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256화 (256/361)

256화 낙농 차관

핸더슨이 서투른 한국어로 강철완을 꾸짖었다.

“지금, 뭐하는 짓입니까? sir?”

“당장 통조림은 원위치로 해 둬. 좋은 말 할 때. 내 인내심 더 시험하지 말고.”

안전장치를 푼 권총에 기겁한 사람들이 당황했다.

하지만 강태준은 그 행동에 쫄기는커녕 도리어 웃었다.

“이쉑히가 웃어? 이게 웃기나? 지금?”

“이보쇼. 참모장님, 국민을 지켜야 할 군인이 시민에게 총구를 들이대도 되는 겁니까. 그게 우리 강 참모장님 방식인가?”

“이 미친놈이 간덩이가 배 밖으로 튀어나왔나. 당장 뒤지고 싶어?”

“허. 난 그쪽이 쏠 담량이 있을까 의심되는데 뒷감당 가능하면 쏴 보시든가? 응?”

“이 새끼가!”

“가까이 오지 마십쇼 sir! 경고합니다!”

강태준이 머리를 들이밀며 도발하자, 안전장치를 푼 강철완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터질 듯 긴장감이 감도는 그때 어디선가 호통이 들렸다.

“뭐 하는 짓들인가 아군들끼리!! 그 총 거두지 못해!”

“사령관님!”

어깨 위의 별을 확인한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경례를 붙였다.

직속상관인 9사단장 조성철, 그리고 주월사령관 이제호였다.

마침 시찰을 나오다 눈에 띄인 듯 딱 걸린 모양새에 몹시 당황한 강철완.

강철완이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에 곧바로 성큼 다가간 이재호가 총을 뺏어 들었다.

“이봐 강 대령, 강 사장한테 무슨 무례인가?”

“이자가 군령에 반하는 행동을……”

“뭔 헛소리야. 폐기 명령, 그거 내가 내렸어. 자네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야.”

“사령관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럼 그 쓰레기를 사람한테 먹이라는 말인가?”

“그건 말씀이 심하십니다. 사령관님. 전 어디까지나 원론적으로……”

“나도 장교들과 함께 병사들에게 제공되는 식품을 시식해 봤네. 헌데 그 빌어먹을 통조림은 도저히 사람이 먹을 식품이 아니더군. 그런 처치곤란한 물품이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어도 되겠는가?”

“사령관님!”

“내 눈에 흙이 들어가지 않는 한 그런 불량식품을 군내에 유통시킬 수는 없어! 특히 그놈의 김치통조림은 무조건 아웃일세.”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강철완이 아연실색했다.

“사령관님!! 지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건 이미 윗선에서 승낙하신 사항이…….”

“허가가 잘못되었다면 바꿔야 하지 않나/./ 이미 각하께도 통조림 공급에 관한 문제로 보고서를 올렸다네. 알아보니 군납업체랑 자네랑도 모종의 커넥션이 있더군. 해서 이번 부분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판단했네.”

“그건 말도 안 되는 모함입니다!”

“어찌 되었건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네. 아무래도 자네는 당분간 쉬는 게 좋겠어.”

보직해임을 당한 강철완이 완전히 배제당했다.

얼마 후, 소식이 전해졌다.

“강철완 그 자식, 국내로 복귀했다는데요. 아무래도 쫓겨난 거 같습니다.”

“아니, 벌써 말인가?”

“아무래도 이제호 월남 사령관에게 단단히 찍힌 모양입니다. 덕분에 장군 진급은 물 건너간 거 같아요. 이건 카더라지만 훈장도 못 받았답니다.”

“응? 훈장은 원래 관례 아닌가? 연대장급 이상이면 파병 장교는 원래 복귀할 때 충무무공훈장을 받는 걸로 아는데…….”

“예. 사유를 물어보니까 거 가관이더군요. 강철완의 경우 직속상관인 9사단장 조성철 소장과 주월사령관 이제호는 물론 동료들까지 죄다 훈장 수여에 반대했답니다.”

인사오류에 민간인 상대 가혹행위, 작전지휘권의 잦은 위임과 전투수행 능력 부족, 무기 밀매 및 적성화기 거짓보고, 연대장 부임 이후 품행방정, 태업 등등등…….

한바닥이 넘는 사유서 덕에 도저히 달아 줄 수 없었다고.

“거, 얼마나 눈꼴 사나웠으면. 아주 대놓고 까셨구먼. 우리 강 대령님 이제 어떡하나 그래. 앞길이 구만리 같은데 말이야.”

“허허, 그거 참 꼬시는 일이네요. 아직 세상에 정의가 살아 있습니다.”

“그러게 정치질만 하지 말고, 일이나 잘 좀 하지.”

강철완의 준장 특별진급은 미뤄졌고 1공수특전단 단장으로 보임하기로 했다.

사실상의 좌천.

곧이어 통조림 사업 심사 과정에서 뭔가 부적절한 압력이 들어간 것이 아닌가 철저한 재조사가 들어갔고 영업 대신 그간 로비에만 몰두해 온 업체들은 불벼락을 맞았다.

-발해식품 통조림 공장의 위생 상태가 불량하여 식품 위생상 부적당. 식중독 감염 및 전염병의 우려가 있음.

불시 기습한 공장의 위생 상태는 충격적이었다.

식자재 보관창고 내 부패한 식자재와 바퀴 알이 한 무더기로 발견되었고, 고춧가루와 식용유를 비롯한 원재료는 유통기한을 아득히 초월했다.

거기에 유통기한이 확실히 지난 물건을 고온 살균으로 택갈이해 재활용까지 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졌다.

불량한 환경과 노후한 설비, 통조림 공장 내부에서의 집단 구타 등 가혹행위 논란이 불거지면서 공장폐쇄를 피할 수 없었다. 바지사장이던 이억기가 끌려가는 모습에 신문 1면에 대문짝만 하게 게재되자 강태준은 혀를 끌끌 찼다.

“어휴, 이억기 이 자식은. 형 잘못 만나서 다 무슨 개고생이람. 가족이 아니라 웬수네 웬수.”

“그러니까 너도 좀 잘해라. 나 같은 형이 어디 있냐?”

“아니 형님이 날 부려 먹은 걸 생각해야지. 나 말이요. 일하다가 죽을 뻔하지 않았소?”

마치 거드름을 피는 복만이에 강태준이 눈을 흘겼다.

“그래 임마, 그거 아주 평생 울궈먹어라 그래. 옛다. 봐라.”

“뭐요 이건? 누가 쓴 거요? 글씨가 영…….”

강태준이 준 편지를 뒤집어 본 녀석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임마 니 아부지 필체도 모르냐? 외삼촌이 집에 돌아오란다. 임마. 네 와이프 마리아랑 같이.”

“정말이요? 이거?”

“내가 이거 받아 내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

그 말에 감격한 복만이가 강태준을 와락 껴안았다.

“아따 고마워요 형. 근데 이왕이면 우리 신혼집도 하나 챙겨 주소. 하와이 쪽에 하나 봐 놨는데…… 아주 경치가 그냥.”

“이런 개아들 자슥이.”

강태준이 주먹을 쥐며 한 대 쥐어박으려는 그때, 춘삼이가 방문을 열었다.

“사장님!

“어 배 과장 왜?”

“한국 낙농협회에서 연락인데, 청와대에서 부르십니다.”

* * *

평택시 고덕시 여염리.

한뉴목장. 젖소 생산 보급을 위해 만들어진 시범목장.

널따란 목초지에는 초지조성작업이 한창이었다.

모여 있는 장소를 가 보니 벌목이 진행되는 가운데 톱을 쥔 대통령이 손수 소나무를 베어 내는 장면이 보였다.

“거거, 떨어뜨리지 않게 조심하게. 송진을 빼서 가볍긴 해도 굴러가면 큰일 나!”

“예. 예…….”

손수 톱질을 하는 박정명에 진땀을 빼는 경호원들.

다들 혹여나 나무가 잘못 넘어질까 노심초사 좌불안석이다.

그러건 말건 한동안 힘을 뽐내던 박대통령은 비서진 하나가 귀뜸을 하고 나서야 강태준의 등장을 알아차렸다.

“아! 강 사장 오랜만이구만. 베트남에서 사업이 아주 잘 된다지? 우리 강 사장 명성이 대단해.”

“그저 밥 먹고 살 정도지요.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허허. 그렇게 겸양 떨지 말게나. 백경이 조만간 30대 재벌에 진입할 가능성이 유력하다던데? 미래나 오성보다 더 전망이 좋은 기업이라고 떠드는 치들도 많아.”

“호사가들이야 원래 떠들기 좋아하지 않습니까. 사업의 향방이야 사정에 따라 바뀌는 거지요. 높이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그 정도는 아닙니다.”

“하하 여기까지 밥 연기가 풀풀 나는데 끝까지 아니라고 잡아뗄 건가. 암튼 여기는 농림부 차관인 고창용일세. 덴마크에서 낙농학박사를 취득한 전문가로 잔뼈가 굵지. 서로 인사를 나누게나.”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강 사장.”

고박사는 학자 출신답게 굉장히 유한 인상이였다. 강태준이 서로 통성명을 하는 동안 박정명이 벌목장을 둘러보며 땀을 훔쳤다.

“거 오랜만에 몸을 쓰니 시원하고 좋구만. 어떤가? 이곳은 꽤 널찍하지 않나?”

“어마어마하게 넓군요. 그보다 인부들이 이렇게 많다니 인건비도 만만찮겠습니다.”

“하하. 다들 자원자들일세. 밀가루 한 포대 받자고 저러니 원.”

“이게 다 자원자라는 말입니까?”

“그래 끼니만 해결해 달라고 달려드는데 무를 수가 있나? 어쩔 수 없이 받아 주다 보니 이렇게 되었네.”

사정을 들어보니 가관이었다. 평택에서 목장 조성공사를 한다는 소문이 퍼지기 무섭게 구호물자라도 받겠다며 평택 인근에 살던 거렁뱅이며 일용직 노동자들이 죄다 몰려들었던 것이다.

“허어 그럴 수가.”

“덕분에 작업 속도가 빨라지긴 했지. 여기 부지가 총 50만 평 정도라네. 개발구역 안 분묘가 1,700여 기가 넘어서 골치 아팠거든. 묘지 이관 동의서 받는데 우리 고 차관이 많이 고생했지 그래.”

“민원 처리하랴, 공사 감독하랴 많이 힘들었겠군요.”

“하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갖고 민망합니다.”

“대단하지. 이제껏 공사 진행하면서 중상자나 사망자가 한 명도 없다는 거 아닌가. 허허.”

박정명의 대답에 강태준은 새삼스레 상대를 눈여겨보았다. 샌님 출신이라길래 실무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는데 보통내기가 아니지 않은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은 인내심이 적었기 때문에 물자보급이 종종 늦는 경우, 배고픔을 참지 못해 전표를 헐값에 넘겼다 다툼이 벌어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벌목 작업도 마찬가지. 경력자들이 붙어 최대한 세심하게 관리했다지만 날붙이를 쓰는 일이다 보니 부상자가 나오는 건 일상이다. 그렇게 한눈을 조금이라도 팔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미래 같은 대기업이 관리해도 항상 잡음이 나오는 일을 물샐틈없이 처리하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고 차관이 고개를 저었다.

“하하. 그래도 고생한 보람이 있으니 할 만하죠. 여기 구릉지가 축산을 하기에 딱 좋은 지역이더군요. 이렇게 잡종림을 베어 내고 씨앗을 파종하면 꽤나 쓸 만해질 겁니다.”

“그러게. 지형을 보면 딱 소풍 가기 좋지 않나? 예전 선생일 할 때 생각이 나더군. 그때 애들이랑 함께 소풍을 오면 이런 언덕에 옹기종기 앉아서 김밥이라도 먹고 그랬지.”

“확실히 탁 트인 게 체험학습 현장으로도 그만인데요. 묏자리로 쓰였다는 걸 보니 밤에 담력 테스트용으로도 쓸 만하겠습니다.”

“하하, 짓궂구만, 강 사장. 사실 여기는 꽤 유명한 묏자리기도 하네.”

“아 그렇습니까?”

“조선시대 이괄이 아버지 묘를 쓸 때 일부러 삶은 달걀을 묻어서 지관이 묫자릴 쓰지 못하게 속였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니 말이야.”

“오 그렇습니까? 처음 듣는 이야깁니다.”

그러자 박정명이 눈을 빛내며 덤덤히 중얼거렸다.

“근데 이괄이란 놈이 청개구리 같은 놈이라 아비가 걱정이 되었는지 자길 똑바로 묻으라 신신당부를 했다는군. 젊을 때 하도 말을 안 들어쳐먹기로서니 그렇게 말하면 되려 반대로 묻을 줄 알았던 거야. 근데 이놈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뒤늦게 개과천선을 했는지 유언대로 똑바로 묻었다지 뭔가. 덕분에 나중에 반정에서 거사에 실패했다는데 세상사 알 수 없는 일일세. 그래.”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난처한 듯 눈치를 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감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강태준이 능글맞게 말을 받았다.

“옛날 선조들이 이야기 꾸미는 재주가 있네요. 효도는 살아 계실 때 하는 게 맞지요.”

“그렇지 동화책에 한 줄이라도 넣는 건 어떻겠나. 나름 교훈적인 이야기 아닌가.”

“앗, 그럼 한 줄 넣는 대신 저작권료라도 드려야 할까요?”

“예끼 이 사람이…… 쓸데없는 소리는?”

자칫하면 민감할 주제가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가자 긴장했던 고 차관이 마음을 쓸어내렸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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