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279화 (279/322)

279화 - 진정한 대륙 제 1의 검(1)

드리우는 어둠에 삼켜지는 광기.

부릅, 떠지는 듀라크의 두 눈.

“······!!”

듀라크의 얼굴이 끝내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말도 안되는··· 일이다.

듀라크는 다시 한 번 기운을 끌어모아 터트렸다.

콰아아─! 폭사하는 광기는 기나긴 먹선을 그리며 공간을 잠식해갔다.

그러나 삼켜진다.

아무런 저항도, 그 어떠한 반항도 의미가 없었다.

속절없이, 그저 맥없이.

저 끔찍한 어둠에 집어삼켜질 뿐이었다.

“······!!!”

경악을 넘어서는 충격이 내려앉았다.

그 사이로 터벅, 한 사내가 듀라크를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듀라크에 비해 앳되어 보이는 사내였다.

그리고 듀라크와 닮아있는 사내였다.

그러나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품은 사내.

시안은 터벅, 듀라크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듀라크는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아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지금 천천히 걸어오는 시안의 모습.

허점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파고들어갈 틈이 곳곳에 보인다.

그런데 할 수가 없었다.

이상하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저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시안을 베어낼 확신이, 들지 않는다.

검을 쥔 듀라크의 손이 약하게 떨려온다.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듀라크가 느끼는 두려움이 아니었다.

듀라크 안에 내재된 또 다른 힘.

세상 전체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절대적인 힘.

그 힘이 시안이라는 존재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

듀라크의 경악이 점점 거세어져만 갔다.

감각이 붕, 떠오르며 기묘한 감각이 느껴진다.

그 사이로 터벅, 시안의 발걸음이 다시 한 번 내딛어진다.

그것은 마치 꿈 속의 일처럼 느껴졌다.

천천히 걸어오는 시안의 모습.

보이는 모습은 분명한 인간의 모습이다.

그러나 듀라크는 한 마리의 흑사자를 마주한 것만 느낌이었다.

흑사자는 조용히 침묵하고 있었다.

적개심 같은 위협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듀라크는 그 모습에서 형용할 수 없는 불길함을 느끼고 있었다.

침묵 속에서 느껴지는 거친 포효.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집어 삼킬 듯한 포악함.

듀라크는 검을 강하게 말아쥐었다.

기운을 폭사시키며 밀려오는 두려움을 떨쳐내었다.

믿기 힘들었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잠시나마 시안에게 압도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패배를 향하는 지표를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은 절대로 패배하지 않는다.

듀라크는 이 자리에 닿기까지 수많은 강자들을 만나봤다.

이 자리는 그런 모든 강자들을 넘고 넘어 도달한 곳.

그리하여 불리는 이름, 대륙 제 1의 검.

이 대륙에서 자신보다 강한 존재는 없다.

쐐애액─!

휘둘러진 듀라크의 검.

전방위의 공간을 찢어발겨지는 참격.

꽈아아아아아앙!!!

소름끼치는 굉음이, 앞선 시야를 뒤흔들었다.

#

갑작스러운 시안과 듀라크의 격돌.

그것은 전쟁의 방아쇠를 당기는 도화선이 되었다.

“전구우운!! 전투 준비!!”

하얀 늑대 기사단의 단장, 에런이 크게 소리쳤다.

목소리에 과도하게 마나를 담아 거진 30만에 달하는 모든 병력들의 귓가에 소리를 때려박았다.

엘란두르의 총사령관인 듀라크는 병사들을 통솔할 여력이 없다.

이에 에런은 빠르게 판단을 내려 자체적으로 통솔권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보통 전쟁의 승패는 크게 두 가지로 판가름 난다.

각 진영의 주요 거점이 함락되거나.

아니면 각 진영의 총사령관이 패배하거나.

그러나 주요 거점의 함락은 상당히 힘들었다.

철옹성 같은 루벤의 방벽.

마도학 공성 병기마저 무력화 시키는 저 방벽을 뚫기란 어려웠다.

그렇기에 지금, 저 전투.

꽈아아아앙!

듀라크와 시안. 시안과 듀라크.

각 진영의 총사령관이 맞붙는 저 전투.

저 전투의 행방에 따라 이 전쟁의 양상이 달라진다.

“전군!! 루벤을 향해 돌격하라!!”

에런의 크나큰 외침과 함께.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커다란 함성이 천지 간을 뒤흔들었다.

수 십만 명이 터트리는 함성은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무기가 되었다.

“엘란두르가 누구인지! 똑똑히 보여줘라!!”

“루벤의 잡것들을 짓밟아버려라!!”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수많은 가신들의 독려와 함께 함성은 더욱 거세어져만 갔다.

수 십만명이 루벤을 향해 진격한다.

내딛는 발걸음은 땅을 크게 울려왔다.

에런은 검을 꽈득, 움켜쥐었다.

이대로 루벤과 시안을 포위한다.

아무리 시안이 수준 높은 기사라 한들 한계는 있다.

수 십만명이 주는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시안만 잡으면. 루벤의 총사령관만 잡으면.

이 전쟁은 쉽게 끝이 난다.

“1군단과 2군단은 루벤을 포위한다! 나머지는 모두 가주를 보좌하라!!”

에런은 빠른 판단으로 전황을 지휘했다.

하지만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건, 엘란두르만이 아니었다.

“전군! 전투 준비!! 영주님을 보좌하라!”

루벤의 안쪽에서 크나큰 외침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벌컥, 루벤의 성문이 열리며 수 천의 병사들이 튀어나왔다.

“놈들이 영주님께 다가서지 못하도록 하라!”

그와 동시에 수 천의 전력들이 하나의 벽이 되었다.

밀려오는 엘란두르의 병력들을 밀어내듯 달려오고 있었다.

그에 따라 듀라크와 시안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다가가려면 루벤의 병사들을 뚫고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에런의 작전과 판단이 읽힌 것이다.

“대체 누가?”

루벤의 총사령관인 시안은 듀라크와 싸우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이 판단은 시안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내린 것이다.

루벤 쪽에도 상당한 수준의 전략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어리석긴.”

굉장히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의도를 파악한 것은 좋았으나 너무도 단편적이었다.

참으로 멍청하다. 그리 단언할 수 있었다.

“고작 그 정도의 병력으로 뭘 할 수 있다고.”

전력의 차이가 너무도 극심했으니까.

튀어나온 루벤의 병력들은 대략 2천에서 3천 내외.

반면에 엘란두르는 무려 27만이었다.

자그마치 100배의 전력차.

이는 상성이고 뭐고 들이밀 것이 아니었다.

일당백이라는 허상에 가까운 일이 현실로 일어나야 대적이 가능하다.

그러나 엘란두르의 병사들이 누구인가.

제국을 지탱하는 두 기둥이었다.

어중이떠중이가 아닌 대륙 최고의 정예병들이었다.

일당백은 오히려 엘란두르 쪽에서 행할 일이다.

그렇기에 지금 성문을 열고 뛰쳐나온 전력들.

대등한 전력이었다면 칭찬할 만한 전략이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전장의 판도를 정확히 읽는 상당한 능력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어리석었다.

저들은 결코 나와서는 안 되었다.

마도학 공성 병기조차 통하지 않는 루벤의 방벽.

그 철옹성을 끼고 끝까지 항전했어야했다.

물론 마법사들은 방벽 위에 있었다.

그들은 방벽 뒤에서 마법을 캐스팅하고 있었다.

성문을 뛰쳐 나온 것은 병사들과 기사들.

그러나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어쩌면 시안이 루벤 밖으로 나온 순간.

아니, 듀라크가 루벤의 방벽을 위협한 순간.

그로써 시안이 어쩔 수 없이 루벤 밖으로 나와야만 했던 외통수.

그 순간 이미 결정된 전쟁이었다.

“하얀 늑대 기사단들은 나를 따르라!”

에런은 하얀 늑대 기사단들을 모두 소집했다.

루벤에서 튀어나온 전력들이 만든 방벽.

적은 수이나 그래도 뚫어내야할 필요는 있다.

“모두 송곳 대형으로!! 적진을 찌르는 창은 내가 되겠다!”

한점을 뚫어 돌파하여 적진을 무너뜨린다.

그렇게 뚫린 적진을 나머지 병력이 휘젓는다.

그리고 적진을 꿰뚫는 첫번째 점.

적진을 꿰뚫음에 있어 선두의 진형은 굉장히 중요했다.

처음 꿰뚫는 점이 막혀버리면, 뒤의 대형들이 와르르, 무너진다.

하지만 에런은 하얀 늑대 기사 단장이자 마스터 중급의 기사.

“돌격!!”

에런의 힘을 견딜 존재는 대륙에 그리 많지 않았다.

콰아아아아─!!

에런을 필두로 한 하얀 늑대 기사단들이 맹렬한 기세로 쏘아져나갔다.

송곳의 모양으로 V자 대형을 유지하며, 적진을 찌르는 창처럼 쇄도해나갔다.

그리하여 에런의 검이 루벤의 살갗을 뚫어내려는 순간.

꽈아앙─!

굉음이 터져나왔다.

충격에 시야가 뒤흔들리며, 에런이 크게 뒤로 밀려났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

“커헉···!”

뚫어내지 못했다.

그에 따라 뒤따르던 하얀 늑대 기사단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제국 제 1의 기사단, 하얀 늑대 기사단.

그 위명에 걸맞게 완전히 휩쓸리지는 않았다.

“쿨럭···!”

“끄윽!”

그러나 적지않은 피해를 입었다.

에런의 두 눈이 일순간 당황으로 물들었다.

대체 누가···? 누가 막아선 것이지?

정신을 차리며 시야를 바로했다.

그리고 보인 것은 어떤 한 사내였다.

단단한 인상. 전장을 수없이 구른 듯한 베테랑 기사와도 같은 분위기.

“너는···.”

기억에 있는 얼굴이다.

지난 번, 수인족의 왕국에서 직접 검을 맞대어 보기까지 한 사내였다.

“루카스··· 라고 했었나.”

루벤의 경비대장, 루카스.

“하얀 늑대 기사단장께서 이름을 기억해주시니 영광입니다.”

루카스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에런은 그런 루카스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보아하니 저 루카스가 자신을 막아선 것 같았다.

그리고 미리 준비를 한 듯한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루카스가 전황을 지휘하고 있는 것 같았다.

듀라크가 없는 엘란두르를 에런이 지휘하고 있는 것처럼.

시안이 없는 루벤을 루카스가 지휘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 루카스만 없애면 끝이다.

에런은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아쉽게도 한점을 뚫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단지 그 뿐이다.

뚫어내지 못했다면, 무너뜨리면 된다.

콰아아아─!!

에런의 기세가 폭발하듯 터져나왔다.

정신을 차린 하얀 늑대 기사단들 또한 기세를 끌어올리며 검을 들어보였다.

제국 제 1의 기사단이라 불리는 하얀 늑대 기사단.

이빨을 드러낸 늑대들은 차원이 다른 흉악함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늑대들의 무리 앞으로 터벅.

루카스가 걸음을 내딛었다.

그런 루카스의 뒤로 루벤의 기사들이 검을 들어보였다.

“나를 막아서겠다고?”

에런은 싸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방금 전, 막힌 일격은 예상 밖인 건 인정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한 번에 지나지 않았다.

루카스라는 존재를 상정하지 않았고.

작전이 읽혔을 것이란 예상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두 번은 없었다.

무엇보다 루카스는 자신보다 한 수 아래였다.

비단 루카스 뿐만 아니라 루벤의 기사들 또한 하얀 늑대 기사들보다 한 수 아래였다.

이변은 없었다.

수인족의 왕국에서 검을 직접 맞대어 본 바 확실했으니까.

루카스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에런의 도발 같은 언행에도 아무런 반응을 내보이지 않았다.

그저 검을 말아쥐며, 그 누구도 뒤로 보내지 않겠다는 의지를 관철시켰다.

이에 에런 또한 더 이상의 말을 꺼내지 않았다.

기사와 기사의 대화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니까.

마주치는 두 눈.

일순간 루카스와 에런의 신형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순식간에 루카스와 에런의 거리가 좁혀진다.

좁혀짐과 동시에 꽈꽝! 루카스와 에런의 검이 폭발했다.

“······!”

그리고 에런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단 한 번의 격돌이었지만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다르다. 기억 속의 루카스와 다르다.

수인족의 왕국에서 검을 맞대었을 때와 전혀 다르다.

한 단계 내지는 두 단계.

그때와는 말도 안되는 수준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결코 에런의 아래로 둘 상대가 아니다.

아니, 아래는 커녕 전력을 다한다 하더라도 승부를 점칠 수 없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고작, 고작 얼마의 시간이 지났다고 지금···!

루카스가 기세를 끌어올리며 검을 휘둘렀다.

에런은 황급히 검을 들어 막아내었다.

휘둘러지는 검에 꽈아앙! 섬뜩한 폭발이 터져나온다.

내지르며 쇄도하는 루카스의 검 끝은 날카로웠다.

그러나 마주치는 위력은 결단코 절삭의 위력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루카스의 검이 그렇게 만들었다.

루카스의 검은 일반적인 검이 아니었다.

검 자체에 어떤 절대적인 존재의 힘이 느껴진다.

세상 그 무엇도 범접할 수 없는 무언의 힘.

‘저건···!’

쾅─! 콰쾅─!

에런의 생각이 끊어진다.

루카스의 검이 생각을 허락하지 않는다.

검과 검이 맞닿을 때마다, 에런의 검이 조금씩 흔들렸다.

당황과 놀람으로 정신과 자세가 흐트러진다.

흔들린 에런의 검이 쐐액! 일순간 허공을 갈랐다.

그 순간에 루카스의 자세는 낮아져있다.

루카스의 눈빛이 번뜩인다. 낮아진 몸이 에런을 향해 쏘아진다.

아가리를 벌린 한 마리의 새끼 흑사자.

그건 늑대 따위가 감히 어찌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커헉···!”

에런의 몸이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촤학, 하며 튀어오른 선혈에 에런은 검을 역수로 쥐었다.

그러나 그리 큰 의미를 갖지 못했다.

루카스는 욕심을 내지 않았으니까.

만일 욕심을 내어 파고들었다면 반격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루카스는 그를 예상했다는 듯, 그 이상의 움직임을 내보이지 않았다.

작전도 그렇고 지금의 전투도 그렇고.

루카스는 완벽하게 에런의 수를 읽고 있었다.

“쿨럭···!”

에런의 입가로 핏덩이가 쏟아져내렸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엉키며 혼란이 가중되었다.

그리고 엉키며 혼란되는 정신 속.

흐릿하게나마 비치는 전황의 시야.

“······!”

에런은 곧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푸화학!

콰직.

하얀 늑대 기사단들이···.

제국 제 1의 기사단이라 불리는 이들이···.

“끄아악···!”

“커흑···!”

휩쓸리고··· 있었다.

하얀 늑대 기사들이 루벤의 기사들에게 휩쓸리고 있었다.

그것도 속절없이.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심지어··· 하얀 늑대 기사들 뿐만이 아니었다.

무려 27만에 달하는 엘란두르의 병력.

자그마치 100배의 전력 차에 달하는 전쟁.

푸슈슈슈슈슉!!

슈슈슈슈슉!!

하늘을 새까맣게 물들이는 화살의 소나기에 콰콰쾅!

지축이 뒤흔들리며 수 천의 병사들이 휩쓸려나갔다.

“가자 해피, 메리, 멍구, 쫑!!”

컹! 컹컹!

이상한 이름들의 마수들이 맹렬하게 짖는다.

그로써 이상한 전차들이 전장을 휘젓는다.

그리고 그 위력은, 굉장히 이상했다.

쾅! 콰쾅!

이상한 이름의 마수와 전차에 휩쓸리는 전장.

저 압도적인 병기, 오룡거 앞에서 병력의 숫자는 큰 의미가 없었다.

“마법이다! 모두 피해!!”

“이런 미친! 어디로 피하라는 거야!!”

그리고 루벤의 방벽 위에서 캐스팅 되는 수 천의 마법들.

루벤의 방벽 뒤에서 날아오는 알 수 없는 공성 병기.

뚫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진즉에 루벤의 진형을 뚫어내야 했었다.

27만이라는 병력은 당장이라도 루벤의 성문을 부숴버려야만 했다.

그런데··· 그런데···.

“어떻게 이런···!!”

“말도 안돼! 말도 안된다고!!”

콰콰콰콰쾅!!!

뚫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뚫어내기는 커녕, 그대로 휩쓸리고 있었다.

절대적인 수준 차이.

100배라는 숫자의 차이는 그다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말 그대로 숫자가 많다, 라는 사실만 나열될 뿐이었다.

“······!!”

에런의 경악은 점점 더 거세어져만 갔다.

그리고 에런은 끝내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커허헉···!”

전장의 소음을 뚫고 들려오는 어떤 격통 어린 신음.

시야 가득히 뿜어지는 붉디 붉은 선혈.

엘란두르의 총사령관이자 대륙 제 1의 검.

이 대륙의 절대 강자.

“쿨럭···!”

듀라크가··· 몸을 비틀거리고 있었다.

#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각혈하는 듀라크의 생각은 오로지 한 방향으로만 흘러갔다.

다른 생각의 흐름은 떠오르지 않는다.

꽈아앙!

저 압도적인 강함.

지난 날, 수인족의 왕국에서와는 차원이 다르다.

어찌하여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말이 되지 않는다.

지금 듀라크 속에 내재된 힘.

비록 이 힘을 온전히 컨트롤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힘의 정체를 알고 있었기에.

그리고 이 힘을 직접 사용하고 있었기에.

“커허헉···!”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듀라크는 뼈저리게 느끼고 인지할 수 있었다.

꽈아아앙!

터져나오는 힘의 파동. 듀라크는 급히 검을 휘둘렀다.

진동하던 공간이 찢어지며, 드리운 어둠이 사라졌다.

대적이 불가한 힘.

이렇게밖에 대응할 수 없는 것이 믿기지 않을 따름이다.

파바바바박!

상쇄된 공간 위로, 시안의 검격이 휘둘러졌다.

수많은 검의 잔상이 눈을 현혹시켜왔다.

어떤 것이 진짜인지 가늠조차 되질 않는다.

아니, 저 모든 것이 진짜인가.

수 백, 수 천, 수 만··· 끄윽.

듀라크는 머리를 쥐어짜는 듯한 통증에 생각을 닫아버렸다.

극한의 빠름을 담은 검격은 인지의 과정을 허락하지 않았다.

가늠하려는 것만으로도 시신경과 뇌세포가 쥐어뜯기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더.

파바바바박!

시안의 검이 잔상조차 남기지 않고 휘둘러진다.

듀라크의 얼굴로 떠오른 경악이 짙어진다.

방금 전의 속도가 최대치가 아니었다고···?

시안의 검은 더, 더 빨라지고 있었다.

한계라는 개념마저 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서걱─! 콰직─!

듀라크는 아득한 속도에 대응이라는 것을 할 수가 없었다.

“커허헉···!”

입가로 쏟아져내리는 붉은 피.

그 사이로 덩어리 같은 것이 느껴졌다.

시안의 자세가 한순간에 낮아졌다. 번들거리는 시안의 두 눈은 짙은 어둠으로 물들어있었다.

먹잇감을 향해 입을 벌리는 포악한 검은 사자.

듀라크는 잠깐이지만, 시안의 모습에서 그 형상을 엿보았다.

“······ 인정한다.”

듀라크는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시안이 감각을 뛰어넘으며 쇄도해온다.

콰앙!

터져나오는 굉음에 듀라크의 몸이 다시 한 번 휘청거린다.

그러나 듀라크는 차분히 표정을 갈무리했다.

예상에 없던 상황이다. 이렇게까지 될 줄도 몰랐다.

믿기 힘들었다. 지금 이 순간조차 생각을 쉼없이 부정했다.

그러나 이제는 인정해야할 때였다.

대륙 제 1의 검.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유지해왔던 자리.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대륙 제 1의 검은, 이제 자신이 아니다.

설마하니 이렇게 될 줄은 몰랐거늘.

그리고 이렇게까지 해야할 줄도 몰랐거늘.

허나, 지금은 방법이 없었다.

통제할 수 없는 힘. 아직 완성되지 않은 힘.

콰아아아아아아아─!!

듀라크 주변 공간이 일렁거린다.

듀라크의 검이 아닌 듀라크의 주변 공간이 거세게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듀라크의 변화에 시안의 움직임이 멈칫, 거렸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멸살의 검을 말아쥐며 흉측한 어둠을 터트렸다.

터져나오는 어둠의 마력에 듀라크의 기세가 다시 한 번 삼켜진다.

그러나 상관 없었다.

지금 듀라크가 시전하려는 것.

엘란두르 가문 대대로 전해져오는 비기.

하지만 이 비기에는 한 가지 진실이 숨겨져있었다.

엘란두르의 비기는 사실 엘란두르의 비기가 아니라는 것.

천 년전, 엑시드(Exceed)의 경지에 닿았던 절대적인 기사.

듀라크 안에 내재된 악(惡)의 힘조차 공포에 떨었던 힘.

아르나이즈 샤를롯의 검, 조디악 소드(Zodiac Sword).

그렇기에 이건 알아도 막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감히 대륙 제 1의 검 따위가 어찌할 수 있는 힘도 아니다.

그런데··· 대체 왜일까.

듀라크를 바라보는 시안의 두 눈빛은, 차분히 가라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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