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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31화 (31/301)

31. 혼돈의 시간 (1)

“욕하지 말라고! 이 새끼야!”

심 팀장은 버럭 소리를 질렀는데, 회의실 밖에서도 다 들릴 정도였다.

-에휴······ 또 시작이네.

-질린다 질려. 진짜. 하루도 그냥 넘어가는 날이 없어.

-이 전쟁은 도대체 언제쯤 끝이 날까.

심 팀장과 지혁이 부딪히는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제 웬만한 큰 소리에는 주변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정도였는데.

이래서 둘중 하나는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전쟁은 환경과 사람을 황폐화한다. 너무 오래 해서는 안 된다.

“때 시, 쏠 발, 사내 남, 예쁠 아.”

“······.”

“때 되면 떠날 줄 아는 아름다운 남자가 되자. 사자성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심 팀장은 황당했다.

‘이 새끼가 진짜 제대로 돌았나? 아니면, 설마 이걸 농담이라고 하는 거야?’

지혁의 표정을 한번 살폈는데, 농담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이 자식아, 개수작 부리지 마. 대놓고 욕은 못 하겠으니까 지랄을 떠는구나?”

“뭐, 그런 마음도 전혀 없다고 하진 않을게요. 상급자한테 욕할 수는 없으니까.”

“······.”

“원래는 아랫사람한테도 욕하는 건 안 될 텐데.”

심 팀장은 지혁과 짧게 몇 마디만 나눠도 뚜껑이 열린다.

하지만 무서워서 화는 못 내겠고. 그래서 더 환장할 것 같았다.

휴우-

심 팀장은 심호흡을 한번 하고 나서 말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나한테 왜 보자고 한 거야?”

“어?”

지혁은 도리어 반문했다.

“좀 전에 얘기했잖아요.”

“뭘 얘기해?! 말장난이나 했지.”

“전 장난 같은 거 안 쳐요.”

“······.”

심 팀장은 잠시 생각하고선, 눈에 핏발이 서서 말했다.

“그러니까. 내 발로 나가라고?”

“······.”

“때가 되었으니 꺼지라 이 말이야?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고, 승진은 안 되니까?”

“그런 뜻은 아닌데. 나이랑 뭔 상관인가요. 일 잘하고 공존할 수 있으면 함께 가는 거지.”

지혁은 살짝 인상을 찡그리고 말했다.

“우리는 같이 있을 수 없잖아요. 팀장님도 아실 텐데.”

“······.”

“등 떠밀려서 나가시기 전에, 기회를 드리는 거예요.”

심 팀장은 손을 부르르 떨었다.

“아름답게 나갈 기회를요.”

***

“내가 가긴 어딜 가!”

심 팀장은 또 소리를 버럭 질렀고.

-아유, 오늘은 좀 길게 하네.

-둘 다 기운도 좋다. 진짜.

-팀 바꾸고 싶어. 아, 신경 쓰여.

회의실에서 터지는 고성에 10층 A 구역은 또 한 번 술렁였다.

샤우팅도 정도가 있는데, 오늘은 좀 심한 날이었다.

“오지혁! 너 선 넘었어!”

“선이라는 게 있긴 했나요? 그렇다면 팀장님은 아주 오래전에 넘으셨는데.”

“이 자식이! 말 한마디를!”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떻게 할래요? 버티겠다는 거죠?”

심 팀장은 분노로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네가 뭔데 나보고 가라 마라야? 경영자라도 되나?”

“······.”

“그리고 가긴 내가 어디를 가? 20년간 내 젊음을 회사에 바쳤는데!”

“아, 오해하셨네.”

심 팀장이 지랄하건 말건 지혁은 시종일관 평온했다.

“회사를 나가라는 게 아니라, 팀에서 나가달라고요.”

“뭐?”

“아니면 팀장직에서 내려와서 팀원이 되던가.”

심 팀장은 동공을 굴리다가 소리쳤다.

“그럼 팀장은 누가 되고?”

“누군가 되겠죠. 뭐, 윤 차장님도 있고.”

“아······ 그래서 이 새끼들이 쌍으로······.”

심 팀장은 최근에 왜 둘이 붙어 다녔는지, 확실히 이해되었다.

“윤 차장이 너한테 제안하디?”

“세부내용은 아실 필요 없고요. 확실한 건 스스로 물러나지 않으면, 타의에 의해 물러나게 될 거라는 거예요.”

“감히 네가? 팀원이 팀장을 내보낸다고?”

심 팀장은 콧방귀를 뀌고는 말했다.

“유 실장님이 가만히 계실 것 같아? 네가 또라이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하하. 참나.”

지혁은 심 팀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그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 실장을 철석같이 믿고 있군. 나중에 상처 많이 받겠네.’

신뢰하는 사람에게 뒤통수 맞는 것처럼 아픈 일은 없다.

심 팀장은 말도 안 된다며 웃었지만, 너무나 침착한 지혁의 얼굴을 보며 내심 불안했다.

‘뭔가 있나?’

지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분명히 아름답게 떠날 기회를 드렸어요. 뜻은 알겠고요. 전 이만 가볼게요.”

“······.”

회의실을 나가려다가, 지혁은 심 팀장을 돌아보았다.

“주제넘은 말 하는 건 싫어하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할게요.”

“······.”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본인이 팀장직에 어울리는지. 팀장으로서 할 일을 제대로 했었는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심 팀장은 대꾸 없이 지혁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나중에 일 벌어졌을 때 좀 덜 억울할 거예요. 갑니다.”

덜컹.

그리고 지혁은 회의실을 나가버렸다.

***

다음날.

심 팀장은 어제 지혁이 했던 말을 무시하려 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자꾸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오후 들어서부터는 사람들이 본인을 두고 수군거리는 것 같았다.

무슨 얘기 하는지 들어보려고 가까이 다가가면, 싹 사라지고.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안 되겠어. 얼굴도장이라도 찍자.’

심 팀장은 곧바로 상품전략실로 향했다.

똑똑.

“실장님~ 심 팀장입니다.

[······.]

문 안에서 아무 소리가 없었고.

똑똑.

한 번 더 두드리자.

[잠깐만 기다려요.]

약 5분 정도 문 앞에 기다리자,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요.]

덜컹.

심 팀장은 환하게 웃으며 들어갔다.

“실장님~ 안녕하세요~”

유 실장의 얼굴이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심 팀장은 분위기를 살폈는데, 백 과장이 쭈뼛쭈뼛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분위기 왜 이래? 뭐 하고 있었나?’

유 실장은 헛기침한 후, 말했다.

“어쩐 일이에요?”

“아~ 그냥 실장님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하하.”

“그냥?”

유 실장의 좋지 않은 표정을 보고, 심 팀장은 당황하여 말했다.

“문안 인사드리려고 온 거죠~”

“심 팀장님은 참 한가한가 봐.”

“네?”

“팀장 자리에 있으면 바쁘지 않나? 미래를 계획해야 하고, 팀원들 업무 조율에 협조부서 관계도 신경 써야 하고. 정리할 게 많을 텐데요.”

“아~ 바쁘죠. 그래도 상급자에게 문안 드리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 아니겠습니까. 하하.”

“난 그냥 성과 잘 내는 사람이 좋은데.”

“······.”

평소와 다른 유 실장의 모습에 심 팀장은 내심 불편했다.

‘오늘 아침에 부부싸움 하셨나.’

본질적인 문제는 생각 못 하고, 원인을 엉뚱한 곳에서 찾았다.

“심 팀장님.”

“네!”

“상품 기획 1팀의 올해 목표가 어떻게 되나요?”

“네?!”

“뭘 그렇게 놀라요. 내가 팀장님한테 못 물어볼 걸 물어봤나?”

갑작스러운 일 얘기에 심 팀장은 말문이 막혔다.

‘올해 우리 팀 목표가 뭐였더라.’

심 팀장은 잠시 생각한 후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작년에 쭈리롱팬츠 판매가 저조했거든요. 그거 올해 판매율 올리는 거랑. 연간 정판율 올리는 겁니다.”

“정판율은 작년에 몇 퍼센트였고, 올해 목표치는 얼마인가요?”

“작년에 40% 정도 됐을 거고요. 올해는······ 한 50% 정도?!”

탁!

유 실장은 책상을 내려쳤다.

“상품기획 팀장이라는 사람이 목표 수치도 정확하게 말 못 하나요?”

“······.”

“현재 팍스버거 콜라보 몇 개 매장에 깔렸고, 재고 상황은 어떤가요?”

“······.”

“아니 그걸 몰라? 지금 가장 핫한 상품인데?”

“제가 컴퓨터 보면 바로 알 수 있는데요······.”

“컴퓨터 보면 누가 몰라? 그만큼 업무를 중요하게 생각 안 한다는 거잖아요!”

“······.”

“팀장 아닌가? 도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건가요?! 네?!”

“확인 후에 보고드리······.”

“갑자기 뭘 확인해! 내가 그 말 좀 하지 말랬죠!”

심 팀장은 문안 하러 왔다가, 탈탈 털리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부부싸움 한 게 확실해. 제기랄, 잘 못 걸렸다.’

영혼까지 털렸을 때쯤.

“심 팀장님. 이러면 나도 어쩔 수가 없어요.”

“뭘 말씀입니까?”

어휴-

유 실장은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말했다.

“나가 보세요!”

“아, 네.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유 실장은 심 팀장을 노려보았다.

‘좋은 하루 보내라고? 이 사람이 지금 나 놀리나.’

심 팀장은 황급히 인사 후, 상품전략실에서 도망치듯 나갔다.

***

“아오~ 속 터져. 회사생활 오래 하면서 맷집만 늘었나 봐.”

심 팀장이 나간 뒤, 유 실장은 툴툴거렸다.

아무리 자극적인 말을 해도, 뒤로 훌훌 넘겨버리는 심 팀장의 스킬은 단연 최고였다.

“생각보다 심각하네. 심 팀장이 이 정도였나? 예전엔 안 그랬는데.”

백 과장이 물을 한잔 건네었다.

“실장님, 목 좀 축이시죠.”

“어, 고맙네.”

한참 말을 퍼부었더니, 침이 마르던 참이었다.

“아~ 젠장. 오지혁이 때문에 고민 중이었는데. 심 팀장은 참 타이밍도 못 맞춰.”

“······.”

“이러면 내가 오지혁이를 보낼 이유가 없어지잖아.”

유 실장은 백 과장에게 물었다.

“자네 생각은 어때? 지금 오지혁과 심 팀장 중에 누가 더 필요한 사람인가?”

“그야······ 현재로서는 오지혁이죠.”

회사에서 심 팀장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팀장으로서 존재감은 있는데, 하는 일은 없는 사람. 딱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유 실장님 동기시지 않습니까.”

심 팀장과 유 실장은 입사 동기다.

두 사람은 간혹 퇴근 후 술도 한잔할 정도로 친분이 있었다.

“아, 미치겠네.”

유 실장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아침에 지혁이 폭탄선언을 한 이후, 오늘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두 사람 불러서 술 한잔하면서 달래보면 어떨까?”

백 과장은 고개를 저었다.

“의미 없습니다. 오지혁은 그런 스타일이 아니고요. 둘이 너무 상극입니다. 10층 A 구역은 오지혁이 복직한 이후 고성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요.”

“흠······.”

“좀 갑작스럽긴 하지만, 어찌 보면 지금 결단을 내릴 타이밍이 온 것 같습니다. 이대로 가면 다른 직원들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칠 테니까요.”

유 실장은 점점 지혁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지금 그에게 더 필요한 사람은 지혁이며, 심 팀장의 평판이 너무 안 좋았다.

“아무래도 오지혁으로 가야겠다.”

“······.”

“그럼 팀장은 누가 해?”

“윤현성 차장 있지 않습니까.”

“아니야. 그 친구는 마음에 안 들어.”

유 실장은 잠시 생각했다가 말했다.

“그건 조금 더 생각해 보자.”

***

다음 날 아침.

지혁은 수아와 함께 집을 나섰다.

맞벌이를 하는 두 사람은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선다.

수아는 버스를 타고, 지혁은 지하철을 탄다.

버스정류장 앞에서 수아와 헤어지려는데.

“지혁아.”

“어?”

“너 오늘 좀 멋있다?”

“그래?”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는데, 수아가 다시 말했다.

“진짜로.”

지혁은 스스로 한번 돌아보았다. 별다를 게 없었다.

평소와 똑같이 정장에 넥타이 맨 모습. 근데, 수아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오늘 뭐 중요한 일 있어?”

수아의 물음에 지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별다른 일 없는데.”

“이상하네. 오늘 어째 우리 남편한테서 빛이 나는 거 같은데.”

평소 음침하다는 소리를 듣는 지혁으로서는 이 말이 재밌었다.

“나한테 빛이 난다고? 하하. 별소리를 다 듣네. 그럼 수고해~ 나간다.”

지혁이 뒤돌아 가려는데, 수아가 말했다.

“지혁아! 오늘 좋은 일 있을 거야.”

“갑자기?”

“여자의 촉이거든~ 호호.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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