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19화 (19/301)

19. 지금이 중요하다 (1)

“이게 무슨 소리야!”

심 팀장은 오랜만에 샤우팅을 했다.

윤 차장은 난감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팍스버거 대성실업 혼자 해?”

“······.”

“아니, 자네는 차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그거 하나 제대로 설명 못 해서 담당 바꿔달랬다는 말을 지금 나한테 하고 있나?”

“오죽하면 말씀드리겠습니까.”

윤 차장은 지혁을 힐끔 보고 말했다.

“김진아 과장이라는 사람. 말이 안 통하더라고요. 생각이 얼마나 확고한지······.”

콜라보 테스트 오더 할 때도 많이 듣던 소리였다.

지혁이 맡은 후 잘 해결되길래, 단순히 앞가슴 그래픽 조정 건이 예민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그게 아니라, 그냥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니 우리 회사 담당은 우리가 정하는 거지. 왜 그쪽이 지랄이야? 걔 몇 살이나 먹었어?”

“그야 모르죠. 만나본 적이 없으니.”

“삼십 대 중반 정도.”

옆 책상에 앉아 있던 지혁이 무심한 목소리로 대신 대답했다.

부글. 부글.

강 건너 불구경 하는 듯한 지혁의 태도가 심 팀장 가슴에 염장을 질렀다.

“뭐 또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세요. 제가 아는 대로 알려드릴 테니까.”

부글부글 끓고 있는 심 팀장에게 지혁의 한마디를 더 했고.

“원 팀 아닙니까. 원팀.”

맞는 말이지만, 이것이 심 팀장을 폭발하게 했다.

“윤 차장! 당장 전화 걸어서 안 된다고 해! 유 실장님이 직접 지시하신 사항이야. 무조건 윤 차장이 해!”

윤 차장은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전 못합니다.”

심 팀장이 죽일 듯이 바라봤지만, 윤 차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제가 설득 안 해봤겠습니까. 한 번 더 설득했다가는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부글. 부글.

“직접 설득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팀장님이시니까. 말이 좀 먹히지 않을까 싶은데.”

“그걸 왜 내가 해!”

심 팀장은 껄끄러운 일에는 절대 안 나서려고 한다. 뒤에서 소리만 치지.

“그럼 시작을 못 합니다. 처음에 버벅대면 나중에 큰 문제가 생길 텐데······.”

“윤 차장아. 부끄럽다. 부끄러워.”

“······.”

심 팀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전화 연결 해 봐!”

“네.”

윤 차장은 본인의 핸드폰으로 대성실업 김진아 과장에게 전화했다.

“아, 네네. 선도물산 윤 차장입니다. 아~ 죄송해요. 자꾸 연락드려서. 저희 팀장님이 잠시 얘기 좀 나누고 싶다고 하셔서요. 잠시만요~”

“흠!”

심 팀장은 헛기침하고는 전화기를 받았다.

“네, 선도물산 상품기획 1팀 팀장 심원석 부장입니다.”

장 과장이 피식 웃으며 혼자만 들리게 중얼거렸다.

“재밌는 거 보겠구먼.”

심 팀장은 그렇게 소개를 한 후 새우등이 됐다.

“아~ 네네. 그러셨구나. 아~ 근데 모르셔서 그러는데. 우리 윤 차장이 베테랑이에요. 일단 일을 같이해보시면~”

전화하기 전에는 한바탕 싸울 것 같더니, 어찌나 공손하게 전화를 받는지 눈 꼴 셔서 보기 힘들 지경이었다.

심 팀장은 한결같다. 자기 팀원에게만 강하다.

“아~ 그래요? 꼭 그러셔야 해요? 이해는 하는 데에~ 근데 저희 입장에서는 담당을 이렇게 막 바꾸기가······.”

한창 콧소리 섞어서 말하던 심 팀장의 말이 갑자기 멈췄다.

뭔가 충격적인 말을 들은 듯한데. 확인하려는 듯 되물었다.

“안 바꾸면 안 한다고요?”

상품기획 1팀의 전체가 얼어붙었다. 콜라보는 유 실장이 직접 챙기는 일이다. 안 하면 그만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

“그러면 안 되죠~ 테스트 오더까지 했는데. 네네~ 그러니까 담당을 바꿔야겠죠? 아~ 듣고 보니 그렇네요. 네~ 알겠어요. 긍정적으로 검토해서 다시 연락 드릴게요~”

탁!

심 팀장은 남의 핸드폰을 거칠게 책상 위에 올려놓고 소리쳤다.

“아오! 씨발!”

“······.”

“얘 뭐야? 철벽녀야? 뭔 이렇게 말이 안 통해?!”

윤 차장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그렇다고 했잖아요.”

“······.”

“어떻게 해요? 바꿔요? 저희 마음대로 바꿔도 돼요?”

심 팀장은 눈알을 굴리더니, 슬며시 말했다.

“윤 차장이 실장님한테 메일 써. 이래저래 해서 담당자를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물론 메일 참조에 나 넣고.”

윤 차장은 피식 웃었다.

그는 신입사원이 아니다. 이따위 개수작에 넘어갈 짬밥이 아니었다.

“무슨 소리세요. 전 직속 상사에게 이미 보고 드렸는데.”

“······.”

“결정되면 알려주세요. 지시 내리시면 움직이겠습니다.”

이렇게 공은 심 팀장에게 넘어갔고.

지혁은 아무 말 않고 있었지만, 심 팀장은 살짝 올라간 그의 입꼬리를 보았다.

“아오, 젠장. 실장실 갔다 올게.”

***

“실장님 안녕하십니까.”

“심 팀장님, 어서와요. 자주 보네요?”

심 팀장은 조심히 안으로 들어가서 인사했고, 유 실장은 별로 반갑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반가운 것처럼 인사했다.

“하하. 네 좋은 일로 오면 더 좋은데······.”

심 팀장은 굽신굽신 하며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얘기를 들을수록 유 실장의 얼굴이 벌게졌다.

“이게 말이 돼요? 담당을 바꿔 달라니? 시작도 하기 전에?”

“······.”

“아니, 본인들 일만 하면 되지. 왜 우리 영역에 간섭을 하나요?”

“그러게 말입니다.”

심 팀장은 본인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안 된다고 하세요.”

“그러면 없던 일로 하겠답니다.”

유 실장의 눈이 흰자위가 보일 정도로 커졌다.

“이것들이 갑질이네?”

“······.”

“심 팀장은 그 정도도 설득 못 하나요?”

“오죽하면 제가 이런 사소한 일로 유 실장님께 찾아왔겠습니까.”

유 실장은 말없이 심 팀장을 바라보았다.

책임지는 걸 싫어하고 아래 직원들에게 평판이 안 좋을 뿐, 일은 잘하는 사람이다. 또한, 윗사람에게는 나이와 상관없이 극도로 깍듯하다.

조직에서 살아남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유 실장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생각했다.

심 팀장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오지혁 사원을 그대로 담당으로······.”

“그건 안 됩니다. 윤 차장이 싫다면 다른 담당도 있잖아요.”

“대성실업 담당자가 오 사원을 콕 집어서 요청했습니다. 아무리 설득해도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라······.”

“······.”

“어렵게 테스트 오더까지 마쳤는데, 이 때문에 일을 그르치면 너무 아쉽지 않겠습니까. 실장님께서도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건인데.”

유 실장은 마음 같아서는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공들인 시간도 있고, 고객조사 통해서도 가능성을 보았기에······.

“오지혁을 담당으로 세우고, 제가 뒤에서 잘 보겠습니다.”

“심 팀장이? 컨트롤 못 할 거 같은데?”

“······.”

틀린 말은 아니라서, 심 팀장은 뭐라 대꾸하지 못했다.

“휴우-”

유 실장은 한숨을 한번 쉬고는 말했다.

“일단, 오지혁이 담당 하는 거로 합시다. 이만 가보시고, 걔 좀 오라고 하세요.”

“오지혁 혼자요?”

“못 들었습니까?”

심 팀장은 당황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 네. 알겠습니다.”

***

똑. 똑.

[오지혁입니다.]

“들어와.”

지혁이 들어오자, 유 실장과 백 과장은 하던 일로 멈추고 접견 탁자로 왔다.

“이리 앉아.”

유 실장은 오늘도 앞머리를 내려서 이마를 가리고 있었다.

‘헤어스타일 짜증 나네.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데.’

지혁은 오늘도 유 실장의 색을 볼 수 없었다. 본인의 감각에 의지해야 한다.

“왜 불렀는지 대충 알 것 같은데.”

“네, 짐작은 해요.”

“아무래도 자네가 팍스버거 콜라보 담당을 해야 하는데.”

“안 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뭐?!”

유 실장은 귀를 의심했다.

‘얘가 지금 뭐라 그런 거지?’

백 과장도 좀 놀랐다. 이게 지금 무슨 의도인지.

“마지 못 해서 맡기는 일은 안 하고 싶어요.”

지혁은 ‘그 세계’에서의 경험을 통해 배웠다.

‘때로는 과감한 베팅을 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상대를 흔들어야 한다.’

지금이 그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유 실장은 황당했지만, 너무나 당연한 말을 했다.

“야······ 너는 내가 지시 하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야. 이 당연한 걸 얘기해줘야 하나?”

혼란스러웠다. 유 실장은 백 과장을 향해 물었다.

“요즘 신입사원들은 연수를 어떻게 받는 건가?”

“······.”

지혁은 유 실장의 눈을 보고 또박또박 말했다.

“시키면 하겠죠. 근데 성과 내지 못 할 겁니다. 글쎄······ 사고 칠지도 모르죠.”

유 실장은 머리가 아팠다.

‘이 새끼가 지금 나 협박하는 건가?’

“뭐, 뭐 어쩌자는 건데?!”

유 실장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약속 하나만 해주십시오.”

“약속?”

“콜라보 첫 출시 제품 정판율(정상가판매율) 70% 넘게 나오게 할 테니, 승진 좀 시켜주세요.”

사원 주제에 승진을 조건을 내 거는 것도 웃겼지만, 정판율 70%를 말하는 건 더 황당했다.

할인판매가도 아닌, 정상가판매로 70%를 넘긴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말 그대로 히트상품이 되는 것이다.

“야, 정판율 70%가 장난인 줄 알아?”

“그러니까, 장난 아닌 거 해낼 테니, 승진시켜주세요. 3개월쯤 뒤가 되겠네요.”

아무리 신입사원이 통통 튀고, 야망 넘친다고 해도. 지혁같은 사람은 없었다. 그것도 임원 앞에서.

“오지혁 사원. 승진을 그렇게 함부로 시킬 수 있는 건 줄 알아? 그리고 보상이란 건 먼저 성과를 낸 후에······.”

지혁은 고개를 저었다.

“화장실 가기 전과 갔다 온 후 사람 마음 달라지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인데······.”

유 실장과 백 과장은 지혁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아무 말도 못 했다.

“전 보장 받고 움직여요. 어떻게 하실래요?”

유 실장은 백 과장을 바라보았고.

백 과장이 유 실장 귀 가까이에서 대고 속삭였다.

“어차피 힘든 일입니다. 조건을 조금 높여서 승낙하시죠.”

“근데, 얘 확실히 완치돼서 온 거 맞아?”

“그렇다고 합니다······.”

유 실장은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좋아. 7월에 출시되는 콜라보 라인 전 제품이 정판율 70% 넘긴다면 승낙하지.”

“······.”

“그리고 콜라보 진행 상황을 내게 매일 보고 해줘야 해.”

“매일은 어렵고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할 수 있겠네요. 그 외에는 받아들입니다.”

지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전 일하러 가볼게요.”

유 실장은 비열한 미소를 얼굴에 담고 물었다.

“뭐 안 써도 되겠나?”

“옆에 증인 있잖아요. 그리고 임원이나 되시는 분이 한 입으로 두말 할거라고 보진 않아요.”

지혁이 나가려는데, 유 실장이 뒤에서 말했다.

“자네, 장난하는 거 아니지? 진짜 제대로 해야 해.”

지혁은 피식 웃고는 씹듯이 말했다.

“전 장난 같은 거 안 해요.”

***

2주가 더 지나서.

드디어 복직 후 첫 월급날이 되었다.

지혁은 통장에 찍힌 금액을 확인했다.

‘급여 : 3,543,000원’

대기업 사원치고는 많지도 적지도 않은 급여.

‘이제야 수아 눈치 좀 덜 보겠네. 이 돈으로 뭘 할까.’

생활의 퀄리티는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즉, 아끼지 않고 다 써버리면 이 정도 월급으로도 꽤 풍족하게 살 수 있다.

퇴근 전철 안에서 지혁은 그동안 생각해 왔던 걸 망설이지 않고 구매했다.

집 도착.

수아가 먼저 퇴근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수아야~”

지혁은 적어도 집 안에서는 예전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물론, 가치관까지 달라지지 않았지만.

“어, 지혁아. 왔어?”

수아는 현관에서 지혁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싱글벙글 웃는 지혁을 보며 수아가 물었다.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

“오늘 월급 탔거든.”

“오~ 축하. 축하. 호호.”

수아는 지혁의 팔짱을 끼며 콧소리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1년 만의 첫 월급인데, 이쁜 아내한테 뭐 선물 없어?”

“당연히 있지~”

지혁은 핸드폰을 들어 수아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우리 올여름에 하와이 가자.”

‘하와이 여행 패키지 2인’

수아는 핸드폰 화면에 뜬 걸 처음엔 멍하니 보다가, 이게 뭘 의미하는지 차츰 이해가 되었다.

“너······ 월급 다 쓴 거야?”

“아니, 한 30만 원 남았는데.”

입 밖으로 소리를 내지는 않았으나, 수아의 입 모양은 분명히.

‘이런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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