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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42화 (42/301)

42. 신입사원을 받다

황 대리는 지혁의 요청대로 10분 뒤에 1층으로 내려갔고.

그가 도착한 후 5분 뒤에 지혁이 내려왔다. 시차를 둔 것이다.

게이트에서 지혁이 걸어오는 모습을 보며, 황 대리는 긴장했다.

‘하아······ 혼나겠네. 난 왜 이렇게 입이 방정일까.’

좋은 소식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 호들갑을 떨었다.

어느새 다가온 지혁은 무표정한 눈길로 황 대리를 바라보았고.

“죄송합니다······ 순간 흥분해서는.”

“······.”

지혁은 아무 말 않고 황 대리를 쏘아보았고.

그럴수록 고개를 숙였다.

“다음부턴 조심해주세요.”

“네······.”

“갑시다.”

지혁은 로비 밖으로 향했고, 그의 뒤를 따르며 황 대리는 의외라고 생각했다.

‘헛, 뭐야. 이게 끝인 거야?’

협박한다든지, 무시무시한 말을 쏟아낼 줄 알았는데, 지혁은 더 하지 않았다.

아지트에 도착.

지혁은 캔커피를 따면서 말했다.

“편하게 피우세요.”

“아, 네.”

찰칵.

황 대리는 담뱃불을 붙인 뒤, 깊이 빨아들였다 뱉었다.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던데.”

“네, 팀장님.”

황 대리는 신난 얼굴로 말했다.

“너튜버 홍썬에게 드디어 접촉했습니다. 하하.”

“그래요? 어떻게요? 연락해도 다 씹는다더니.”

“아무래도 제가 갖고있던 연락처가 잘 못 되었던 모양이에요. 안 되면 말고라는 마음으로 홍썬 최신 동영상 댓글 창에 장문의 내용과 함께 연락처를 남겼더니······ 하하. 거짓말처럼 연락이 왔네요~”

지혁은 고개를 갸웃하고 물었다.

“그렇게 하셨으면 연락 오는 데가 홍썬 뿐만이 아니었을 텐데?”

“하하. 네. 대출 연락도 많이 받았습니다~ 중국 교포 분들에게도 연락받고. 확실히 이게 파급력이 크네요.”

“괜찮아요?”

“아유~ 괜찮아요. 일단 일이 되는 게 중요하죠. 여차 하면 번호 바꿔버리면 되죠~ 뭐~ 하하.”

지혁은 약간 놀랐다.

‘황 대리가 이런 면이 있었네?’

목표를 향해 몸 사리지 않고, 돌진하는 모습.

지금까지 약 4개월을 함께 지내는 동안 본 기억이 없었다.

‘내가 못 봤던 건가, 아니면······ 변한 건가?’

어찌 됐든 지혁으로서는 반가웠다.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과는 일하기가 훨씬 수월하니까

“잘하셨네요. 그래서 홍썬이 뭐랍니까?”

“아, 네네. 진짜 스타덕 맞냐면서 좋아하더라고요. 특히 이번 팍스버거 콜라보 너무 잘 봤다고.”

‘여기서도 팍스버거 콜라보 덕을 보네.’

신문에도 날 정도의 일이었으니,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게 이상했다.

“그래서 미팅은 하겠대요?”

“네~ 만나고 싶답니다. 팀장님이랑 일정 확인 후에 연락드린다고 했어요.”

“뭐하러 그랬어요. 우리가 홍썬 시간에 맞추면 돼죠.”

“아, 그럴까요?”

“네. 가능한 한 빨리 스케줄 잡으시고, 저에게 장소와 시간만 알려주세요.”

“알겠습니다.”

지혁은 다 마신 캔커피를 버리고 가려는데.

“저, 근데 오 팀장님.”

“네.”

“홍썬이 요청한 게 있습니다.”

“뭔데요?”

“팍스버거 콜라보 제품 다 하나씩 갖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주면 되죠. 그게 뭐 문젠가요?”

“아시다시피 7월 제품은 재고가 한 장도 없습니다. 기획팀에도 입고 샘플 남는 거 없지 않나요? 저도 가지고 있는 게 없는데.”

지혁은 잠시 생각한 후 물었다.

“생산했던 공장에 요청할 수 없나요?”

“물량 부족으로 싹싹 긁어서 다 입고시키느라, B 품 말고는 가진 게 없다고 하더라고요.”

“아······.”

옷 한장 줄 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게 참 아이러니했다. 그 정도로 엄청난 히트였던 것이다.

“그럼, 별수 없네요. 다시 만들어야지.”

“네?”

“공장에 얘기해서 샘플로 만들어달라고 해주세요. 좀 번거롭기는 하겠지만.”

“아······.”

황 대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왜요? 가능한 일 아닌가요?”

“물론 가능은 하죠. 근데······ 하 팀장님이 하청 공장에 불필요하게 부담 주는 일을 아주 싫어합니다.”

하 팀장에게서 봤던 새파란 색이 떠올랐다. 결벽에 가까운 공정성.

“돈 주고 하면 되잖아요?”

“입고가 끝난 상품인데, 샘플비 사유로 마땅히 쓸만한 내역이······ 아니면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서 사실대로 쓰는 수밖에 없는데.”

샘플비 비용 지급 결제는 문제가 안 되지만, 극비로 진행하고 있는 일이 알려질 수 있다.

“한 100만 원 되나요?”

“7장 정도 되니까, 100만 원을 넘지는 않을 겁니다.”

“계좌번호 불러주세요. 지금 보낼 테니까.”

황 대리는 피식 웃었다.

‘오 팀장 주특기 나왔군.’

“사비로 하신다는 거죠?”

“그래야죠. 뭐 별수 있나요?”

황 대리는 내키지는 않았으나.

“알겠습니다. 일단, 진행 시키겠습니다.”

이제 얘기 마치고 본사로 들어가려는데.

띠링!

백 과장에게 메시지가 왔다.

‘오 팀장, 유 실장님이 찾으시네.’

***

“안녕하세요.”

“오 팀장~ 어서 와.”

지혁은 상품전략실에 들어왔는데.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 있었다.

붉게 상기된 얼굴에 바짝 힘이 들어간 눈.

젊은 남성이 부동자세로 꼿꼿이 서서 45도 전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네가 요청했던 신입사원일세.”

“아······ 왔군요.”

유 실장은 신입사원을 툭툭 건드렸다.

“어이, 뭐해? 팀장님한테 인사 안 해?”

“네?”

얼핏 봐도 본인과 비슷하거나, 혹은 더 어려 보이기도 한 지혁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 이분이요?”

유 실장은 재밌다는 듯 피식 웃다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래~”

신입사원은 지혁을 향해 90도 각도로 허리를 숙이며 소리쳤다.

“팀장님, 안녕하십니까! 신입사원! 손정진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안녕하세요. 오지혁입니다.”

지혁은 악수를 건네었고, 손정진은 깍듯이 두 손으로 잡았다.

이 모습을 흐뭇하게 보던 유 실장이 말했다.

“상품기획 1팀이 남탕이 되어버렸구먼. 내가 웬만하면 여직원으로 배치하려 했는데, 이 친구가 스타덕 덕후라며 아주 열정적으로 지원을 했다더군.”

“네. 잘하셨네요.”

“다음엔 공석 생기면 여직원으로 발령낼게.”

“성비는 상관없어요. 누구든 일만 잘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제가 팀장으로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

틀린 말은 아니지만······.

‘굳이 그 얘기까지 내 앞에서 해야 해? 오지혁이 캐릭터는 어느정도 파악했지만, 이거 언제쯤 적응되려나.’

“아니면, 유 실장님이 그때까지 회사에 계실지······.”

“오 팀장!”

백 과장이 결국 주의를 주었고, 지혁 또한 불필요한 말을 길게 했다는 생각에 손을 들어 사과표시를 했다.

“많이 편해졌나 봐요. 두 분 앞에서 말이 길어지네요.”

“내, 내가 편해?! 하하. 이거 좋은 거지? 하하.”

유 실장은 웃으며 생각했다.

‘회사생활 하면서 나 편하다고 하는 인간은 처음 보네. 선배들도 어려워했었는데. 참나.’

“신입사원 때문에 부르신 거면, 더 하실 말씀 없으시죠? 데리고 갈게요.”

유 실장은 가만히 지혁을 보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난 할 말 없긴 한데······ 자네는 뭐 할 말 없나?”

“······.”

대수롭지 않은 말이지만, 지혁은 영업본부장을 만난 일과 홍썬 프로젝트를 떠올렸다.

‘뭘 알고 하는 말은 아니겠지. 내가 사주 경계할 때는 분명 아무것도 없었는데.’

약간 꺼림칙했지만, 지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네, 없어요.”

“······ 그래.”

유 실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럼 가보게. 신입사원 너무 빡시게 돌리지 말고. 나 약간 걱정되거든? 하하.”

그리고 유 실장은 손정진을 향해 말했다.

“가서 일 잘 배우고 성과 많이 내주게. 그리고 선배들이 시키면 죽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는 거야.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유 실장은 신입사원의 씩씩한 대답에 기분이 유쾌해져서 껄껄 웃었다.

지혁이 목례를 하고 돌아서는데.

“아! 오 팀장! 내가 자네를 위해서 배려를 하나 했는데~ 얘기 안 해주면 모르니까. 하하. 요즘 신입사원들은 나이가 많은 거 모르지?”

“네?”

“수고하게~”

***

손정진은 지혁의 1m 뒤에서 졸졸 따라왔다.

계속 아무말없이 오다가, 지혁이 침묵을 깼다.

“나이가 어떻게 돼요?”

지혁의 시선은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올해 27세입니다!”

“아······.”

지혁보다 한 살 어리다.

유 실장이 마지막에 한 말이 뭔지 이해가 되었다.

‘배려라는 게 이걸 말한 거군. 좀 고맙긴 하네.’

“말 편하게 할게요. 괜찮죠?”

“물론입니다! 팀장님!”

손정진 또한 지혁의 나이가 궁금했지만, 물어보기는 좀 그랬다.

“난 정진 씨보다 한 살 더 많아. 동생은 아니니까 염려 말고.”

“네? 아, 상관없습니다!”

말은 이러지만 속으로는.

‘아, 다행이다.’

잠시 후.

상품기획 1팀에 도착했다.

“모두 주목해 주세요.”

일하고 있던 팀원들은 일제히 지혁과 옆에 선 어리숙해 보이는 남성을 보았다.

“오늘부터 함께 일할 손정진 씨에요. 나이는 27세. 올해 입사한 신입사원이에요. 스타덕 덕후라고, 저희 제품에 대해 잘 안다고 하네요. 앞으로 잘들 지내시면 되는데······.”

지혁은 팀원들을 돌아보다가.

“윤 차장님.”

“어? 왜? 나는 또 왜?”

요즘 자꾸 지혁이 일 시켜서 윤 차장은 또 뭔가 싶었다.

“손정진 씨 일 좀 가르쳐 주세요.”

“아니, 그걸 왜 나한테······.”

“······.”

‘빚 받으려면······.’

지혁은 말이 아닌, 눈빛으로 말했고.

윤 차장은 쓴 미소를 지었다.

‘역으로 협박을 하네. 빚 그냥 털어버릴까.’

“정진 씨.”

“네, 팀장님.”

“윤 차장님은 상품기획 1팀 최고 베테랑이셔. 당신 사수니까, 앞으로 많이 배워.”

“알겠습니다.”

“물론 부당한 일을 시키거나, 폭언한다든지, 비리를 저지를 경우 바로 신고하고.”

손정진도 눈을 끔뻑거렸고.

윤 차장은 식겁한 얼굴로 지혁을 바라봤다.

지혁은 윤 차장에게 물었다.

“뭘 그렇게 놀래요? 왜요. 하시려고요?”

“미쳤어? 나 그런 짓 안 해~ 나 자기한테도 잘해줬었잖아. 하하.”

“겉보기에는 잘해줬죠.”

“······.”

지혁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손정진에게 말했다.

“아, 물론 신고 대상에는 나도 포함이야. 그리고 신고는 인사팀에 바로 하면 돼. 그래야 타격이 크니까.”

“하하······.”

손정진은 웃기만 할 뿐, 대답은 하지 못했다.

지혁은 정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웃어?”

“네?”

“나 지금 농담하는 거 아니야.”

“······.”

“할 일은 제대로 하되, 신입사원이라고 해서 병신같이 당하지 말라고.”

“······.”

“대답해.”

“알겠습니다······.”

“다시.”

“알겠습니다!”

기세에 눌려서 큰 소리로 대답하긴 했으나, 손정진은 오 팀장이 이상해 보였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좀 이상한데.’

그리고 지혁은 신입사원이 앉을 책상을 가리켰다. 신입사원을 받기로 한 이후, 지혁이 깔끔하게 정리해 놓은 자리였다.

“여기가 정진 씨 자리야.”

쓰레기도 없었고, 물건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지도 않았다.

책상 아래에 간이 쓰레기통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 사람 받으려면 이렇게 하는 게 당연한 거지.”

다른 팀원들도 이 얘기를 들었다.

지혁이 처음 부서 배치받고 왔을 때, 창고 같은 자리였으며 치우는 것도 직접 했었다.

마치 오지 말아야 할 사람이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걸 기억한다.

“뭐든 불편한 거 있으면 얘기해. 부담 갖지 말고.”

표정은 무섭지만, 내용은 상냥했다.

“네, 팀장님. 감사합니다.”

지혁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로 돌아갔다.

팀원들은 지혁답지않게 친절해 보여서 의아했지만.

그는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도 얼마 전까지 신입사원이었고.

겪었던 걸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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