선을 내렸다.

그러자 시안이 딛고 있던 땅바닥이 콰지직, 갈라지고 있었다.

마치 가뭄에 땅이 메마르듯 사방으로 균열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한스는 끝내 물을 수밖에 없었다.

시안은 대답 대신 한스 뒤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멍하니 세미르와 헬렌의 해후를 지켜보는 사람들.

정확히는 켄드릭을 비롯한 루벤의 주요 인물들.

“이리로 다들 모여봐.”

사람들이 시안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리며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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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은 루벤의 사람들에게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자리도 자리였고, 처리해야할 일도 많았기에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럼에도 설명은 꽤나 길게 이어졌다.

그렇게 얼추 상황에 대한 설명이 끝난 직후.

“······”

“······”

“······”

사람들의 얼굴에서 정신이라는 것이 빠져버렸다.

충격과 경악. 그 어떤 놀람의 표현을 들이밀어도 이 표정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다만, 세미르만은 예외였다.

세미르는 저기, 아직도 헬렌을 말없이 껴안고 있었으니까.

뭐 이렇게 오래 껴안고 있나 싶기도 하면서도.

100년 만의 해후인데 그럴 수도 있겠네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뭐, 어쨌든.

특히나 레아와 켄드릭의 충격은 단연코 압도적이었다.

-드래곤··· 진짜 드래곤···.

-카르제님이···

레아와 켄드릭은 카르제와 같은 천 년전의 존재들이었다.

물론 천 년전의 카르제는 상당히 어렸다.

그렇기에 레아와 켄드릭과 어떤 인연이 있는지는 시안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 보아하니.

깊은 인연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어쩐지 드래곤 프레셔가 느껴지긴 했다만···.

-지금 주군은 어찌···.

그렇기에 두 사람은 그 누구보다 시안의 존재에 대해 놀라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충격과 경악으로 얼이 빠져있는 지금.

시안은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둘러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들려와야 할 말이 들려오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자신을 소개하는 카리스의 말이 들려오지 않았다.

시안은 카리스를 찾아 주위를 둘러보았고 금방 카리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

경악하며 입을 쩌억, 벌리고 있는 카리스를 말이다.

카리스는 시안이 카르제의 힘을 이어받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수인족 사건의 직접적인 당사자였다.

당연하게도 방금 전, 시안의 설명에 카리스가 경악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카리스가 경악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루벤 때문이었다.

철통같은 방벽. 잘 정돈된 도로.

그리고 감히 평가할 수 없는 수준 높은 건물들까지.

“이, 이 어찌···.”

루벤은 가히 지상 낙원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었다.

자신들이 살아온 수인족들의 왕국.

수호자, 카르제의 힘을 빌어 건설한 왕국이건만 지금 루벤과는 도무지 비교할 것이 못 되었다.

아니, 이 세상에 루벤과 비교할 영지가 있을까?

그렇기에 비단 카리스만이 아니었다.

“세상에나···.”

“여, 여기가 우리들의 새로운 삶의 터전?”

“정말? 정말 우리 여기서 산다고?”

루벤의 풍경을 마주한 수 천의 수인족들.

종족을 가리지 않고 수인족 모두가 루벤의 풍경에 경악하고 있었다.

그런 수인족들의 반응에 시안은 살짝 웃음을 흘렸다.

뒤이어 살짝, 기세를 끌어 카리스의 기감을 자극했다.

시안의 기세를 느낀 카리스가 퍼뜩, 놀라며 시안을 바라봤다.

시안은 눈짓을 해보였고 카리스는 이내 크흠.

“수인족의 대족장, 카리스라고 합니다.”

작은 헛기침과 함께 카리스가 루벤의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사람들이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며 마주 인사를 건넸다.

정확히는 신기함, 이라는 감정이 조금 강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인족들은 수 백년 동안 모습을 감추었다.

기록으로만 존재했다고 알려진 종족.

심지어 카리스는 수인족들 중에서도 희귀한 용인족.

당연한 반응이라 할 수 있었다.

-너··· 혹시 노에미의 후손이니?

오직 레아만이 반가움이라는 감정을 드러낼 뿐이었다.

레아는 호기심을 드러내며 카리스에게 물었다.

루벤의 사람들 또한 궁금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어쨌거나 이제는 루벤의 영지민들이 된 카리스와 수인족들.

루벤의 사람들과 친해질 필요는 있었다.

하지만 시안은 고개를 흔들며 말을 꺼냈다.

“서로 궁금한 것이 많을텐데, 지금은 간단한 소개로만 만족하고. 자세한 소개는 나중에 하자.”

그보다 먼저 해결해야할 것이 있었으니까.

다름 아닌 현재 루벤의 상태.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루벤은 평소와 달랐다.

전체적으로 휑한 분위기하며, 건물들도 삭아있는 듯한 느낌이 물씬 들었다.

특히나 한스의 얼굴도 심상치 않았다.

“한스, 루벤에 무슨 일이 있었어?”

“그것이···.”

시안의 말에 한스가 천천히 설명을 이어갔다.

꽤나 긴 설명이었지만 요약하자면 간단했다.

루벤의 대부분 시설들이 작동을 정지했다는 것.

그로써 루벤의 모든 체제가 마비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현재로서 경비탑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아.”

이어진 한스의 말에 시안은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다.

시안이 루벤에 왔음에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이 말이다.

평소라면 경비탑에서 진즉에 반응이 왔어야했다.

숱한 현질로 업그레이드 된 루벤의 경비탑 감시.

그건 시안조차 뚫기가 힘들었다.

무엇보다 드래곤의 존재감을 드러낸 상황에서는 말할 건덕지도 없었다.

그런데 전혀 반응이 없는게 이상하다 싶었다.

심지어 수 천명의 수인족들을 끌고 왔는데도 왜 아무도 안 보인다 싶었다.

‘유지 관리비가 없어서 기능을 정지한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무엇보다 현재 루벤은 엘란두르와의 전쟁 중인 상황.

한 마디로 시설들의 기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아마 그래서 더 과부하가 걸렸던 것 같았다.

이래서 전쟁은 단순히 전투력만으로 행해지는 놀이가 아니라 하는 것이었다.

뭐, 어쨌든.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역시나 골드.

즉, 현질을 해야할 필요성이 있었다.

시안은 두리번두리번,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긴 적발의 미녀, 아멜리아에게 시선을 멈추었다.

루벤의 자금을 책임지고 있는 루벤 브라헤 상단주, 아멜리아.

“아멜리아?”

“네? 아, 네. 영주님.”

“이번에 카르제님의 거처에서 가져온 보물이 좀 있거든. 지금 골드가 상당히 부족해서 이거 좀 당장 팔아줄 수 있을까?”

“그거야 어렵진 않은데···.”

아멜리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보물들을 팔아달라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골드가 부족하다는 시안의 말.

그 말이 약간 의뭉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 말은 즉.

지난 번에 아멜리아가 넘긴 브라헤 상단의 자금, 5억 골드가 다 사라졌다는 뜻이었으니까.

물론 몇 달이 지난 일이긴 했다.

그런데 5억 골드가 몇 달 사이에 사라질 돈이었나?

아멜리아는 심히 의뭉스러웠지만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다.

저 말을 한 두번 들어보는 것도 아니고.

더 깊게 파고들어봤자 아멜리아의 정신만 파괴될 뿐이었으니까.

“어느 정도 가져오셨는데요?”

아멜리아가 묻자 시안은 뒤로 몸을 돌려 소리쳤다.

“루카스! 보물 옮겨야하니까 병사들 좀 오라고 해줘!”

“하지만 영주님. 병사들은 지금 뒤쪽에서 카르제님을 옮겨오느라 여력이 안됩니다.”

“아, 맞다. 그랬었지.”

이어진 루카스의 답에 시안은 깜빡했다는 듯 소리쳤다.

그리고 사람들은 저게 무슨 개소린가 싶었다.

카르제님을 옮겨오다니···?

하지만 이어진 시안의 말에 그 의문을 차마 이어갈 수 없었다.

“켄드릭. 가서 루벤에 있는 병사들을 전부 데리고 나와줘. 음··· 그냥 흑사자 기사단들도 전부 나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주군.

갑작스러운 시안의 명이었지만 켄드릭은 군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렇게 켄드릭이 루벤 안쪽으로 들어간 직후.

“자, 모두 멀찍이 떨어져.”

시안은 사람들을 뒤로 크게 물렸다.

사람들은 이 역시 의문스러웠지만 시안의 말에 따랐다.

그렇게 연무장 정도의 공간이 나왔을 때.

시안은 허리에 매달고 있는 주머니를 풀어헤쳤다.

“끄으으윽···!”

그리고 온갖 인상을 써보이며 주머니를 뒤집었다.

고작 저 주머니를 뒤집는데 왜 저러나··· 싶은 생각도 잠시.

와르르르르르르.

뒤집어진 주머니에서 무언가 폭포처럼 쏟아져나왔다.

루비, 사파이어, 다이아 등등. 이런 보석들은 기본이었다.

여기에 각종 범상치 않은 무구들로부터 시작해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까지.

세상의 모든 보물들이 주머니에서 쏟아져나왔다!

“······!!”

“······!!”

사람들의 두 눈이 일시에 찢어져라 부릅, 떠졌다.

루벤의 사람들은 물론 뒤쪽의 수인족들까지.

심지어 이미 저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

그러니까 아리아까지 눈을 찢어지게 떠보였다.

진짜 어마어마어마어마하게 많았으니까.

그리고 정말 끝도 없이 쏟아져나왔으니까!!

그 중에서도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은 단연 아멜리아였다.

“이, 이게 무슨···.”

알고 있었으니까. 지금 쏟아지는 보물들의 가치는 아멜리아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아멜리아는 뭔가 싶었다.

진짜 이게 뭔가 싶었다.

아니, 뭔가 싶음을 넘어 두 눈으로 보이는 것이 현실이 맞나 싶었다!

농담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과장 또한 아니었다.

제국을 주름 잡던 대상단, 브라헤 상단 때부터.

돈을 증발하듯이 써대는 시안을 만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마, 말도 안돼···.”

아멜리아는 이렇게 쌓여있는 보물들을 본 적이 없었다!

와르르르르르.

경악하는 그 순간에도 보물들은 쉼없이 쏟아져나왔다.

산더미를 넘어 또 하나의 산더미.

그렇게 수 십개의 산더미가 루벤 앞을 모두 가득 채워버릴 때쯤.

“후우···!”

시안의 달뜬 숨과 함께 주머니에서 쏟아지던 보물들이 멈추었다.

“모두 얼마 정도 나올 것 같아?”

이어진 시안의 물음에 아멜리아는 참···.

이걸 뭐라 대답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곧 얼떨떨한 표정으로 보물들의 값어치를 계산했다.

너무도 많았기에 정확하진 않았지만···.

“얼추 10억 골드는··· 너끈하겠는 이게 맞아요?”

아멜리아는 그만 말을 내뱉어버렸다.

아니, 진짜 이게 뭔 개소리란 말인가.

말을 내뱉는데도 아멜리아는 스스로에게 의심이 들었다.

10억이라니. 10억이라니!

-주군.

그 순간 안쪽에서 켄드릭의 말이 들려왔다.

-병사들과 단원들을 데리고 왔···?

그리고 벙찌는 켄드릭의 목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엔 켄드릭의 푸른 안광이 붕, 떠올라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보물의 바다.

투구로 가려진 데스 나이트의 얼굴이었건만.

켄드릭은 이게 뭐지? 싶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 뭐야 이게···.”

“장난감 아니야···?”

그 뒤를 따라온 수많은 병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수 천의 병사들이 모두 멍··· 펼쳐진 보물의 바다를 바라봤다.

그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켄드릭. 이거 병사들과 함께 전부 상업 지구로 옮겨줘.”

시안은 담담하게 명을 내릴 뿐이었다.

시안의 명에 켄드릭과 병사들이 차곡차곡, 보물들을 옮겼다.

옮기면서도 이게 맞나···? 싶은 표정들이었지만 그래도 일을 멈추지 않았다.

“인벤토리 들고 루벤에 들어가면 루벤 지반이 다 무너져서 말이야. 번거롭지만 고생들 해줘!”

시안은 병사들을 독려하며 소리쳤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우여곡절 끝에 쌓인 보물들을 모두 옮길 수 있었다.

“그, 그럼··· 전 바로 보물들을 처리해볼게요.”

아멜리아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걸음을 옮기면서도 진짜 이게 맞는 건가 싶었다.

그러니까 방금 본 광경이 현실이 맞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시안이니까, 라는 생각이 떠오르는 정신을 붙잡았다.

돈 귀신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시안이니까.

돈이라면 환장을 하는 시안이니까.

돈을 증발하듯이 쓰면서도 돈을 연금술하듯이 모아오는 시안이었으니까.

아멜리아는 끝끝내 정신을 붙잡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와르르르르르르르.

등 뒤에서 또 다시 이 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멜리아의 걸음이 우뚝, 멈춰섰다.

입이 저절로 쩌억, 벌어지며 설마설마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멜리아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와르르르르르르르.

또 다시 보물들이 쏟아지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아멜리아의 사고가 일시에 정지해버렸다.

지금 쏟아지는 이 보물들.

그리고 후우···! 하며 이건 얼마야? 라고 되묻는 시안의 물음.

아멜리아는 그 물음에 또 다시 ‘10억은 너끈하겠는데요?’ 라고 말을 해야만 했으니까!!

“아, 아니··· 아니··· 아니 이게···.”

아멜리아는 석상처럼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그리고 어머나 세상에.

“아직도 무게가 여전하네.”

아멜리아의 귓가로 정말이지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멜리아의 고개가 뚝뚝, 움직였다.

끈 떨어진 인형처럼 시안을 향해 움직였다.

설마 그게 끝이 아니었어···?

에이, 설마 그냥 하는 소리겠─.

와르르르르르르르.

또 다시 쏟아지는 보물들.

아멜리아의 정신이 잠깐, 암전되었다.

하지만 금방 정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시안은 5억 골드도 몇 달만에 소모해버리는 미친 존재.

진짜 말도 안되는 광경이었으나 단련되었으니까.

아멜리아는 시안에게 단단히 단련되었다.

이 정도로는 아멜리아의 정신을 끊어버릴 수는 없었다.

와르르르르르르.

그렇게 아멜리아는 3번의 쏟아짐에도 정신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아직도 무겁네.”

와르르르르르르르.

4번의 쏟아짐에 정신이 한계치를 맞이했다.

의식이 저만치 멀어지며 시야가 깜빡거렸다.

그리고 5번째 와르르르르.

그렇게 6번, 7번의 와르르르르.

추가로 8번의 와르르르르가 들려왔을 때.

“아, 아아···? 아아?”

아멜리아는 끝내 고장이 나버렸다.

머리를 좌우로 연신 갸웃거리며 눈앞의 현상을 부정했다.

시안이 한 번 쏟아내는 보물들마다 대략 10억 정도의 값어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쏟아낸 보물들.

도합 8번째니까 약 80억이 쏟아진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머나 세상에 참말로.

와르르르르르르르.

지금 9번째의 와르르르르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제는 시간의 흐름조차 인지가 되질 않는다.

정신만 끊어지지 않았다 뿐.

고장난 아멜리아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리고 10번째의 와르르르르가 들려오는 순간.

그러니까, 예상치 금액이 100억 골드를 돌파하는 그 순간.

아.

아멜리아는 작은 단말마를 내뱉어버렸다.

진짜 뭐하는··· 사람인 것일까.

뭐하는 사람이길래. 아니, 정녕 사람이 맞기는 한 것일까.

이젠··· 나도 모르겠다.

털썩.

고장난 아멜리아의 정신이 끝내 파괴되어버렸다.

바닥으로 풀썩, 쓰러져 버린 아멜리아.

그런 아멜리아의 심정을 십분, 백분 공감하고 이해한다는 듯.

띠링!

《꾸에에에에에에에에엑!!!》

깨꼬닥.

모바일 영주의 정신 또한 같이 끊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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