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311화 (311/361)

311화 콘솔 개발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술집.

여느 때처럼 노동자들이 우글거리는 펌에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거 왜 이래!”

“또 먹통이네. 어떻게 된 거야. 제길.”

여기저기 당혹감에 찬 고성이 터져 나왔다. 플레이 도중 공을 튕기는 화면이 멈춰 버린 것이다. 플레이에 열중하던 사람들이 돌아가자 펍 주인은 서둘러 수리업자를 불렀다.

“아니 대체 왜 이렇게 고장이 잦은 거요?”

“아 기다려 주십시오.”

주인의 볼멘소리에 부품을 교체했지만 그 뒤에도 사정은 마찬가지. 게임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자 짝퉁 듈(dual) 구매했던 술집 주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 제조사로 쳐들어갔다.

“사장, 사장 나오라고 해!”

“이거 왜 이러십니까?”

“정품과 똑같다니 감히 이딴 쓰레기를 팔아. 사기꾼 놈 같으니라고. 내 돈 내놔!”

참다못한 구매자들이 제조사 앞에서 아우성을 벌였다.

환불을 거절하자 열받은 펌 주인들이 유리창을 깨부수고, 집기를 집어 던지기까지 한 것이다.

전국에서 비슷한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싼 맛에 짝퉁 듈(dual)을 샀다가 플레이 도중 화면이 멈추던가. 셧다운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일각에서는 정품인 줄 알고 샀다며 본사에 반품을 요구하는 희극적인 일도 벌어지기까지 했다.

”이거 웃기는 놈일세. 여기서 짝퉁을 고쳐 달라니.“

“클클…… 멍청한 놈들이지. 그 회로를 그대로 베끼다니 까막눈 주제에 어딜 넘봐.”

“대가리에 똥만 든 시키들이 뭘 알겠어.“

사건을 전해 들은 엔지니어들은 뿌듯해했다. 사실 이건 치밀하게 계획된 작전이었다. 강태준은 처음부터 반도체 회사에 의뢰해 교묘하게 특별한 표시를 해 둔 부품을 따로 사용했던 것.

그리고 일부러 고장 난 부품으로 만든 가짜 보드 설계도를 풀어 버린 것이다.

즉 조립 라인 중 10%가 애초에 페이크.

설계도를 해석할 수 있는 프로라면 그 미세한 차이를 알아낼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카피켓들은 회로를 인쇄해 그대로 베낀 다음 부품만 갈아 끼는 수준에 불과했다.

애초에 짝퉁을 제조하는 업체들은 어떤 부품이 문제를 일으키는지, 과부하의 원인이 무엇인지 진짜인지 가릴 만한 능력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덕분에 게임은 몇 번만 플레이하면 멈추거나. 일부는 심지어 과부하로 회선이 타 버리기까지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던 것이다.

물론 불량품은 시중에 돌지 않고 회수했기에 강태준의 손실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회로판 대신 매커니즘만 베낀 업자들은 어떡합니까? 사실 진짜 큰 도둑은 그놈들인데 말입니다.”

“걱정 마. 그건 프로한테 맡기는 수밖에.”

“적당한 사람이 있습니까?”

“물론이지. 로이 스테덤.”

진주 소송에서 테라 측 변호인을 맡았던 변호사 아닌가.

그러자 광필이가 약간 못 미더운 듯 물었다.

“그 자식이요. 우리 쪽에 앙심을 품었을 텐데 과연 소송을 쉽게 맡을까요?”

“아마 그럴걸. 이번에 로펌에서 짤렸거든.”

* * *

뉴욕의 어느 후미진 펌. 처량해진 로이는 신세한탄을 하고 있었다.

“하 내 인생이 이렇게 꼬일 줄이야.”

신세한탄을 하는 로이에 술잔을 닦던 펍 주인이 핀잔을 주었다.

“그러니까. 좀 적당히 하라고 하지 않았나. 설마 회장한테 들이받아 버리다니.”

“수임료 안 준다 지랄하니까 그렇지. 누군 땅 파서 장사하나? 그간 벌어 준 돈이 얼만데.”

“말이라도 이쁘게 하지 그랬나. 자네는 그 입 때문에 망하는 거야.”

진주소송은 로이의 커리어에 큰 스크래치를 남겼다. 로이와 결별한 테라스톤에서는 소송대리에서의 과실이 있었음을 이유로 손해배상 책임을 물었던 것.

테라 스톤에서는 사건 수임과 관련해 로이가 과거부터 불법을 일삼았음을 문제 삼았던 것이다.

로이는 원래 사생활에 약점이 많은 사람이었고 특유의 공격적인 스타일로 잡음이 많았다.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로펌에선 그를 손절 치기로 결정했다.

일감이 끊기자 압류 딱지가 붙은 로이의 재산 상태는 그야말로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간 업보를 복리로 되돌려 받는 셈이군.”

“그걸 알긴 아나? 자네도 후회라는 걸 하는군.”

“아니, 이럴 거 같았으면 내부 총질이라도 하고 나올 걸 그랬어.”

“허허. 미친놈.”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면서 어그로를 적립한 대가라고 할까. 사실 변호사 자격까지 박탈할 위기였던 것이다. 브랜디를 홀짝이던 로이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대로는 죽을 수 없지. 죽을 때 죽더라도. 국세청에 돈을 내는 일은 없을 거야.”

“니 맘대로 해라. 대신 그전에 외상값부터 갚고 나서.”

술집 주인의 응수에 클클거리던 로이가 취기가 올라오는지 꾸벅꾸벅 졸았다.

그때 정신이 몽롱해진 그를 흔들어 깨우는 손이 있었다.

“정신 차려 로이. 자네 손님이야.”

“응. 누구?”

양복을 입은 누군가를 본 로이의 동공이 커졌다.

고주망태가 된 채 흐트러진 꼴을 본 강태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이구야. 천하의 로이가 이런 꼴이라니. 어이가 없군요.“

“허, 강 사장이라니, 왜 굳이 여기까지, 설마 날 비웃으러 오셨나?”

볼썽사납게 엎어진 녀석을 경호원이 부축하는 손이 있었다. 옆자리에 마주 앉은 강태준이 찬물을 건넸다.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닙니다. 일 좀 맡겨 보려고 왔는데, 이거 타이밍이 별로였나 보군요.”

“일? 나한테 말인가?”

“조건이 맞으면요. 어때 들을 생각 있습니까?”

강태준이 마주 앉아 조건을 설명했다. 몽롱한 눈으로 대략적인 이야기를 전해 들은 로이가 입술을 비틀었다.

“그러니까 북미 게임기 제작회사 전부를 상대로 싸움을 걸겠다라. 재밌구먼. 나한테 특허 사냥꾼 역할을 맡기겠다는 건가?”

“레토릭이 좀 거칠지만 그게 맞습니다. 저희는 라이센스를 가진 정당한 권리행사자 아니겠습니까. 이건 정당한 비즈니스의 일환입니다.”

“웃기는구만. 그래. 의도는 알겠네. 근데 내가 왜 맡을 거라고 생각하지?”

“돈 필요하지 않습니까. 특허로 삥 뜯는 기술만큼은 그쪽보다 잘하는 사람이 없다던데 말입니다. 어쩌면 그쪽 주특기라고 들었는데요.”

노골적인 강태준의 말에 로이는 오히려 할 말을 잃었다.

이렇게 그러자 강태준이 바로 덧붙였다.

“건바이 건으로 수임료는 합의금의 10%.”

술에 확 깬 로이가 강태준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쎄군. 그거 진짠가?”

“건당 150만 불은 족히 뜯어낼 수 있다고 하던데요. 할 겁니까?”

잠시 고민에 빠진 로이가 술잔을 노려보았다. 자존심과 돈.

속에서는 열불이 치솟고 있었지만 어느 때보다 그는 냉정했다.

판단은 빨랐다.

“좋아. 약점 잡고 물어뜯는 건 내 장기지 그래.”

로이 스테덤과 손을 마주 잡은 강태준은 곧바로 증거 수집에 들어갔다.

얼마 후 로이는 북미 전역의 게임기 생산업자들을 상대로 내용증명을 보냈다.

“선택하시오. 우리랑 신나게 소송전을 벌여 보든가, 판매량에 비례해 로열티를 내놓던가.”

dual과 유사한 기계를 만드는 거의 모든 회사가 소송의 타겟이 되었다는 것이다.

“웃기는 소리.”

“150만 불이라니 장난하나.”

내용증명을 받은 업체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코웃음을 쳤지만 안이한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로이가 그 악명 높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약 단속팀 직원을 수시로 보내 제조를 지연시키던지. 불법 주차로 고속도로 통행료를 지불하지 못했다고 차량을 견인해 가던지.

갖가지 수법을 동원해 제조를 방해하자 로이의 등쌀에 짝퉁 게임기를 만들던 회사들은 두 손을 들었다. 사업을 정리하거나 비싼 로열티를 무는 수밖에 없었다.

“이번 달에 400만 불이 추가로 들어왔습니다.”

“어이가 없구먼. 게임을 팔아서 번 돈보다, 특허 소송으로 번 수익이 많을 줄이야.”

로이가 지나치게 열심히 해 준 탓일까. 벌써 투자금을 회수한 것이다. 실탄이 두둑해진 강태준은 이제 새로운 시장에 눈을 돌리기로 했다.

“다소 여력이 남았으니 이참에 이제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콘솔을 본격적으로 개발해 봐야겠군.”

“가정용 게임기를 말입니까?”

“그래. 아무래도 술집이나 공공장소에 설치하는 것은 수요에 한계가 있으니까 말이야.”

그것은 대다수 엔지니어들의 의견이었다. 게임이 기록적인 흥행을 기록하면서 집에서 즐길 수 있도록 홈버전을 개발하자는 의견이 솔솔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시제품에는 들어가는 TTL(Transistor-Transistor Logic) 칩의 개수.

아케이드 게임기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집적회로에 쓰이는 칩이었다.

하지만 술집에 설치할 게임을 만드는 것과 회로를 가정용 콘솔에 구겨 넣는 것은 차원이 다른 난이도였다. 게다가 강태준이 바란 요구사항도 무척이나 엄격했던 것이다.

“단가를 400달러 이하로 낮추라고요?”

“그래. 너무 비싸잖아. 가정용으로 파는데 너무 비싸면 누가 사겠어.”

사실 당시 기준으로써는 꽤나 무리한 요구였다. 날고 긴다는 엔지니어들까지 섭외했지만 개수는 100개 정도가 한계였던 것이다. 개발에 난항을 겪은 엔지니어들은 다들 난감함을 금치 못했다.

“집적회로를 70개 이하로 줄이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한 게 아니라 아직 효율적인 개선책을 모르는 게 아닐까.”

“그럼 어떡하시려고요.”

”그럼 공모전을 열어 보자고.“

사안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강태준은 아주 심플한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개발비 대신 거액의 상금을 걸기로 한 것.

게임개발에 필요한 칩의 개수를 줄이면 그만큼을 상금으로 주겠다는 취지의 기사를 신문에 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전화 회선을 해킹하는 데 맛들린 어느 악동들의 관심을 끌었다.

“위즈. 프리킹 같은 것은 이제 그만두는 게 어때. 교황청을 골려 먹는 것보다 더 재밌는 일이 있어.”

“그게 뭔데?”

”게임에 필요한 콘솔용 회로를 개량하면 그만큼 돈으로 주겠다네.”

“그게 정말이야.”

“맞아. 우리가 70개 이하의 설계로 게임을 만들 수 있다면 칩당 최소 100달러의 보너스를 받게 될 거라는군.”

자금이 쪼들리는 이들에게는 제법 귀가 솔깃한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이들이 기세 좋게 전화 사업을 하러 나온 지 몇 달. 이들은 현실을 인지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애초에 공짜 전화기 판매는 불법이었던 것.

아무리 국제전화망을 해킹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고 해도, 성대모사가 가능한 공짜 전화기만으로는 큰돈이 안 된다는 것을 이제 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한 번도 게임을 만들어 본 적이 없잖아.”

“지금부터 찾아보면 되지. 설계도부터 찾아보자고 친구.”

“하긴.”

뭣도 모르는 둘은 게임 회로 개발을 라디오 조립 정도의 일로 생각했다.

블루 박스 개발로 벌어들인 수익과 여유 자금가지 탈탈 털기로 한 것이다.

바이트 샵으로 가서 죄다 TTL 칩을 구매하는 데 투자했다.

회로 개발은 맨땅에 헤딩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대충 회로를 위즈가 설계하면 다른 한 명이 판에 전선을 꽂아서 작동하는지 여부를 확인해 보는 식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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