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7화 - 서막
쐐액! 쐐애액!
공간을 가르는 흑뢰(黑雷)의 검.
멸살의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찢어지는 듯한 파공음이 터져나왔다.
지난 3주 동안 시안은 거진 연무장에 틀어박혀있다시피 했다.
다름 아닌 마혼수라검의 최상급 과정.
쾌(快), 환(幻), 둔(鈍), 강(强), 중(重), 유(流), 패(覇).
검(劍)의 기본적인 묘리이자 모든 검술의 근원.
시안은 개인 연무장에서 그 수련을 지속했다.
그리고.
“후우··· 어렵네.”
상당히 어려웠다.
아니, 어렵다 못해 난해하다는 표현이 적합했다.
드래곤의 힘을 이어받아 오성이 개화한 시안.
이제 시안은 천재라는 범주에 속한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애초에 드래곤이 둔재라는 것도 말이 안되지 않은가.
여기에 성장 버프까지 받고 있으니 시안의 재능은 가히 말로 언급할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할 수 없으니 깨닫지 못하고.
깨달음이 없으니 단순히 따라하는 것도 벅찼다.
매일 같이 수련을 거듭하고 있었지만, 일일과제조차 수행하지 못하는 날들도 있었다.
그래도 뭐.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최상급 진행률 2.3%]
차츰차츰 진행률을 올려가고 있었다.
톡, 하고 바닥으로 떨어져내리는 땀방울.
“다시 해볼까.”
시안은 다시 멸살의 검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안은 문득 느껴지는 감각에 멸살의 검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
“열심히네.”
연무장의 문 쪽에서 청순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엔 백금발의 여인, 아리아가 서 있었다.
수인족들의 사건 이후에도 루벤에 남은 아리아.
“아직도 있었냐.”
“······ 나한테 너무 신경 안 쓰는 거 아니야?”
아리아는 뾰루퉁한 표정으로 답을 해보였다.
시안은 멋쩍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동안 현질이다, 전쟁 준비다 뭐다.
워낙에 바빠 아리아가 루벤에 있는지조차 잊어먹고 있었으니까.
아리아는 그런 시안을 향해 눈을 한 번 치켜떠보였다.
“그리고 남이사 가든 말든.”
이윽고 아리아가 새침한 얼굴로 시안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그건 그렇긴 하다만, 여기 내 영지인 건 알고 있지? 네가 먹고 자고 하는 거. 다 내 돈에서 나가는 것도.”
“하여간, 그 놈의 돈은··· 그거 얼마나 한다고 치사하게.”
“그 얼마 안되는 돈. 네가 줄 거 아니면 치사하다는 말은 좀 아니지 않냐.”
“알았어! 줄게! 주면 될 거 아니야!”
버럭, 소리치는 아리아의 외침과 함께 강대한 신성이 연무장 전체로 퍼져나갔다.
하여간, 저 성질머리하고는.
그보다 얘는 언제 또 신성이 이렇게 강해진 거야.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보였다.
“그보다 넌 성녀라는 애가 이렇게 자리를 오래 비워도 되는거야?”
“알게 뭐야.”
아리아는 무슨 상관이냐는 듯 고개를 홱, 돌려보였다.
그건 시안에게 하는 말임과 동시에, 어딘가 교황청에다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성녀같은 거. 누가 하고 싶다고.”
아니나 다를까 아리아가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보아하니 어떤 사연이 있는 모양인데···.
생각해보면 시안은 아리아에 대해 그다지 알지 못했다.
역사상 가장 강대한 신성 제국의 성녀.
그러나 실상은 성격 개차반의 성녀.
이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딱히 관심도 없었거니와, 그동안 티격태격 해대느라 물어볼 여유도 없었다.
그 때문일까.
“부모님은 걱정하실 거 아니야. 이렇게 오래 자리를 비우면.”
시안은 처음으로 아리아의 사정을 물었다.
그리고 몇 주전, 노에미와 관련한 다툼 때문일까.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이 부모님과 관련한 물음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데 무슨 걱정을 한다고.”
“응?”
“돌아가셨어. 두 분다.”
아차싶은 생각도 잠시.
아리아가 곧바로 말을 이어왔다.
“엄마는 나를 낳고 곧바로. 그리고 아빠는 몰라. 어디서 죽었는지.”
“······”
“사람들은 신의 아이를 품은 대가이자 성사(聖死)이라며 칭송했지만···.”
아리아는 툭, 말을 내뱉었다.
“지랄 염병이지.”
시안은 순간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수수하게 내려앉은 백금발. 초월적인 미모의 아리아.
청순함의 여신이라 불려도 전혀 모자람이 없었건만.
“그것도 개지랄이자 생염병.”
정작 입에서 나오는 말은 시궁창과 다름없으니 원···.
“난 그냥 평범한 사람인데 말이야. 신성력을 조금 사용할 줄 아는. 그런데 저들끼리 신의 아이니 뭐니 떠들어대니.”
아리아는 태어날 적부터 성녀가 되어있었다.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성녀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어딜 가든 성녀였고, 무얼 하든 성녀였다.
사람들은 자신을 보면 감탄과 더불어 기도를 하기 바빴다.
부디, 우리들을 보살펴주소서.
아리아는 사람들에게 있어 신의 대리인이었다.
어쩌면··· 어쩌면 그래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리아가 시안에게 괜시리 끌리는 이유가 말이다.
시안은 처음부터 자신을 성녀로 여기지 않았으니까.
그저 한 명의 사람, 평범한 여자로서 대해줬으니까.
아니, 평범한 여자는 무슨.
얼굴이 너무 역겹다며 구역질과 어지럼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때는 진짜 뭐 이딴 놈이 다있나 싶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았다.
아리아가 성녀가 아닌, 아리아로서 살아봤던 것이.
“나중에. 언젠가 내게 아이가 생긴다면. 절대로 신성 제국에서는 키우지 않을거라 다짐했어.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고.”
아리아의 아이인 만큼 신성력을 타고 날 가능성이 다분했으니까.
그렇기에 성자(聖子)든, 성녀(聖女)든.
아리아의 아이는 그러한 운명이 결정되어있었다.
그러나 아리아는 그것이 싫었다.
자신과 같은 결정된 삶이 아닌, 자유로운 삶.
무얼 하든 스스로의 의지가 깃들어있는 삶.
“그런 의미로. 여기, 루벤이 참 부러웠어.”
아리아가 본 루벤은 그런 곳이었다.
천상의 낙원, 지상의 유토피아.
단순히 살기 좋다는 의미의 표현이 아니었다.
이곳, 루벤에서는 스스로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었다.
꿈이란,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 좌절되곤 하다만.
이곳 루벤에서의 현실은, 되려 꿈을 지켜주고 지탱해주고 있었다.
듣자하니 처음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루벤 또한 다른 현실과 다르지 않게 냉혹했다고 한다.
다른 세상의 현실보다 더욱 처참했었다.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어둠의 숲.
루벤의 현실은 냉혹함을 넘어 잔혹함을 품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을 바꾸고 만든 것이 지금의 시안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모든 것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 바로 엘란두르.
“나도 도울게.”
그래서 아리아는 지켜주고 싶었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현실을 지켜주고 싶었다.
“나도 알고 있어. 타국의 일에 성녀인 내가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거. 하지만 엘란두르는 악마와 관련되어 있잖아. 내가 개입할 명분은 충분할거야.”
그럼에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있었다.
어쨌거나 아리아는 타국의 인물이었고.
어디까지나 루벤과 엘란두르와의 전쟁이었으니까.
꼬투리를 잡으면 어떤 식으로든 잡을 수가 있었다.
“내가 모두 책임질게. 성녀직을 때려치든. 사제직을 파면당하든. 내가 반드시 책임질게. 너와 루벤의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할게.”
그러나 아리아의 의지는 확고했다.
어떤 결심을 한 듯, 시안을 바라보는 아리아의 두 눈은 의지로 가득차 있었다.
“나도 도울 수 있게 해줘.”
아리아는 그렇게 말을 끝마쳤다.
그리고 시안은 그런 아리아의 두 눈을 마주 바라봤다.
차음 아리아는 단순한 호기심과 질투심에서 루벤을 방문했다.
그러나 아리아는 그 동안 루벤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시안은 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들어서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난 사생아야.”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은 믿기지 않겠지만 천하의 둔재이기도 했어. 후작가의 망나니라 불린 이유가 천하의 둔재라는 이유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었으니까. 가문을 망신시킨다고.”
시안은 피식,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때문에 가문에서 숱한 무시와 모욕을 받았었지. 차마 입에 담기 힘들만큼. 그리고 난 그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었어.”
그러다 시안은 끝내 가문에서 버려졌고, 루벤이라는 영지를 만났다.
모바일 영주를 만났고, 또 카일의 후계자가 되었다.
숱한 어려움과 고난 겪어왔다.
불가능이라 불리던 역경을 이겨내었다.
신화 속, 악마 군주들과 대면하며 싸워왔다.
로즈웰과 네이슨.
과거라는 이름의 족쇄를 끊어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시안의 어머니, 세실.
추억이라는 이름의 미련을 떨쳐내며 미래를 바라봤다.
그리고 지금.
“듀라크는 나의 아버지이자. 모든 것들의 시작이야.”
시안은 과거의 시작점을 마주하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과거.
마지막 남은 미련.
“이 일은 내 손으로 직접 매듭을 지어야해.”
시안은 가만히 아리아를 바라봤다.
“하지만···.”
“루벤을 생각해주는 마음은 고마워.”
그리고 이어진 시안의 말.
“하지만 이건 루벤이 해결해야할 일이야.”
“그러면 나는!”
나는··· 루벤의 사람이 아닌거야?
나는 루벤의 사람이 될 수는 없는거야?
아리아는 목구멍까지 그 물음이 치솟아올랐다.
그러나 그 답을 스스로가 알고 있었기에, 차마 말로 내뱉어지지 않았다.
아리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었다.
괜시리 서운하면서도. 또 가슴이 미어지는 건···.
대저 무슨 이유 때문일까.
“도련님. 엘란두르의 선봉대가 곧 루벤으로 당도한다고 합니다.”
그 순간, 한쪽에서 한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다녀올게.”
그리고는 아리아를 지나쳐 걸어나갔다.
아리아는 떠나가는 시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정말이지 아무런.
“······”
아무런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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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을 에워싼 3만의 병력.
“쥐똥만한 영지치고는 제법 그럴 듯 하군.”
라퍼빌스 자작은 루벤의 풍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엘란두르 산하의 가신이자, 3만의 선봉대를 이끄는 사령관, 라퍼빌스 자작.
또한 지난 날, 루벤에게 패퇴한 전력이 있는 사령관이기도 했다.
정확히는 루벤이 엘란두르에게 선빵을 치던 당시였다.
라퍼빌스 자작은 루벤의 전력을 차마 막지 못했다.
아무런 쪽도 못 쓰고 그대로 자작령을 내줘야만 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를 것이다.”
라퍼빌스를 이를 뿌드득, 갈았다.
비록 그때보다 상황이 나아진 건 아니었다.
게다가 이번엔 수성이 아니라, 공성을 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라퍼빌스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모든 병기. 준비 완료했습니다.”
옆에서 들려오는 병사의 보고.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그곳엔 수 십대의 공성 병기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저 투석기들은 단순한 투석기가 아니었다.
단순히 무거운 돌덩이를 던지는, 그런 원시적인 공성 병기가 아니었다.
일명 마도학 투석기.
마도학의 기술이 집목된 공성 병기.
그 위력은 6위계(位界)의 대마법, 익스플로전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그 가격은 미쳐 날뛰는 수준이었다.
한 대 한 대가 웬만한 남작령의 1년 예산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실로 미쳐버린 가격이었지만 그 위력은 확실했다.
그 어떤 성벽이라도 박살을 내버리는 대공성 병기.
“루벤의 성벽이 범상치 않아 보이긴 하다만···.”
물론 루벤의 성벽은 척 보기에도 특별해보였다.
철옹성, 이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올 정도로 단단해보였다.
“그래봤자겠지.”
그러나 이 대공성 병기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이 세상 그 어떤 성벽도 6위계(位界)의 대마법, 익스플로전의 위력을 버티진 못하니까.
“모두 발사하라.”
라퍼빌스 자작은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명령과는 다르게 병사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라퍼빌스의 인상이 와락, 찌푸려지던 찰나.
“하오나, 자작 각하. 가주께서는 루벤의 동태를 살피라고만···.”
“어허!”
라퍼빌스는 병사의 말을 끊으며 호통을 쳐보였다.
“우리는 선봉대다. 가장 먼저 출전하여 적과 맞서는 용맹한 군대란 말이다!”
“그렇지만 분명 가주께서는···.”
“되었다!”
라퍼빌스는 듣기 싫다는 듯 말을 일축시켜버렸다.
지난 번의 속절없는 패배.
그로써 엘란두르 내에서 라퍼빌스 자작의 입지는 상당히 위축되었다.
가신들 내에서 예전과 같은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다.
은근슬쩍 무시하는 경향들도 없잖아 보였다.
이대로 가다간 자작의 자리마저 내려놔야할 지경.
그러니 이번 전쟁이야말로 절호의 기회였다.
‘가주께서 오시기 전에 루벤을 함락시키면···.’
어마어마한 공로를 세울 수 있는 기회.
그리하여 입지를 다시 한 번 회복시킬 수 있는 기회.
더 나아가 듀라크의 눈에 들어 보다 높은 곳으로 발돋움 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
“책임은 모두 내가 지겠다. 그러니 더 이상 말을 말거라.”
라퍼빌스는 그렇게 명령을 감했다.
그럼에도 병사는 상당히 고민했다.
듀라크 후작과 라퍼빌스 자작.
가주와 가신의 관계.
상명하복의 체계는 누가봐도 뚜렷했으니까.
그리고 듀라크는 분명 동태만 파악하라 일렀다.
그렇기에 라퍼빌스의 명을 따라서는 안되었다.
그러나 법보다는 주먹이 가까운 법이었고.
“네 놈이 정녕 경을 쳐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멀리 있는 듀라크보다, 당장의 권위가 무서운 법이었다.
라퍼빌스의 엄명에 결국 3만의 선봉대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우우웅···!
투석기에서 터져나온 마력의 파동이 공간을 울려왔다.
퉁! 투웅─!
그리고 수 십대의 투석기에서 쏘아지는 커다란 돌덩이.
사실상 폭탄과도 다름 없는 돌덩이는 정확하게 루벤의 성벽을 향해 날아갔다.
콰아아아아앙!!
콰콰쾅!!!
천지가 진동하는 굉음이 루벤의 성벽에서 터져나왔다.
자욱한 먼지 안개가 피어오르며 시야가 가려졌다.
그 광경에 라퍼빌스 자작은 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방금 느껴진 진동. 터져나온 굉음.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모두 진격하라!”
루벤의 성벽이 무너져내렸음을.
와아아아아아아아아─!!
라퍼빌스의 명령에 3만의 선봉대들이 크나큰 함성을 내지르며 돌격해들어갔다.
자욱히 피어난 먼지 안개를 헤치며, 무너진 루벤의 성벽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하여 곧 무너진 루벤의 성벽 앞에 당도했을때.
또한 피어난 먼지 안개가 가라앉았을 때.
“······?”
“······?”
3만의 선봉대 얼굴에 모두 물음표가 떠올랐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었다.
3만의 선봉대 모두가 물음표를 찍고 있었다.
“멀쩡··· 해?”
루벤의 성벽이··· 흠집 하나 없이 멀쩡했으니까.
라퍼빌스는 눈앞의 광경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할 수가 없다기보다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정확하겠다.
말 그대로,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루벤의 성벽에는 흠집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방금 마도학 투석기를 발사한 것이 맞나?
그런 의문이 절로 떠올랐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것은 명백한 현실.
“이, 이게 무슨···.”
라퍼빌스의 얼굴이 크나큰 당혹으로 물들었다.
당혹의 얼굴은 곧 숨길 수 없는 경악으로 변모되어갔다.
말이··· 말이 되질 않는다.
마도학 투석기의 위력은 6위계(位界)의 대마법, 익스플로전에 버금간다.
그리고 이 세상 그 어떤 성벽도 불가능하다.
6위계(位界)의 대마법, 익스플로전을 견디는 성벽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성벽만이 아니라 그 어떤 것도 익스플로전의 위력을 견디지 못한다.
그런데··· 그런데 지금···.
부릅, 떠진 두 눈.
그 사이로.
키이이이이이잉─!!
루벤 안 쪽에서, 어마어마한 마력의 파동이 터져나왔다.
그건 마도학 투석에서 터져나온 마력의 파동과 비슷했다.
그러나 그 수준과 위력 자체가 차원이 달랐다.
키이이이이이잉─!!
공간 전체가 파르르, 떨려오는 힘.
그 힘의 여파에 살갗의 피부가 약하게 진동했다.
그리고 라퍼빌스 자작이 한 번 마주한 적이 있는 떨림이었다.
루벤이 엘란두르의 영역을 침공했을 당시.
그리하여 속절없이 자작령을 내줘야만 했던 그 날.
푸슈슈슈슈슉!!
슈슈슈슈슉!!
하늘을 새까맣게 물들이는 화살의 소나기.
그때 느꼈던 공포의 감정.
콰콰콰콰콰쾅!!!!
꽈아아아앙!!!
전방위를 폭사시키는 굉음은 천지 간을 뒤덮으며 울려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