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311화 (311/322)

311화 - 결전의 운명(2)

루벤을 향해 일어난 100만의 신성 제국군.

“신성 제국에서 루벤을 공격한다고?”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렇다는데?”

그 소식은 자연스레 대륙 전체로 퍼져나갔다.

딱히 알리거나 퍼트리려는 의도는 없었다.

되려 쉬쉬하고 소문을 부정하려는 움직임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앞서 교황이 사로잡힌 일.

더하여 신성 제국이 몰래 루벤을 침공한 사실.

“세상에나··· 그런 일이 있었다고?”

“나도 믿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아.”

그 사실들이 서서히 밝혀지면서 소문은 겉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애초에 100만이라는 거대한 규모의 병력이 모이고 움직이는 일이었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이었다.

“대체 신성 제국이 왜?”

“아니 진짜 대체 왜?”

그렇기에 사람들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신성 제국의 행동이었으니까.

물론 명분이야 있기는 있었다.

“명분은 이단의 교리를 처단하기 위함이라는데···.”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명분은 어디까지나 명분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지 않았다.

“그보다 루벤은 어쨌거나 샤를롯 제국의 영토잖아.”

“그럼 신성 제국에서 샤를롯 제국의 국경을 무단으로 침범했다는 뜻인데···.”

당연하게도 그를 좌시하고 있을 황제가 아니었다.

반드시라고 할 만큼 문제를 삼을 터였다.

따라서 그에 따른 신성 제국의 대응은 정해져있었다.

일단 고개를 숙이는 사과.

하지만 신성 제국에서 내보인 대응은 전혀 예상 밖의 일이었다.

“되려 100만 대군을 진군시켰다?”

초강수.

아니, 초강수를 넘어 뒤를 생각하지 않는 수였다.

그리고 그 초강수는 어마어마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거··· 진짜 큰일 나는 거 아니야?”

샤를롯 제국과 신성 제국의 전쟁.

대륙의 두 패자가 맞붙는 사상 초유의 전쟁.

만일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루벤을 시작으로 샤를롯 제국 전체를 먹으려는 생각인 건가···?”

신성 제국은 샤를롯 제국을 집어삼킬 생각이었다.

현재 이 대륙에서 루벤의 저력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따라서 루벤을 무너뜨리면 샤를롯 제국도 휘청거린다.

휘청거리는 샤를롯 제국이 무너지면 모든 대륙이 연달아 쓰러진다.

그야말로 전 대륙을 향한 신성 제국의 야망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시발점이 바로 루벤이라 할 수 있었다.

루벤이 무너지냐.

루벤이 버티냐.

대륙의 운명은 여기서 결정된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 이게 무슨···.”

“갑자기 이런 일이···.”

대륙 전체는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에 빠졌고.

동시에 대륙의 모든 이목이 루벤에 집중된 가운데.

어둠의 숲에 위치한 루벤.

“신성 제국의 병력들은 어디쯤에 있죠?”

“최소 오늘 내로 루벤의 영역에 당도할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이란 말이죠···.”

다이애나의 보고에 엘레나가 작게 말을 삼켰다.

최소 1주 정도의 시간은 있을거라 생각했건만.

생각보다 너무도 빠른 진군 속도였다.

역시나 다이애나 또한 그에 따른 의문을 표해왔다.

“병력의 규모치고 진군의 속도가 이상하리만치 너무 빠릅니다. 병사들의 체력을 생각하지 않고 진군한다고 한들 이 정도는···.”

병력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진군의 속도는 그만큼 늦어지기 마련이다.

병사들은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으니까.

병사들이 먹고 마시는 보급품의 행렬부터가 문제였다.

보통 보급 부대는 본대의 3배로 산정한다.

따라서 100만의 병력을 모으면 자그마치 300만의 보급 부대가 있어야만 한다는 뜻.

당연하다시피 그 진군의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진군의 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하나.

“뒤를 생각하지 않고 진군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보급 따위는 무시한 채 그저 진군만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먹지도, 잠을 자지도 않고 진군만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당연하게도 그게 가능할리가 없었다.

그러나 신성 제국이라면 가능했다.

신(神)을 위한 맹목적인 믿음.

그것 하나로 100만의 대군을 움직일 수 있었다.

신성 제국의 100만 대군은 하나의 광신도들과 다름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전쟁을 치를 체력이 없으면···.”

“속전속결로 끝내겠다는 뜻이에요. 또한 신성력을 통해 어느 정도 회복할 수도 있을테고요.”

그리고 이를 다른 의미로 말하면.

“한 번만 버티면 이 전쟁은 우리의 승리예요.”

인간의 기본적인 생리 현상조차 도외시한 진군.

그 전쟁이 오래 지속될 수 있을리가 없지 않은가.

아무리 신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한들.

저들은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밥을 먹지 않으면 힘이 빠지고.

잠을 자지 않으면 정신이 빠지는 인간.

“하루.”

저들은 전쟁의 하루를 버티지 못할 것이다.

당연히 이사벨이라고 모르지 않았을 터였다.

그럼에도 이런 짓을 감행하는 이유는 하나.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다급함이 있다는 뜻이겠죠.”

100만의 신성 제국군을 한낱 장기말로 써버릴 정도로 말이다.

“······”

“······”

엘레나의 말에 회의실에 묵직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엘레나의 통찰력도 통찰력이었거니와.

이렇게까지 한 이사벨에 대해 진절머리가 났기 때문이었다.

어떤 의미로는 이사벨이 악마와도 같아보였다.

“저들은 하루 안에 모든 걸 쏟아부을거예요.”

엘레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을 내뱉었다.

상황이야 어찌되었든 한 번은 버텨야한다.

100만의 광신도들이 쏟아내는 총력전을 한 번 버텨내야한다.

다가오는 전쟁을 피할 수는 없었다.

엘레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루카스 경비대장님. 준비는 어떻게 되었죠?”

“신기전을 비롯한 오룡거의 출전을 모두 마쳤습니다. 병사들 또한 만전에 기한 상황입니다.”

루카스는 절도 있는 어투로 답을 해보였고.

엘레나는 그에 대하여 추가로 묻지 않았다.

루카스가 지휘하는 루벤의 병사들은 정예 중의 정예였다.

하루가 멀다하고 마수와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이는 이들.

많은 전쟁을 겪어온 베테랑 중의 베테랑들이다.

그야말로 대륙의 전무후무한 전력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 이들이 만전에 기했다는데 무슨 할 말이 더 필요할까.

“다른 분들도 모두 준비가 되셨나요?”

엘레나는 루카스를 지나쳐 다른 이들에게 물었고.

“간만에 망치를 벼렸더니 감회가 새롭더구려.”

“마법 병단들도 모두가 전투 준비를 마쳤습니다.”

“수인족들 또한 모두 발톱을 세우고 대기 중입니다.”

그들 역시나 모두 준비를 마친 상황이었다.

“분관조님께서는···.”

-걱정마 이것아. 이 언니는 언제든 준비되어있으니까.

-흑사자 기사단들 또한 준비를 마친 상황입니다.

레아는 코웃음을 치며 답을 해보였고.

켄드릭은 푸른 안광을 일렁거리며 답을 해보였다.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모든 준비를 마친 상황.

바로 그때.

대회의실의 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왔다.

입고 있는 복장을 보아하니···.

루벤의 정보부 소속의 정보원인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사내는 곧장 다이애나에게로 걸어갔다.

그리고 귓속말로 다이애나에게 무언가를 속닥속닥.

다이애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엘레나는 그런 다이애나를 바라봤고.

엘레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또한 모두 다이애나를 바라봤다.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시선 속.

“신성 제국의 병력들이 지금 막, 루벤에 당도했다고 합니다.”

다이애나가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시야 앞으로 보이는 루벤의 풍경.

그런 루벤을 빼곡히 에워싼 새하얀 갑옷의 전사들.

그리고 그런 전사들의 중심 속.

“······ 이유가 있었나.”

이사벨은 루벤을 바라보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이사벨이 루벤에 와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보고로야 수없이 들었지만,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두 눈으로 직접 보니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왜 엘란두르의 30만 대군이 생채기조차 낼 수 없었는지.

왜 교황의 본대가 쪽도 못쓰고 사로잡혀야만 했는지.

사람들이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떨어대었는지.

“······”

그 모든 것들이 단번에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이사벨은 가만히 루벤의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생각에 잠긴 이사벨의 옆.

“어떻게 할까요.”

새하얀 백합을 닮은 머리색의 여인, 레이첼이 다가와 물었다.

이사벨은 생각에 잠긴 눈빛을 계속 이어나갔다.

당연하다시피 루벤을 공격해야함은 변함 없었다.

그러나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요인이 하나 있었다.

“교황 성하는 어찌할까요.”

바로 교황이 루벤에 포로로 붙잡혀있다는 것.

물론 현재 신성 제국을 쥐고 흔드는 것은 다름 아닌 이사벨이었다.

교황이 포로로 붙잡혀있다고 한들 큰 의미는 없었다.

신성 제국의 명령 체계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100만 대군을 이끌고 올 수 있었던 것도 다 이 덕분이었다.

그러나 교황은 어디까지나 교황.

신성 제국의 1인자라 할 수 있는 존재였다.

아무리 그래도 교황이 포로로 붙잡혀 있는 곳을 함부로 공격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이사벨은 망설였고.

동시에 망설이지 않았다.

이사벨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사뿐한 발걸음으로 성전사들 앞으로 지나쳐갔다.

그리고 100만 대군의 가장 앞에 서보임에.

“협상을 제안한다.”

이사벨은 루벤을 향해 입을 열어보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의외네요. 곧바로 공격해오실 줄 알았는데.”

청아한 목소리와 함께 루벤의 방벽 위로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태양빛을 닮은 금발의 여인.

화사함과 차가운 분위기가 공존하는 묘한 매력의 미인.

“황녀가 여기엔 어쩐 일로 있지?”

이사벨은 그녀가 제국의 황녀, 엘레나임을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이미 알고 계신 줄 알았습니다만.”

“알고는 있었다. 다만, 그 이유가 궁금한 것일뿐.”

엘레나와 이사벨.

서로 간의 거리는 상당히 멀었다.

서로의 목소리가 결코 닿을 수 없는 거리였다.

그러나 엘레나는 마법의 힘을.

이사벨은 신성의 힘을.

서로 다른 두 힘은 두 사람을 바로 앞에 마주한 것처럼 대해주고 있었다.

“현재 네가 루벤의 책임자인가?”

이사벨은 말했고.

엘레나는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의 지위는 크나큰 차이가 있었다.

제국의 황녀와 후작가의 부인.

어느 쪽이 더 높은 지위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말을 저렇게 한다는 것은 상당한 무례였다.

“어째, 부인께서는 제가 제국의 황녀라는 사실을 잊으신 것 같네요.”

“이미 반역을 저지른 마당에 그딴 지위를 들먹이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

이사벨의 단호한 대답.

엘레나는 잠시 말문이 막혀버렸다.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말문이 막힌 엘레나의 모습에 이사벨은 코웃음을 쳐보이며 재차 입을 열었다.

“길게 묻지 않겠다. 교황과 시안을 넘겨라. 그럼 이대로 물러나겠다.”

“교황 성하는 그렇다 치고··· 시안 백작님을 찾으시는 이유가 무엇이죠?”

“어미된 자로서 자식의 안부를 묻는 것이다. 별 다른 이유가 필요한가?”

“그렇다면 넘겨라와 같은 말을 하지 않으시겠죠. 또 100만 대군을 뒤에 두고 하실 말씀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요. 무엇보다···.”

엘레나는 작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교황 성하를 순순히 넘겨달라는 것도 좀 그렇지 않나요? 저희 루벤을 무단으로 침략한 침략자입니다만.”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필요하다면요.”

“국제법상 귀족 지위를 지닌 포로는 함부로 처단할 수 없다. 제국의 황녀라는 자가 그런 법을 모르지는 않을─.”

“그럼 정정하죠. 교황 성하께서 인질로 잡혀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죠?”

“······”

엘레나의 말에 이번엔 이사벨이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엘레나의 말이 갖는 의미는 단순했다.

교황은 포로가 아니라 인질이다.

필요하다면 교황을 죽일 수도 있으니 나대지 말라.

이 말은 에둘러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아무리 인질이라도 귀족을 죽이는 건 불가하다.

하물며 교황을 죽이는 것은 더더욱 불가하다.

그러나 엘레나의 의지는 확고했다.

루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마치 전쟁이 무엇인지 알기라도 하듯.

전쟁에선 오로지 승리만이 유일한 가치임을 알기라도 하듯.

지금 루벤의 방벽 위에 서있는 엘레나는 어리숙한 이가 아니었다.

“······ 온실 속의 화초인줄 알았거늘.”

“칭찬으로 받아들일게요.”

엘레나는 싱긋, 미소로 화답해보였다.

“그리고 이런 협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네요. 후작 부인이나 저나.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에요.”

“그게 무슨 뜻이지?”

“직접 검을 맞대고 목숨을 거는 건 병사들이잖아요?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도 모두 병사분들의 공이죠. 저나 후작 부인처럼 뒤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요.”

일순간 이사벨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엘레나의 말.

결국 이사벨, 너는 입만 나불대는 것이지 않느냐.

너는 검을 들고 목숨을 걸지도 않는 겁쟁이지 않느냐.

“후작 부인께서는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지만요.”

엘레나는 다시 한 번 싱긋거리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 건방진.”

그리고 이사벨은 끝내 분노라는 감정을 떠올리고 말았다.

꽈드득!

주먹이 거세게 움켜쥐어지며, 담담하던 이사벨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더 이상의 협상은 의미가 없다.

이사벨은 지체없이 등을 돌렸다.

“협상은 결렬된 것으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편할대로.”

들려온 엘레나의 말에 이사벨은 이를 씹으며 중얼거렸다.

어차피 협상은 한낱 명분일 뿐이었다.

설령 교황과 시안을 넘겨준다고 한들.

이사벨은 루벤을 이 대륙에서 지워버릴 생각이었다.

이건 단순한 애들 장난이 아니었으니까.

무려 100만 대군이 동원된 전쟁이다.

죽고 죽이며,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오로지 승리만이 유일한 가치인 참혹한 전쟁.

전쟁에선 윤리와 도덕, 법도 따위는 의미가 없었다.

오직 생존과 승리.

이사벨은 그런 전쟁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엘레나 또한.

전쟁의 가치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현 시간부로 신성 제국을 루벤의 침략자로 여기겠습니다.”

일순간 뒤쪽으로 엘레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싶은 생각도 잠시.

키이이이이이잉─!!

등 뒤로 어마어마한 마력의 파동이 터져나왔다.

공간 전체가 파르르, 떨려오는 힘.

그 힘의 여파에 살갗의 피부가 약하게 진동했다.

이사벨은 저도 모르게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곳.

“전쟁에서 눈앞에 상대의 지휘관이 있는데. 곱게 돌려보낼리가 없잖아요?”

그곳엔 미소 짓는 엘레나의 모습과.

푸슈슈슈슈슉!!

슈슈슈슈슉!!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화살의 소나기.

이사벨은 하늘을 새까맣게 물들이는 화살의 소나기를 바라봄에.

“······!!”

품격과 품위 따위는 잊어버린 채.

이사벨은 경악 어린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협상이 끝나자마자 하늘을 뒤덮은 신기전의 화살 소나기.

이는 실로 비겁한 행동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쟁에는 오로지 승리만이 유일한 가치였다.

이사벨을 향해 쏟아져내리는 화살.

성전사들이 부리나케 튀어나와 이사벨의 앞을 가로막았다.

“방벽 전개!”

“성모(聖母)님을 보호하라!!”

화아아아악!

터져나온 신성의 빛과 함께 거대한 방패가 생성되며 이사벨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윽고 화살 소나기가 빛의 방패와 충돌했고.

콰콰콰콰콰쾅!!!!

꽈아아아앙!!!

천지 간을 뒤덮는 굉음과 함께.

“커헉!”

“끄아악!”

성전사들이 하나 둘씩 피를 토하며 쓰러져갔다.

자욱히 피어난 먼지 안개 사이로 초토화 된 풍경이 비쳐보였다.

멀쩡이 서있는 것은 오로지 이사벨뿐이었다.

“······!”

이사벨은 충격 어린 두 눈을 크게 떠보였다.

공성 병기조차 뚫지 못하는 신성의 방벽이었다.

웬만한 마법사들의 공성 마법도 막아내는 신성의 방벽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버티질 못했다.

단 한 번의 폭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정확히는 폭격을 막아낸 대가로 성전사들이 모조리 휩쓸려버렸다.

이게··· 이게 어딜 봐서 화살이란 말인가.

대체 이게 어딜 봐서···!

키이이이이잉─!!

경악 어린 정신 사이로 마력의 파동이 또 다시 터져나왔다.

설마설마하며 바라본 하늘 위.

푸슈슈슈슈슉!!

슈슈슈슈슉!!

수많은 화살의 소나기가 다시 한 번 하늘을 새까맣게 물들이고 있었다.

“이, 이게 대체···!”

이사벨은 도무지 현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어느 정도 보고를 들어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보고로 듣는 것과 직접 두 눈으로 마주한 현실.

그것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존재했다.

“방벽을 전개하라!”

“성모(聖母)님을 최우선적으로 보호하라!”

이윽고 또 다른 성전사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이사벨의 앞을 가로막았다.

“모두 진격!”

“사특한 이단의 무리들을 처단하라!”

와아아아아아아아─!!

그와 동시에 100만의 병력들이 일제히 루벤을 향해 진격을 해보였다.

루벤과 신성 제국과의 전쟁.

“신기전 화살 재장전! 신기전의 화살을 소모할 때까지 방벽 안에서 버틴다!”

“마법 병단은 메모라이즈 된 마법을 시전하라!”

“화력을 아끼지 말고 쏟아부어라!!”

꽈꽈꽝!!

콰아아아앙!!!

그 전쟁의 서막은 갑작스럽게 열렸다.

“성모님 피하셔야 합니다! 이쪽으로!!”

이사벨은 성전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후방으로 물러났다.

정확히는 후방으로 물러나려던, 바로 그때였다.

네가 시안을 괴롭혔던 계모라지?

목덜미를 훑는 듯한 싸늘한 목소리.

그와 동시에 이사벨의 움직임이 덜컥, 굳어버렸다.

목소리··· 라기보다는 뇌리에 직접 박히는 의지.

이사벨의 고개가 천천히 뒤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보인 것은··· 어떤 여인 형상이었다.

여인이 아니라 여인의 형상.

그 여인의 형상에 이사벨은 저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준비한 전쟁이었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보았다.

아니, 아무리 루벤이라도 이 정도 전력 앞에서는 맥을 못출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사벨이 눈앞의 여인을 바라봤을 때.

긴 백은색의 머리와 초점 없는 회백색의 눈동자를 마주했을 때.

-곱게는 못 보내주지.

더하여 들려오는 의지와.

끼야아아아아아악!!

터져나오는 귀곡성에 사념이 날뛰기 시작했을때.

이사벨은 가슴 속, 불안감이 짙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이 전쟁에서 패배할 수 있다는 불안감.

자신도 여기서 죽을 수도 있다는 실로 아주 불길한 예감.

“하흐흑···!”

이사벨은 처음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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