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269화 (269/361)

269화 자원의 저주

“임마, 이 바보 같은 자식, 여 살아 있나?”

“광필이 형?”

“쓸데없는 말 말고 체력 아껴라. 빨리 올라갈 테니까.”

광필이를 보는 순간 덕배는 긴장이 풀렸다. 곧이어 구조대원들이 하나둘 내려왔다.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낙하산 줄에 널빤지를 매단 들것에 실렸다. 덕배가 갱 밖으로 나오는 순간 플래시가 터졌다.

“살아 있어!!”

“살았다!! 생존자가 왔다!”

만세 소리와 터져 나온 박수에 덕배가 눈을 찡그렸다.

전국에서 취재진이 모인 듯 인파는 어마어마했다.

외신들을 반쯤 얼어붙은 덕배에게 마이크를 들이대었다.

“sir! 갱도 안은 어땠습니까?”

“거…… 소감을 말씀해 주시죠. 식량은 어떻게 했습니까? 생리활동은 어떻게?”

“자자…… 환자한테 말 시키지 마십시다. 인터뷰는 나중에 치료가 먼저입니다.”

곧바로 따라 나온 백경 직원들이 온몸으로 카메라를 막았다. 바로 응급진료실로 향하는 사람들. 사고 현장에서 응급조치를 받은 덕배와 광부들은 이튿날 아침 공군 헬기 편으로 서울로 이송되어 메디컬센터에 입원했고, 며칠 후 일행은 링거를 맞고 있던 덕배와 만날 수 있었다. 춘삼이를 본 덕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형…….”

“얼굴이 반쪽이 되었구만. 살 만하냐? 너 임마…… 진짜 뒈질 뻔했다. 정말 큰일 날 뻔했어.”

“죄송합니다.”

“그래…… 민폐도 그런 민폐가 아니지 뭐냐? 너 하나 구조하자고 투입된 인원은 2,000명이 넘는다. 임마…….”

“헉…… 그렇게나 오래 지났습니까?”

매몰된 지 25일이라는 말에 흠칫 놀랐다.

지하에 있으면서 시간관념이 사라졌던 그로서는 도저히 감이 없었던 것이다. 광필이가 덧붙였다.

“사고 분야에서 기네스북 감이지. 근데 너 어떡하냐 얼굴 다 팔렸는데…….”

“그러게. 노동 운동하다 걸렸으니…… 이거 완전 퇴학 감이지. 뭐…… 구조에 투입된 비용도 3천만 원이 넘어.”

“그게 정말입니까? 삼촌?”

“그럼 내가 거짓말 치겠냐? 우리 덕배. 이거 불쌍해서 어떡하나? 너 구속이야 구속…… 이제. 이미 신원 뽀록났는데 그래.”

“뭐…… 콩밥 좀 먹고 오면 정신 차리겠죠. 밖에서 형사님들 쫙 늘어서 있으니 말이야.”

문병을 온 점례가 사과를 깎으며 맞장구를 쳤다. 노동 운동이 엄중하게 다루어지던 시절. 위장 취업한 대학생은 불순분자로 여겨졌던 시대였다. 불안한 듯 덕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정말이에요? 형? 농담이죠.”

“에휴……. 대책 없는 자식. 그게 무서웠으면 하지 말았어야지.”

춘삼이가 더 말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팩 돌렸다.

심각성을 깨달은 덕배가 울먹이자, 강태준이 핀잔을 주었다.

“쯧쯧, 몸도 성치 않은 애 놀리면 좋냐?”

“저 그럼 구속 안 됩니까?”

“니 신원은 걱정 마라 네가 어차피 가명 써서 천만다행이었지 뭐야?”

“어차피 삐쩍 말라서 알아볼 사람도 없다. 기절하는 줄 알았어. 산송장이 나와서.”

“그러게 멸치 돼서 다들 몰라봤으니 걱정 붙들어 매시라구.”

짓궂은 표정으로 히히대는 광필이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덕배에 강태준이 지그시 녀석을 내려 보았다.

“나한테 뭐 할 말 없니?”

“잘못했습니다.”

“그래 고생했다. 아무 말 말고…… 일단 쉬기나 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정부에서는 구조 후 특별 담화문을 발표했다.

-주야를 가리지 않고 결사적인 작업을 감행한 구조반의 눈물겨운 동포애와 전 국민의 거족적인 지원에 감사를 표하며 앞으로 모든 광산에서 광부들의 안전을 위한 만반의 안전대책을 강구할 것으로……

이번 구조 작전은 모두 TV와 라디오로 생중계됐다. 구조대원들의 활약이 재조명되었고, 직원들이 회복되는 과정도 세세하게 보도되었고.

지하 1,000m가 넘는 어둠 속에서 장장 한 달 가까이 머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무사 생환한 광부들의 휴먼 스토리는 뭉클한 감동을 줬다.

곳곳에서 광부 돕기 성금 모금 캠페인이 벌어졌다.

정부로서도 이번 호재를 놓치지 않았다. 당시 전국적인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돼 정국이 어수선했던 상황이라 갱도의 휴먼 스토리는 정치적 사안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던 것이다. 극적인 스토리는 궁지에 몰린 박정명의 숨통을 틔워 주었다.

“돈은 많이 썼지만 뿌듯하구먼.”

“그러게요. 이미지 재고도 되고 덕분에 컵라면 홍보가 되었네요. 그래.”

백경그룹은 이번 구조작전의 최선두에서 활약하면서 사회적 기업 이미지 개선에 성공했다. 분유 사건으로 입은 타격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던 참이라 총수가 직접 나서 현장을 지휘하는 모습은 꽤나 큰 울림을 낳았다.

무엇보다 구조대원들이 간식으로 컵라면을 먹는 모습이 우연히 찍힌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선 채로 컵라면을 들이켜는 모습이 TV를 통해 국내외로 퍼지면서 본격적으로 인기몰이를 하게 된 것이다. 몰려오는 주문량으로 인해 아이돌 스타가 된 강태준은 각종 섭외 문의로 전화선을 빼 두어야 할 정도였다.

“그래두 덕배 녀석 복덩이구먼.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놈도 있는데 이녁은 뭐. 앉아서 안장서 인세까지 챙기게 생겼지요 뭐.”

광부들이 극적으로 구조된 후에도 열기는 쉽게 식지 않았다. 지상으로 나온 광부들에게 전 세계에서 인터뷰와 강연 요청 등이 쏟아지는 중 광부 이야기를 수기로 정리한 것을 본 감독이 영화제작을 하겠다고 나섰던 것이다.

“뭐. 영화라…… 괜찮을 거 같구먼.”

“휴먼 스토리는 언제나 먹히는 법이죠.”

“그보다 그노마는 이제 어떻게 한데나?”

“몸 추스르는 대로 절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휴학하고 고시 공부한다네요.”

“잘 생각했네. 공부도 다 때가 있으니까 뜻을 갖더라도 어렸을 때 해야지.”

덕배와 관련된 문제는 강태준이 주변에 언질을 넣은 덕에 사회적인 파장 없이 조용히 끝났다. 정부로서도 굳이 한국대 법대 출신 엘리트가 이런 문제에 연루된 것을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가슴을 쓸어내리던 그 때 때 대통령 비서관 하나가 몰래 찾아왔다.

“강 사장님, 각하께서 부르십니다.”

“각하께서 무슨 일이신가?”

“가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갑자기 무슨 일로 걱정 반, 불안 반으로 들어간 장소에는 박정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구만. 신문에서 자네 이름을 보았네. 요 근래 사회 활동에 관심이 참 많은 거 같더군.”

“사회 활동이라니 민망합니다. 현장 지원이 전부인데요?”

“하하. 겸양은. 이번에 탄광 매몰자 굴착작업은 누가 지휘했나?”

“예전 온양온천 관광지에서 오랫동안 함께 작업한 토목팀이 맡았습니다. 터널이나 지하도를 전문 굴착하고 있지요.”

“아 그 사람들 말인가. 듣자하니 건설업계에서 이름이 꽤 있더군. 땅 파는 일이라면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가들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더라고. 대단하구먼. ”

“아무래도 제가 인재 복이 있나 봅니다.”

“인재를 모으는 것도 능력이지 그래. 그보다 광산 쪽에 사고가 빈발하는 걸 보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안전 불감증이 이렇게 심할 줄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 우리 나라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탓이지. 그보다 광산업이 점점 사양 산업이 되어 갈 텐데 좀 걱정이 많구먼. 그나마 탄광 쪽은 아직 수요가 있는 편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할지 모르겠구먼. ”

”이번 사고로 더욱 광업이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임자 말대로야. 이번에 금천도 문을 닫아야 할 거 같은데 현지 주민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더군.”

“금천이면 금광 말입니까?”

“그래. 금광업은 황혼기에 접어드는 추세 아닌가. 금 채취 가격이 상승해 수익성이 안 나니 어쩔 수 없지.”

상공부 계산에 의하면 IMF가 규제하는 국제공인단가는 온스당 38달러.

당시 자유시장가격은 45달러 내지, 47달러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농림부 광업지원과를 통해 연간 금광에 주어지는 조성자금은 고작 몇천만 원 수준이니 1개 금광의 갱도 굴진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현재도 금값이 국내 가격이 자유시장가격보다도 20달러나 높은 수준인데 갑자기 금광을 폐쇄하면 단가가 폭등할 거 같아서 걱정일세.”

“산업용으로 필요한 물량 때문이라면. 정부에서 출연기관 형태로 관리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하하. 그렇기는 하지만 하지만 마땅히 다른 수입원을 찾을 수 없는 지역민들의 불만이 크니 당분간은 두고 볼 수 밖에 없지 그래.”

정부로서는 실제 사업에 필요한 연광이나 동광개발에 투자해야 할 상황에 이들 광종에 대한 자금지원을 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강태준은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가만있자 미국의 금사정이 현재 최악이지 않나? 당분간 금을 현물로 쥐고 있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수출에서 막대한 적자를 보면서 전비를 감당중인 미국이 브레튼우즈 체제를 계속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 금본위제를 택하고 있는 현 체제가 붕괴하면 자연히 금값은 오른다. 만약 금광을 관리하게 된다면 합법적으로 금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그럼 제가 인수해서 관리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게 정말인가?”

“예. 국가를 위한 일이라면 누군가는 마땅히 해야 할 일 아니겠습니까? 마침 전문가들도 있고 말이지요.”

강태준의 그런 말에 감동을 느낀 박정명이 대답했다.

“흐음... 그런 무게를 지우기는 내 너무 미안하구먼. 사실 개인적으로 부탁할 게 있어 부른 것이데 말이야.”

“무슨 부탁 말씀입니까?”

“그래. 사실 포항 영일만 쪽에서 석유가 난다는 소리가 있어서. 그래서 시추팀을 구성해서 유정을 조사해 줬으면 해서 말일세.”

조사단이 말하기로는 지질학적으로 경제성 있는 가스나 석유 부지는 없다고 들었습니다만.”

“이번에 새로 올라온 보고가 있다네 충분히 석유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고 말이야. 그래서 한번 쯤 도전해보는게 낫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어서 말일세.”

이미 무임소장관을 위시로 한 정밀 조사에서 포항에 유전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 고작 몇 년 전 일. 하지만 박정명은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 우리 나라에는 석유 같은 건 안난다고!’

그러나 그렇게 대놓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강태준은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다 말을 돌렸다.

“각하, 실례지만 자원의 저주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처음 듣는 말이로군. 그게 무슨 뜻인가?”

“단순하게 생각하면 천연자원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대부분 천연자원이 풍부한 대부분 나라들은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흠…… 흥미로운 관점이군. 정말인가?”

“예. UN 인간개발지수(U.N. Human Development Index)에 따르면 천연자원의 수출 비중이 높은 나라의 경제성장률이 그렇지 못한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저조하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네덜란드죠.”

“네덜란드라면 북해에 유전을 발견한 나라 아닌가?”

“네. 네덜란드는 가스 유전을 발굴한 후 경제가 크게 발전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습니다.”

“그게 어째선가?”

“외환시장에 너무 많은 석유 수출 대금이 유입되어서지요. 네덜란드 화폐인 굴덴화의 가치가 크게 상승해서 수출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되었던 겁니다. 수출 대금이 유입되면 통화 가치가 상승하고 해외제품 수입이 유리해지지만. 통화 가치의 증대라는 부작용도 수반되니까요.”

그렇게 되면 해외 판매할 물품의 가격이 상승을 유발해 제조업 경쟁력이 악화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