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1화 (1/301)

1. 돌아오는 길

“겨우 이걸 얻으려고······.”

B-44 벙커. 여기저기 널려 있는 시체들. 다 죽고 나와 캡틴만 남았다.

적과 아군 100여 명의 죽음으로 얻은 식량은 비상식량키트 20봉.

잘 해봐야 한 명이 한 달을 살 수 있는 정도다.

캡틴은 복부에서 배어 나오는 피를 손으로 막고, 내 옆에서 미약한 숨만 내쉬고 있었다.

그는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 판단 실수.”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그의 얼굴을 향해 난 욕을 했다.

“씨발, 미안?! 그게 다야?”

에이원 캠프. 내가 소속된 집단.

그리고 옆에 있는 정신 나간 놈은 에이원 캠프의 캡틴이자 나의 파트너.

극단적인 식량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더는 없을 줄 알았던 새로운 벙커 B-44를 발견했고.

캡틴은 무작정 전쟁을 선택했었다.

“왜 흥분하고 그래? 무리는 다시 만들면 되지.”

“참 쉽게 말하네. 넌 죽은 동료들한테 미안하지도 않냐?”

캡틴은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미안할 게 뭐 있어. 그들이 날 선택했으니, 내 선택이 곧 그들의 선택이지.”

캡틴은 시체들을 둘러보며 이죽거렸다.

“자기 선택에 책임을 진 것뿐이야.”

그는 나를 살짝 올려다보고는 말했다.

“그리고······ 너답지 않게 왜 그러냐? 수백 명이 죽어도 눈도 깜빡 않는 녀석이.”

난 에이원 캠프의 이인자이자 행동대장으로 불린다.

“이상하게 말도 많이 하고······ 평소엔 묻는 말에 대답도 잘 안 하는 녀석이.”

폐허뿐인 세상에 도착하기 전, 난 분명 물에 빠졌었다. 죽어서 지옥에 온 줄 알았다.

하지만 금세 죽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죽어서까지 췌장암을 달고 있을 리는 없으니까.

명치와 허리에서 췌장암의 통증이 느껴졌었다. 죽을병 때문에 살아 있음을 느낀 것이다.

평소 습관대로 허리를 구부리고 다녔다. 이렇게 해야 덜 아프니까.

그리고 난 죽을 각오로 살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빨리 죽기를 바라며 살았다. 난 시한부의 몸이니 어차피 죽을 거 며칠 빨리 가는 게 아깝지 않았다. 고통 속에 살아가는 게 신물 나기도 했고.

통조림, 비상 시트 몇 개에 목숨을 내놓는 세상이라 싸울 일은 참 많았다.

난 모든 전투에서 몸을 사리지 않았고, 그래서 쉽게 죽을 줄 알았다.

통증 때문에 항상 등을 동그랗게 말고 싸웠던 나는 ‘미친 꼽추’로 명성을 쌓아갔다.

참 재밌는 게.

죽으려는 놈은 계속 살아남고.

살고 싶어 하는 놈은 죽게 되는지.

에이원 캠프의 동료들이 수 차례 바뀌는 동안에 나는 계속 살아남았다.

지금도.

양측이 몰살당한 상황에서 나만 살았다. 캡틴도 아직 살아 있기는 하지만, 얼마 안 남았으니까······.

캡틴이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너 허리는 괜찮은 거냐? 요즘 허리 안 구부리던데.”

최근 들어 허리를 펴도 통증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병원은커녕 약도 없는 세상에서 암세포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오래 살아야 9개월이라고 했는데, 여전히 난 살아 있었으니.

“네 걱정이나 해.”

“쳇, 어째 말 좀 길게 한다 했더니.”

캡틴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곧 죽을 것이다.

앞으로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비상식량키트 20봉으로 한 달을 살아낸 후, 다시 살기 위해 훔치고, 뺏고, 속이고, 그러다 죽이기도 할거고.

이 짓을 되풀이하겠지. 안 봐도 훤하다. 항상 같은 레퍼토리. 지겹다.

“부럽다.”

난 얼굴이 창백한 캡틴을 향해 말했다.

“뭐가? 죽는 게 부러워?”

“······.”

“그럼 너도 죽어.”

자살은 안된다.

시한부인 나를 살리기 위해 모든 걸 다했던 여자가 있었다.

그녀를 생각하며, 내 손으로 직접 숨을 끊는 것만큼은 참았다.

하지만······ 지금 좀 흔들린다.

***

난 비상식량을 챙기며 떠날 준비를 했다.

“나 아직 안 죽었어.”

“곧 죽을 거잖아.”

“그건 모르지. 네가 날 도와준다면.”

캡틴은 간절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남의 죽음엔 시큰둥하더니, 본인 죽는 건 두려운 건가?

뭐, 실망스럽진 않다. 원래 사람이란 게 그러니까.

“도와줘도 못 살아. 알잖아.”

“참 냉정하네.”

“간다.”

“지혁아!”

캡틴은 큰 소리로 날 불렀다.

“잠깐이면 될 텐데. 옆에 있어 주면 안 될까?”

“······.”

“마지막 선물이라 생각하고. 너랑 나랑 보통 사이냐.”

캡틴은 아포칼립스에 떨어진 후 처음 만난 사람이며, 지금까지 여러 어려운 일을 함께 겪은 사이다.

난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앉았다.

“잠깐이야.”

“고맙다. 개새끼야.”

캡틴은 낄낄대며 웃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멍하니 회색빛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혁아, 네가 뭐였다고 했지? 회사원이랬나?”

죽을 때가 되어서 그런가. 쓸데없는 얘기를 꺼낸다. 과거 얘기해봐야 아무 소용 없는데. 마음만 아플 뿐이지.

“여기 오기 전 얘기 좀 해줘 봐.”

“뭐냐? 헛소리 말라며?”

그는 내가 하는 말을 헛소리라며 안 들으려 했었다.

“듣기 싫었던 게 아니야. 꿈같은 얘기를 너무 생생하게 하니까, 괜히 부럽고 마음 아파지니까. 그렇게 풍족한 세상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거든.”

“······.”

“근데 지금은 듣고 싶다. 혹시 알아? 죽은 후에 영원히 그런 꿈을 꾸게 될지.”

난 열심히 사는 회사원이었다.

어릴 적부터 그저 열심히만 살았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홀로 날 키워주신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곳에도 한눈팔지 않고, 공부만 했으며.

대학에 입학한 순간부터 취업 준비에 매달렸고, 졸업하자마자 대기업에 입사했다.

취업에 성공한 날. 대학 생활 내내 묵묵히 내 옆에 있어 준 그녀와 결혼했다.

이제 열심히 살았던 보상이 펼쳐질 줄 알았다.

그런데······.

취업 후 1년이 지난 어느 날.

어릴 적 아버지를 앗아간 그놈이 내게도 찾아왔다.

어떤 치료를 받아도 허리가 통증이 낫지 않아, CT 촬영을 해봤더니.

‘췌장암 3기입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췌장암······.

난 그놈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어릴 적이긴 하지만,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봤기에.

무력하게 1년도 안 되어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기억하기에.

하필 암도 왜 그런 암이······.

난 살 의지를 상실했지만, 내 아내는 그렇지 않았다.

‘아직 살아 있어. 포기하지 말자.’

처음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아내는 눈물 대신 내게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녀를 봐서라도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놈은 내가 알던 대로였다.

항암치료를 이어가며 몸은 말라갔고, 머리털도 듬성듬성해졌다.

4개월이 지나고, 죽음의 그림자가 가까워지고 있던 어느 날.

‘눈 감아 봐~’

아내가 내 손을 이끌고 데려간 곳에는······.

‘짠!’

캠핑카가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 여행 가자. 휴직 중일 때 아니면 언제 가봐? 나 휴가 길게 냈거든~’

‘이걸 어떻게······.’

‘샀어~’

‘돈이 어디서 나서?’

아내는 대답하지 않고, 웃었다.

설마······.

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집 사려고 모아 놓은 돈이잖아!’

‘······.’

‘그걸 왜 이런데 써!’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싶어.’

아내는 쓸쓸히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자기한테 좋은 곳 멋진 곳 많이 보여주고 싶어. 그래야 내가 후회가 안 될 것 같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렇게 돼버린 것도, 혼자 두고 떠나야 하는 것도 미안한데.

난 재빨리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녀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난 여행 내내 돌아다니지 않고, 캠핑카에 앉아 있었다. 통증 때문에도 그렇지만, 등을 구부리고 다니는 모습을 그녀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캠핑카로 여행 다닌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전북 임실군 옥정호.

캠핑카를 호숫가에 주차 시켰고, 아내는 음식 준비를 했다.

물안개. 흙 내음. 달콤한 바람.

차창 밖을 통해 이곳을 느끼면서, 처음으로 차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터벅.

‘자기야?’

아내가 놀라서 물었다. 여행 후 차 밖으로 나오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괜찮아?’

난 웃으며 아내를 바라봤다.

‘우리 좀 걸을까?’

‘······.’

‘나 괜찮아. 걷고 싶어서 그래.’

등을 동그랗게 말고 걸으면서 옥정호의 풍광을 봤다.

한참을 걷다가, 호수 전체가 보이는 절벽 가에 앉았다.

푸른 호수를 바라보는데, 포근해 보였다.

예전엔 파란 물을 보면, 깊고 차가워 보였는데······.

‘어머, 저런 곳에도 꽃이 피네? 이쁘다.’

흙이 거의 없는 암벽 사이에 데이지꽃 하나가 바람에 살랑거렸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가는 데이지꽃.

꺾고 싶어졌다

점점 무의식중에 다가갔다.

‘뭐해?’

아내는 큰 소리로 말렸지만, 난 계속 다가갔다.

‘하지 마! 뭐 하는 거야?!’

‘주고 싶어서.’

‘내가 언제 갖고 싶다고 했어?! 하지 마! 제발!’

주춤. 주춤.

난 뭔가에 홀린 듯, 암벽 사이에 매달린 데이지꽃에 슬금슬금 다가갔고.

철커덕. 휙-

난 결국 미끄러져 하늘을 날았다.

‘안돼-!’

날 향해 소리 지르는 그녀의 얼굴이 점점 작아져갔다.

풍덩!

물속에 떨어진 그 기분을 잊지 못 한다.

온몸이 거인의 손에 뺨을 맞은 느낌.

통증은 피부를 파고들어, 뼛속까지 전해졌고.

엄청난 한기와 함께, 코와 입으로 물이 들어와 폐가 부풀어진다.

파랗다 못해 검은 물속으로 점점 들어갔다.

발버둥이 멈췄다.

그렇게 끝인 줄 알았다.

***

내 얘기를 다 들은 후, 캡틴은 희미하게 웃었다.

“재밌네. 진작 들어볼걸.”

“안 믿기지?”

“희망이 생긴다. 나도 지금 눈을 감았을 때, 너와 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잖아.”

“······.”

“아니면 그 호수에 뛰어든다면.”

“······!”

그의 말이 순간 머릿속을 울렸다. 이곳에 올 때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캡틴은 내 표정을 살피고는 말했다.

“그곳이 세계를 연결하는 문 일지도 모르잖아.”

그 생각은 못 해봤었다.

가능성이 전혀 없진 않다. 다만 목숨을 담보로 해야겠지만.

이 무지하고 다혈질적인 인간이 이런 생각을 해낼 줄이야.

이제 그의 눈이 감기려 했다.

난 그의 머리 주변을 감싸는 짙은 보라색 빛을 바라봤다.

“하아······.”

캡틴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오지혁. 너 말이야.”

“······.”

“왜 내가 캡틴이 되도록 내버려 뒀었냐? 원래 네 것이었잖아.”

“얘기했던 거 같은데.”

“진짜를 얘기해 줘. 내가 캡틴의 자질이었다는 개 같은 소리 하지 말고.”

“······.”

“그래, 곧 죽을 거니까.”

난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은, 아니 얘기할 수 없었던 사실을 말해줬다.

“첫째, 내겐 세 번째 눈이 있어. 상대방 이마를 보면 색깔이 보이는데, 네게서 본 건 처음 보는 색이었어. 즉, 그 색이 뭘 의미하는지 몰랐었고, 내가 봤던 캡틴을 믿었던 거지. 생존력 하나는 괜찮았으니까.”

“세 번째 눈······.”

“이제 경험이 쌓였으니까, 너와 같은 색이 보이는 놈은 절대로 리더가 못 되게 할 거야.”

캡틴은 웃었고, 난 두 번째 이유를 얘기했다.

“두 번째, 난 리더가 되고 싶지 않았다. 끝.”

“크크크.”

캡틴은 웃다가 말했다.

“그러니까 넌 사람의 색을 볼 수 있는데, 내 건 처음 보는 거라서 몰랐다 이건가?”

“맞아. 이렇게 동료들 다 죽일 새끼인지는 몰랐지.”

“신기하네. 하여간 넌 볼수록 신기한 녀석이야.”

캡틴은 마지막 숨이 느껴졌다.

“잘 모르는 놈에게 맡기느니, 네가 리더를 했어야지.”

“······.”

“결국 너 때문에 이렇게 된 거였네.”

“닥치고. 어서 죽어.”

후-

캡틴은 마지막 숨을 내쉬고, 말했다.

“너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캡틴은 그 말을 끝으로 숨을 거두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옥정호로 향했다.

***

8개월째.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윤수아는 주말마다 옥정호를 찾았다.

다들 죽었을 거라고 했다. 윤수아는 시신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암벽을 지나 수풀 속을 걸어갔다.

길이 없지만, 수십번 와봐서 익숙하다.

호숫가에 서서 오지혁이 떨어졌던 절벽 위를 바라봤다.

위치를 확인 후 주변 수색을 시작했다.

찰랑. 찰랑.

고요한 호숫가. 물결치는 소리만 들렸다.

시간이 꽤 흘렀고, 곧 있으면 해가 진다.

수아는 수색을 멈추고, 한참을 멍하니 호숫가를 바라보다가 돌아섰다.

찰랑. 찰랑.

왔던 길로 돌아가려는데.

찰랑. 찰랑.

철벅. 철벅.

물결 소리 뒤에, 무거운 발소리가 들렸다.

등골이 오싹해져서 걸음을 멈추었는데.

“수아야.”

사무치게 그리워한 목소리.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어제 들은 듯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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