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성과를 보여주다 (1)
“외근이요.”
제품이 매장에 진열되는 날.
지혁은 오전 일찍 사무실을 나섰다.
심 팀장은 지혁이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걸 확인한 후에 씹었다.
“쟤는 외근이 너무 잦은 거 아니야?”
“······.”
“놀러 다니는 건지, 일하러 다니는 건지 어떻게 알아?”
팍스버거 콜라보가 매끄럽게 잘 진행되면서, 심 팀장은 이상하게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서 요즘 지혁에 대한 뒷담화가 심해졌고, 이젠 팀원들은 그가 쌍욕을 해도 아무런 감응도 못 느낄 지경이었다.
“팀장한테 제대로 컨펌을 받는 것도 아니고. 뭐? 외근이요? 달걀 장수도 아니고 이 싸가지 없는 새끼.”
“에휴······ 그럼 못 나가게 하면 돼지.”
어디선가 한숨 섞인 혼잣말이 들렸다.
윤 차장이었다.
“누구야?!”
지혁만 사라지면 호랑이로 변신하는 심 팀장이었다.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지만, 한숨 소리를 낸 사람의 정체를 몰라서 물은 게 아니었다.
“윤 차장!”
“네.”
“자기 요즘 포지션이 애매한 거 같다?”
“무슨 포지션이요?”
“내가 지켜보고 있어. 입장 정리 좀 잘해.”
윤 차장은 소 눈망울처럼 눈을 꿈뻑 거리며 말했다.
“회사원이 일만 잘하면 되지. 무슨 입장 정리입니까? 정치인도 아니고.”
누구보다도 정치인처럼 행동하는 윤 차장이 할 말은 아니었다.
심 팀장은 그의 능청스러운 말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으나······ 참았다.
윤 차장이 요즘 지혁과 가까이 지내는 게 신경쓰였다.
“윤 차장, 팀원을 잘 되게 하기는 어려워도, 안 되게 하는 건 매우 쉽다는 거······.”
“진부하다. 진부해. 이게 언제적 디자인이냐~”
윤 차장은 생산의뢰서를 보며 씨부렁거렸다. 누가 봐도 이건 심 팀장 들으라는 돌려 까는 소리였다.
일부 팀원의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자식이.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팀원들의 태도가 근래에 많이 달라졌다. 심 팀장이 완전히 팀을 장악했던 과거엔 이렇지 않았다.
‘안 되겠어. 분위기 한번 잡아야지.’
지혁은 외근 나갔겠다, 간만에 10층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오랜만에 샤우팅 하려니까, 긴장되네.’
심 팀장은 원래 다혈질이기도 했으나, 때로는 전략적으로 지랄하는 거였다. 어쨌든 회사생활에서 직급이 깡패니까.
팀장으로서 팀원에게 정당하게 지적하는 건 문제 될 게 없었다.
“윤 차장!”
심 팀장이 버럭 소리 지르고 시작하려는데.
덜컹.
“중요한 걸 놔두고 왔네.”
지혁이 사무실에 들어왔다.
“너······.”
윤 차장은 심 팀장의 일갈에 식겁한 표정을 지었다가, 지혁의 얼굴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심 팀장은 방금 소리 지른 게 무색하게 얌전해졌다.
“하던 거 마저 하세요. 갑자기 멈추면 이상하잖아요.”
“······.”
지혁의 앞에서 심 팀장은 고양이 앞의 쥐가 된다.
눈을 깔고, 목소리를 죽였다.
“아니야······ 할 얘기는 이미 다 했어.”
“그래요? 이제 시작하려는 거 같던데?”
흠칫!
심 팀장은 놀라서 지혁의 얼굴을 바라봤고.
‘이 자식이? 설마, 문밖에서 지켜보고 있었나?’
지혁은 입꼬리만 살짝 올리고 웃을 뿐이었다.
“심 팀장님.”
“으응?!”
그는 놀라서 대답했고, 지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수고하세요. 수고.”
“······.”
지혁은 다시 사무실을 나섰고.
그의 뒷모습을 보며 심 팀장은 식은땀을 흘렸다.
‘아······ 숨 막혀.’
***
“지혁 씨~”
1층 로비에서 황 대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매장에 진열된 제품을 확인하고, 고객 반응을 보기 위해 외근을 가기로 했다.
“어디로 가요?”
“가까운 데로 가죠.”
“강남점?”
스타덕 강남점은 강남역 인근에 있는데, 선도물산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
“네.”
“좋습니다~ 그럼 걸어서 가시죠.”
두 사람은 여느 때처럼 말없이 걷다가, 웬일로 지혁이 먼저 침묵을 깼다.
“황 대리님.”
“네?”
“이제 와서 이런 질문 좀 웃기긴 하지만, 이렇게 외근 자주 나와도 괜찮아요?”
“······.”
“사실 생산 업무와는 동떨어진 일로 제가 외근 요청을 자주 했는데, 잘 응해 주시는 것 같아서.”
그 말을 들으며 황 대리는 생각했다.
‘그래도 양심은 있구나.’
항상 아무렇지도 않게 불러내길래, 남의 상황은 전혀 고려 안 하는 줄 알았다.
“팀장님 컨펌받고 나오는 거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매번 그렇게 컨펌을 잘해주나요? 기획팀 요청이라서 그런 건가?”
지혁의 말을 들으며, 황 대리는 생각했다.
‘왜 컨펌을 잘해주겠어. 당신이 오너가문이니까 그렇지.’
하지만 이 솔직한 이유를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죠~ 기획팀 요청이니까. 그리고 생산도 마켓 현장에 자주 나가야 발전한다고 생각하세요. 한 분야만 특정해서 알면 안 좋다고.”
“오······ 하 팀장님 꽤 트이셨네. 우리 회사 리더답지 않은데요.”
‘스타덕 강남점’에 도착했다.
“들어가시죠.”
자연스럽게 황 대리가 문을 열었고, 당연한 듯 지혁이 먼저 들어갔다.
성큼. 성큼.
지혁은 곧바로 팍스버거 콜라보가 진열된 곳으로 향했다.
“흠······.”
매장 전체로 봤을 때, 눈에 잘 안 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니저님.”
스타덕 강남점은 직영으로 운영된다.
지혁의 부름에 매니저가 다가왔다.
“네, 누구신가요?”
보통 손님은 매니저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다.
“본사 상품기획팀에서 나왔어요.”
“실례지만 명함을 좀 보여주시겠어요. 경쟁사에서 사칭하는 경우가 있어서요.”
지혁은 곧바로 명함을 꺼내어 보여주었고, 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였다.
“뭘 도와드릴까요?”
“팍스버거 콜라보 제품으로 DP(Display) 좀 바꿔야 할 거 같은데.”
“네?”
“마네킹 착장을 콜라보 제품으로 바꿔주시고요. 조명이 밝게 비치는 쪽으로 진열 위치를 바꿔주세요.”
“DP는 메인 주력 제품으로 하라는 지침이 있었는데.”
“그 지침 어디서 내려왔나요?”
“상품기획이죠.”
“제가 어디 소속이라고 했죠?”
“상품기획······.”
“바꾸세요.”
매니저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매장직원들을 불러 DP를 바꾸기 시작했다.
“지혁씨, 이렇게 막 해도 돼요?”
황 대리는 걱정되어 다가와 물었다.
“안 될 게 뭐 있나요? 어차피 같은 선도물산 제품인데.”
“그래도 룰이 있는데, 이렇게 맘대로 바꾸면······.”
“내가 한 게 잘 되는 게 중요해요.”
“그러면 다른 제품 담당들이 싫어할 텐데······.”
“그럼 현장으로 나와서 나처럼 하던지.”
“······.”
“그딴 거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우리 일만 집중하세요.”
“아······ 네.”
지혁은 매니저에게 소리쳤다.
“하나만 바꾸지 말고, 다 바꾸세요! 앞에 마네킹은 싹 다 팍스버거 콜라보로.”
“······네.”
보다 못한 지혁은 나서서 직접 마네킹 옷을 갈아입혔다.
***
‘스타덕 강남점’은 플래그쉽 스토어다. 즉, 스타덕을 대표하는 전국에서 가장 큰 매장이다.
팍스버거 콜라보로 DP를 바꾼 후에, 지혁은 매장 중앙에 꼼짝 않고 서서 고객들의 반응을 관찰했다.
황 대리는 좀이 쑤셨지만, 지혁이 이러고 있으니 어디 가서 앉지도 못하고.
벌서는 기분으로 지혁 옆에 서서 함께 고객 관찰을 했다.
그러길 4시간째.
발바닥이 욱신거릴 때쯤, 결국 황 대리는 참지 못하고 지혁을 불렀다.
“지혁 씨, 우리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해요?”
“1시간만 더 있죠. 거의 다 됐어요.”
“······.”
“매출은 나중에 전산으로 확인하면 되지만, 고객들이 콜라보 제품을 몇 번 터치하는지는 눈으로 봐야 하잖아요.”
“지금 그걸 세고 있는 거예요?”
“······.”
황 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필기도 하고 있었구나.’
뭐라도 시켰으면 모르겠는데, 황 대리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옆에만 서 있으니 좀이 쑤셨다.
‘도대체 나한테 왜 같이 오자고 한 거야.’
남은 한 시간 동안, 고객들이 콜라보와 주력상품을 터치하는 걸 비교하여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확실히 콜라보 제품을 많이 만지네.’
-프랜차이즈랑 콜라보를 했네.
-너무 재밌다~ 호호. 요즘 팍스버거 핫하잖아.
-근데, 이거 입으면 알바생처럼 보이지 않을까?
-로고가 크지 않아서~ 그렇게 보이진 않을 거 같은데?
고객들의 대화하는 얘기도 들었는데, 대부분 긍정적인 내용이었다.
‘반응은 좋은 거 같네. 뭐, 매출은 확인해봐야겠지만.’
“자! 됐네요.”
지혁은 먹잇감을 찾는 독수리의 눈빛으로 사주경계 하던 시선을 거두었다.
“황 대리님, 지금부터 잘 들으세요. 신속하게 움직이셔야 해요.”
“네? 아, 네!”
갑작스러운 부름에 황 대리는 바싹 긴장했다.
“저희가 콜라보 7월 라인은 3만 장 생산했잖아요.”
“네, 그 정도 돼요.”
“그 수량 동일하게 한 번 더 만듭니다.”
“······ 네?!”
황 대리는 지혁의 말이 황당했다.
‘리오더를 하겠다는 건가? 오늘 매장에 깔렸는데? 매출 확인도 안 하고? 그것도 일부 수량도 아니라, 3만 장 그대로?’
황 대리를 향해 지혁이 다시 한번 말했다.
“지금 제가 한 얘기 들었죠?”
“아, 네.”
“똑바로 대답하세요. 신속하게 움직여야 하니까.”
지혁이 언성을 높였고, 그제야 황 대리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네! 이해했습니다.”
“오케이. 지금 바로 진행하세요. 생산의뢰서는 오늘 저녁에 사무실 복귀하는 대로 드릴게요.”
황 대리는 협력사 통화버튼이 쉽게 눌러지지 않았다.
‘이래도 되는 걸까?’
지혁은 옆눈으로 황 대리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한 마디 더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말 아시죠?”
“아는데······ 지금은 너무 급하지 않습니까? 매장에 제품 깔린 지 이제 반나절 됐는데요······.”
지혁은 무서운 눈으로 황 대리를 바라보았다.
“그럼 며칠 더 확실하게 두고 본 후에 리오더하면, 제품 일주일 안에 다 들어오게 할 수 있나요?”
“아······.”
그건 절대로 불가능한 얘기였다.
“불가능한 것에 집중하지 말고, 가능한 것에 베팅 하자구요. 그뿐입니다.”
“만약에 잘못되면요?”
지혁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그럼 회사 나가는 거죠.”
“······.”
“걱정 마세요. 만약 그런 일이 생겨도 황 대리님한테는 불똥 안 튀게 할 거니까.”
그제야 황 대리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
상품전략실.
콜라보 제품 출시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유 실장은 주간 판매율 보고서를 보다가.
“뭐야?!”
백 과장은 유 실장의 놀라는 소리에 곧바로 달려왔다.
“이거 수치 잘못 된 거 아니야?”
유 실장이 손으로 가리키는 곳엔.
유독 5개 스타일에 불기둥이 치솟아 있었다.
“주판율(주간 판매율) 60%? 말이 돼? 이 정도면 다음 주에 완판(완전판매)각 아니야?”
대박 히트의 조짐이었다.
백 과장은 보고서를 다시 살핀 후 말했다.
“오류 아닙니다. 맞습니다.”
“이거 무슨 스타일이야? 뭔데?”
백 과장은 스타일 넘버를 자세히 본 후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5 스타일 모두······ 팍스버거 콜라보네요.”
“뭐?!”
유 실장은 눈알이 황급히 돌아갔다.
기쁨은 잠시였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지금은 일단 다른 건 다 제쳐두고 당겨야 하는 시기였다. 물건만 있으면 다 팔 수 있는 상황.
드르르-
마침, 전화기가 울렸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하하~ 실장님~ 오랜만입니다. 영업본부장입니다.]
“아, 네. 본부장님 어쩐 일로.”
유 실장은 그가 왜 전화했는지 짐작이 갔다.
[팍스버거 콜라보 건이요. 수량 좀 많이 해서 리오더 해야 할 것 같은데, 직접 부탁드리려고 이렇게 전화했습니다~]
“······.”
[지금 물건 찾는 고객들이 많아서, 아주 난리입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