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기적
젖은 몸으로 다니기엔 쌀쌀한 4월.
한 겨울에도 밖에서 자던 몸이기에, 지혁에게 이 정도 추위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수아가 떨고 있었다.
손을 떠느라 현관문을 열지 못했다.
삐비빅-
덜컹.
머뭇거리고 있는 수아를 대신하여, 비밀번호를 누르자 문이 열렸다.
“안 바꿨네.”
지혁이 비밀번호를 기억하는 걸 보니, 수아는 약간 안심이 되었다.
집에 오는 내내 계속 물어봤던 말.
집에 들어가기에 앞서 다시 한번 물었다.
“정말······ 오지혁 맞지?”
“맞다니까.”
얼굴, 목소리 모두 분명 맞지만.
다른 사람 같았다.
부드러운 눈빛도, 상냥한 미소도 없어졌다.
무엇보다도 8개월간 행방불명 됐다가 돌아왔고, 수아 못지않게 당황해야 정상일 텐데.
너무 태연했다. 잠시 집 근처에 나갔다가 온 사람처럼, 너무 평온했다. 그 어떠한 기색도 표정에 드러내지 않아 속을 알 수 없었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았고, 왠지 무서웠다.
“나 사망신고 되어 있어?”
지혁은 젖은 옷을 벗으며 물었다.
통증 때문에 구부정한 모습 온데간데없고, 반듯하게 서 있다.
상의 탈의한 뒤태는 군살 하나 없이 잔 근육이 자리 잡아 있었으며, 흉터가 많이 보였다.
“당신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지혁은 그녀의 말을 끊고, 다시 말했다.
“묻는 말에 먼저 대답해줄래.”
꿀꺽.
훅 들어오는 위압감에 수아는 마른 침을 삼켰다.
말투는 분명 상냥했으나, 거역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안 했어. 시신을 못 봤는데, 왜 사망신고를 해.”
“8개월 지났다고 했지?”
“몇 년이 지나도 내 눈으로 보기 전까진 사망신고 안 했을 거야.”
“······.”
지혁은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좋은 태도야. 그래야지. 본 것만 믿어야지.”
지혁은 곧바로 바지도 벗었고.
수아는 당황하여 고개를 돌렸다.
“실종신고는 했겠지?”
“······.”
“나 먼저 씻을게. 경찰서에 나 찾았다고 알려.”
수아는 멍한 얼굴로 지혁을 바라봤고, 그는 욕실로 들어가며 말했다.
"씻고 나서 다 얘기해 줄게"
***
“아~ 좋다.”
지혁은 포만감에 만족스러웠다.
며칠은 굶은 듯 정신없이 먹었으며, 냉장고 안을 거의 다 비웠다.
음식의 종류, 맛과는 상관없이 전투적으로 입에 쑤셔 넣는 지혁을 보며 수아는 기가 질렸다.
마치 맹수가 배를 채우는 것 마냥, 먹는 내내 눈을 희번덕거리며 주변을 살피었다.
먹는 태도만 놀라운 게 아니었다.
식사하며 그가 들려준 이야기들.
지혁은 잔인한 정글에서 생존했다. 죽지 않으려면 죽여야 하며, 굶지 않으려면 뺏어야 하는 세상에서 말이다.
처음엔 이 절망적인 세계 자체가 위협이라 생각했다. 여기저기 만연한 질병, 그리고 생명체를 죽이는 안개.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환경에 적응한 사람들만 살아남게 되었고.
그들 간에 한정된 자원을 두고 속고 속이며, 죽이고, 훔쳐야 했다.
결국 진짜 무서운 건 사람이었다.
말도 항상 최소화로 했으며, 절대로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 누구도 믿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말 많이 해본 건 정말 오랜만이네.”
“······.”
“내가 머리털 난 짐승은 안 믿지만, 그래도 당신은 믿지.”
캠퍼스 커플이며, 결혼 3년 차 신혼이다. 두 사람은 부부이면서도 친구였다.
“내가 한 이야기 안 믿겨?”
“쉽게 믿는 게 이상한 거 아니야?”
“그래도 믿어야 해.”
지혁은 수아의 눈을 보며 말했다.
“사실이니까.”
수아는 잠자코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 세계’가······ 올 거라는 거지?”
“아마도.”
“그게 언젠데?”
지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나도 몰라.”
지혁은 에이원 캠프에서 함께 있던 고령의 노인으로부터 어릴 적에 평화의 시기를 잠깐 경험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 세계’ 가 멀지 않다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지만.
확실하지 않은 얘기를 할 수는 없었다.
“뭐, 세계가 달라서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고. 하지만 확실한 건 내가 겪어온 세계가 꿈은 아니야.”
지혁은 손등과 팔뚝에 그어진 흉터를 매만지며 말했다.
“꿈에서 이런 게 생길 리 없잖아.”
“실종 중에 다친 걸 수도 있지.”
“아니야. 수아야.”
지혁은 손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감각을 기억해. 다치기만 한 게 아니야.”
“어떤 감각?”
지혁은 말을 하려다가 멈추었다.
칼이 사람의 살을 파고들던 감각을 수아에게 얘기해줄 수는 없었다.
“어쨌든 난 건강히 돌아왔잖아. 그게 중요한 거지.”
수아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지금 해준 끔찍한 이야기들이 만약 사실이라면?!’
“뭐라도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야? 비상식량이라든지.”
수아의 물음에, 지혁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대비해도 큰 의미가 없어. 그날이 오기 전까지 하고 싶은 거 다 하며 즐겁게 사는 게 최선이야. 죽어도 아쉽지 않도록.”
“······.”
“그러니까 다른 걱정은 하지 말고, 지금 후회 없게 살면 돼.”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지혁은 묻는 말에 대답하거나, 필요한 말만 했다.
그 또한 수아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원래 지혁은 밝고 유쾌한 사람이었으니까.
“암은?”
수아의 물음에 지혁은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괜찮아 보이지 않아? 언젠가부터 허리통증이 사라졌어.”
지혁의 췌장암을 발견한 시점부터 1년이 지났다.
시한부 판정받은 9개월을 훨씬 지난 것이다.
속은 어떨지 모르지만, 겉보기에는 건강해 보였다. 암 투병으로 빠졌던 머리도 풍성해졌고, 무엇보다도 허리를 굽히고 다니지 않았다.
표정이 좀 무섭긴 하지만, 안색도 좋아 보이고.
‘그래도 몰라. 확실히 하는 게 좋겠지. 머리 검사도 좀 하고.’
수아는 지혁의 손을 잡고 말했다.
“네가 돌아와서 정말 기뻐. 그래도 내일 병원 가서 검진 한번 받아 보자.”
“······.”
“부탁이야.”
지혁은 불필요한 일을 하는 걸 싫어한다. 하지만 수아가 이렇게까지 얘길 하니.
‘그 인간 말이 맞네. 가족은 약점이 될 거라더니.’
그 세계 있을 때, 캡틴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어쩔 수 없나 보다. 나도 약점이 생겼네.”
“그게 무슨 소리야?”
“내일 병원 가겠다는 말이야.”
***
지혁이 집에 돌아온 지 하루가 지났다.
수아는 연차를 내고 예약 가능한 병원을 찾아 멀리까지 왔다.
피검사 등 자세한 결과지는 며칠 지나야 받아 보겠지만, 가장 궁금해했던 건 복부 CT를 통해 바로 알 수 있었다.
‘완전히 깨끗합니다. 췌장에 아무 이상 없습니다.’
왈칵.
의사 소견에 수아는 바로 눈물을 터트렸고,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지혁도 약간은 놀란 표정이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
지혁은 얼떨떨했다.
췌장암 완치 판정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울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생소했다.
현실 세계에서는 8개월이지만.
그 세계에서는 겨울을 다섯 번 맞았었다.
날짜를 세며 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5년은 지난 것이다.
길거리를 걷다가 시체를 보는 건 다반사고, 같이 다니던 동료가 다음날 죽는 것도 일상이기에.
누군가를 위해 울어줄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런 세상이었다.
그날 저녁.
둘은 식사를 하며 대화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수아의 질문에 지혁은 잠시 생각하고는 물었다.
“혹시 회사에 나 실종됐다고 알렸어?”
“아니.”
“8개월이 지났으면······ 아직 복직 날짜 안 지났을 거 같은데.”
지혁에게는 5년 전 일이라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았다.
달력을 살펴보다가 물었다.
“수아야, 나 휴직이 언제까지지?”
“오늘까지야.”
지혁은 황당해 했고, 수아는 덧붙여 말했다.
“4월 14일부터 휴직이었고, 오늘이 13일이야.”
“기가 막히네. 병가 휴직 기간 동안 딱 완치하고 돌아가겠네.”
수아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지혁을 바라봤다.
“복직 하려고?”
지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집에서 놀면 뭐 해?”
“힘들어했잖아.”
“······.”
“그리고 너희 팀 사람들 병문안 한번 안 왔었어. 무슨 전염병 옮을 것처럼 사람 이상하게 취급하고.”
지혁은 항상 열심히 살았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가고, 놀지 않고 열심히 취업 준비 하고.
적어도 그때까지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회사생활은 열심히 한다고 잘 되는 게 아니었다.
입사한 지 1년이 지난 27살에 그 사실을 스스로 인정했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힘들어도 해야지. 여기선 그게 생존이니까.”
“······.”
“그리고 내 여자 더 고생 시킬순 없어. 그동안 혼자 힘들었잖아.”
두 사람 눈이 마주쳤고, 스파크가 일었다.
지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
“집에 콘돔 있어?”
“뭐야, 그런 게 왜 있어.”
“잠깐 기다려. 사 갖고 올게.”
지혁은 주저하지 않고 신발을 신었고, 수아가 말렸다.
“그냥······.”
덜컹!
지혁은 집 밖을 나갔다.
‘임신은 안돼.’
***
선도그룹.
국내 최대 그룹이자, 세계 20위 안에 드는 거대 기업그룹.
그 중 선도물산은 선도그룹의 모태가 되는 회사다.
연봉도 높고, 처우도 좋다.
취업준비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어 하는 회사 순위권에 항상 들며,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 최고의 대기업.
이 회사의 정규직 직원들은 자존감이 높다.
거기서도 이 회사의 인재를 선발하는 곳의 자존감은 말할 것도 없다.
똑. 똑.
“들어오세요.”
말끔한 정장을 입은 지혁이 미팅룸으로 들어왔고, 기다리고 있던 인사직원은 일어나서 악수를 청했다.
“어서오세요.”
‘배진수 대리’
지혁은 살짝 눈인사하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배 대리는 지혁에게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앉으세요.”
“네.”
지혁이 앉자마자, 본론으로 들어갔다.
“복직하신다고요.”
“네.”
“어떻게······ 괜찮아졌습니까?”
지혁은 대답 대신 의사 소견이 담긴 진료기록서를 꺼내놓았다.
“보시죠.”
“흠······.”
서류를 살펴보던 배 대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참 희한하네. 췌장암 아니었나요?”
“맞아요.”
“그게 생존율이 굉장히 낮은 거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고 하더군요.”
남의 일처럼 말하는 지혁의 태도가 거슬렸다.
“혹시 뭐······ 부업 준비하느라 거짓으로 병가 냈던 건 아니겠죠.”
“그런 미친 짓을 왜 하나요. 무급 휴가인데.”
“······.”
“부업은 월급 받으면서 준비하는 거죠. 안 그래요?”
지혁은 훤히 드러낸 배 대리의 이마를 뚫어지게 보며 말했다.
그런 지혁의 눈 앞에, 배 대리는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무슨 뜻인지 잘 아실 거 같은데.”
뜨끔.
배 대리는 흥분하여 말했다.
“부업은 취업 규정에 어긋난다는 거 모르나요? 어디 인사팀 직원 앞에서 그런 막말을 합니까?”
“휴직 중에 부업을 하는 것도 취업 규정에 어긋나잖아요? 누군 말해도 되고, 누군 말하면 안 되나?”
“저, 저······.”
배 대리는 입술을 떨었다.
‘오지혁 사원이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병가휴직 전에도 인사팀 미팅을 했었고, 그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흔치않은 병을 앓고 있었으며, 팀에서 왕따를 당하는 직원이었으니까.
그 때문에 사내 분위기가 안 좋아지고 있었는데, 병가를 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희망하는 팀이 있습니까?”
배 대리의 물음에 지혁은 되물었다.
“당연히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야죠.”
“그게······.”
지혁이 근무했던 의류 상품기획팀은 선도물산의 핵심 조직 중 하나였고, 그가 휴직하자마자 바로 인원을 충원했다.
지혁이 못 돌아올 거로 생각했던 것이다.
즉, 현재 TO가 없다. 하지만 그 얘기를 할 수는 없었다.
“지혁씨, 내가 좀 아는데. 거기서 힘들었잖아요. 팀을 옮길 기회에요. 복직하면서 자연스럽게······.”
“아니요.”
지혁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있던 곳으로 갑니다. 안 될 이유 있나요? 그게 원칙으로 알고 있는데.”
“내가 안다니까요? 스트레스받으면서 일할 필요 있습니까?”
지혁은 이 말에 피식 웃었다.
진짜 스트레스는 죽음이 목전에 다가왔을 때 느끼는 것이다.
직장 상사 몇 마디 말에 힘들어 하던 그때의 지혁이 아니다.
“스트레스는 무슨······ 그게 뭐 별건가. 그리고······.”
그리고 '그 세계'를 떠올렸다.
가로등보다 더 쉽게 볼 수 있는 시체들. 죽지 못 해 살아가던 사람들.
‘자기 명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혁은 공허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어차피 다 뒤질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