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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51화 (51/301)

51. 비밀 회동 (1)

“아, 안녕하십니까.”

유 실장은 반사적으로 인사를 했고, 영업본부장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사를 나눴으나, 당혹스러움에 선 채로 멍하니 있었다.

“뭐하나? 인사를 했으면 앉아야지.”

“······.”

“우리 저녁 한번 먹기로 했잖아. 팍스버거 콜라보 건으로 고마운 것도 있었고.”

“네, 그러기로 했었죠······.”

지켜보던 지혁이 나섰다.

“유 실장님, 이쪽으로 앉으시죠.”

영업본부장 맞은 편 자리를 가리켰고.

“응? 어. 어.”

그제야 어색하게 대답하며 앉았다.

유 실장은 머리속이 복잡했다.

‘도대체 둘이 왜 같이 있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상품본부장과 함께 있다면, 이해가 될 텐데.

생뚱맞게 영업. 그것도 영업파트의 최고 수장과 함께 있다니.

“오 팀장, 우리 사이를 유 실장이 모르나 본데?”

“네, 아마 아는 분이 회사에 한 분도 없을 겁니다.”

“하하. 역시 입이 무겁군.”

“그러기로 했으니까요.”

둘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누는 대화.

그런 자연스러움이 유 실장은 더 이상했다.

[실례합니다.]

드르륵-

“건전복과 통해삼 스테이크입니다.”

웨이터가 내온 음식을 보며 영업본부장이 말했다.

“여긴 아는 사람들만 오는 맛집이거든? 나올 음식 많으니까, 천천히 먹고. 이거 다음에 나오는 수비드 한우 안심구이가 진짜 괜찮아.”

“아, 네 잘 먹겠습니다.”

유 실장은 건전복을 잘라서 좀 먹어본 후, 깜짝 놀랐다.

‘헉! 뭐야? 이 와중에 음식은 또 왜 이렇게 맛있어?!’

지금 이 어색한 상황에서도 계속 음식이 들어갔다.

“와······ 맛이 기가 막히네요. 이런 곳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영업본부장은 음식을 먹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회사 일을 하다 보면, 은밀히 얘기를 나눠야 할 때도 있잖아? 오늘처럼.”

“······.”

“귀하신 분에게 소개받은 장소네. 이 음식점은 내가 아는 사람 외의 선도물산 직원은 손님으로 안 받아.”

'내가 아는 사람 외에는······.'

영업본부장은 대화중에 은근히 복선을 깔았고.

유 실장은 왜 자신을 불렀는지, 이제야 조금 짐작이 갈 것 같았다.

물론, 지혁과 영업본부장이 같이 있는 이유는 아직도 짐작이 안 가지만.

“음식 맛있지? 앞으로도 자네와 여기 자주 왔으면 좋겠네.”

영업본부장은 살짝 미소지으며 말했고, 유 실장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일단 좀 먹고 얘기할까?”

***

수비드 안심 한우구이 이후부터, 디저트가 나올 때까지.

서로 가벼운 이야기만 했다.

영업본부장은 팍스버거 콜라보의 성과에 대해 연신 칭찬했고.

유 실장은 영업 덕분에 다른 메인 제품들까지 반응이 좋았다며 화답했다.

그렇게 본 얼굴을 숨긴 채.

두 남자는 회사 돌아가는 얘기, 서로 다 아는 얘기만 늘어 놓았다.

하지만 영업본부장은 타이밍을 보고 있었고, 유 실장 또한 그가 어떤 얘기를 꺼낼지를 계속 생각했다.

“식사 다하신 거 같은데.”

하지만 옆에 있던 지혁은 지루했다.

빨리할 얘기 끝내고, 집에 가서 수아를 만나고 싶었다.

“유 실장님, 영업본부장님 라인 타실래요?”

“어?”

“전 탔는데.”

“아······ 그래?”

“네.”

“······.”

유 실장은 눈을 끔뻑거렸다.

분위기상 예상 못 했던 얘기는 아니지만, 이렇게 싱겁게 꺼낼 줄은 몰랐다.

‘하여간, 오 팀장은 참······.’

영업본부장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허허. 오 팀장. 뭘 그렇게 직접적으로.”

“그러려고 부른 거잖아요.”

지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상품본부장은 못 믿을 사람이라는 거 유 실장님이 누구보다 잘 알 테고.”

“······.”

“유 실장님 아까 저와 많은 대화를 나눴잖아요. 마음이 동하셨으니, 저녁 초대에 응하신 거죠?”

유 실장은 최대한 정신줄을 부여잡았다.

‘집중하자. 집중.’

“게다가 영업본부장님을 보셨으면, 안심되지 않으세요? 이런 실력자가 뒤에 계신다면.”

영업본부장은 웃으며 말했다.

“뒤에 있고 말고 할 게 뭐 있나? 유 실장 정도 직급이면 뭐······.”

그때, 지혁은 유 실장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을 했다.

“직급이 이사면 뭐해요? 제대로 된 세력도 하나 없는데.”

‘크흑’

유 실장은 심장이 아팠다.

“상품본부장이 놔버리면 그냥 미아 되시는 거잖아요. 그걸······ 유 실장님도 모르진 않으시죠? 그러니까 기를 쓰고 그 양아치 손을 잡고 있는 걸 테고.”

유 실장은 철저하게 상품본부장을 위해 키워진 사람이었다.

상품본부장은 유 실장 주변에 아무도 없게 했으며, 세력을 갖지 못하도록 계속 견제하고 간섭했다.

예를 들어, 상품전략실 예하 팀장들과 저녁 식사 자리를 한번 갖는 것도 꼭 보고해야 했다.

영업본부장은 유 실장의 표정을 살피며, 지혁이 방금 한 말을 생각했다.

‘준비성이 철저한 친구네. 약점을 알고 있구만.’

이제 나서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

지혁이 환자의 안 좋은 부분을 째서 도려냈다면, 이제 영업본부장이 봉합하고 치료해줄 타이밍.

“자자, 유 실장. 오 팀장이 말하는 게 좀 직설적이야. 자네도 알지? 너무 심려치 말고.”

유 실장은 풀 죽은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난 자네와 함께하고 싶네. 그리고 이건 명분과 당위성이 있는 일이야.”

유 실장은 고개를 들어, 영업본부장을 바라보았다.

“상품본부장이 조직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알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조직을 만들잖아.”

“······.”

“자신에게 득이 되면 맞는 일이고, 자신에게 해가 되면 틀린 일이지. 성과고 뭐고 필요 없어. 아래 직원들이 다치든 말든 상관없고.”

유 실장은 영업본부장의 말을 부인하지 못했다.

상품본부장에게 중요한 건 오직 ‘자신’ 뿐이었으니까.

“물론, 누구나 자신이 가장 소중하지.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쳐가며 자신의 영달만 신경 쓰는 사람이······ 수천 명 위에 군림해서 되겠는가?”

“······.”

“조직을 좀 먹는 사람이고, 결국엔 모두를 무너뜨릴 거라고. 심지어, 회사가 휘청일지도 몰라. 그런 사람이 계속 높은 자리로 승승장구한다면 말이야.”

영업본부장은 유 실장을 계속 설득했다.

“이건 동료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네. 그런 인간은 보내버려야 해.”

영업본부장의 센 말에 지혁은 좀 놀랐다.

‘할 때는 하는구나.’

영업본부장의 입에서 ‘보내버려야’ 한다는 노골적인 표현이 나올 줄은 몰랐다.

“······.”

유 실장은 잠자코 있었고.

영업본부장은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지금 유 실장은 있으면 좋고,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었다.

영업본부장에게도. 지혁에게도.

잠시 후. 유 실장의 당혹스러운 표정이 사라졌고.

어느 정도 생각을 마쳤는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본부장님.”

“그래.”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도 어느정도 동의합니다.”

유 실장의 뉘앙스가 좀 이상했다. 선뜻 함께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근데, 함께 하겠다는 말은 쉽게 못 드리겠습니다. 제게 너무 위험한 일이라서요.”

“······.”

유 실장의 눈이 빛났다.

“상품본부장님을 어디까지 알고 계십니까?”

“······.”

“그 위에 누가 있는지도 아십니까?”

이 말에 지혁이 대신 대답했다.

“오 부회장이 있죠.”

***

유 실장의 동공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걸······ 오 팀장이 어떻게?”

선도그룹에서의 지혁의 목표는 명확하다.

먹고 살아갈 월급을 받는 것과 오 부회장이 오너가 되지 못 하도록 하는 것.

그의 모든 행동은 이 목표에 귀결된다.

일단, 오 부회장에게 뭐라도 하려면 가까워져야 하고, 그러려면 높이 올라가야 한다.

이 모든 걸 종합해봤을 때, 여러 조사를 통해 영업본부장이라는 인물이 적합하다고 생각했고.

지혁의 명성이 올라가면, 그와 가까워질 기회가 올 거라고 판단했다. 특히, 영업에 이득을 주는 상황을 만든다면 말이다.

그래서 영업본부장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을 때. 망설이지 않고 잡았던 것이다.

그다음이 오 부회장의 문고리 중의 한 명인 상품본부장 송재호 상무를 약화시키거나 쳐내는 것인데.

지혁에게 아직 그럴 힘이 없다.

이럴 때는 같은 목표를 지닌 힘 있는 자와 한 편이 되면 된다.

“그러게. 오 팀장이 그걸 어떻게 알아?”

영업본부장도 놀라서 물었다.

지금 만큼은 지혁을 바라보는 유 실장과 영업본부장 둘 다 같은 표정이었다.

“어쨌든 압니다. 지금 과정은 중요한 게 아니고요.”

지혁은 영업본부장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오 부회장의 라인이라는데. 이를 뛰어넘을 뭔가가 있으신가요?”

이건 지혁 또한 영업본부장에게 궁금한 거였다.

‘분명 영업본부장 위에도 거대한 세력이 있는 거 같은데, 도저히 모르겠단 말이야.’

약간 짐작은 하고 있으나, 너무 보안이 철저해서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이제 유 실장도 지혁을 향한 놀란 눈길을 거두고, 영업본부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영업본부장은 입술만 달싹일 뿐,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비밀 유지는 철칙이야. 이건 말해선 안 돼.’

영업본부장은 고민 끝에 생각을 정리한 후, 천천히 말했다.

“진짜 명장은 이겨놓고 싸운다고 하지.”

“······.”

“난 그 정도까지 명장은 아니네.”

영업본부장의 안광이 쏟아졌다.

“하지만, 난 질 게 뻔한 싸움은 절대로 하지 않네.”

유 실장은 그의 위압감에 침을 꿀꺽 삼켰고, 지혁은 영업본부장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상품본부장 위에 오 부회장이 있다고?”

“······.”

“나에게도 그 못지않은 분이 있어. 절대로 밀리지 않아.”

유 실장은 잠자코 듣지만은 않았다.

“그게 누군데요? 함께 하자면서 그 정도도 공유 못 합니까?”

“······.”

영업본부장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자네가 내 손을 잡는다면, 곧 만나게 될 걸세.”

“······.”

“그래도, 의구심을 못 거두겠다면······ 이 정도까지는 얘기해주지.”

지혁도 귀를 쫑긋 세웠다.

“그분도 오 씨네.”

“네?!”

유 실장은 놀라서 반문했으나, 영업본부장은 더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들었다.

영업본부장이 누구의 손을 잡고 있는지.

‘오 부회장 형제 중의 한 명이라는 거잖아.’

지혁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꽤 괜찮은 세력이네?'

예상치 못한 수확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유 실장의 표정은 고심으로 일그러졌다.

‘아, 이를 어쩐다.’

오 부회장의 형제.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어쨌든 나쁜 카드는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무조건 지는 싸움은 아닐 거라는 뜻.

유 실장은 상품본부장을 떠올려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싫어. 그런 인간 아래서 일하는 건······.’

이미 여기 온 것부터가 어느 정도 마음이 기운 거였다.

대화를 나누면서, 상품본부장을 향해 칼을 겨누고 싶다는 생각은 더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반드시 들어야 할 얘기가 있다.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는 가치.

“좋습니다. 본부장님.”

결심이 선 유 실장의 눈빛은 이제 흔들리지 않았고.

영업본부장을 향해 물었다.

“이렇게 해서······ 제가 얻는 건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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