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 - 기적의 현질
끝도 없이 이어진 마차들의 행렬.
그리고 마차 한 대당 대략 1,000만 골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
“아아···!!”
시안은 전신을 내리쬐는 듯한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정신이 아찔해지며, 신의 내림을 받듯 몸이 파르르,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띠링!
《사,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오오오···!》
애걸하는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이 떠올랐다.
하지만 시안은 알림창을 무시했다.
정확히는 신경쓸 수 없다는 것이 정확했다.
전신을 들어차는 희열.
몸이 파르르, 떨리다 못해 발작하는 환희.
“아아···!!”
도무지 이 감정을 어찌할 수가 없었으니까!
시안은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몸을 파들파들, 떨어대기 바빴다.
그리고 그런 시안의 모습을 지켜보던 아멜리아.
“······”
정말이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뭐,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한 두번 보아온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제는 슬슬 익숙해질 시기이기도 했다.
그런데 웬걸.
“으아아···!!”
저건 도무지 익숙해질래야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아니, 진짜 말이 나와서 그러는데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심히 궁금했다.
저 신들린 듯한 몸부림을 보라.
헤르츠 단위로 떨어대는 몸부림은 감히 인간의 신체에서 나올 수 있는 떨림이 아니었다.
전기에 감전이 된다 한들 저럴 수 있을까.
글쎄··· 신의 계시를 받는다 하더라도 저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
그런데도 눈앞에 보이는 것은 현실이니 원···.
“······”
아멜리아는 진짜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 간의 경험상 시안의 저 상태를 치료할 약이 없었다.
그냥 잠잠해질 때까지 저대로 두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이번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다.
아멜리아가 보물을 팔아 얻어온 골드.
그러니까 저 수 백대의 마차에 쌓여있는 골드.
“영주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그 골드에 중대한 문제가 있었으니까.
#
샤를롯 제국의 수도, 다르칸.
그 다르칸에 위치한 제국의 심장, 황궁.
그리고 황궁 중에서도 가장 심장부라 할 수 있는 곳, 황제의 알현실.
황제, 발루아가는 가만히 시선을 들어 콘라드를 바라봤다.
황태자, 콘라드는 그런 발루아가의 시선을 슬쩍, 회피했다.
딱히 잘못한 것은 없었다.
정확히는 콘라드가 잘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콘라드는 발루아가의 눈을 차마 마주칠 수가 없었다.
그런 콘라드의 생각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발루아가는 그저 말없이 콘라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검지 손가락으로 황좌의 팔걸이를 탁탁, 두들기며 방금 전 콘라드가 보고한 내용을 되뇌였다.
“그러니까··· 제국에 유통되는 골드의 화폐가 부족하다?”
제국에 유통되는 골드의 화폐가 부족하다는 내용.
이게 뭔 개소린가 싶었지만 말 그대로였다.
백성들이 물건을 사고 팔고 할 때 사용하는 골드.
그 골드의 화폐가 지금 부족한 실정이란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개소리라 치부할 수 있었다.
제국 전역에 풀려있는 골드의 개수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동전··· 아니, 그러니까 금전의 개수는 차마 셀 수가 없었다.
물론 큰 거래는 주로 전표를 사용한다.
그런 거래까지 모두 골드를 사용한다면 부족하겠다만 그럴 리는 없었다.
어쨌거나 충분히 감당할 수 없는 개수임은 변함없었다.
무엇보다 제국 전역에 퍼져있는 골드가 적을리가 만무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게 부족하단다.
상점에서 물건을 살 때, 골드가 없어서 못 사고 있단다.
돈이 없다라는 개념과는 궤를 달리했다.
말 그대로 골드라는 것이 없어서 물건을 살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재산은 부유한데 화폐가 없어서, 상점 주인에게 줄 골드 자체가 없어서 물건을 못 사는 것이었으니까.
제국에 풀려있는 골드라는 것이 모두 증발해버렸으니까.
실로 말도 안되는 현상이자 개소리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현상은 지금 제국에 들이닥쳐있었다.
또한 그 범인 또한 명명백백했다.
“루벤 가(家)에서 골드를 전부 휩쓸어갔다?”
루벤 가(家). 현재 엘란두르와 전쟁 중인 가문.
그러니까 시안이 그 골드를 전부 쓸어갔단다.
제국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골드를 말이다.
진짜 뭔 개소린가 싶었지만 이게 사실이란다.
그로써 제국 전체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불고 있었다.
“현재 제국의 북부와 남부 지역은 골드가 없어서 물물교환으로 거래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척박한 북부 지역. 최대 곡창지 남부 지역.
그 두 지역은 같은 원인, 각기 다른 이유로 물물교환을 하고 있었다.
“······”
발루아가는 정말이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염병, 말이 새로운 패러다임이지.
사실상 원시 경제 체제로 회귀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화폐 경제 체제에서 물물 교환의 방식으로 말이다.
그것도 골드가 화폐가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그걸 가만히 두고 봤다는 말이냐?”
“급하게 황실 재정총관이 그 행각을 멈추라 했지만··· 이미 사태는 벌어지고 난 이후라 어찌···.”
“하아···.”
발루아가는 저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건 벌어진 일.
지금은 사태를 수습해야할 때였다.
“주전관에 말해 지금 당장 부족한 골드를 주조하라 명하거라.”
주전관(鑄錢官))이란, 말 그대로 화폐를 주조하는 기관이었다.
그리고 화폐를 주조하는 것은 이리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화폐 주조는 제국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
제국의 전반적인 통화량과 물가 등 수없이 많은 것들을 고려해야했다.
각종 복잡하고 머리가 아픈 요소들을, 제국 최고의 재정관들이, 머리가 빠개지는 계산을 거듭한 후에야, 결정하는 사안이었다.
아무리 황제라 할지라도 이리 간단한 명령으로 결정할 수는 없었다.
제국 경제를 파탄낼 작정이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발루아가는 개의치 않았다.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염병.
“그것이··· 골드를 주조할 금이 부족합니다.”
이젠 그것도 안된단다.
골드를 주조하려면 당연하게도 금(金)이 있어야했다.
그 재료인 금이 없으면 당연히 만들 수가 없었다.
“이전에도 제국에 유통되던 골드가 부족하던 현상이 있었습니다. 그 유통량을 맞추느라 모아둔 금을 소비한 터라···.”
이번 일, 그러니까 제국의 골드가 증발해버린 화폐의 부족 현상이 전에도 있어왔단다.
그 때문에 한 번, 주조관에서 골드를 대량으로 찍어낸 적이 있었다.
덕분에 화폐 유통량을 어찌 맞출 수는 있었다.
하지만 쌓아놓았던 금을 모두 소비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때의 범인 또한 명명백백했다.
“그 또한 루벤 가(家)에서···.”
그 염병할 놈의 시안.
제국의 골드를 모조리 증발시켜버련단다.
시안에게 들어간 골드가 순환되지 않고 모조리 증발되었단다.
그리고 이번에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뻥! 하고 터진 것.
아니, 이 놈의 새끼는 전쟁 중이라면서 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고 다닌단 말인가.
“금광석에서 급히 캐고 있기는 하지만··· 필요한 수량을 제대로 맞출 수가 없습니다.”
어쨌거나 화폐를 찍어내기엔 그 재료인 금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골드 화폐를 금이 아닌 철로 만들지 않는 이상···.”
콘라드는 중얼거렸지만 당연히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골드 화폐를 철로 만들다니 그 무슨.
그랬다간 화폐 가치가 곤두박질치며 물가가 박살이 날 터였다.
한 마디로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상단들은 어음과 전표에 따른 골드를 주지 못해 줄줄이 파산···.”
그로써 현재 제국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골드가 워낙에 없다보니, 골드 화폐 자체가 하나의 귀중품으로써 작용···”
원시 경제 체제로의 회귀는 애교 수준이었다.
“또한 물물교환으로만 거래가 이루어지다보니 물자 자체가 순환이 되질 않아···.”
줄줄이 이어지는 콘라드의 보고.
“이대로 가다간··· 제국의 경제가 파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야말로 경제 파탄의 국가 전복 상황이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이는 직접적으로 검을 들지 않았다 뿐.
가히 국가를 전복시키려는 반역의 행각과 다름 없으니.
콰앙!
“내 이 썅놈의 것을 그냥!!!”
시안이 한낱 놈팽이에서 썅놈의 것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
“······ 해서 모든 보물을 골드로 바꿔오진 못했어요.”
아멜리아의 말에 시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길게 이어진 설명이었지만 골자는 간단했다.
“팔려고 해도 골드가 없었단 말이지?”
“네.”
아멜리아는 정확히 짚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경제란 자고로 순환이 되어야했다.
A가 B에게 100골드를 주고 물건을 사고.
B가 C에게 100골드를 주고 다른 물건을 사고.
C가 다시 A에게 100골드를 주고 물건을 사면.
이 과정에서 움직이는 것은 단 100골드.
100골드만 있어도 경제는 계속 순환이 된다.
이것이 화폐 경제의 기본적인 이치.
헌데 시안에게 들어온 골드는 순환이 되질 않았다.
모바일 영주에게 그대로 빨려 증발해버리니 말이다.
그렇게 야금야금 갉아먹다 이번에 확, 터져버린 것.
결국 야단이 나버린 것이었다.
“황실 재정총관께서 제게 직접 찾아오셨을 정도니까요.”
그것도 꽤나 다급하게.
그리고 절박하게 부탁했다고 한다.
제발, 제발 좀 그만해달라고 말이다.
“해서 제가 바꿔온 골드는 15억 정도···.”
아멜리아는 말을 차마 다 내뱉지 못했다.
15억 정도라니.
15억이라는 금액에 정도라니. 그 무슨 말 같지도 아닌 소리란 말인가.
하지만 본디 벌어와야했어야할 골드를 생각하면 15억 정도가 맞았다.
“뭐, 어쩔 수 없네.”
시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골드가 없다는 데 만들어오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남은 85억 가량의 가치를 지닌 보물이 어디 간 것도 아니었다.
다시 시중에 골드가 풀리면, 바꿔올 수 있었다.
그리고 15억도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니었다.
아니, 작은 금액은 무슨.
그야말로 미친 금액이었다!
‘유지 관리비는 당연히 문제 없고···.’
루벤을 다시 정상 가동시키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여기에 새로이 개방된 최상급 무공의 가격, 1천만 골드.
또한 아르나이즈 특전, <노에미의 자연> 50만 골드.
거기에 기존 루벤의 시설들을 모두 업그레이드 하는 것까지.
‘합쳐서 3억 골드면 되려나?’
정말이지 전혀 문제가 없었다.
‘여기에 엘로디의 지식과 모르크루의 기술 연구에 들어갈 비용도 문제 없고··· 드래곤 장비 제작도 문제 없고. 아, 맞다. 수인족들 주거 공간이랑 각종 생활 시설들을 지어줘야지.’
세미르가 현재 수정 작업을 하고 있는 루벤의 청사진.
그 작업이 끝나면 꽤나 많은 현질을 해야했다.
‘얼마쯤 나오려나···.’
에이, 모르겠다.
끽해야 5억 골드 가량 되겠지.
시안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물론 5억 골드 앞에 ‘끽’이라는 단어가 붙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15억은 그런 돈이었다.
시안이 지금까지 루벤에 질러온 모든 골드를 합쳐도 닿을 수 없는 금액이었으니까.
또한 아직 바꿔먹지 못한 카르제의 보물들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끽’이었다.
그리고.
《아, 안대···! 안대!!》
《저것도 너무 커요오오!!!》
모바일 영주의 안위가 심히 걱정되는 금액이기도 했다.
#
루벤에 위치한 영주성 Lv.4
그 안에 위치한 아멜리아의 방.
“후아···!”
아멜리아는 침대 위에 풀썩, 드러누웠다.
긴 적발이 침대 위로 펼쳐지며, 이번 상행의 피로가 쏟아지듯 몰려왔다.
그리고 그 피로를 감싸주는 포근한 침대.
루벤의 드워프들이 직접 만든 것으로 그야말로 환상의 침대였다.
마치 구름 위에 누워있다면 기분이 꼭 이러할까.
“이 침대도 없어서 못 팔고 있긴 하지.”
아멜리아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자니 슬금슬금, 졸음이 몰려왔다.
밀려오는 졸음 사이로 이번 상행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제국 경제를 파탄내버린 상행.
우여곡절 끝에 벌어온 15억.
사실 평범한 시각으로 본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아멜리아가 벌어온 15억 골드.
그 골드조차 벌어오기 힘든 금액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멜리아가 판 것들은 대부분이 보석들이었으니까.
다이아, 사파이어, 루비, 금 등등.
시안이 가져온 카르제의 보물에는 이런 보석들이 대다수였다.
일명 사치재.
사치재로 제국의 골드를 휩쓸어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안 사면 되니까.
사치재, 그거 하나 없다고 죽는 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말했다시피 어디까지나 평범한 시각이었다.
사실 보석들은 사치재라 볼 수 없었다.
사치재로만 잘 알려져있다뿐.
보석들은 우리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재였다.
다이아는 많이 알려져있다시피 압도적인 경도를 자랑하는 금속이었다.
그런 특성으로 인해 각종 건축 자재들에 물론,
특별한 도구들에도 미량이나마 들어간다.
또한 열 전도율이 높지만 반면에 마력 전도율이 극도로 낮았다.
이에 마법의 방어진을 구축한다거나.
아니면 특정 회로에 마력이 흘러가면 안되는 경우.
군사적인 수요와 공업적인 수요가 상당히 많았다.
비단 다이아뿐만이 아니라 다른 보석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사파이어는 단단함의 경도가 다이아 다음으로 높았다.
그런 특성으로 고급 절삭 용구는 물론.
연마재의 재료로 수없이 사용되는 것이 바로 사파이어였다.
사파이어는 산업적인 수요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루비의 경우는 각종 기계들의 부품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금은 인체 친화적인 금속으로 활용도가 무궁무진했다.
이처럼 보석들은 사치재로서의 성격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역시나 평범한 시각으로는 알 수 없는 사실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본디 상인이라 함은, 팔려는 물건에 대해 빠삭해야하는 법.
특히, 대상인을 꿈꾼다면 거진 모르는 것이 없어야 했다.
“틈틈이 공부를 해뒀기에 망정이지.”
아멜리아는 괜시리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지인짜. 지이이인짜 많은 공부를 했으니까.
브라헤 가문에 있을 적에도 이렇게 공부를 한 적이 없었다.
지금도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공부를 하고 있을까.
무엇보다 모르는 것이 생기면 물어볼 사람들이 많은 것도 한몫했다.
대장장이 세미르, 연구원 제리, 마법사 아스란디즈와 세라 등.
루벤에는 각 분야에 대륙 최고라 불리는 인재들이 있었으니까.
아멜리아는 그들에게 서슴없이 가르침을 청했다.
싸움에는 그닥 힘이 되어주지 못했으니까.
평범한 여인의 몸으로서 전투력에 도움을 주지는 못했으니까.
그러나 아멜리아 나름의 역할이 있는 법.
그렇게 아멜리아는 시안에게 도움이 되고자.
그리고 루벤에 도움이 되고자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었다.
그렇게 노력에 노력을 거듭한 지금.
아멜리아는 루벤 브라헤 상단주가 되어있었다.
제국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초 대상인의 반열에 올라있었다.
“물론 영주님 덕분이긴 하지만···.”
그리고 매번 드는 생각이다만.
아멜리아는 과연 내가 대상인이 맞는 건가 의심이 들었다.
그냥··· 옆에서 시안을 지켜볼 때면 그런 자괴감이 문득 들곤 했었다.
뭐, 그래도.
시안 덕분에 아멜리아 또한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었다.
특히나 아멜리아는 이제 담력 하나만큼은 대륙 제일이라 자부할 수 있었다.
이제 웬만한 자금으로는 아멜리아를 놀라게 할 수 없었다.
막말로 1,000만 골드 따위는 돈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억 단위 정도 되어야 살짝, 긴장을 해보일 정도였다.
그러한 담력은 대상인의 그릇이라 볼 수 있는 재능.
그런 부분에 있어서 아멜리아는 대륙 최고의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도 이번에 100억은 좀···.”
물론 100억은 손이 벌벌, 떨리고 정신이 아찔해지는 금액이었다.
비단 아멜리아 뿐만이 아니었다.
제국 전체가 아찔해지지 않았는가.
“나중엔 얼마를 가져오실까.”
설마 1,000억 골드도 가져오는 건 아니겠지.
설마하니 1조 골드를?
시안이라면 혹시···?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졸음과 함께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그때.
쿠르르르릉···!!
갑자기 아멜리아의 방이 크게 진동해왔다.
정확히는 영주성 전체가 크게 떨려왔다.
평범한 영지였다면 지진이야!!
혹은 습격이다!! 라며 호들갑 떨었을 상황이었다.
“또 시작인가 보네.”
하지만 아멜리아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저 밀려오던 졸음을 살짝, 몰아낼 수 있을 뿐이었다.
종종 있던 일이었으니까.
많은 돈을 벌어올 때면 거진 매번 있는 일이었으니까.
콰콰콰콰콰콰콰쾅!!!
쿠르르르릉!!
루벤이 뒤집어지는 이 소리 말이다.
창문 밖으로 슬쩍, 돌린 시선.
아니나 다를까 루벤이 아주 박살이 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쿠르르르릉···!
대지진이라도 일어난 것 마냥 영주성 전체가 다시 한 번 뒤흔들려왔다.
여전히 놀랍고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여전히 적응할래야 적응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영주님은 대체 무슨 일을 하시는 건지···.”
그래도 이제는 막 놀라거나 경악할 정도는 아니었다.
에에에엑?! 하며 바보같은 표정을 지을 때는 지나갔다.
비단 아멜리아 뿐만 아니라 루벤의 영지민들 대다수가 그러했다.
물론.
“이, 이게 무슨···!”
“에에에에엑?!”
“지진이다!! 지진이야!!”
“아니, 습격인가!!!”
이번에 처음 루벤에 온 수인족들은 경우가 좀 달랐지만.
창문 밖으로 보이는 수인족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호들갑의 호들갑이었다.
그들은 박살이 나는 루벤의 풍경 사이를 혼비백산하며 휘젓고 다니고 있었다.
나도 처음엔 저거보다 심했었지.
아멜리아는 옛날 생각에 미소를 지어보였다.
다시 졸음이 슬슬, 밀려오며 감기는 두 눈을 견딜 수가 없었다.
“한숨 자고 나면 끝나있으려나···.”
아멜리아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콰콰콰콰콰콰콰쾅!!
쿠콰콰콰콰콰!!
루벤이 무너지는 소리는 천지를 울려왔으나 아멜리아는 눈을 뜨지 않았다.
앞선 상행의 피로가 저 소리를 자장가로 만들어주었으니까.
그렇게 의식이 조금씩, 조금씩 멀어져가던 그때.
똑똑.
-아멜리아. 안에 있어?
방문 밖에서 시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멜리아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졸음이 확, 달아나며 의식이 빠르게 복귀했다.
갑자기 영주님이 왜···?
아멜리아는 황급히 몸을 단장해보였다.
“네. 안에 있어요. 들어오세요.”
그러자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시안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아멜리아가 무슨 일이시죠? 라고 물으려던 찰나.
“아멜리아. 나랑 같이 황궁에 갈 준비 좀 하자.”
시안의 말이 한박자 빠르게 들려왔다.
“네? 황궁에요? 아니, 그보다 이렇게 갑자기요?”
아멜리아는 뭐가 뭔지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걸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가능한 일이던가.
다행히 시안도 모르지 않은 듯 곧장 설명을 이어왔다.
“아무래도 골드를 좀 찍어내야할 것 같아서.”
물론 그 또한 이해할 수 없는 설명이었지만.
“골드를 찍어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말 그대로 골드를 찍어내야 할 것 같다는 말이야. 지금 제국에 골드 화폐가 부족하다며. 그 때문에 보물을 전부 팔 수가 없었던 거고.”
“그건 그렇긴 한데···.”
“그러니까 나랑 황궁에 좀 같이 가자.”
이게 대체 무슨 논리 연산 사고의 흐름인 것일까.
아멜리아는 스스로가 그렇게 나쁜 머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시안의 말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카르제님의 보물에 황금이 상당히 많잖아.”
그 순간 들려온 시안의 말.
“아.”
아멜리아는 그때서야 시안의 말을 얼추 이해할 수 있었다.
현재 제국에는 골드 화폐가 부족했다.
이를 해결할 방법은 하나, 골드 화폐를 주조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골드 화폐의 재료는 당연히 금(金)이었다.
한 마디로 지금 시안의 말은 황금의 보물들을 죄다 녹여서 골드로 주조하겠다는 의미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골드는 아무나 그리고 함부로 찍어낼 수 없었다.
철저한 통제 아래, 주전관에서 황가의 승인이 있어야만 찍어낼 수 있었다.
쉽게 말해 그냥 황가에서만 주조할 수 있다고 보면 되었다.
“황태자 전하께 가서 말씀을 드려야할 것 같아.”
그래서 시안이 다짜고짜 황궁에 가자고 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문제는 있었다.
아무리 황태자가 도와준다고 한들. 이리 간단한 이유로 화폐를 주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아멜리아조차 엄두가 나지 않는 복잡한 계산의 과정이 있어야 했다.
아니, 그런데 잠깐.
그 문제는 잠시 한 쪽으로 치워놓고보자.
“지금 딱히 골드가 필요하지는 않으시잖아요.”
굳이 지금 그 일을 행할 필요가 뭐가 있단 말인가.
그도 그럴 것이 아멜리아가 방금 전에 15억 골드을 벌어왔다.
그 골드를 쓰기 전까지 천천히 시간을 두고 행해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아 그거?”
시안은 아멜리아의 의문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리고 절대로, 결단코.
시안은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되는 말을 내뱉고야 말았다.
“다 썼어.”
“·················· 네?”
아멜리아의 사고가 한박자 늦게 흘러갔다.
생각이 이어지지 않고, 드문드문 끊어지기 시작했다.
결코 봐서는 세상의 진실을 마주한 것만 같은 충격.
마치 ‘차가운 온수’와 같은 모순적인 현상을 본 것만 같은 괴리감.
이에 아멜리아가 내린 결론은.
‘내가 1억 5천만 골드를 벌어왔었나?’
인지 부조화.
아멜리아는 스스로의 기억을 조작하기에 이르렀다.
아닌데. 분명 15억 골드였는데.
“저 15억 골드를 가져오지 않았나요···?”
아닌가? 내가 1억 5천만 골드를 착각한 건가?
아니, 1억 5천만이어도 말이 안 되는데?
아멜리아는 인지 부조화를 일으키며 시안에게 물었다.
그리고 이어진 시안의 말.
“그··· 생각보다 현질 비용이 비싸더라고.”
아멜리아의 그때서야 몸이 덜컥, 굳어버렸다.
조작된 기억은 끝내 마주해서는 안되는 진실을 마주해버렸다.
아주··· 잠깐이었다.
조금 전, 방금 전 혹은 아까 전.
그런 개념을 들이밀어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이었다.
아멜리아가 시안에게 저 이만큼 벌어왔어요! 이렇게 자랑을 한 시간.
또 루벤 앞에서 영주성까지 피곤에 찌들어 터덜터덜, 걸어온 시간.
그리하여 침대에 누워 졸음과 함께 이런저런 상상을 한 시간.
고작 그 정도의 시간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런데···.
“다 써버렸지 뭐야.”
다 썼단다.
15억 골드를. 1억 5천만 골드도 아니고 자그마치 15억 골드를.
제국 경제를 파탄내버린 그 15억 골드를!
다 써버렸··· 단다.
솔직히 아멜리아는 조금의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대상인으로서의 그릇.
그를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담력을 충분히 키웠다 생각했었다.
이제 더 이상 돈으로 손을 벌벌, 떨거나 정신이 아찔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 자부하고 있었다.
돈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데···.
“아···? 아아···?”
난 아직도 한참 멀었나보다.
털썩.
아멜리아의 몸이 끈 떨어진 인형처럼 바닥으로 힘없이 허물어졌다.
그리고 그런 아멜리아의 심정을 십분, 백분 공감하고 또 이해한다는 듯.
띠링!
《저도··· 꾸에엑··· 아직 한참 멀었나봐요오···.》
《이 미친 놈의··· 커다란 것을 상대하기에는···.》
깨꼬닥.
[사상 초유의 인과 폭주 감지.]
[긴급 점검을 진행합니다. 점검 동안에는 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서버와의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모바일 영주를 종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