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298화 (298/322)

298화 - 카일이 마주한 진실(3)

무릎을 꿇은 샤를롯의 가슴에는 여전히 카일의 검이 박혀져있었다.

그리고 카일은 그 검을 뽑지 않았다.

가슴에 박힌 검을 뽑으면 샤를롯이 죽을 것을 알았기에.

카일은 되려 검자루에 손을 놓으며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죽음을 잠시 체불하는 것일 뿐.

“쿨럭···!”

샤를롯의 죽음 자체를 막을 수는 없었다.

“샤를롯···.”

카일은 나지막히 샤를롯의 이름을 불렀다.

죽어가는 샤를롯을 바라보며, 차디찬 슬픔의 눈빛을 지어보였다.

샤를롯이 천천히 시선을 들어보였다.

그런 샤를롯에게는 더 이상 악(惡)의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샤를롯을 잠식한 칠흑의 두 군주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가오는 샤를롯의 죽음과 함께 두 군주 또한 죽음을 맞이한 것일까.

어쩌면 두 군주가 샤를롯보다 먼저 죽었다고 함이 정확할지 몰랐다.

흐릿한 시야 너머.

피로 젖은 샤를롯의 눈이 카일을 바라봤다.

“너도··· 그런 표정을 지을 줄 알았네.”

그리고는 피식.

“이제야 좀 사람다워 보이네. 쿨럭···!”

실소와 함께 샤를롯이 바닥으로 핏덩이를 한움쿰 쏟아내었다.

카일은 말없이 죽어가는 샤를롯을 바라봤다.

샤를롯은 거친 호흡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도 내 상태가 어떠했는지··· 알고 있어. 그러니 죄책감 같은 거··· 갖지 마라. 내가 너였어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다.”

쿨럭!

“내가 널 이렇게 만드는 게··· 가능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샤를롯은 조소와 같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윽고 샤를롯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푸르디 푸른 청명한 하늘.

“거 참, 하늘 한 번 맑네.”

샤를롯의 중얼거림과 함께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카일. 그거 알아?”

샤를롯이 시선을 돌려 카일에게 말했다.

“뮤리엘이 널 좋아했던 거.”

“······”

카일은 역시나 답이 없었다.

그러나 크게 떠지는 카일의 두 눈은 카일이 느끼는 심정을 고스란히 전해오고 있었다.

“역시 몰랐던 모양이네.”

샤를롯은 다시 한 번 피식, 실소를 흘렸다.

“하기사, 넌 우리한테 별로 관심이 없었잖아.”

“샤를롯 그건···.”

“알아. 그게 원래 네 성격이라는 쿨럭···!”

일순간 샤를롯의 몸이 크게 꺾이며 다시 한 번 바닥으로 피가 쏟아져내렸다.

새까맣게 죽은 피의 웅덩이는 샤를롯의 생명만큼이나 고여있었다.

“그만 말해라 샤를롯. 이 이상은···.”

“··· 됐어. 어차피 죽을 몸. 하고 싶은 말이라도 맘껏 하자.”

샤를롯은 입가의 피를 훔치며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어차피 죽는 마당에 하는 말인데. 카일, 어디가서 말하면 안된다.”

“······ 말 안한다.”

“노에미나 모르크루였다면 안 믿겠는데. 카일. 너라서 믿는다.”

샤를롯은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사실··· 나도 뮤리엘한테 마음이 좀 있었어. 너도 알다시피 뮤리엘이 좀 예뻐야 말이지.”

“······”

카일은 뭐라 할 말을 잃은 듯한 얼굴이었다.

샤를롯 또한 진심인지 아닌지 모를 표정으로 낄낄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샤를롯이 다시 입을 열려던 찰나.

“미모로만 따지면··· 레아도 그에 못지 않다.”

카일에게서 놀라운 말이 들려왔다?

‘응?’

“······?’

갑작스러운 카일의 말에 샤를롯과 시안.

둘 모두가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놀란 표정이라기보다는 벙찐 표정이었다.

아니, 카일이 저런 말을 할 줄 알았던가?

“어째, 나만 죽어가는게 아닌가봐. 카일, 네가 그런 말을 하고 말이야.”

샤를롯은 여전히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난 솔직히··· 네가 레아를 선택할 줄은 몰랐어. 레아가 내 동생이지만··· 여간 말괄량이가 아니잖냐. 반면에 뮤리엘은··· 얼굴 예쁘지. 성격 좋지. 여러모로 레아가 상대가 안돼. 아마 네가 너에 대한 뮤리엘의 진심을 알았더라면···.”

“알았다하더라도 내 선택은 변함 없었을 거다.”

카일의 단호한 답에 샤를롯의 말문이 잠시 막혔다.

그리고 확고한 카일의 표정을 바라봄에.

“뮤리엘이 괜히 좋아한 게 아니었네.”

샤를롯은 다시 한 번 피식, 실소를 흘려보였다.

다시 이어진 침묵.

그러나 이번 침묵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난 널 동경했어 카일. 하지만··· 한편으로 시기하는 마음도 있었지. 지금와서 고백하는데 아마 뮤리엘 때문도 있었던 것 같아.”

“······”

“남자인 내가 봐도··· 멋진 놈이었다고 넌.”

샤를롯은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그런 샤를롯에게 자리잡은 시기와 질투의 마음.

질투의 악마, 엔비리아가 파고들었다.

“그리고 네가 우리를 버리고. 또 레아를 버리고 홀로 떠났을 때. 그리하여 레아가 널 기다리겠다고 전당에 잠들었을 때. 내 삶이 모두 망가져버렸을 때. 난 너를 향한 증오를 떨쳐버릴 수가 없었지.”

그 증오의 마음 속.

분노의 악마, 이라리아가 파고들었다.

샤를롯은 그렇게 악마들에게 잠식되어갔다.

악마들은 그렇게 존재가 갖는 죄악 속을 파고들어간다.

존재에 기생하며 불멸(不滅)하는 존재.

“카일, 내가 본 너는 굉장히 뛰어난 사람이야. 언제나 상황을 냉철하게 바라봤고, 아무에게나 믿음을 주지 않았지. 나는 물론 모두가 그런 너를 의지했어. 너는 항상 나를 리더라 말해주었지만··· 사실 우리들의 리더는 내가 아니라 카일. 너였어.”

“말했다시피 우리들의 리더는 내가 아니라 너다. 네가 없었다면 우리는 이렇게 모이지 못했다. 지금의 우리는 없었고, 또 지금까지 올 수도 없었다.”

“죽어가는 마당에 빈말은 필요 없다니까.”

“빈말이 아니다.”

카일의 단호하고도 단호한 말.

그러나 샤를롯은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일 뿐이었다.

“······ 너와 등을 맞대며 악마들과 싸우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쩌다 이 꼴이 되어버린건지··· 쿨럭!”

어느덧 다가온 삶의 끝자락.

샤를롯은 생기 잃은 눈으로 카일을 바라봤다.

“카일. 나말고··· 다른 동료들도 악마들에게 잠식되었을거야. 네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미 알고 있다.”

“······ 내가 마지막이었구나.”

거봐, 우리들의 리더는 너였다니까 카일.

샤를롯은 뒷말을 삼키며 생기 잃은 미소로 낄낄거렸다.

“뮤리엘은··· 색욕을 품고 있어.”

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 순결해야하는 성녀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말이다.

그리고 세상의 진리에 대해 끝없이 갈망하는 존재, 마법사.

허나 진실은 때론 독이 든 열매요, 이를 외면할 줄 아는 것도 현명함일지니.

그런 의미로 마법사들만큼 어리석은 존재들은 없다 하던가.

“엘로디는··· 끝없는 지식의 탐욕에 먹혀버렸고.”

그리고 자연이라는 이치의 순환.

그와 조화로이 살아가는 주술사이자 정령술사, 노에미.

“노에미가 그렇게 많이 쳐먹을 줄 난 처음 알았어.”

노에미는 자연에 반하는 폭식과 탐식의 죄악에 먹혀버렸다.

또한 그 누구보다 근면성실한 대장장이.

“모르크루가 낮잠이라는 것을 자더라니까. 상상이 돼?”

그는 나태라는 죄악에 삼켜져버렸다.

그리고 샤를롯은 질투와 분노의 악마.

두 군주에게 삼켜져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카일.”

이 세상의 절대자를 잠식한 악마.

“넌··· 교만이지?”

교만의 악마.

일곱 가지의 대죄 중 첫 번째 죄악.

카일을 잠식한 악마는 다름 아닌 교만의 악마였다.

그러나 교만이라는 것은 겉보기로는 죄악으로 치부될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앞선 6군주의 죄악과는 달리 그다지 드러나는 것이 없으니까.

색욕은 존재의 타락을 갈구한다.

탐욕은 존재의 욕심을 갈망한다.

탐식은 끝없는 허기짐을.

나태는 게으름을.

앞선 6군주의 죄악은 뚜렷한 행동과 타락을 현실에 반영한다.

하지만 교만은 여타 특정할 것이 없었다.

고작해야 잘난 체 정도로만 치부할 수 있었다.

허나, 그깟 잘난 체가 무엇할 수 있을까.

이는 죄악이라 정의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교만이 이 세상의 절대자와 만났을 때.

그 어느 누구도 하늘을 치솟는 교만을 꺾어내릴 수가 없을 때.

그리하여 인간이 닿을 수 있는 교만의 끝.

“난··· 신(神)이 되고자 했다.”

카일은 홀로 신(神)과 싸워오고 있었다.

이것이 카일이 홀로 떠나야만 했던 이유였다.

이것이 카일이 타 차원으로 가야만 했던 이유였다.

이것이 바로 카일이 자신의 악마를 통제할 수 없었던 이유였다.

“카일. 하나만··· 하나만 약속해줄 수 있어?”

“말해라.”

“언제나 그랬듯. 방법을··· 방법을 찾아줄 수 있을까? 동료들을 구해줄 수 있을까? 레아를··· 레아를 구해줄 수 있을까?”

샤를롯은 간절함을 담아 물었고.

카일은 차마 답을 하지 못했다.

기약없는 약속이라도 해주어야하건만.

카일은 심히, 아주 심히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반드시. 반드시 찾아내겠다.”

카일은 끝내 거짓말과 같은 약속을 내뱉었다.

“너에게··· 언제나 무거운 짐만을 안겨주는 것 같네.”

샤를롯은 그런 카일에게 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들어 하늘을 바라봄에.

푸르디 푸른 청명한 하늘 아래.

세상을 구원한 고결한 영웅, 아르나이즈.

털썩.

그 첫 번째 아르나이즈는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

#

샤를롯이 죽고 난 이후.

카일은 정처없이 이 대륙의 어딘가를 거닐었다.

목적지도 목적도 없었다.

말 그대로 정처없이.

카일은 그저 이 대륙의 어딘가를 거닐었다.

그런 카일의 모습을 지켜보던 시안은 정말이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앞선 충격적인 진실도 그렇거니와.

지금 카일이 느끼고 있는 심정을 헤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이 싸움에는 끝이 없었다.

정확히는 결과가 정해진 싸움이었다.

존재가 갖는 죄악에 기반하는 악마들.

죄악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한 악마들은 끊임없이 부활한다.

존재가 죄악을 갖지 않는다면 악마들은 부활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경우가 가능한 경우는 딱 한 가지.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말살되었을 때 뿐이었다.

결국 이와 같은 비극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싸움은 반복되고 언제고 다시 이어진다.

무엇보다 지금의 비극조차 카일은 해결할 수가 없었다.

카일을 잠식한 교만.

절대자가 갖는 교만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죄악이 되니.

“커흑···!”

그것은 실재하는 신(神)과 다름 없었다.

콰아아아아아아─!!

일순간 카일의 마기가 들끓기 시작했다.

샤를롯을 죽인 어떤 심정의 틈이 생긴 것일까.

동료를 죽였다는 죄악의 발아인 것일까.

카일의 전신으로 흉측한 악(惡)의 힘이 끓어올랐다.

그리고 그건 여타 다른 악마들과 비견될 것이 아니었다.

세상 전체를 움켜쥐는 듯한 시선.

차원의 너머의 너머에 존재하는 격(格)

‘이, 이건···.’

시안의 전신이 덜덜, 떨려왔다.

닿을 수 없는 공포에 대적할 의지조차 일지 않는다.

격(格)의 자체를 논할 것이 아니다.

카일조차 지금 이 힘앞에 무릎 꿇고 있었다.

지금의 카일 앞에서.

카일이라는 신(神) 앞에서.

이 세상 만물은 한낱 피조물 따위에 지나지 않는다.

‘아윽···!’

사출되는 힘에 시안의 정신이 아려왔다.

심연의 너머를 봐서는 안된다.

저 아득한 존재를 봐서는 안된다.

이곳이 한낱 가상의 일이나, 신(神) 앞에선 하등 의미가 없다.

시안은 두 눈을 질끈, 감음에 정신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일순간 정신을 차림에.

‘뭐··· 야?’

풍경이 뒤바뀌어있었다.

언제, 어느 틈에라는 의문도 의미가 없을 정도로 갑작스러웠다.

새하얀 백광만이 존재하는 공간.

그 알 수 없는 공간이 눈앞에 펼쳐져있었다.

‘여긴···?’

시안은 당황스러운 심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시선을 들어 카일을 바라봄에.

“······!”

어째 카일 또한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던 것 같았다.

카일은 놀란 눈으로 주변을 훑었다.

본인 또한 어째서 이 공간에 왔는지를 인지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렇다는 건 카일이 의도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러면 대체 어떻게···?’

···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잠시.

“이상하네.”

어디선가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쩌어억─!

새하얀 백광의 공간이 갈라지며 한 사내가 천천히 걸어나왔다.

사내는 인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카일과 마찬가지로 흑발을 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의 카일은 은발의 형상을 띠고 있었다.

이는 레아를 만난 직후에 바뀐 머리색이었다.

그러니까 레아가 카일을 악마로 착각한 이후의 일.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오해를 피하고자 엘로디의 도움을 받은 결과였다.

처음엔 샤를롯과 같은 금발을 하고자했지만 불가능했다.

지닌 바 마(魔)의 힘이 강해서 엘로디의 마법이 제대로 안먹혔다나 뭐라나.

뭐, 어쨌든.

카일은 비록 은발이나 원래는 짙은 흑발이었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보이는 사내 또한 흑발이었다.

외모로만 본다면 시안과 비슷한 나이대.

그러나 세세히 따지면 시안보다 연상처럼 보였다.

또한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진 듯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본다면 그냥 무시할 법한 평범한 놈팽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시안은 결코 저 사내를 우습게 볼 수가 없었다.

최소··· 카일급이다.

그 이상의 경지는 가늠할 수가 없었다.

지금의 시안이 대적한다면 필패.

카일이 대적한다면···.

잘 모르겠다.

애초에 저 사내의 수준을 가늠하는 것조차 불가하다.

절로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사내는 말이 안되는 존재였다.

그걸 느낀 건 비단 시안만이 아니었다.

사내를 바라보는 카일의 얼굴 위로 뚜렷한 긴장이 떠올랐다.

그런 카일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타 차원의 초월자인가?”

사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관조자가 추방된 이후, 경계의 공간은 나말고 다른 누군가에게 개방된 적이 없는데.”

그리고는 천천히 시선을 들어 카일을 바라봤다.

카일은 그런 사내의 시선을 긴장 어린 눈으로 마주했다.

그리고 다시.

사내의 시선이 카일을 지나쳐 넘어갔다.

아니, 분명 사내의 시선을 카일을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체 어째서일까.

시안은 사내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사내가 카일이 아닌 시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이곳은 카일의 기억 속이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현실.

시안은 기억의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다.

결단코 사내가 시안의 존재를 인지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안은 분명 그러한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바로 그때.

띠링!

《경고! 기억 동기화율이 100%를 초과했습니다.》

《경고! 관리자의 인과 허용치를 초과했습니다.》

갑자기 눈앞으로 모바일 영주의 경고창이 떠올랐다.

새빨간 화면이 번쩍번쩍, 점멸하며 쉼없이 경고를 알려오고 있었다.

《관리자 보호를 위하여 강제로 로그아웃 합니다.》

그리고 떠오르는 또 하나의 경고창.

“아직 이곳에 올 때는 아닌 것 같네.”

그와 동시에 정체 불명의 사내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뭐지?’ 하는 의문이 들 틈도 없이.

화아아악! 하는 빛무리가, 시안의 시야를 덮쳐왔다.

#

시야를 가리는 빛무리에 일순간 풍경이 바뀌었다.

그리고 뒤바뀌는 풍경은 다름 아닌 황궁의 귀빈실이었다.

카일의 일지를 실행시키기 전에 있던 공간.

“돌아··· 온 건가?”

시안은 다시 원래의 현실로 돌아왔다.

《’DLC 컨텐츠 - 카일의 일지’를 종료합니다.》

그 증거로 시야 앞으로 하나의 알림창이 떠올랐다.

시안은 손을 앞으로 뻗어 X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카일의 일지를 실행시켰다.

다름 아닌 방금 전의 기억.

그 기억을 다시 한 번 봐야할 것 같았으니까.

그러나.

《과부하로 인하여 ‘DLC 컨텐츠 - 카일의 일지’가 실행이 불가합니다.》

《원활하고도 조속한 조치를 위하여 DLC 항목의 점검이 이루어집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

.

수많은 알림창과 함께 카일의 일지는 실행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과부하니 뭐니 하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인과의 과부하를 의미하는 것 같았다.

“난 돈을 쓴 적이 없는데?”

하지만 시안은 별 다른 돈을 쓴 적이 없었다.

애초에 카일의 기억을 보는 것뿐이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과부하가 걸려 점검에 들어가 버렸다.

“설마 방금 그 기억 때문에?”

정황상 그 기억의 여파로 이 지경이 된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말이 되나?”

단지 기억을 엿본 것만으로 인과의 과부하가 걸린다고?

“뭐야 대체.”

시안은 혼란스러운 정신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혹시 모바일 영주는 뭘 알고 있나?

시안은 의문과 동시에 성큼, 걸음을 옮겨 스마트 폰을 확인했다.

그리고 스마트 폰을 집어들려던 찰나.

“아뜨뜨!”

엄청난 열기에 그만 스마트 폰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마기를 끌어올릴 정도의 열기에 자칫 손이 익어버릴 것만 같았다.

어째, 스마트 폰이 아니라 파이어 볼을 만진 게 아닐까 싶었다.

아무래도 과부하로 인한 여파인 것 같은데···.

《꾸에에에엑···!!》

그 때문인지 모바일 영주가 익어가고 있었다.

익어가는 정도를 넘어 녹아내리고 있었다.

《살려줘어어어어어···..》

화면 위로 알림창이 떠오르는 모습이 참···.

마그마에서 기어나오는 좀비와 같아 보였다.

단순한 기억의 여파로 과부하가 걸린 모바일 영주.

“대체 그 기억은 뭐였던 거지?”

수많은 의문이 떠오르며 머릿속이 뒤죽박죽 얽혀왔다.

그렇기에 생각을 한 번 정리를 해봐야할 것 같았다.

기억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관련한 사항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해야할 것 같았다.

그러나 문득 들려온 소리에 시안은 그 생각을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똑똑.

-시안. 안에 있나?

노크 소리와 함께 문밖에서 들려오는 콘라드의 목소리.

시안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끼익, 하며 귀빈실의 문이 열렸다.

아무리 황태자라고 한들 약간의 무례가 있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시안은 그를 지적하지 않았다.

굳이 지적해서 무엇할까.

무엇보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콘라드의 표정.

“자네, 대체 그동안 여기서 뭘하고 있었던 겐가.”

그 표정이 상당히 다급해보였으니까.

“아, 그게···.”

시안은 말을 흐리며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이를 뭐라 설명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그러고보니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무엇보다 얼마 동안 카일의 일지를 읽은 것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뭐라 얼버무려야할까···.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아니. 아니네. 그건 나중에 묻도록 하고.”

콘라드가 고개를 흔들며 곧장 말을 이었다.

“지금 빨리 자네가 나서봐야겠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지금 황궁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네!”

“예? 황궁이 발칵, 뒤집혔다고요?”

시안은 저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갑자기 황궁이 발칵 뒤집히다니.

아니, 대체 누가 황궁을 뒤집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이렇게 갑자기?

“설마 엘란두르가···?”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은 당연 엘란두르였다.

그러나 진실은 시안의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다.

곤란함과 난감함을 합쳐놓은 듯한 콘라드의 표정.

“자네가 성녀 좀 말려보게나!”

“······ 예?”

시안은 저건 또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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