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화 - 드러나는 진실(1)
영주성 Lv.4 지하에 위치한 시안의 개인 연무장.
“확실히···.”
시안은 차분히 시선을 내려 멸살의 검을 내려다봤다.
“이해도가 다르네.”
그리고 앞선 추측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카일의 기억 덕분에 진행률이 오른 것이 맞았다.
정확히는 마혼수라검의 이해도가 증가했다.
조금 더 정확히는 비교를 할 수 있다 말할 수 있었다.
시안이 그동안 무엇을 잘못했는지.
카일과는 어떤 방식이 달랐는지.
그 동안은 잘못되어도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완성된 카일의 검을 보고 겪었음에, 그 기억을 토대로 잘못된 부분을 고쳐나갈 수가 있었다.
“이대로 꾸준히 수련만 한다면···.”
마혼수라검 최상급 진행률의 100%가 정말로 꿈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역시나.
“내가 엑시드의 경지에 발을 딛는다라···.”
대륙 역사상 6명만이 닿을 수 있었던 신화 속의 경지.
그 경지에 7번째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가능성이 보인다뿐이었다.
매일같이 뼈를 깎는 수련을 거듭해야만 했고.
그럼에도 닿을 수 있을지조차 여전히 미지수였다.
그러나 가능성이 충분히 보인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경이로운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시안은 어떤 고양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남은 카일의 기억을 마저 본다면 이해도가 더 높아지려나.”
아직 읽지 못한 카일의 기억.
그 기억에 대한 미련도 같이 느낄 수 있었다.
완전하지 않은 기억임에도 이 정도였다.
남은 기억 마저 읽는다면 이해도는 물론, 진행률이 더 상승할 터.
어쩌면 엑시드의 경지에 닿아버릴지도 몰랐다.
“그 정체 불명의 사내가 누구인지도 궁금하고···.”
무엇보다 개인적인 호기심도 있었다.
알 수 없는 백광의 공간에서 보인 사내.
그 사내는 대체 누구고, 카일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모바일 영주는 대체 언제 만난 건데?”
마지막으로 모바일 영주에 대한 미스테리까지.
여러모로 풀리지 않은 의문들은 남아있었다.
“정황상 카일이 모바일 영주에 대해 알고는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마지막으로 본 기억까지 관련한 이야기가 없었다.
모바일 영주에 관한 이야기는 일절 없었다.
일절 없다 못해 카일이 모바일 영주를 아예 모르는 것 같았다.
“카일이 모바일 영주를 만난 건, 그보다 더 이후의 일이라는 건데···.”
그럼 모바일 영주는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아니, 모바일 영주는 대체 무엇인 걸까.
이런저런 의문이 들던 찰나.
띠링!
《저에 대해서 궁금하신가욧?!》
시야 앞으로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이 떠올랐다.
망막 위로 투사하는 듯한 홀로그램의 창.
DLC의 기능으로서 스마트 폰이 없어도 이렇게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능 자체는 편리하긴 하다만···.”
가끔은 예전 스마트 폰이 그리울 때가 있었다.
《저의 정체에 대해서 궁금하신가요옷?!》
모바일 영주는 신이 난 기색으로 재차 알림창을 떠올렸다.
얼마 전까지 과부하로 지글지글, 익어가더니.
어느덧 많이 괜찮아진 모양이었다.
《궁금하면 500억!》
괜찮아진 것을 넘어 기운이 펄펄, 넘치고 있었다.
“500억은 개뿔.”
시안은 망설임 없이 알림창의 X버튼을 눌렀다.
500억이 뉘집 개이름도 아니고.
아니, 뉘집 개이름이면 시안부터가 그 집의 개가 되었을 터였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할인해서 50억!》
다시 한 번 모바일 영주가 알림창을 띄워올렸다.
“50억은 무슨.”
역시나 시안은 망설임 없이 X버튼을 눌렀다.
50억까지도 뉘집 개이름이라면, 역시나 시안은 그 집의 개로서 살아갈테니까.
그리고 다시.
《그럼 에누리까지 더해서 5···.》
“5억이면 할 만한데?”
떠오르는 알림창에 시안은 순간 혹했다.
5억이면 할 만하지 않은가.
일단 이번에 주전관에서 얻어온 골드가 약 10억 골드였다.
원래는 30억 골드에서 조디악 소드 대여비 9억 골드를 제하고 21억 골드.
여기에 DLC와 여러 기능들을 구매하느라 11억 골드를 추가 소모했다.
해서 현재 시안의 수중에 있는 골드가 10억 골드.
5억 정도면 당장이라도 결제할 수 있었다.
물론 5억이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4인 가족이 138만년을 숨만 쉬며 살아갈 수 있는 금액이 적을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모바일 영주의 정체를 알 수 있다?
시안은 기꺼이 지불할 의향이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일까.
《5··· 천억!》
순식간에 말을 바꾸는 모바일 영주였다.
“그럼 그렇지.”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알림창의 X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DLC 점검이 아직 끝나지 않음에.
아직 카일의 일지를 읽어볼 수 없음에.
“마저 수련이나 하자.”
시안은 다시 멸살의 검을 소환하여 수련을 이어나갔다.
#
그 이후로 시안은 거진 연무장에 틀어박혀있다시피했다.
뭐, 수련 말고 딱히 할 일이 없기도 헀다.
다이애나가 정보를 모아올 때까지는 말이다.
무엇보다 엑시드(Exceed)의 경지에 닿을 수 있다는 가능성.
그 가능성을 보고 난 덕분인지 몸이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시안은 하루의 대부분을 연무장에서 보냈다.
그렇게 4일 정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최상급 진행률 68.9%(+4.2%)]
시안은 무려 4.2%에 달하는 진행률을 추가로 올릴 수 있었다.
“오늘이 4일째니까···.”
단순 계산으로 하루에 1%를 약간 넘게 올린 격.
“한달이면 100%를 찍을 수 있겠는데?”
이 기세라면 한달 정도면 충분했다.
그리고 이는 다시 말해 한달 후면 엑시드(Exceed)의 경지에 발을 딛는다는 뜻이나 다름 없었다.
실로 놀라운 성장 속도.
설레지 않을 수 없는 마음.
“······ 아무래도 한달은 무리겠지.”
하지만 시안은 고개를 저어보였다.
어디까지나 ‘이 기세대로’ 라는 조건이 붙었으니까.
하지만 올라가는 진행률이 점점 더뎌지고 있었다.
“첫 날에 1.5%였다가, 둘째 날에는 1.1%였지?”
그리고 사흘 째는 0.9%
나흘 째인 오늘은 0.7%만이 오를 뿐이었다.
아마 날이 거듭할수록 오르는 진행률은 더 떨어질 터.
이대로라면 하루에 0.1%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럼 한달은 개뿔이 무슨.
1년도 솔직히 장담할 수 없었다.
“진행률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노력과 깨달음이 필요하다는 것이겠지.”
역시나 엑시드의 경지에 쉽게 닿을 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무엇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카일의 검이기도 했고.
“남은 카일의 기억을 더 본다면야 더 빨리 올릴 수 있겠지만···.”
《점검으로 인하여 ‘DLC 컨텐츠 - 카일의 일지’가 실행이 불가합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
.
“이 놈의 점검은 대체 언제 끝나는거야?”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다고 켄드릭과의 대련도 의미가 없고···.”
마스터 상급에 달하는 데스 나이트, 켄드릭.
켄드릭인 거진 대륙 제 1의 검과 같은 실력자였다.
하지만 그런 켄드릭과의 대련조차 크게 의미가 없었다.
현재 시안의 경지와 켄드릭의 경지.
그 격차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시안은 마스터 최상급을 넘어 엑시드(Exceed)에 발을 걸친 경지.
마스터 상급인 켄드릭과는 대략 1.5단계 차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스터 단계에서 1단계의 차이는 하늘과 땅차이였다.
평생을 노력한다한들 좁힐 수 없는 커다란 벽.
거기에 0,5단계의 격차까지 더해있으니 대련을 해봤자 큰 의미가 없었다.
일방적으로 켄드릭이 당하기만 할 뿐이었다.
결국 별 다른 방도가 없었다.
“꼼수 같은 건 통하지 않는다는 거지.”
꾸준한 노력을 차츰차츰 진행률을 올리는 수밖에.
쏟아지는 폭포는 결국 바위를 젖게만 할 뿐.
결국 바위를 뚫는 것은 한 방울씩 꾸준히 떨어지는 물방울이었으니까.
“다시 해볼까.”
시안은 마음을 다잡으며 멸살의 검을 소환했다.
그리고 마기를 끌어올리며 마혼수라검을 수련하려던 찰나.
“한스?”
일순간 연무장 밖에서 느껴지는 한스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빠른 발걸음과 기세를 보아하니···.
무언가 일이 생긴 듯한 눈치였다.
시안은 멸살의 검을 흩어버리고는 한스를 기다렸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지나.
“도련님. 수련 중에 죄송합니다.”
한스가 연무장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시안은 손을 살짝, 내저으며 물었다.
“괜찮아. 그보다 무슨 일 있어?”
“그것이···.”
한스는 약간의 뜸을 들이듯 말을 흐렸다.
시안은 차분히 한스의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내 들려온 한스의 말.
“신성 제국에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신성 제국에서?”
시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
영주성 Lv.4에 위치한 시안의 집무실.
시안은 눈앞에 있는 사제를 가만히 바라봤다.
푸른 자수가 새겨진 흰 법복을 입은 사제.
신성 제국의 일원이자 여명 교파의 일원인 데니스라는 사제였다.
“······”
데니스는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정확히는 놀람과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또한 분위기에 짓눌려 주변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곳 시안의 집무실은 단순한 집무실이 아니었으니까.
무려 영주성 Lv.4에 위치한 집무실이었다.
정확한 명칭은 ‘똥개도 제 앞마당에선 반절은 먹고 들어간다고욧 집무실! Lv.4’ 였나?
아무튼 그랬던 것 같았다.
한 마디로 이 집무실에는 상대의 기세를 억누르는 각종 버프가 둘러져있었다.
“시, 시안 백작님께 꼭 이, 이렇게 저, 저, 전하라고 하셨습니다아···.”
그리고 그것은 일개 사제가 감당하기엔 쉽지 않은 기운이었다.
정확히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현질의 기운이라 할 수 있었다.
뭐, 어쨌든.
안절부절하는 데니스를 바라보며 시안은 차분히 생각에 잠겼다.
정확히는 데니스가 한 이야기를 차분히 곱씹었다.
하지만 아무리 곱씹어봐도.
수 백번도 더 되뇌어봐도.
“신(神)을 죽여야한다?”
이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 알베르토··· 추기경 예하께서 그렇게만 말씀하신 터라···.”
데니스는 눈치를 보며 고개를 숙여보였다.
시안은 데니스를 바라보다 슬쩍, 시선을 옆으로 돌려 아리아를 바라봤다.
아리아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해보였다.
“알베르토 예하는 나도 알고 있는 분이야. 우리 여명 교파의 성의회장이거든.”
“성의회장?”
“여명에서 주관하는 성의제를 총괄하는 사제인데··· 대충 우리 여명 교파의 2인자? 넌 그냥 그렇게 이해하면 돼”
아리아의 답에 시안은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돌려 데니스를 바라봤다.
이 데니스라는 사제는 그 알베르토라는 추기경이 보낸 사제였다.
교단의 복잡한 사정 같은 건 일단 옆으로 치워두고.
한 마디로 아리아와 같은 여명 교파의 사제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여명은 아리아가 이끌고 있는 교파였다.
즉, 아리아 쪽의 사람이라는 뜻이나 다름 없었다.
따라서 신성 제국의 수작같은 것은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신(神)을 죽여야한다라···.”
그렇다면 이 개소리가 진심이라는 뜻인데···.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시안은 도무지 저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데니스가 다짜고짜 저렇게 말한 건 아니었다.
앞서 현재 신성 제국의 사정을 충분히 설명하면서 마지막 말에 저런 이야기를 꺼내었다.
“예하께서··· 그리 전하면 아, 아실 것이라고···.”
문제는 그 마지막 말이 워낙 강렬하다고 해야할까.
그리고 그렇게 전하면 알 거라니?
시안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신이 존재하는 거였어?”
“글···쎄?”
이에 대해 아리아도 의문을 표해왔다.
아리아는 신의 힘을 사용하는 강대한 성녀(聖女)였다.
따라서 신(神)과 가장 가까운 존재는 다름 아닌 아리아일 터였다.
그런데 그녀조차 신의 존재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신성력이 신의 힘이라는 것부터가 확실하지 않았다.
물론 교단의 사람들은 신성력을 신의 힘이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교단에서 ‘믿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세상의 이치를 탐구하는 마법사.
그들은 신성력을 신의 힘이라 규정하지 않는다.
오러와 같은 세계의 법칙을 기만하는 하나의 이적으로만 바라볼 뿐.
애초에 마법사들은 신(神)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한 마디로 신이란 그 존재가 명확하지 않은 존재였다.
그런 신을 죽여야한다니.
“대체 뭔 개소리─.”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던 찰나.
‘잠깐.’
시안의 뇌리로 한 가지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신(神).
신에 대한 정의는 굉장히 많은 것들이 있었다.
교단에서 신학자들이 정의하는 개념은 물론.
마법사들이 내놓은 이론만 따져도 도서관을 하나를 뚝딱, 만들 수 있을 정도니 말이다.
이에 대해 아르나이즈이자 대마도사인 엘로디.
그녀도 신(神)에 관하여 수많은 생각과 지식들을 남겼다.
그러나 대중적으로 알려진 개념은 ‘전지능한 절대자이자 이 세상의 창조주.’ 이렇게들 많이 알려져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힘들고 어려울 때 마음 속으로 기대는 존재.
누군가는 그런 신을 두고 ‘전일 근무 가능한 무보수 만능 하인.’ 이라 말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런 우리들의 신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할 것이라 ‘믿는 것’ 뿐이었다.
그렇기에 신을 죽이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할 수 있냐 없냐를 떠나 일단 존재하지 않으니까.
존재하지 않는 존재를 어떻게 죽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만일 신이 정말로 실재한다면 어떠할까.
실로 말도 안되는 일이나 시안은 딱 한 번.
신의 존재를 두 눈으로 직접 본 경험이 있었다.
직접 봤다, 라는 것은 조금의 과장이었다.
간접적으로 겪어봤다, 라는 말이 가장 정확했다.
다름 아닌 DLC 컨텐츠 - 카일의 일지.
그 기억 속에서 시안은 신(神)의 존재를 목도했다.
존재가 저지르는 근원의 죄악 중 가장 첫 번째 죄악, 교만.
그 죄악에서 태어난 교만의 악마.
교만의 악마는 교만의 끝이라 불리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 교만이 이 세상의 절대자와 만났을 때.
그 어느 누구도 하늘을 치솟는 교만을 꺾어내릴 수가 없을 때.
그리하여 인간이 닿을 수 있는 교만의 끝.
시안은 그 교만의 끝에서 신(神)이 되려는 자를 목도했다.
‘카일.’
이 세상의 절대자를 잠식함으로써 말이다.
그것은 무려 천 년전의 일.
그러나 악마들은 천 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금 부활했다.
해서 시안은 현재까지 악마 6군주와 대적했다.
나태, 색욕, 탐욕, 탐식, 분노, 질투.
악마 6군주와 싸워 그들의 죄악을 꺾었다.
그러나 교만의 악마는 만난 적이 없었다.
시안은 아직 교만의 악마를 마주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가 대적하지 않을까,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하여 지금.
신성 제국 루테아는 신(神)의 이름 아래 모인 국가다.
그들은 모두 신의 뜻 아래로 귀결된다.
그들에게 있어 신의 존재는 말 그대로 신(神)이다.
신의 말씀이 있다면 무조건적으로 맹신하고 따른다.
그래서··· 그래서였다.
갑자기 신성 제국이 기이한 행동을 보인 이유가 말이다.
돌연 정신 나간 행보를 보인 이유가 말이다.
전제부터가 틀렸었다.
가정 자체가 잘못되었었다.
신성 제국에서 황혼의 입지가 강해진 것이 아니었다.
황혼의 교파가 신성 제국을 집어삼킨 것이 아니었다.
“이사벨···.”
이사벨이었다.
이사벨이 신성 제국 전체를 쥐고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하나.
신(神)의 존재.
이사벨은 신(神)의 권위를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이사벨이 신(神)이라는 뜻이 아니었다.
이사벨은 말 그대로 신의 권위만 사용하고 있을 뿐이니까.
신(神)은 따로 있었다.
확실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악마와 결탁한 엘란두르.
지난 날, 듀라크를 잠식했던 질투와 분노의 악마.
모든 정황이 그를 가리키고 있었다.
엘란두르의 장자이자.
한때는 시안의 맏형이었던 자.
또 한때는 제국의 별이었던 자.
그러나 지금은 교만의 끝에서 신(神)이 되려는 자.
“카이···.”
카이 엘란두르.
그가 바로, 교만의 악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