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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41화 (41/301)

41. 만남을 기다렸다 (2)

회의실에 있는 영업 팀원들은 모두 놀랐다.

영업 본부장. 직위는 상무이며, 선도물산 패션 영역에서 서열 10위 안에 든다.

그 정도 높이에 있는 사람이 일개 팀장급에게 술자리를 제안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것도 일부러 회의 시간에 찾아와서 직원들 다 보는 앞에서 말이다.

이 제안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는 것인데.

“죄송해요. 술은 싫어요.”

“어?”

“제가 술은 못 먹어요.”

상대가 누구든 지혁은 변함없었다.

본인 스타일대로 갔다.

“아······ 그래? 뭐, 종교적인 이유인가?”

영업본부장은 내심 당황했으나, 겉으로는 전혀 표시 나지 않도록 했다.

‘종교? 그냥 웬만해서는 회사에서 먹기 싫은 건데.’

솔직하게 말하면 귀찮아질 것 같아서, 지혁은 얼버무려 얘기했다.

“개인적인 이유라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아하······ 오 팀장이랑 대화 좀 나누고 싶었는데. 지금 나 차인 건가? 하하.”

지켜보는 영업 팀원들은 경악하는 얼굴이었지만, 영업본부장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지혁은 생각했다.

‘좀 하는 양반이네. 속내를 숨길 줄 알아. 어설프지 않게.’

확실히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에 드니, 그가 궁금해졌다.

“대신 커피를 한잔하시면 어떨까요?”

“아······ 커피는 내가 못 마시는데.”

‘엇?’

지혁은 그가 당연히 제안을 받아들일 거로 생각했는데, 다른 말을 하니 약간 놀랐다.

영업본부장은 지혁의 반응을 살핀 후,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커피 말고 차라면 마실 수 있지.”

“그럼 됐네요. 언제 뵐까요?”

영업본부장은 김 팀장을 향해 물었다.

“영업팀장! 회의 끝나려면 멀었나?”

“네? 아, 아닙니다. 중요한 얘기는 다 했습니다.”

김 팀장은 영업본부장의 의중을 파악하고 재빨리 말했다.

영업본부장은 지혁을 바라봤다.

“지금 갈까? 마침 딱 30분 동안 시간이 비어서.”

“그러시죠.”

“1층에서 보세.”

영업본부장이 먼저 나간 뒤.

김 팀장이 지혁에게 다가와 말했다.

“어이쿠~ 축하드립니다.”

“네? 뭐가요?”

“영업본부장님이 따로 술 한잔 하자는 건 의미가 있거든요.”

“······.”

“영업본부장님 잘 모르시죠?”

당연히 잘 알지 못한다.

오늘 처음 본 사이며 직위 차이도 너무 많이 난다.

“잘 알고 지내면 좋은 분입니다.”

“그거야 높으신 분이니까, 당연한 거고.”

지혁은 잠시 생각하다가, 김 팀장을 바라봤다.

흠칫.

김 팀장은 갑작스러운 지혁의 쏘는 듯한 눈빛에 얼어버렸다.

지혁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다른 사람은 들리지 않게 물었다.

“세력이 있는 분인가요?”

“······.”

이 정도 질문이면 김 팀장 연차라면 충분히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다.

“확실히 있죠. 범접하지 못 할.”

“그렇군요.”

지혁은 목례를 하고 회의실을 나갔다.

***

1층에 내려가 두리번거리며 영업본부장을 찾고 있는데.

젊은 남성이 다가왔다.

“오 팀장님이시죠?”

“네.”

“따라오시죠.”

그를 따라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고.

엘리베이터 앞에 검은색 기다란 외제 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위이잉-

창문이 열리며 영업본부장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한껏 웃으며 말했다.

“오 팀장~ 타!”

“1층에서 먹는 거 아니었어요?”

“내가 1층 카페에서 커피 마시면, 직원들이 어떨 것 같나?”

“아······.”

“가까운 곳으로 갈 테니, 어서 타라고.”

“알겠어요.”

덜컹

지혁이 뒷자리에 타자, 차는 출발했고.

차에서 이동하는 내내 영업본부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을 감고 있었다.

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카페에 도착.

운전사는 자리 안내 후 메뉴를 받아 주문했다.

영업본부장이 그에게 말했다.

“이제 차에 가 있어. 20분 지나도 안 오면 전화해.”

“알겠습니다.”

운전사가 돌아간 뒤, 영업본부장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얘기하다 보면 시간을 잊는 경우가 있어서.”

“시간도 얼마 없으신데, 차에서부터 얘기하지 그러셨어요?”

“차에는 운전사가 있잖아.”

“······.”

“높은 곳에 있을수록 말조심해야 해. 특히 나와 이해관계는 적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 앞에서 말이야. 내가 잘못돼도 저 친구는 딴 데 가서 운전하면 그만이거든. 안 그런가?”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내가 잘 안 됐을때 같이 망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믿어선 안 되죠.”

“그렇지. 잘 아는구먼. 근데, 자네 취업하기 전에 뭘 좀 하다 왔나?”

“······.”

“그냥 아이디어 좋은 청년인 줄 알았더니, 그 뿐만이 아닌 거 같은데?”

영업본부장이 지혁의 눈을 바라보는데.

지혁은 머릿속까지 훑어지는 기분이었다.

‘에이원 캠프 영감님 생각나네.’

물론 영감님이 영업본부장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지만, 분위기가 비슷했다.

빈 듯하면서도 꽉 차 있고.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거침없는 태도.

“군대 갔다 온 거 말곤 없어요.”

“특수부대라도 다녀왔나?”

지혁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특수한 곳에서 전투 경험을 쌓긴 했지······.’

“아니요. 육군 보병이요.”

“그래? 이상하단 말이야. 분위기가 있는데.”

그때, 직원이 차를 가져왔다.

“맛있게 드세요.”

“하하. 네~ 고맙습니다~”

영업본부장은 호쾌하게 대답했고, 카페직원은 웃으며 나갔다.

지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친절하시네요.”

“친절해야지. 언제 또 볼지 모르는 사람이고, 저들한테는 난 그냥 아저씨 아닌가.”

“······.”

“회사에서나 영업본부장이며 상무일 뿐이지.”

영업본부장은 그제야 생각난 듯 말했다.

“아, 자넨 아직 내 이름도 모르지?”

금색으로 된 카드지갑에서 명함 한 장 꺼내어 건네었다.

“받아. 나 명함 주는 사람 몇 명 없어. 잘 간직하게.”

‘영업본부장 한원철 상무’

지혁은 잠시 명함에 있는 그의 이름을 보았다.

“자~ 그럼 우리 차 마시면서, 얘기 좀 나눠볼까?”

“네 드시죠.”

지혁이 커피 한 모금을 넘기는데.

영업본부장은 예고도 없이 훅 들어왔다.

“자네를 유 실장 라인이라고 보면 되나?”

***

“네?!”

분명 정확히 들었지만, 황당해서 반사적으로 되물어봤다.

“유 실장 라인이면 상품본부장과 연결되어 있긴 한데······ 그쪽도 뭐 나쁘지 않지. 하지만 유 실장 너무 믿지 마. 차라리 거기 2팀 맡은 조 팀장 있지?”

“······.”

“그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게 좋을 거야. 그자가 진짜 상품본부장 라인이거든.”

갑자기 이런 얘기를 꺼내는 영업본부장이 이상했으나, 허투루 들을 얘기는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팀장 미팅에서 봤던 유 실장과 조 팀장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그래서 둘이 좀 어색해 보였구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만, 전 어느 쪽도 아니에요. 제가 아직 그런 거 따질 근본은 아니라서요.”

“간 보는 중이라는 건가?”

“······.”

“자넨 야심이 있는 사람 같은데. 회사생활에 목표도 있을 것이고. 아닌가?”

오늘 처음 본 사이다.

이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는 게 놀라웠지만, 애써 놀란 모습을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려 했다.

“회사는 조직 생활. 말 그대로 ‘조직’ 생활이야. 밀어주고 끌어주는 게 없으면 한계가 있어. 특히 자네 정도의 위치에서는.”

지혁 또한 영업본부장이 무슨 말을 하는 지 알고 있다. ‘그 세계’에서도 목숨을 담보로 한 정치질이 만연했기 때문에.

사람들 모인 곳은 다 똑같다.

“자네가 직급은 낮지만, 어쨌든 직책이 팀장 아닌가?”

“그래서 영입 제안하려고 보자고 하신 건가요?”

이번엔 지혁이 훅 들어갔다.

“음?”

영업본부장은 약간 멈칫하고서는 껄껄대고 웃었다.

“하하. 자네는 앞에 있는 사람이 상무여도 전혀 주눅 들지를 않는구먼.”

“직급을 존중하면 되지, 어려워할 이유 있나요.”

“취업하기 전에 사회 경험을 좀 한 것 같긴 한데, 약간 어설프군.”

“뭐라고요?”

“날카로움을 숨길 줄 몰라. 너무 뾰족해. 자네는 유망주지, 아직 실력자가 아니거든.”

“······.”

“튀어나온 못은 가장 먼저 망치질을 당하기 쉽지.”

매서운 말을 영업본부장은 웃으며 말했다.

“때로는 주눅 드는 척이라도 하는 게 좋을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알고 있으며 영업본부장이 말이 틀리진 않지만, 이건 지혁의 성향이었다.

‘뻘로 상무 달았겠어. 확실히 뭔가 좀 다르긴 하군.’

“그럼요, 알죠. 그래서 빨리 힘을 키우려고요. 조직이니, 라인 같은 거 신경 쓰지 않고, 한껏 건방져도 될 만큼요.”

“하하, 그래?”

영업본부장은 지혁을 물끄러미 보다가 본론을 꺼내었다.

“어떤가? 아직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가질만한 연차는 아니어서, 자네만 좋다면 영업으로 이동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

“내가 그 정도 능력은 되거든. 그리고 보면 알아. 자넨 영업 체질이야”

지혁은 영업본부장의 호랑이 눈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같은 일 하는 사람 늘려서 뭐 하시게요?”

“음?”

“상품기획에 있으면서 영업본부장님의 힘이 되어 드릴게요. 이게 더 윈윈이지 않을까요?”

“오~ 좋아. 그럼, 난 자네가 하는 일들이 잘 되도록 힘을 써주지. 사실, 성과는 만들어 가는 거거든.”

두 남자는 긴말이 필요 없었다.

몇 마디 대화와 상대방의 분위기를 보며 함께할 만한 사람인지 파악했다.

“그럼 자네. 내 손 잡은 거지?”

“상무님께서도 제 손을 잡으신 거죠.”

“하하, 한 마디를 안 지는 구만.”

그때 벨 소리가 울렸다. 운전사에게 온 전화였다.

“정확히 갈 시간에 맞췄네.”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영업본부장이 말했다.

“자네, 남자의 말은 무겁다는 걸 알아야 하네.”

지혁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이 배신자예요.”

이로써, 지혁의 뒤에는 인사팀에 더불어 영업본부가 추가되었다.

***

본사에 도착.

사무실을 향해 걸어가며, 지혁은 곰곰히 생각했다.

‘깊이 생각 안 하고, 내 감을 믿었다. 그리고 세 번째 눈도.’

영업본부장의 이마에서 노란색을 보았다. 노란색은 빨강과 초록의 중간색이다.

빨강이 열정과 성과욕이라면, 초록색은 관계와 인간성을 중시한다.

노란색을 띠는 사람은 열정과 인간성을 두루 갖춘 경우가 많다.

어찌 보면, 리더로서 적합한 색깔인데······ 물론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상반되는 성향의 두 색깔을 가지고 있기에, 상대방을 기만하기 쉽고, 두 얼굴을 가진 경우도 많다.

즉, 뒤통수 맞을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어두운 채도의 노란색을 가진 사람이 그랬는데.

‘영업본부장은 그나마 밝은 노란색이었어. 그래도 조심은 해야겠지.’

회사 서열 10위 안에 드는 남자가 자신의 뒤를 봐준다는데,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아직 지혁은 일개 팀장일 뿐이니까.

“오 팀장님!”

사무실에 들어오자, 황 대리가 밝은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네, 황 대리님.”

팀장 뒤에 ‘님’자를 빼는 건 같은 팀 사람들끼리만 그렇게 한다.

“연락 왔어요! 연락!”

황 대리는 반가워서 큰 소리로 말했고, 상품기획 팀원들은 일제히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홍······.”

부릅!

지혁은 눈을 크게 떴고.

“커컥.”

그의 눈빛을 읽고, 황 대리는 황급히 말을 멈추느라 사레가 걸렸다.

‘어이쿠, 이런 실수를. 극비라고 했는데.’

상품기획 팀원들은 뭔가 싶어서 두 사람을 지켜봤으나.

지혁은 아무 내색하지 않고, 황 대리를 지나치며 작게 말했다.

“지금 바로 자리에 앉았다가, 10분 뒤에 1층으로 내려와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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