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36화 (36/301)

36. 시작하기 전에

“오 팀장님 첫 출근이네?”

평소에는 지혁이 수아를 버스정류장에 데려다준 후, 전철을 타지만.

오늘은 수아가 지혁을 전철역까지 바래다주었다.

의미 있는 날이라며 한사코 남편 출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고 했다.

“첫 출근은 무슨. 평소랑 똑같지.”

“왜~ 오늘부터 팀장님인데.”

전에는 반대했었지만, 결정되고 나니 태도가 바뀌었다.

어쨌든 영전한 거니까. 월급도 오르고, 직급 수당도 받고.

수아는 지혁의 옷매무새를 만져주며 말했다.

“팀원들 괴롭히지 말고~ 책임 전가하지 말고~ 너무 일 많이 시키지 말고~ 호호. 멋진 팀장이 되길 바래.”

“하하. 참나. 나 인제 간다. 늦겠어.”

“알았어~ 지혁아~ 화이팅!”

지혁은 수아를 향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래. 수아도 화이팅.”

전철을 타고 가는 동안, 지혁은 많은 생각을 했다.

‘이제부터는 생각을 달리해야 해. 내 한 몸 잘 챙기는 거야 자신 있지만······. 그래, 그냥 이 팀이 내 몸이라 생각하면 돼.’

‘그 세계’ 있을 때 배운 노하우다. 이끄는 그룹을 내 몸처럼 생각하면 의사결정 하기가 간단해진다.

캠프의 리더는 안 했으나, 팀 운영은‘그 세계’에서 많이 해봤기에 경험이 있다.

어느 덧 전철에 내려서.

선도물산 현관으로 들어갔다.

-어머, 어제 특진한 사람.

-이번에 팀장도 됐다며.

여러 곳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지혁은 앞만 보고 걸어갔다. 예상 못 했던 일은 아니었기에.

특진에 최연소 팀장.

앞으로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말인즉슨.

‘눈에 띄기 좋다는 거지.’

베팅률이 높아진 도박판과 같다.

즉, 조그만 행동 하나도 그 영향력은 작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유리하게 이용하는 것. 이 또한 중요한 생존전략이다.

덜컹-

‘8시 55분’

평소와 같은 시간에 사무실에 도착했다. 팀장이 되었다고 해서, 더 일찍 출근하지는 않았다.

“안녕하세요.”

지혁의 인사에 팀원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굴한 표정의 윤 차장.

시선을 땅에 꽂은 정 과장.

입술이 나와 있는 장 과장.

팀장이 출근했으니 일어나긴 했으나, 막내에게 인사하기가 민망했다.

‘팀장님, 안녕하세요’라고 해야 할지. ‘지혁이 왔어?’로 해야 할지······.

지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심 팀장이 앉았던 팀장 석으로 향했는데.

“오 팀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누군가 능글능글한 말투로 약간 장난스럽게 인사 건네었는데.

윤 차장이었다.

지혁은 그를 바라봤다.

‘제일 조심해야 할 사람.’

윤 차장의 비굴한 표정 뒤에 숨겨진 차가운 눈빛을 봤었고.

이젠 그를 대할 때는 좀 더 조심하는 마음이 생겼다.

“네, 윤 차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지혁은 가볍게 윤 차장의 인사를 받은 후, 팀원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 자리에 앉으세요. 매일 보는 사인데, 새삼스럽게.”

“······.”

“평소엔 들어와도 본 척도 안 하다가, 갑자기 이러시면 어색하잖아요.”

팀원들은 어색한 듯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덜컹.

그때 사각 턱에 건장한 체격. 정장보다는 현장 복이 어울릴 것 같은 사람이 상품기획 1팀으로 들어왔다.

“어?”

그를 가장 먼저 발견한 윤 차장은 눈이 동그래졌다.

“문 대리가 왜 여기에······.”

지혁 또한 그를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왔어요?”

“네, 팀장님. 안녕하십니까.”

물류 팀 스타덕 담당. 문규태 대리.

오늘부터 본사 상품기획 1팀으로 출근한다.

“잘 왔어요.”

문규태 대리는 고개를 깍듯이 숙이며 인사했다.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집은 구하셨고?”

“이번 주말에 신림동으로 이사합니다. 몇 년 만에 서울살이를 다시 하게 되네요. 아내와 애들이 너무 좋아합니다. 감사합니다.”

“전 필요한 사람이라 판단해서 불렀을 뿐이에요. 잘 부탁드릴게요.”

이 말에 문 대리는 고개를 깍듯이 숙였다.

“네, 팀장님.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뭘 모셔요. 일만 잘해주시면 돼요.”

지혁은 팀원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다들 오신 거 같은데. 5분 뒤에 회의실로 모일게요. 팀 미팅.”

***

지혁은 회의실 가운데 자리했고.

그의 앞에 팀원들은 나란히 앉았다.

참으로 어색한 상황.

팀 미팅하면 지혁은 항상 가장 말단 출입구 가까운 자리에 앉았었다.

중간은 건너뛰고, 한 번에 정 가운데 상석에 앉게 된 것이다.

“좀 어색하죠?”

팀원들이 자리에 앉자마자, 지혁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사소한 거에 의미 두지 마세요. 어차피 돈 받고 하는 일이잖아요.”

“······.”

“제가 뭐 여러분 위에 군림할 생각도 없고요. 그냥 맡은 일 잘해주시고, 팀 방향만 잘 따라 주시면 돼요.”

여전히 회의실 안의 분위기는 얼음장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혁은 차가운 눈빛으로 팀원들의 얼굴을 하나씩 바라보다가.

“28살 먹은 대리 팀장 두고, 도저히 일 못 하겠다. 거수해 주세요.”

훅 들어갔다.

분위기는 더 얼어붙었고.

꿀꺽.

어디선가 침 삼키는 소리만 들렸다.

지혁은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말했다.

“기회를 드리는 거예요. 안 되겠다 싶으신 분은 지금 빨리 손드세요.”

“······.”

“팀 이동 시켜드릴 테니까요. 이건 유 실장님과도 협의된 사항이에요.”

유 실장이라는 말이 나오자, 일부 팀원의 표정이 좀 바뀌었다.

“나중에 가서 나랑 못 해 먹겠다고 하시면, 그땐 안 좋게 가실 겁니다. 진짜, 마지막 기회에요.”

그렇게 말한 뒤, 지혁은 조금 더 기다려주었고.

슬금. 슬금.

테이블 끝에 앉은 장 과장이 손을 들었다.

“네, 장 과장님.”

“진짜······ 아무 탈 없이 팀 이동시켜주는 거야?”

“네.”

“그럼 나 거수할게.”

팀원들은 놀라서 장 과장을 바라봤다.

그녀의 행동은 정말 의외였다.

항상 묵묵히 자기 일만 하던 사람이었고, 누가 팀장이 되든 신경 안 쓸 것으로 보였기에.

“의왼데요?”

“나 좀 보수적이야. 사실 지금 자기한테 말하면서도. 존대해야 할지 반말해야 할지. 헷갈리는 거 자체가 스트레스야.”

“······.”

“마음이 넓지 못해서 미안해.”

지혁은 장 과장을 설득해 볼까 하다가······.

‘평소 말도 잘 않던 사람이 이렇게 얘기할 정도면······.’

더 말해봐야 의미 없을 거로 생각했다.

“알겠어요. 나가주세요.”

“어?”

장 과장은 지혁이 화난 줄 알고 당황했다.

“팀 이동 시켜줄 테니, 나가달라고요.”

“······.”

“같이 일할 것도 아닌데, 뭐하러 같이 미팅하나요. 불쾌해서 얘기하는 거 아니니까, 편하게 나가시면 돼요.”

“응? 어어······.”

장 과장은 회의실에서 나갔다.

덜컹.

장 과장이 나간 뒤, 지혁이 물었다.

“장 과장님 나가는 거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 나도 나가고 싶다. 거수해 주세요.”

“······.”

1분 정도 기다렸는데, 아무도 손들지 않았다.

정 과장이 약간 움찔움찔했는데.

차마 들지는 못 했다.

“그럼 더이상 없는 걸로 알게요. 지금부터 팀 미팅 시작합니다. 집중해 주세요.”

***

“우선 호칭 정리부터 할게요.”

지혁은 팀원들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저한테 ‘팀장’이라고만 부르세요. ‘님’자는 뺄게요.”

“······.”

“이름 불러도 안 되고, 오 대리도 안 돼요. ‘팀장’으로 불러주세요.”

지혁으로서는 ‘이름’이 불리던 ‘야’라고 불리든 상관없었으나, 팀을 생각했다.

팀장이라 함은 팀을 대표하는 얼굴인데, 호칭을 아무렇게나 부르면, 인접 부서에 밑 보일 것 같았다.

문 대리가 손들었다.

“’님’자도 붙이면 안 됩니까?”

“네, 안 돼요. ‘팀장’ 혹은 ‘오 팀장’으로 통일할게요.”

“아, 네.”

문 대리는 지혁을 잘 모르기에 ‘님’자를 붙이는 게 편했으나, 지침이라고 하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지혁은 팀원들을 향해 다시 말했다.

“그리고 존댓말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돼요.”

“······.”

“팀장이라고 해서 10살 이상 나이 많은 선배한테 굳이 존댓말 듣고 싶진 않아요. 나이 들어 보이니까.”

-크큭.

누군가 여기서 웃었다.

‘재밌었나?’

지혁은 고개를 갸웃하고 말했다.

“아시겠죠?”

“알았어~ 오 팀장~”

윤 차장은 큰 소리로 말했고.

문 대리와 정 과장이 가볍게 웃었다.

호칭이 깔끔하게 정리되고 나니, 한결 속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마지막으로.”

지혁은 주위를 환기한 후, 크지 않은 소리지만 힘주어 말했다.

“각자 맡은 일 잘해주시면 되는데, 한 가지만 기억해주세요.”

“······.”

“팀의 방향은 제가 결정해요.”

정색한 말투에 팀원들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의견과 반론 제시는 제가 허락할 때만 하는 거예요. 방향은 내가 정하고, 결정도 내가 해요.”

“······.”

“좀 더 쉽게 말씀드리죠. 전 독재 스타일이니까. 거슬리지 않길 바래요.”

거슬리지 말라는 지혁의 말이 팀원들은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바로 어제 일개 ‘팀원’이 ‘팀장’을 보내버리는 걸 목격했기에.

“이상이에요. 한 20분 걸렸네. 앞으로도 회의는 짧게 할 거예요. 내가 그냥 전달만 하면 되니까.”

윤 차장은 생각했다.

‘상명하복이야? 완전 옛날 스타일이네. 젊은 놈이 왜 이래?’

정 과장 또한 비슷한 생각을 했다.

‘심 팀장님보다 더 꼰대 같은데.’

지혁이 물었다.

“질문?”

윤 차장이 손을 들었다.

“말씀하세요.”

“팍스버거 콜라보 건은 어떻게 할 거야? 계속 맡을 거야?”

“아, 깜빡할 뻔했네요.”

팀장은 현업을 맡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제 막 팀장이 되었으니, 팀의 방향과 R&R(Role & Responsibilities)을 고민해야 한다.

“정 과장님.”

“응? 나?”

정 과장은 깜짝 놀라서 지혁을 바라봤다.

“팍스버거 콜라보는 정 과장님이 맡을게요.”

“지, 진짜?!”

정 과장은 입이 귀에 걸렸다.

현재 팍스버거 콜라보는 노다지 광산.

누구든 맡기만 하면 성과 나는 상황이다.

“괜찮으세요?”

“완전 괜찮지! 하하!”

윤 차장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고.

정 과장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대박! 올해 차장 승진하겠는데?!’

“문제 되지 않게 잘 해주세요.”

“알았어! 잘해볼게! 고마워! 오 팀장!”

“고맙긴요. 전 했던 말은 지켜요.”

“응?”

문득, 지혁이 팍스버거 콜라보 준비할 때 약간 도와줬었는데. 그때, 지혁이 했던 의미심장한 말이 떠올랐다.

‘기억할게요.’

“아······ 그래서.”

정 과장은 고마우면서도 약간 소름이 돋았다.

“자, 일어나시죠.”

지혁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나갔다.

***

상품전략실.

똑똑.

“들어오세요.”

덜컹.

“여어~ 오 팀장. 어서 와.”

유 실장은 지혁을 반갑게 맞았다.

“오늘 첫날이지? 어때? 팀장 역할은 잘 수행 중이야?”

“네, 그냥 하는 거죠.”

“응? 어어.”

유 실장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가, 소파를 가리켰다.

“거기 앉게.”

유 실장은 가만히 지혁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용건이 있어서 왔겠지? 일 없는데 올 사람은 아니잖아.”

“하하.”

뜬금없는 지혁의 마른 웃음소리.

눈은 그대로, 입만 웃고 있다.

“용건도 있지만······.”

“······.”

“실장님과 차나 한잔할까 해서 왔죠.”

“아······ 나랑 차를?”

유 실장은 이 말이 상당히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왠지 불안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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