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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46화 (46/301)

46. 베테랑이 필요하다

30분 뒤.

손정진이 밝은 얼굴로 사무실로 들어왔다.

“팀장님! 감사합니다!”

지혁은 손정진이 건넨 카드를 받으며 물었다.

“왜 이렇게 빨리 왔어? 천천히 얘기 좀 나누다 오지.”

“아, 아닙니다! 충분히 얘기 나눴습니다.”

“그래. 아끼지 않고 쓴 거지?”

딱, 아메리카노 3잔만 사서 마셨다.

지혁은 우물쭈물하는 손정진의 표정을 보고 짐작했다.

“내가 카드 줄 때는 그냥 쓰면 돼. 아끼지 말고.”

“알겠습니다.”

지혁은 손정진에게만큼은 눈에 띄게 잘해준다.

그 정확한 의도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나. 계속 막내였는데, 어린 사람이 와서 그러려니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지혁이 잘해줘도, 손정진은 그가 어려웠다.

차, 과장급 선배들이 지혁에게 꼼짝 못 하는 걸 보고 있기에.

지혁은 손정진에게만 친절하지, 윤 차장과 정 과장에게는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아직 처음이라 그런 걸 거야. 내게도 곧 달라지시겠지.’

지혁은 사무실을 확인하다가.

윤 차장 자리가 비어있었다.

“정진.”

“네! 팀장님.”

“지금 팀 미팅 할 거야. 윤 차장님한테 전화해서 빨리 오시라고 해.”

“알겠습니다.”

손정진은 통화 후 말했다.

“지금 디자인실 미팅 중이라고, 좀 걸린다고 하는데요.”

지혁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5분 내로 오시라고 해. 팀에 계속 있고 싶으면.”

“······네?!”

‘나 보고 이 말을 전하라고?’

“모두 회의실로 지금 모이세요.”

지혁은 손정진을 지나치며 말했다.

“윤 차장님 내보내고 싶으면, 전화하지 말고 가만있어라.”

“네? 아, 아닙니다!”

손정진은 식겁해서 재빨리 다시 윤 차장에게 전화했다.

***

“헉! 헉!”

윤 차장이 회의실로 뛰어 들어왔다.

“나 안 늦었어!”

지혁은 시계를 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다 왔으니까. 회의 시작하죠.”

윤 차장은 거친 숨을 고르며 말했다.

“오 팀장! 너무한 거 아니야? 나 회의 중이라니까.”

“누가 강제했나요? 선택권을 드렸지.”

“하아······ 진짜.”

윤 차장은 입만 삐죽 나와서는 더 말하지 않았다.

“지금부터 중요한 얘기 합니다. 모두 집중하세요.”

‘2022 spring plan’

화이트보드 위에 적었다.

“핸드폰 모두 끄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세요.”

팀원들은 모두 의아한 표정이었으나, 지혁은 다시 한번 말했다.

“길어야 20분입니다. 빨리요.”

문 대리와 손정진부터 움직였고, 윤 차장과 정 과장도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으나 결국 핸드폰을 꺼내어 껐다.

“모든 계획은 비밀이에요.”

지혁은 팀원들 얼굴을 하나씩 보면서 말했다.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지켜볼 거예요. 난 본대로만 행동해요. 특히 사람에 대해서는 보지 않은 것에 대해 가정하지 않아요.”

꿀꺽.

어디선가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각자 맡은 과업을 하고 계신데, 그에 더해 특별한 일을 하나 할 겁니다.”

윤 차장은 아우터, 정 과장은 니트, 문 대리는 면바지와 청바지. 손정진은 잡화 기획을 준비 중이다.

“각자 22년 봄 상품 기획 잘하고 있죠?”

지혁은 일상적으로 해야 하는 현업에 대해서는 챙기지 않았다.

지금 준비 잘하고 있냐고 묻는 게, 팀장 되고 나서 처음이었다.

-뭐, 그렇지.

-항상 하던 거니까.

-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각자 가볍게 대답했고, 지혁은 곧이어 물었다.

“윤 차장님, 그리고 정 과장님.”

지혁의 부름에 두 사람은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두 분은 여유 있으시죠? 베테랑이잖아요.”

질문이 의미심장했고, 두 베테랑은 일 시키려 한다는 걸 곧바로 눈치챘다.

정 과장이 먼저 빠르게 대답했다.

“아~ 나는 요즘 팍스버거 콜라보 때문에 정신이 없어. 오 팀장 대단해. 어째 그리 복잡한 걸 잘 해냈데? 프랜차이즈 감성을 의류에 접목하기가······.”

이 말에는 다들 수긍했다.

지혁이 오자마자 정 과장에게는 팍스버거 콜라보를 넘겼었고, 업무량이 늘어났다는 게 표면적으로 보이니까.

정 과장이 생색을 낼수록 윤 차장은 불안해졌다.

‘젠장, 난 내세울 게 없는데.’

“아오~ 요즘 왜 이렇게 사고가 많이 터지는 거야~”

윤 차장은 운을 띄었다.

“생산에서 자꾸 실수해서 미치겠어. 뭐 그렇게 안 되는 게 많은지. 나 방금도 앞가슴 그래픽 작업 방식 바꾸는 거 협의하느라 디자인실에 붙잡혔다가 이제 온 거잖아. 아우터 한 장에 30만 원짜린데······.”

업무는 사고의 연속이다. 그건 그냥 일상이었다.

윤 차장은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얘기를 끝도 없이 늘어놓았고.

지혁은 잠깐 듣다가.

“뭐 특별한 건 없으시네요.”

“방금 내 얘기 들은 거야?”

“네. 엄살 부리는 거 잘 들었어요.”

“······.”

팟!

갑자기 지혁은 눈에 힘을 줬고.

그의 눈에서 안광이 쏟아졌다.

‘Special season plan designed by hong sun’(특별 시즌 기획, 홍썬 디자인.)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화이트보드에 적었고.

황 대리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의아한 얼굴이었다.

-시즌 기획 라인 말하는 거 같은데.

-홍썬? 홍썬이 누구야?

-엇······ 어디서 많이 들어본 거 같은데.

지혁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너튜브 화가. 홍썬의 디자인으로 시즌 기획합니다. 예상 스타일 수 40개, 수량 25만 장.”

-규모가 큰데?

-너튜브 화가? 아~

-근데 시즌 기획치곤 규모가 진짜 크다.

지혁은 큰 소리로 말했다.

“뻔한 거 해서는 뻔한 결과밖에 못 얻어요. 그리고 팍스버거 콜라보가 잘 되긴 했지만, 규모가 아쉬웠어요. 입소문만 많이 났지.”

“······.”

“이번엔 제대로 합니다. 담당은 윤 차장님이고요. 서브로······.”

“자, 잠깐! 나?! 내가 담당이라고?!”

윤 차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검증된 것만 하며, 가늘고 길게 가는 게 삶의 모토인 윤 차장으로서는 이런 지혁의 제안이 끔찍하게 싫었다.

“나 바빠! 실력 출중하고 한가한 사람들 많은데, 왜 나를 시켜?!”

“이유는 간단해요.”

지혁은 윤 차장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반드시 성공해야 하니까.”

“······.”

“최고의 베테랑이 필요한 일이니까요.”

윤 차장은 약간 당황했다.

‘얘가 이런 말을 할 줄 아네? 아니야, 속지 말자.’

“내가 서브로 도우면 되잖아! 나 바쁘니까, 담당은 다른 사람으로 세워줘.”

“제가 팀장 되고 처음 했던 말을 잊으신 거 같은데.”

“······.”

“의견과 반론 제시는 제가 허락할 때만 하라고 했죠. 시즌 기획 담당은 윤 차장님이라고 난 분명 얘기했어요.”

윤 차장의 눈두덩이 떨렸다.

“팀장 지시를 거부할 거면 더 말씀하시고, 그게 아니면 그만 하시죠.”

순간.

윤 차장의 머릿속에서는 수백 가지의 생각이 들었고.

복잡한 계산 끝에, 결국 눈을 깔았다.

지혁은 그런 윤 차장의 표정을 살핀 후 말했다.

“자, 그러면 이어서 말할게요.”

***

지혁은 홍썬에게 디자인 외주를 주려는 의도에 관해 설명했다.

너튜브에서의 영향력과 업계에서 그녀의 작품이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세계 최대 스포츠 브랜드인 나이스에서도 얼마 전 땡스타그램의 인플루언서와 콜라보는 하는 등의 현재 추세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홍썬의 작품 주제가 ‘강아지’라는 것에 대해 고객 범위가 너무 좁아지지 않겠냐며 의구심을 표하는 팀원도 있었으나.

지금은 애견인구 1,500만 시대.

지혁은 통계 자료를 들어, 그런 우려 또한 말끔히 해소해주었다.

윤 차장은 지혁의 설명을 들으며 혀를 내둘렀다.

‘준비성 장난 아니네. 팀장 된 지 얼마나 됐다고 언제 이렇게까지······.’

정 과장 또한 놀라기는 마찬가지.

‘얘는 잠을 안 자나.’

사안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설명하는 걸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수박 겉핥기로 말을 하는지, 아니면 확실히 알고 말하는 건지.

지혁의 설명은 시종일관 확신에 차 있었고, 장황하지도 않았다.

이해하기 쉽게 핵심만 추려서 말했고, 이 중요한 얘기를 15분 만에 다 전달했다.

“윤 차장님.”

설명을 끝낸 지혁은 윤 차장을 불렀고.

윤 차장은 체념한 얼굴로 지혁을 바라봤다.

“홍썬과 미팅, 협의 다 끝났어요.”

“······.”

“윤 차장님께서는 상품 구성과 함께 최고의 디자인을 끌어내 주시기만 하면 돼요.”

윤 차장은 잠자코 지혁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아이템 구분은 없습니다. 이 기획 라인은 윤 차장님이 다 합니다.”

“알았어.”

윤 차장은 순순히 대답했다.

“맡은 일이니, 최선을 다할 거야. 난 팀장의 지시대로 따를 뿐이고. 이런 부담스러운 일을 하는데······.”

지혁은 윤 차장이 돌려서 말하는 걸 이해했다. 회사 생활에서 그가 가장 중시하는 것.

“책임은 내가 져요.”

“······.”

“어떻게 되든. 책임은 내가 지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고 일만 하세요.”

윤 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혁은 팀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20분 지났네. 설명은 다 한 거 같은데.”

“······.”

“다시 한번 강조할게요. 이 프로젝트에 관해서는 절대로 비밀유지합니다. 상품전략실에도요.”

지혁은 한 사람씩 얼굴을 보며 말했다.

“모를 거로 생각하지 마세요. 발설했다간, 제가 어떻게든 찾아냅니다. 아시겠죠?”

너무 무시무시하게 말을 하니, 팀원들은 기가 질려서 대답도 못했다.

“대답을 안 하시네? 아시겠죠?”

“네!”

지혁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상.”

***

그로부터 2주가 훌쩍 지나갔다.

팀장이란 자리가 어색해 보이던 지혁도 이젠 완벽히 적응했고.

팀원들도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팀장에 ‘님’자 빼고 부르는 걸 어색해했던 문 대리도 이젠 스스럼없이 ‘오 팀장’이라고 불렀으며.

신입사원 손정진도 넘어지고 깨지면서 열심히 배우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인 윤 차장.

사실, 그가 책임지는 일을 싫어하는 이유는, 책임을 확실하게 지기 때문이다.

일을 맡기 전에는 엄청나게 튕기지만, 막상 맡으면 누구보다 꼼꼼하고 철저하게 챙긴다.

수시로 홍썬과 연락하며 시즌 기획을 구성했으며, 조금씩 상품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혁이 신신당부 했던 만큼 팀원들은 보안 유지에 만전을 기했으며, 가족에게 조차 ‘홍썬 라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세상에 완벽한 비밀은 없다.

“윤 차장님~”

디자이너가 상품기획 1팀에 와서 윤 차장을 찾았다.

“정 과장님!”

“아, 네. 어서 오세요.”

“윤 차장님 오늘 출근했어요? 요즘 얼굴 보기 힘드네요.”

윤 차장은 좀 전에 홍썬을 만나러 외근을 나갔다. 정 과장은 표정 관리를 하며 거짓말을 했다.

“아~ 오전엔 있었는데. 좀 전에 외근 나갔어요.”

“외근? 어디요?”

“글쎄요. 그건, 모르겠네요.”

“흠······ 알았어요.”

디자이너는 2022년 봄 개발 샘플을 보여주러 온 건데.

그가 없으니, 샘플을 윤 차장 자리에 올려놓았다.

“오시면 보고 돌려달라고 말씀 좀 해주세요.”

“네~”

그리고 디자이너는 돌아가려다가.

‘어?’

윤 차장 책상 위에 놓인 생산의뢰서를 발견했다.

기획자 책상 위에 생산의뢰서가 있는 게 특별할 일은 아닌데.

이상하게 시선이 갔다.

‘뭐지? 처음 보는 디자인인데?’

디자이너는 생산의뢰서를 들어보았다.

‘시즌 기획 designed by 홍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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