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37화 (37/301)

37. 믿는대로 본다

“무슨 차 마실래? 백 과장~ 자네도 이리 와.”

유 실장은 백 과장도 불렀다.

“커피 마실게요.”

“그래? 나도 커피. 백 과장은?”

“저도 커피 마시겠습니다.”

그리고 세 사람은 서로 멀뚱멀뚱 바라봤다. 차를 마시기로 했으니 누군가 타야 할텐데.

“아, 팀장은 상품전략실에서 손님이 아닌가요?”

지혁이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타죠. 뭐. 어려운 일이라고.”

잠시후, 믹스커피를 가져왔다.

“자, 드시죠.”

“하하. 고맙네. 잘 마실게.”

유 실장은 불편한 얼굴로 말하자, 지혁은 피식웃었다.

커피를 천천히 마시면서, 지혁은 장 과장 얘기를 꺼냈다.

“장 과장 팀 이동시켰으면 합니다.”

“뭐? 갑자기?”

원하는 팀원은 이동시키는 거로 유 실장과 협의되었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차라리 일 좀 못 하거나, 성질 더럽고 싸가지가 없는 게 낫지, 처음부터 할 의지가 없는 팀원과는 함께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아닌 것 같은 사람을 솎아내는 작업을 한 것이다.

“뭐야? 팀장으로 첫 출근하자마자? 이제 한 1시간 됐나?”

“······.”

하지만 조직의 안정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유 실장으로서는 이런 모습이 불안하게 느껴졌다.

어린 팀장을 세우면 어느 정도 불협화음이야 있을 수 있다고 예상은 했으나.

‘빨라도 너무 빠른데?’

“왜? 문제가 뭐야? 장 과장이 오 팀장 아래서는 못 하겠데?”

장 과장이 못 하겠다고 한 것은 맞으나, 지혁이 먼저 멍석을 깔아줬었다.

“아니, 엊그제 불러놓고 얘기할 때는 아무 말 없었는데.”

지혁은 장 과장 탓을 하지도 않았고, 있는 그대로 얘기하지도 않았다.

“아니요. 제가 맞지 않아서 그래요.”

“······.”

“팀 미팅을 해보니, 장 과장과는 안 맞는 거 같아요. 그분 저한테 잘 못 한 거 없고요. 저도 감정 없어요. 그냥 안 맞는 사람끼리는 시작을 않는 게 좋잖아요.”

유 실장은 좀 어이가 없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떻게 함께 일도 안 해보고.’

“이봐, 오 팀장.”

“······.”

“팀장이라면 맞지 않는 사람도 이끌 줄 알아야 해. 어떻게 원하는 사람만 팀원으로 데리고 있을 수 있겠나?”

“······.”

“그리고 장 과장은 상품기획 베테랑이잖아. 그 친구를 대체할 만한 직원은 찾기 어렵다고. 그러니까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고······.”

“유 실장님.”

지혁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설교 들으러 온 게 아니거든요.”

유 실장은 황당한 눈길로 지혁을 바라봤다.

“팀원이 이동 요청했고, 팀장인 전 그걸 받아들였어요. 얘기가 길어질 이유는 없는 거 같은데요.”

“······.”

“이 큰 회사에 장 과장 갈 자리가 없나요?”

지혁이 하는 말이 이치에는 맞지만, 유 실장은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그럼? 빈자리는 어떻게 하려고?”

“어떻게 하긴요. 채워야죠.”

***

“전 신입사원을 원합니다.”

“신입?!”

아무리 팀장 대 팀원으로서 일적으로만 만난다고 해도.

팀장인 지혁은 팀의 막내였다.

여러모로 봤을 때, 지금 시점에서 신입이 오는 게 쓸모 있겠다고 생각했다.

“잡화 기획에 신입을 넣는다고? 자네, 잡화 해봤어?”

장 과장이 맡은 잡화 아이템은 양말, 가방, 손 토시, 목도리 등 굉장히 다양하다.

판매가가 높지 않은 상품이기에 발주액 자체가 크지는 않으나, 다양한 전문지식이 필요한 분야다.

“안 해봤죠. 제대로 해본 건 팍스버거 콜라보 밖에 없는데.”

“······.”

“근데, 잡화를 해봤어야, 팀장 일을 할 수 있나요?”

유 실장은 지혁이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이해했다. 지휘자가 모든 걸 잘할 필요는 없다. 이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

‘하아······ 얘는 한번을 안 넘어가네.’

하지만 그때 유 실장의 불쾌한 기분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말을 지혁이 했다.

“결과로 보여드릴게요. 성과.”

“······.”

“그게 중요하잖아요.”

유 실장은 이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얼마 전에 보여줬으니까.

임원회의 앞에서, 고려일보에서도.

“흠! 일단 오 팀장 말은 알겠고.”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백 과장은 못마땅했다.

‘항상 말리는 느낌이야. 오지혁이한테는 왜 저러시는 걸까.’

“신입은 오 팀장 입맛대로 뽑을 수 없다는 건 알아둬야해. 올해 상반기 공채에 입사한 사원 중에 올 거니까.”

“네, 그냥 신입이면 돼요.”

“더 할 얘기 있나?”

“없어요.”

유 실장은 이제야 소파 뒤에 몸을 깊숙이 뉘고는 말했다.

“차나 한잔하려고 온 게 아니구먼. 다음엔 진짜 차만 마시러 와도 돼.”

“······.”

“난 자네랑 친해지고 싶거든.”

후르릅-

지혁은 믹스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네, 그러죠. 어려운 거 아니니까.”

잔을 비운 후 일어났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인사팀에 서류작성 하러 가야 해서요.”

“아, 연봉계약서 갱신하러 가는 건가?”

“네.”

“그래~ 다시 한번 축하하고. 신입은 날짜 정해지면 얘기해줄게. 백 과장. 체크했지?”

백 과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확인하겠습니다.”

지혁은 목례를 한 후 나갔다.

***

선도물산 인사팀.

“거기 먼지 좀 제대로 닦으라고!”

인사팀장 지시 하에 인사팀원들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그리고 배 대리! 책상 위에 정리 좀 해.”

“네? 왜 제 책상 가지고 그러세요.”

“너무 어지럽잖아! 눈에 보이는 걸 어떻게 가만히 두나.”

“하아······.”

배 대리는 책상 위에 펼쳐놓고 일하는 스타일이지만, 어쩔수없이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임원이 찾아올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오지혁 팀장이 뭐라고······.’

인사팀장은 열심히 사무실을 정리했다.

직접 물걸레로 바닥 닦고, 전화기 아래 먼지까지 털어낼 정도로.

“첫인상이 중요해! 곧 있으면 오실 시각이니까. 빨리들 하자고!”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아무리 장래가 촉망받는 어린 팀장이라도······ 너무 한 거 아니야?

-집에서도 안 하는 청소를 회사에서 하네.

인사팀장은 이런 투덜거림은 무시하고 계속 청소를 진행했고.

똑. 똑.

[상품기획 1팀 오지혁 팀장입니다.]

“오셨다! 오셨다!”

“······.”

인사팀 직원들은 너무 호들갑 떠는 인사팀장이 영 이상했다.

“모두 자리에 앉아. 열일모드 알지?”

인사팀장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큰 소리로 말했다.

“흠! 네~ 들어오세요~”

덜컹.

지혁이 들어왔고, 인사팀장은 빠르게 그의 인상착의를 살폈다.

강인한 턱선. 깊이를 알 수 없는 날카로운 눈매.

정장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탄탄하면서도 날렵해 보이는 체격.

먼발치에서는 본적이 있으나, 눈앞에서 지혁을 본 건 처음이었다.

‘남자가 봐도 멋있다.’

지혁은 인사팀 안을 두리번거렸다.

팀원들은 모두 정자세로 앉아 있고.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성이 중앙에 차렷 자세로 서 있었다.

‘분위기 왜 이래? 인사팀이라 그런가? 복직 인터뷰 왔을 때는 이러지 않았던 거 같은데.’

지혁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말했다.

“오지혁입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저희 인사팀을 방문해주셔서 대단히 영광입니다.”

“네?”

지혁은 너무 깍듯한 분위기가 이상했다.

“아, 네. 영광까지야······ 그냥 계약서 갱신하러 온 건데.”

“전 인사팀장 허용호라고 합니다.”

인사팀장은 지혁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이쪽에 오시죠.”

“네.”

지혁은 인사팀장을 따라서 회의실로 들어갔다.

“배 대리! 계약서 가지고 와. 그리고 차도 같이 내오고!”

“알겠습니다.”

덜컹.

회의실 문을 닫은 후, 인사팀장이 말했다.

“영전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고려일보 기획 기사 잘 봤습니다. 회사 이름을 드높여 주셨더라고요.”

“이름까지 높일 생각까지는 아니었는데, 요즘 사회이슈가 없는지······ 겨우 그까짓 걸로 기사를 내네요.”

“······.”

인사팀장은 너무도 쿨한 지혁의 태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릇이 달라.’

이렇게 밀폐된 공간에서 단둘이 있을 때, 인사팀장은 자연스럽게 그의 신분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오 회장님 건강하시죠? 뵌 지 오래됐는데.”

“네?!”

지혁은 인사팀장을 멍하니 바라봤다.

‘아침에 뭘 잘 못 먹었나. 갑자기 웬 헛소리야.’

“그분 건강을 왜 저한테 물어보죠?”

“아······ 하하!”

인사팀장은 식은땀을 흘렸다.

‘아, 자연스럽지 못했어.’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하, 말이 헛나왔네요.”

“······.”

“본관이 연일이시죠?”

“어떻게 아셨어요?”

“인사기록 카드 봤습니다.”

“아, 직원 본관까지 확인하시는구나.”

“······.”

“목적이 뭐죠? 왜 본관을 확인한 거죠? 인사팀이면 그렇게 막 인사기록 카드 뒤져봐도 되나요?”

인사팀장은 단둘이 있을 때 가볍게 확인해볼 생각이었는데.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위압감이 장난 아니네. 오 부회장님 못지않아.’

“뭡니까?”

하지만 지혁은 이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처음엔 의아했는데, 이제 뭔가 이상함을 포착한 것이다.

“왜 본관을 확인했냐고요.”

“그게······ 오 회장님도 본관이 연일이시거든요.”

“?!”

지혁이 눈을 치켜뜨고 더 물어보려는데.

똑똑.

그때, 배 대리가 들어왔다.

“어유~ 어서 와! 배 대리!”

배 대리는 연봉계약서와 차를 두고 나가려 했는데.

“배 대리도 이리 앉아.”

인사팀장 손에 이끌려 자리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배 대리는 지혁과는 구면이기에, 가볍게 인사했고.

지혁 또한 살짝 목례하며 인사했다.

인사팀장은 분위기 전환을 위해, 연봉계약서를 펼치며 말했다.

“자자, 오 팀장님. 여기 보시죠. 직급 상승으로 인해 연봉 20% 올라가고요. 팀장 직급 수당도 월 50만 원 추가되는 내용입니다.”

지혁은 연봉계약서를 살폈다.

연봉 : 5,640만 원

직급 수당 : 50만 원

‘연봉이 4,700만 원 이었으니까······ 약 천만 원 가까이 오른 거네. 세금 이것저것 때면 세후 410 정도 될 거고, 거기에 직급 수당 50만 원 더하면······ 월 460만 원.’

“괜찮은데요?”

“하하. 오 팀장님은 특이 케이스로 승진평가를 잘 받으셔서 연봉상승률이 높습니다.”

지혁은 돈 쓸 생각에 신이 나서 방금 인사팀장에게 가졌던 의구심도 잊어버렸다.

‘수아가 많이 좋아하겠네.’

“오 팀장님, 여기 서명하시면 됩니다.”

“네.”

지혁은 더 고민하지 않고 서명했다.

“자~ 연봉계약은 마무리됐습니다.”

지혁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네, 그럼 가볼게요. 오늘 팀장 첫날이라 바쁘네요.”

“네~ 수고하십시오~ 즐거운 주말 보내시고요.”

오늘은 금요일이다.

“네, 수고하세요.”

덜컹.

지혁이 나간 후, 인사팀장은 기 빨린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확실해. 확실해. 직접 보니까 확신이 가.”

“그래요? 뭐 때문에요?”

“말투와 분위기도 너무 비슷하고. 무엇보다도.”

인사팀장은 자신의 눈을 가리키며 말했다.

“브라운아이즈야. 오 회장님 가족들이 다 연한 갈색 눈을 가졌거든.”

“······.”

“설마 했는데. 이런 신체적인 특징까지······ 근데 왜 신분을 숨기실까?”

인사팀장은 흥분해서 계속 중얼거렸고.

배 대리는 옆에서 잠자코 듣다가.

조심스럽게 인사팀장의 어깨를 두드렸다.

“저······ 팀장님.”

“왜?”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는데.”

“말해.”

“팀장님 눈도 브라운아이즈세요.”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