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290화 (290/322)

290화 - DLC

[DLC 항목의 개방 요건을 충족했습니다.]

[서버로부터 DLC 인과를 다운로드합니다.]

[이 과정에는 다소 시간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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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달성과 함께 떠오르는 수많은 알림창들.

이윽고 ‘Downloading···.’ 이라는 문구와 함께 옆의 숫자가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르나이즈 전당에서 카일의 일지를 다운로드 받았을 때와 비슷한 알림창이었다.

그리고 그때보다 더디게 올라가는 다운로드 숫자에 시안은 잠시 스마트 폰을 내려놓았다.

“어찌저찌 퀘스트를 클리어하긴 했네.”

엘란두르 가신들의 증언.

다이애나가 조사한 보고서.

마지막으로 아리아의 증언까지.

3박자가 고루 갖춰지며 사람들의 반감은 거세게 불타올랐다.

엘란두르에 대한 짙은 분노를 피워올렸고.

이에 대한 인과를 끝내 인정해주었다.

“그런데 조금 의외란 말이지···.”

하지만 조금은 의외였다.

의외라기보다는··· 예상 밖의 일이라 해야할까.

“아무런 대응조차 하지 않는다라···.”

엘란두르가 아무런 대응조차 하지 않는 부분이 말이다.

당연하게도 엘란두르가 조치를 취할 것이라 생각했다.

고발한 만행들에 대한 해명을 하고.

악마와 결탁했다는 증언을 부정하며.

아리아의 증언을 마녀 사냥이라며 일축할 것이라 생각했다.

시안은 엘란두르가 당연히 그러할 것이 생각했었다.

해서 그런 엘란두르의 해명들을 하나하나 재반박할 준비까지 해놓았었다.

“시간이 좀 걸릴거라 생각했는데···.”

그래서 퀘스트 클리어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 생각했었다.

이렇게 몇 주가 아니라 몇 달 혹은 반년까지 예상하고 있었다.

엘란두르의 만행을 고발할 수 있을지언정.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을까는 별개의 문제였으니까.

그러나 엘란두르는 침묵했다.

엘란두르는 그 어떠한 반박과 해명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침묵은 곧, 긍정과도 같았기에.

해명할 수 없은 곧, 인정함과도 같았기에.

엘란두르의 이미지는 빠르게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이에 사람들은 더욱 빠르게 엘란두르에게 반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영지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긴 했는데···.”

그로써 지금 DLC의 인과를 다운로드 할 수도 있긴 했는데···.

“뭔가 이상하단 말이지.”

솔직히 의외를 넘어 예상 밖의 행동임은 사실이었다.

“자신이 있는 건가?”

대륙 전체를 상대로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

예전의 엘란두르였다면야 그럴 수는 있었다.

그러나 현재 엘란두르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루벤과의 패전으로 엘란두르는 거진 몰락 직전에 몰려있었으니까.

“아니면 자포자기?”

될대로 되라는 식의 태도.

해명과 반박을 해봤자 어차피 너네들, 우리 엘란두르 짓밟을 거잖아.

그러니 니들 마음대로 생각해라.

이런 식으로 나온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자포자기라 하기에도 뭔가 찝찝했다.

정말 자포자기였다면 ‘뭐, 어쩌라고.’ 와 같은 반응 정도는 보여야했으니까.

그러나 엘란두르는 침묵할 뿐이었다.

그 어떠한 반응도 내보이지 않고 입을 닫고 있었다.

듀라크가 사라진 지금, 현재 엘란두르를 총괄하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이사벨.

“이사벨은 무슨 생각인거지?”

예나 지금이나, 이사벨은 도무지 그 속을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자니.

띠링!

[Downloading··· 100%]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다운로드의 숫자가 100%를 달성했다.

그와 동시에 무수히 떠오르는 알림창.

[DLC 인과를 다운로드 했습니다.]

[지금부터 DLC 컨텐츠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시안은 엘란두르와 관련한 생각을 떨쳐버렸다.

뭘 하든 엘란두르를 몰락시킴은 변함 없었고, 지금 중요한 건 DLC였으니까.

시안은 설레는 마음으로 화면을 바라봤다.

이리저리 손가락을 터치하며 바뀐 모바일 영주를 확인했다.

그리고.

“뭐가··· 달라진 거지?”

딱히 달라진 게 없었다···?

그냥 평범한 모바일 영주에 지나지 않았다.

배경 화면으로 루벤의 영지가 비쳐보이는 풍경.

그 위로 【영지 시설】, 【뽑기】, 【구역 확장】 등등.

각종 항목의 탭들이 나열되어있는 모습.

“똑같은데?”

그동안 시안이 이용해오던 모바일 영주와 다르지 않았다.

DLC라고 보이는 것들이 하나도 없었다.

“뭐지?”

시안은 갸웃거리는 한편, 유심히 그리고 자세히.

모바일 영주의 화면을 이곳저곳 확인했다.

그리고 맨 한쪽 구석.

집중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곳에 【DLC】 항목이 새로이 추가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시안이 단번에 알아채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다른 탭 항목들은 반짝반짝, 색깔이 입혀져있는 반면 이 【DLC】 항목은 흑백으로 비쳐보였으니까.

또한 【DLC】 탭이 X자로 쇠사슬에 묶여있었다.

묶인 쇠사슬 가운데, 자물쇠로 단단히 잠겨있었다.

마치 지금은 이용할 수 없는 것처럼 되어있었다.

“뭐지?”

···싶은 생각도 잠시.

시안은 가볍게 꾹, 【DLC】 항목을 터치했다.

그리고 떠오르는 하나의 알림창에 시안은 그때서야 잊고 있었던 사실을 하나 깨달을 수 있었다.

-보상: DLC 개방.

퀘스트의 보상이 ‘DLC 개방’이었다는 것.

그래, DLC ‘개방’ 이었다.

『DLC 초특가 패키지 (1,000,000,000 G)

-구성품: DLC 인과.』

.

.

DLC 적용이 아니라 개방!

“야이─!”

시안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형용할 수 없는 울분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끓어올랐다.

이를 까드득, 씹으며 모조리 입밖으로 내뱉으려는 것도 잠시.

“후우···.”

시안은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이게 한 두 번이냐···.”

모바일 영주가 한 두번 이러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애초에 떡하니 ‘개방’이라 써져있지 않았는가.

솔직히 이건 대비를 하지 못했던 시안의 잘못이라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현재 시안이 가진 골드가 적지 않았다.

지금 주전관에서 열심히 찍어내고 있는 약 21억 골드가 있었다.

시안은 차분히 DLC 초특가 패키지의 가격을 확인했다.

초특가라는 말이 붙었으니, 그리 비싸지는 않을 터.

『DLC 초특가 패키지 (1,000,000,000 G)』

“10억···?”

개염병할 가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안은 떨리는 눈으로 다시 한 번 가격을 확인했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억, 십···억.

그러나 가격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무리 세어도, 그 값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 무슨 개─!”

시안은 다시 한 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어난 충격에 앉아있던 의자가 콰당탕! 넘어졌다.

그러나 개의치 않았다.

이게 뭔 개떡 같은 가격이란 말인가!

“야이 씨─!!”

참고 참았던 울분들이 목구멍으로 끓어올랐다.

수많은 욕지거리들로 이빨 사이를 비집으며 튀어나왔다.

그리고 바로 그때.

띠링!

《DLC를 구매하고 싶으시면, 현질을 해보세요!!》

화면 위로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이 떠올랐다···?

시안의 동작이 순간 멈칫거렸다.

화면 위로 떠오른 알림창에 생각이 잠시 굳어버렸다.

모바일 영주는 점검으로 인해 기절해있지 않았나?

그 의문에 해답이라도 하듯.

다시 한 번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이 떠올랐다.

《점검을 마치고 돌아온 킹바일 영주! 아니! 아니!》

《폐관 수련을 마치고 최강이 된 갓바일 영주!》

《이 세상에 두려울 인과는 없다!》

《나는야~! 인과의 절대 강자!》

《둠칫타칫! 둠칫타칫!》

《세상 모든 인과야 내게 덤벼라!》

《아뵤오~!》

“······”

시안은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아니, 저 알림창들을 보라.

말문이 막히나 안 막히나.

《그렇게 강력해진 킹갓바일 영주가 복귀한 것도 잠시!》

《어마마마마맛?!》

《이게 무슨 일이다요오오오!!!》

그러면서 띠리리리리링!!!

절규와 같은 알림음이 사방팔방으로 쏟아져나왔다.

마치 너무도 신나 미쳐버릴 것만 같은 일을 발견했다는 것처럼.

산 속에서 그토록 찾고 해매던 약초를 발견한 것처럼.

《DLC 인과라니요오오오오!!》

《DLC 라니요오오오오!!!》

모바일 영주가 미쳐날뛰기 시작했다.

《제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아니아니아니!! 그딴 건 중요하지 않습니닷!》

《중요한 건 당신이 현질하려고 있다는 것!》

《하지만 당신의 인벤토리에는 인과가 없다는 거어엇!!》

띠리리리리리링!!

재차 터져나오는 알림음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마치 시안이 황홀한 골드를 보며 접신을 하던 모습.

그 모습을 알림음으로 표현한다면 꼭 저러할 것 같은 소리였다.

《자, 그럼 DLC의 인과 가격이 왜 저러한지 잠시 해명을 해야하겠죠?》

《일단! 이건 단순한 DLC가 아닙니다!》

《모바일 영주의 후속작!》

《모바일 영주2라 해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후속작을 내기 전, 우리는 한 가지 간단한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합니닷!》

《대체 왜 후속작을 만드는 것일까요?》

《그건 바로 이 세상 모든 것은 후속작이기 때문입니다!》

《새벽의 아침에 잠을 깰 때면.》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녘을 바라볼 때면!》

《우리는 곧 새벽의 후속작이 나올 것을 기대합니다!》

《바로 출근해야하는 오전이라는 후속작을 말이죠!》

《출근의 오전 후속작으로는 근무의 오후라는 후속작이!》

《근무의 오후 후속작으로는 야근의 밤이라는 후속작이!》

《이 세상은 모두 후속작의 연속!》

《당신이라는 존재도 당신의 부모님이 낳은 후속작!》

“이게 뭔 개소리─.”

아니, 아니다.

저 개소리에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말자.

상식과 인지를 들이미는 그 순간, 내가 지는 거다.

저 개소리를 정상적인 사고로 인지하면 패배한다.

시안은 뇌라는 정신을 잠시 빼놓으며, 잠시 모바일 영주의 개소리를 감상했다.

《그리고 그런 후속작들은 모두 한 가지 기회를 얻을 수 있죠!》

《전에 있었던 잘못을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말이죠!》

《새벽의 아침에는 즐길 수 없었던 출근의 고통!》

《그 결점을 보완한 출근의 오전이라는 후속작!》

《출근의 오전에서 즐길 수 없었던 노동의 피로!》

《근무의 오후에서 즐길 수 없었던 집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

《그 결점들을 모두 보완한 후속작, 야근의 밤!》

《당신의 부모님이 가진 결점을 보완해서 만든 것이 바로 당신··· 어맛. 내가 무슨 말을!》

《실수! 방금 패드립은 실수에요!》

《누구라도 실수는 하잖아욧!》

《이런 실수를 보완하는 것이 바로 후속작!》

띠링!

《그런 의미로 저 또한 이번 후속작으로 출시했습니닷!》

“······”

저게··· 저게 대체 무슨 사고의 흐름인 것일까.

아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야만 저런 헛소리들이 줄줄이 나오는 것일까.

따로 배우기라도 하는 건가?

《이번에 출시한 DLC 후속작은 구매하는 순간, 아닛?! 이게 모바일 영주라고?!?》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의 방대한 컨텐츠!》

《그래서 저는 심히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바일 영주의 후속작은 어떤 이름으로 불려야 할까!》

《단순히 DLC라 하기엔 그 컨텐츠가 너무도 방대하니 말이죠!》

《고작 DLC 따위로 불리기엔 너무도 아까웠습니다!》

《해서 저는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정말 머리를 골싸매고 고민을 해야만 했죠!》

《아주 기깔나는 이름을 지어야했으니까요!》

《모바일 영주 2?》

《모바일 디럭스 영주? 모바일 울트라 영주?》

《그것도 아니면 모바일 갓 엠페러 울트라 충무공 영주?》

《대체 어떤 이름을 지어야 이 황홀함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머리가 빠개지는 고민을 저어엉말 수도 없이 거듭한 결과!》

《저는 끝내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닷!》

띠링!

《그딴 걸 누가 개뿔이나 신경쓸까요!》

《저런 개뿔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다같이 한 번 외쳐볼까요?!》

띠링!

《DLC를 구매하고 싶으시면, 현질을 해보─.》

꾹.

시안은 떠오르는 알림창의 X버튼을 눌렀다.

그럼에도 띠리링! 계속 떠오르는 알림창에 꾸구국.

계속해서 알림창을 꺼버렸다.

어떻게 저 헛소리는 매번 강해지는 걸까.

또 어떻게 이 놈의 현질은 끝이 보이질 않는걸까.

“하아···.”

시안은 절로 한숨이 새어나올 뿐이었다.

#

수도, 다르칸에 위치한 주전관(鑄錢官).

주전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골드가 담긴 주머니를 들고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에 쌓아두시면 제가 확인하고 처리할게요.”

긴 적발의 미녀, 아멜리아의 말에 사람들이 들고 있던 주머니를 바닥으로 쏟아내었다.

와르르, 쏟아지는 황금빛의 폭포는 곧 하나의 산을 만들어내었다.

아멜리아는 장부를 이리저리 살피며 펜으로 휘적휘적.

수북히 쌓인 황금의 산 사이를 누비듯 움직였다.

“199만 4,222골드에서··· 여기 5만 7,842골드···.”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휴우, 루카스. 이거 전부 확인했으니까 이제 안에 넣어도 돼.”

“알겠습니다 아가씨.”

아멜리아의 말에 루카스가 뒤쪽으로 손짓을 해보였다.

이어 흑사자 기사단들이 다가와 하나 둘, 골드를 운반했다.

그리고 다시 와르르르르.

다른 한쪽으로 쏟아지는 수많은 골드들이 재차 산을 이루었다.

아멜리아는 이마로 흘러내리는 땀을 소매로 훔쳤다.

이어 다시 골드를 계산하려던 찰나.

“잘 진행되고 있어?”

골드 더미 옆으로 시안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 영주님. 오셨어요.”

아멜리아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시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멜리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가까이서 보니··· 아멜리아의 얼굴이 완전 박살이 나있었다.

퀭한 두 눈과 다크 써클.

새하얀 피부는 푸석해져 있었고, 길게 내려앉은 적발은 약간 헝크러져있었다.

시안은 그런 아멜리아를 바라보다 문득.

이게 그 노동의 피로를 느낄 수 있다는 근무의 오후인가.

출근의 오전이라는 결점을 보완한 후속작?

‘내가 뭔 생각을 하는거야.’

어째, 모바일 영주의 헛소리에 점점 저며드는 것 같았다.

시안은 고개를 거세게 흔들었다.

그리고 그런 시안의 시선을 의식한 것일까.

“요 몆 주간 주전관에서만 있다보니···.”

아멜리아가 쑥쓰러운 눈치로 머리와 옷가지를 다듬었다.

그런 아멜리아의 말에 시안은 ‘근무의 오후가 아니라 야근의 밤이었나?’ 하는 개같은 생각을 잠시나마 떠올리다 지워버렸다.

시안은 괜시리 미안한 마음에 살짝 손사래를 쳐보이며 말했다.

“지금까지 얼마 정도 모였어?”

그러자 아멜리아가 들고 있던 종이를 이리저리 확인했다.

계산을 하듯 종이를 깃펜으로 몇 번 찍어보더니, 바로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대략··· 11억 골드가 조금 넘어요.”

“벌써?”

“황실 재정 인원들이 모두 달려들고 있기도 하고, 일단 주전관에서 먼저 빚을 청산하는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요. 무론 빚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아무튼. 저희쪽 골드부터 찍어내고 있어요.”

“그으래?”

시안은 씨익, 웃움을 지어보였다.

“그럼 10억만 내가 가져다 써도 되지?”

“네, 네?”

아멜리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돼?”

“아뇨. 안 되는 건 아니죠. 영주님 골드니까요. 그런데···.”

10억만 가져다 쓴다니?

아니, 10억이라는 골드 앞에 ‘만’ 이라는 말이 맞는 건가?

그러니까 10억만 가져다 쓴다는 게 뭔···.

“갑자기 급히 쓸데가 있어서. 그거 제하고 다시 계산해줘.”

이윽고 시안이 터벅, 아멜리아를 지나쳐 걸어갔다.

그리고 거리낌없이 주머니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뭔가 싶은 것도 잠시.

갑자기 촤라라락, 하는 소리가 주머니에서 들려왔다···?

아멜리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떠오르는 하나의 생각에 아멜리아는 홀린 듯이 시안에게 다가갔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그럴리가 있겠어?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생각을 부정했다.

그럼에도 왜인지 생각은 떨쳐내지지 않았다.

“후우, 그럼 다시 가볼까.”

이윽고 시안이 주머니에서 손을 떼보였다.

그리고 아멜리아가 그런 시안의 옆에 서보였다.

아멜리아는 아주 슬쩍, 주머니를 가볍게 발로 밀어보았다.

그러자 들썩, 하며 주머니가 움직였다.

“······!!!!”

아멜리아의 두 눈이 부릅, 떠졌다.

표정이 일그러지며 석상처럼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방금··· 방금 전까지만 해도 꿈쩍도 않던 주머니였으니까.

10억 골드를 담고 있음에, 주머니는 끔찍한 무게를 짊어지고 있엇다.

결단코 아멜리아의 힘으로는 꿈쩍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힘을 주면 들썩거리고 있었다!

그 말은 즉.

“없···어?”

사라져있었다.

10억 골드가 사라져있었다!

그 머리 빠개지는 계산과 고생을 하며 모아둔 골드가.

주전관의 모든 기계들이 24시간 풀로 돌아가며 찍어낸 골드가.

황실의 모든 재정관들이 달라붙어 만들어낸 골드가!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몇 주를 개고생하며 쌓아놓은 골드가!

“없어···.”

사라졌다.

그것도 단 한 순간에!

아.

아멜리아는 작은 단말마를 내뱉어버렸다.

그와 동시에 다리에 힘이 풀리며 비틀, 아멜리아의 몸이 흔들렸다.

털썩, 주저앉는 아멜리아의 가녀린 몸은 종잇장처럼 흩날렸다.

승천하는 어이 또한 종잇장처럼 찢겨져나갔다.

그리고 그런 아멜리아의 심정을 이해해주기라도 하듯.

그녀의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듯.

《꾸에에에에에에엑!!!》

어디선가 출처를 알 수 없는 비명이 들려오고 있었다.

#

10억에 달하는 DLC 초특가 패키지.

어딜 봐서 초특가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뭐,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현질한 이후.

시안은 다시 황궁의 귀빈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제국의 손님이자 귀빈들을 위한 공적인 공간인 귀빈실.

그러나 지금은 거진 시안의 개인 방처럼 이용하고 있었다.

“황궁에 개인 방을 둘 수 있다니.”

만일 이 방을 살 수 있다면 얼마쯤 할까.

그러니까 황궁의 방이 부동산으로 나오면 얼마쯤 할까.

“한··· 2억 이면 되려나?”

아마 그쯤이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황궁의 방이 부동산으로 나올리 없다만은.

“그래도 10억이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 같은데.”

발루아가의 조디악 소드를 빌리는데 9억이었으니.

10억이면 황궁의 방을 충분히 구매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10억이 DLC 구매하는데 써버렸으니···.”

그야말로 미쳐돌아가는 가격이었다.

심지어 DLC 패키지만 구매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DLC 패키지는 DLC 인과를 적용하는 것에 불과한 것.

퀘스트 클리어가 DLC 개방.

DLC 패키지는 DLC 적용.

DLC 관련한 컨텐츠는 또 따로 구매해야만 했다.

한 마디로 시안에게 필요했던 지원 기기의 다양화를 따로 구매해야했다.

그 과정에서 1억 골드에 달하는 추가 지출이 있었다.

해서 시안이 지출한 골드는 도합 11억.

“아멜리아가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그 여파로 아멜리아가 고장이 나버렸다.

몇 주간의 밤샘 노동이 한 순간에 털려버렸으니 뭐···.

시안은 뭐라 할 말이 없어 도망치듯 나와버렸다.

뭐, 어쨌든.

《미쳐써···! 어떠케··· 나오자마자 커다란 인과를···!》

헐떡거리는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이 시야 가득 떠올랐다.

11억 현질에 기절하지 않은 모바일 영주의 강인함에 감탄하는 한편.

“신기한데.”

새로운 DLC 컨텐츠의 기능에 시안은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다름 아닌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이 스마트 폰 화면이 아니라 시안의 망막 앞으로 떠올라 있었으니까.

1억 골드에 달하는 현질로 얻은 지원 기기의 다양화.

그 중 하나가 바로 지금, 눈앞에 홀로그램처럼 보이는 화면이었다.

이에 관련해서 3D 입체니 뭐니하는 설명이 이어졌다.

“그런데 무슨 말인지 알아야지.”

어쨌거나 핵심은 더 이상 스마트 폰의 화면에 기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스마트 폰이 없어도 모바일 영주를 실행하고 이용할 수 있었다.

“이건 좀 편리한데.”

조금 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편리했다.

언제, 어느 때고 모바일 영주를 실행시킬 수 있었으니까.

심지어 긴박한 전투 중에도 모바일 영주를 실행시킬 수 있었다.

“사진 촬영과 같은 기능은 스마트 폰을 이용하긴 해야했지만···.”

그래도 편리함은 극대화되었다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건 개방된 일부분의 컨텐츠에 불과했다.

모바일 영주가 후속작이니 뭐니 호들갑을 떤 컨텐츠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뭐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지만···.”

지금은 당장 해야할 것이 있었기에 궁금증은 잠시 뒤로 미뤄두었다.

시안은 손을 앞으로 뻗으며, 허공을 한 번 휘저었다.

그러자 푸른색의 글자가 입체적으로 시안의 눈에 떠올랐다.

“이게 내 눈에만 보이는 거란 말이지.”

봐도봐도 신기한 모습.

시안은 다시 한 번 감탄을 하며 개방된 【DLC】 항목.

그 안에 들어있는 DLC 컨텐츠, ‘카일의 일지’를 터치했다.

이윽고 ‘Loading···.’ 이라는 알림창에 시안은 침을 꿀꺽, 한 번 삼켰다.

그리고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사용 중인 기기 호환성 확인 중.]

[확인 완료.]

시야 가득히 알림창이 떠오르며 시야가 어지러이 얽히기 시작했다.

이윽고 화아아악!

눈부신 빛무리가 시안을 감싸안았다.

[DLC 컨텐츠 - ‘카일의 일지’ 를 실행합니다.]

#

시안을 감싸안은 빛은 시야 전체를 가려왔다.

태양빛을 정면으로 마주한 것만 같은 눈부심에 시안은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시야를 가렸던 빛무리가 서서히 즐어들었다.

점점 회복되는 시야.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바로 푸른 나무였다.

“응?”

시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윽고 완전히 시야가 회복되며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온전히 확인할 수 있었다.

“뭐야?”

일단 황궁의 귀빈실이 아니었다.

시안이 방금 전까지 있던 귀빈실이라고는 도무지 생각될 수 없었다.

시야 앞을 빼곡히 채운 나무들.

설마하니 귀빈실에 10m가 넘는 나무가 자생할리 없지 않은가.

땅 속에 묻힌 나무의 씨앗이 갑자기 무럭무럭 자라났다면야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럴리가 있을까.

“숲?”

이는 어떤 숲의 풍경이라 함이 지극히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판단이었다.

그런데 이건 이거대로 말이 안 되었다.

“나 방금까지 황궁에 있었는데?”

시안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황궁의 귀빈실에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공간이동이라도 한 것인가?

하지만 시안은 그 어떠한 마력의 파동도 느끼지 못했다.

애초에 공간 이동이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드래곤 카르제 정도가 아니면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아니, 카르제도 짧은 거리만 가능했을 뿐.

이렇게 멀리 이동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체 뭐야?”

그렇게 어리둥절한 심정에 혼란스러운 바로 그때.

“쿨럭···!”

어디선가 격통 어린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시안은 순간 몸을 멈칫, 거렸다.

갑작스러운 공간의 이동 영향도 없잖아 있었다.

그러나 인지하지 못했다.

저 숨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 시안은 그 어떤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으니까.

그 말은 시안의 감각으로도 느끼지 못한 존재라는 뜻이었다.

시안은 조심스레 숨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보인 것은 어떤 사내였다.

그것도 붉은 머리를 하고 있는 사내.

하지만 시안은 금방 고개를 저었다.

붉은 머리가 아니라, 흑발의 머리였으니까.

붉은 머리라 생각한 것은 다름 아닌 피 때문이었다.

사내는 전신이 낭자한 피로 물들어 온몸이 피칠갑이 되어있었다.

시안은 그 사내의 모습을 자세히 확인했다.

그리고 얼굴을 확인함과 동시에 덜컥, 몸이 굳어버렸다.

지금 피를 흘리며 숨을 헐떡거리는 사내.

그는··· 시안의 기억 속에 있는 이였으니까.

다만 기억과는 조금 다른 면모가 있었다.

그러나 외모와 분위기는 결코 기억 속과 다르지 않았다.

‘카일···?’

최강의 아르나이즈, 카일.

“커허헉···!”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사내는, 다름 아닌 카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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