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인도양 출어식
광필이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오 정말요? 얼마나요?”
“일 인당 2천 환.”
“에게. 고작 그게 답니까? 누구 코에 붙이라고. 목숨 내놓고 싸운 값치곤 너무 짜네.”
“임마, 그것도 나름 큰돈이야. 이 녀석 돈 좀 벌더니 간이 부었구만.”
“허허, 그렇습니까?”
멋쩍게 웃는 광필이가 머리를 긁자, 오재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 액수를 떠나, 국가에 기여한 게 뿌듯한 거죠. 그보다 이 샥스핀 수프는 기가 맞히게 맛있습니다. 식감이 쫄깃한 게 미식가들이 샥스핀, 샥스핀 타령하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그렇지? 나도 솔직히 선입견이 없지 않았는데 생각이 달라지더군. 공급선만 확보하면 이번에 정식 메뉴로 넣어 보려고. 어이, 안 요리사님. 한 그릇만 더 주시죠.”
“예, 사장님. 여기 바로 대령하겠습니다!”
수리를 끝낸 지평호는 제주 동부와 남해 인근 해역으로 나가 조업을 계속했다. 상어 연승 조업에 한 번 성공하고 난 뒤라 그런지 선원들 사기도 높았다. 독도 조업에 성공한 뒤로 운빨이 트였는지 연이어 만선을 기록한 것이다.
그렇게 잡은 돔배기는 경북 안동과 경주로 팔려 나갔고, 지느러미는 요리용으로 가공되어 홍콩이나 싱가폴 등지로 수출되었다.
그사이 정부에서는 논공행상이 이루어졌다. 해당 전투에 참가한 해경은 1계급 특진, 박격포를 갈긴 특무상사 출신 서기륭은 특채로 임용되었다. 독도의 수비도 추가로 강화되어 새로이 설치된 포진지에서는 M2 60mm급 박격포가 추가로 설치되었고, 또한 동도 정상부근에 약 10m 높이의 무선 방송용 안테나 2개를 설치하고 항시 경계 태세를 갖출 수 있도록 했다.
원양어업과 관련해서도 괄목할 변화가 생겼다. 표창 수령을 위해 경무대로 갔던 양재문 선장이 작심하고 직언을 올린 것이다.
“각하, 참치 연승 조업을 시도하고 있지만 협의 진행상 아직 별다른 진전이 없습니다. 인도양 진출은 수산업 발전에 한 획을 긋는 일이며 국내 수산업 발전을 위해 선행되어야 할 일입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이 필요합니다.”
“흠. 알겠소. 내 해무청장에게 이야기해 둘 테니, 최대한 빨리 추진하도록 하세요. 걱정 말고 출어 준비에만 열중해 주시오.”
“감사합니다. 각하!”
대통령의 명이 떨어지자 참치 연승과 관계된 실무도 속도를 냈다.
저번에 한일 협상을 파토 낸 일로 입지가 위축되었던 이만승으로서는 일본과의 협상에서 쓸 만한 패가 생긴 것은 꽤 고무적인 일이었다. 반면 이번 일로 곤경에 처한 자민당으로서는 어떻게든 억류된 해상보안청 대원을 빨리 데려와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 결과 한국 정부와 새로 출범한 기시 정권과 물밑 합의가 타결되었다. 한국은 억류해 둔 해상보안청 대원을 송환하고 표류 등 불가피한 사유가 발생할 경우, 나포를 자제하는 것으로, 일본 측에서는 중고선 출입 및 항구 정박과 관련한 규제와 관세 장벽을 상대적으로 완화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국교 회복까지는 아직 멀었지만, 경제적인 부분에서 다소 양보를 받아 낸 것이다.
그렇게 몇 달 후, 대망의 출어식 당일이 되었다.
<튜나 연승어업 시험 조업단 인도양 출어>
1957년 6월 26일, 그날따라 장맛비가 쏟아진 가운데 부산항 제 1부두 인근 해양경찰대 강당에서는 경찰악대의 팡파르를 시작으로 출어식이 거행되었다.
주한 경제 조정관실 수산고문관 모건, 해무부 어로과장인 이재오 지도관. 내빈으로는 이환일 상공부 장관과 안창한 수산중앙회장, 민의원 의장인 석만춘을 비롯해 국회 상공위원장, OEC 부산지부장 등 사회지도층이 두루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진용이 그러한 만큼 출어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축사를 맡은 고위 관료들은 돌아가며 한마디씩 덕담을 던졌다.
“이번 출어는 곧 수산강국으로 우뚝 설 대한민국의 첫걸음입니다. 부디 지평호가 좋은 성과가 있길 바랍니다.”
“나라가 발전하는 길은 바다에 있다 생각합니다. 이번 항해를 대양 영토 개척이라 생각합니다. 청해진을 나서는 장보고의 마음으로 진력하시기 바랍니다.”
태동산업 심익태 사장의 인사말로 시작된 출어식은 상공부 장관의 축사, 홍재무 해무청장의 격려사 순으로 이어졌다. 이에 대한 남 단장의 답변도 자못 의욕적이었다.
“이번 시험 조업은 정부 사업 계획상 OEC와 해무청, 중앙 수산 시험장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사업입니다. 이번 시험 조업에 사용되는 지평호는 미군 오리건주 아스토리아 항에서 건조된 종합 시험선으로 총톤수 230톤, 600마력의 힘을 가지고 있고 냉동 냉장 설비와 무선 방향 탐지기, 어군 탐지기, 측심기 등 최첨단 설비로 무장하고 있는 최신예 선박으로, 선원들 역시 각고의 심의를 거쳐 가려 뽑은 인재들인 만큼 조업 성공에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OEC 수산고문관인 모건이 자신 있게 말했다
“이번 2개월간의 시험 조업에서 본인은 선장을 지낸 나의 경험을 발판으로 어부들로 하여금 조업 방법과 어군 탐색 요령, 어구의 운용법과 투승 및 양승법 등 구체적이고 상세한 부분에 걸쳐 기술을 아낌없이 전수할 예정입니다.”
모건 씨의 언변을 끝으로 공식 출어식이 끝난 후에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이 있었다.
단상에 선 양재문 선장을 향해 기자 하나가 질문을 던졌다.
“우리 원양어선이 지금 가려는 어장은 적도 해역이라 들었는데요. 왕복 거리만 5,000해리가 넘는데 기후조건도 불량하고 고온 다습한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 대비되어 있습니까?”
“분명 여러모로 어려운 점이 있겠지만 기술적인 면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아까 말한 대로 우리 지평호는 최첨단 설비로 무장한 배입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시험 조업인 만큼 사명감을 갖고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여러 질문이 계속되었지만 이미 예상했던 질문들이던 만큼 답변이 술술 나왔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나이든 기자 하나가 손을 들며 말했다.
“그쪽 분 말씀하세요.”
“오성일보 김신제 기자입니다. 세간에서는 지평호를 흰 코끼리라고 부르는데요. 소위 말해서 천덕꾸러기라는 말씀이죠. 지금껏 막대한 관리비를 소모한 지평호가 조업에 실패할 경우, 그 피해가 만만찮을 텐데. 그때를 대비한 추가 대책은 있습니까?”
“일단 저희는 조업 실패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 베테랑 선원들과 가장 우수한 인력을 뽑아 이번 튜나조업에 만전을 기했으니 반드시 실적을 쌓아 돌아올 겁니다.”
“그건 희망 사항이고, 생각대로 일이 안 풀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참치 연승에 대해 경험 있는 선원들도 없고, 어장이 어디인지도 잘 모른다고 들었습니다.”
상당히 거슬릴 법한 질문이었지만 양재문은 별다른 동요 없이 침착하게 답했다.
“그 부분은 여기 인도양 진출 경험이 있는 모건 씨의 도움을 받아서 하나씩 보완할 예정입니다. 더욱이 상어 연승 조업으로 경험을 쌓기도 했고요.”
“흠…… 그래서 실패할 경우 추가 대안이 있는지요. 사실 태동산업에서 이번 조업을 위해 상당히 무리했다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사채시장에서 단기 차입을 들여왔다는 풍문이 들리던데 재정 상황이 그다지 좋은 것 같지 않아서요. 이점에 대해서는 혹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저는 그 부분까지는 잘…… 헛소문이 아니겠습니까?”
웅성대는 사람들에 양재문이 당황한 듯하자 마이크를 넘겨받은 심 사장이 대신 답했다.
“회사의 재정상태가 좋지 않다는 건 루머일 뿐입니다. 정부의 수출 지원 정책에 따라 전폭적인 지원 약속을 받았으니 일시적인 유동성 문제가 조만간 해결될 겁니다. 이번 참치조업이 성공할 경우, 밴 캠프사에 고정 납품이 예정되어 있는 데다 추가 투자 유치도 받을 예정이니 그 부분은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흠. 출어에 필요한 비용 중 절반 이상이 차입금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제 지원이나 정부 지원금도 상당한 것으로 아는데요. 어떻게 비용을 회수할 생각이십니까?”
“국익 차원에서 외화 획득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저희 태동산업도 심사숙고하고 도전하는 것이니 더 이상의 언급은 기우라 생각합니다.”
“세금을 내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하는 질문입니다. 정부 지원금이 허투루 쓰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설마 대답하기 곤란한 문제라도 있습니까?”
집요하게 공격을 가하는 기자의 질문에 심 사장도 난처한 듯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말을 끊을 수도 없는 입장 아닌가.
계속된 공격에 보다 못한 강태준이 손을 들었다.
“저, 실례지만 그 말에는 제가 대신 대답해도 되겠습니까?”
“그쪽은 누구신지?”
마이크를 건네받은 강태준이 목청을 높였다.
“아, 예. 저는 이번 시험 조업에 2등 항해사로 동승하게 된 강태준이라고 합니다. 일단 그쪽에서 지평호를 흰 코끼리에 비유하셨는데요.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흰 코끼리란 말의 어원을 따져보면 태국의 샴(Siam) 왕이 자기가 맘에 들지 않는 궁전 신하들에게 흰 코끼리를 선물로 준 곳에서 비롯된 걸로 압니다. 코끼리는 키우는데 엄청난 비용이 들지만, 왕의 선물인 코끼리를 함부로 죽이면 불경죄니 코끼리를 받은 신하들로서는 키우다가 파산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맞습니다. 다만 이미 아는 이야기를 반복하실 필요야 없지 않겠습니까?”
“지평호는 ECA 원조 자금으로 인수한 선박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 질문은 미 정부와 한국의 관계를 빗댄 것이 아닌가 해서 말입니다.”
“그런 무슨 억지가?”
“그게 아니라면 우리 김신제 기자님께서는 개인적으로 무슨 유감이라도 있으신 것인지. 지금까지의 행적을 보면 한미 동맹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말입니다.”
불의의 반격에 상대방의 얼굴이 굳었다. 통역관이 이야기를 전하자 미군 장교들의 낯빛 역시 좋지 않았다. 듣고 보니 미국 입장에서는 충분히 불쾌하게 해석될 만한 여지가 있을 부분이었다.
분위기가 싸해지는 것을 느낀 기자가 변명하듯 눈썹을 추켜세웠다.
“저희는 아까부터 말씀드린 것처럼 이번 출어가 한국의 수산업 발전의 시금석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고요. 동맹 관계에 스크레치를 내는 발언은 부적절하다고 보입니다.”
“불쾌했다면 사과드리지요. 하지만 그런 장밋빛 전망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에 강태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모두 위험을 무릅쓰고 출항을 결심한 상태입니다. 적어도 수 개월간 머나먼 길을 떠나는 선원들에게 격려와 축원을 하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요?”
“저도 염려되는 마음으로…….”
강태준이 반박하자 눈치를 보던 선원들도 이구동성으로 떠들었다.
“그러게. 거 쓸데없이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시오.”
“옳소이다! 꼬우면 댁이 가던가.”
“대놓고 초를 쳐도 유분수지. 당신이 뭐 그렇게 잘났어?”
분위기가 험악해진 사람들이 일제히 노려보며 한마디씩 하자 겁을 먹은 기자가 말을 멈추었다…… 강태준이 기자를 똑바로 주시하며 말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지켜야 할 선이 있죠. 안 그렇습니까. 기자님? 조업 망하라고 고사를 지내는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안 그러면? 그쪽이 원하는 대답이 뭡니까? 저희를 자극해서 이슈를 만들어 보고 싶으셨다면 아쉽지만, 번지수를 잘못 찾으신 거 같은데요?”
강태준의 직설적인 말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김신제는 도움을 청하듯 주위를 돌아보았지만, 이미 출어식장에 온 인사들의 낯빛에는 호의보다는 적대감이 가득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