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첫 만남
“안될 거 없죠. 본인 취향대로 사는 거죠.”
지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말을 받았다.
그리고는 윤 차장을 옆눈으로 힐끔 보고는 말했다.
“언제부터 있었어요?”
“오 팀장이 한숨 푹푹 쉬기 전부터.”
지혁은 말없이 아래를 내려다봤고, 윤 차장이 말했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삶이 다르다고.”
“······.”
“가늘고 길게 회사생활 하는 거. 잘못된 거 아니잖아. 내가 회사에 해악을 끼치는 것도 아니고.”
윤 차장이 욕심을 내지 않을 뿐, 일을 설렁설렁하는 건 아니다.
본인이 맡은 일을 확실하게 한다.
어설프게 일 처리해서 귀찮은 일 생기는 걸 싫어하니까.
“젠장, 내가 후배 앞에서 이렇게까지 말해야 해? 어쨌든 나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으니까, 나한테 일 좀 집중시키지 마.”
지혁은 잠자코 듣다가 한마디 했다.
“이상하네. 내가 잘못 이해했었나.”
“······.”
“한 때는 팀장직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고······ 난 윤 차장님이 은근히 욕심이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말에 윤 차장은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 힘들다는 거······ 진짜 원인은 다른 데 있는 거 아니에요?”
스으윽.
지혁은 윤 차장 가까이 다가왔고.
윤 차장은 살짝 뒷걸음질 쳤다.
“내가 보기엔······ 겁먹으신 거 같은데.”
“겁? 내가 겁을 왜 먹어?!”
“아니에요?”
“아니야~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무슨 일 있어도 오 팀장이 책임진다 했고. 난 내 일만 하면 되는걸.”
윤 차장은 말끝마다 ‘책임’이라는 단어를 쓴다. 심 팀장도 그랬지만, 사실 윤 차장이 더 많이 쓰는 단어다.
‘분명 트라우마가 있어.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윤 차장은 스스로의 영역을 축소하려 했지만.
지혁은 윤 차장의 그릇이 크다고 생각했다.
“그래요. 그렇게 힘드시다면 앞으로 부담을 좀 덜 드리도록 하죠.”
“그래······ 부탁 좀 할게.”
“이번 일 잘 마무리 짓는 거 보고요.”
“······.”
윤 차장은 한숨을 쉰 후, 대꾸하지 않았다.
'어쨌든, 홍썬라인은 끝까지 하라는 거네.'
“내려갈까요?”
***
저벅. 저벅.
사무실 밖으로 들리는 발걸음 소리에 손정진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지혁 특유의 걸음 소리가 있다.
보폭이 크고, 힘차게 걷는 걸음.
매일 8시 55분. 같은 시간에 출근하기에 팀원들은 그의 걸음 소리를 기억한다.
정 과장은 손정진이 걱정되었다.
“야, 야, 숨어. 숨어.”
거대한 위협을 맞닥뜨리면, 몸이 굳어서 꼼짝도 못 한다.
손정진은 걸음 소리를 듣고, 몸이 얼어버려서 피할 생각도 하지 못했고.
덜컹!
그 사이 지혁이 문을 힘차게 열었다.
“헉!”
손정진은 숨 빠지는 소리와 함께 몸이 경직되어 버렸다.
“······.”
지혁은 손정진을 뚫어지게 보며 다가왔고.
손정진은 다리를 미세하게 떨었다.
“야.”
“······.”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지혁이 불렀으나, 손정진은 대답도 못 했다.
‘난 죽었다. 차장님이랑 과장님께 하는 것만 봐도 장난 아니시던데······.’
지혁은 인상을 쓰고 손정진을 바라봤다.
“팀장을 봤는데, 인사도 안 해?”
“아! 맞다!”
“아, 맞다?”
손정진은 90도 각도로 고개를 숙이며 큰 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그래, 너 오늘 나 처음 보잖아.”
“네, 죄송합니다.”
오늘 지혁이 출근할 때, 손정진은 화장실에 있었고. 지혁은 출근 후 곧바로 황 대리를 만나러 나갔었다.
“······.”
지혁은 가만히 그를 바라봤고.
손정진은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다른 팀원들도 각자의 컴퓨터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으나, 두 사람의 행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피식.
지혁은 웃으며 말했다.
“좋은 얘기 써줘서 고맙다?”
“네?”
“고맙다고, 이 자식아.”
팡!
지혁은 발을 들어 가볍게 손정진의 엉덩이를 걷어찼고.
손정진은 그의 발차기가······ 반가웠다.
이번 한 번은 봐준다는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지혁은 손정진을 지나치며 말했다.
“담부턴 조심하자.”
쿵쾅. 쿵쾅.
손정진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얼굴에 열이 확 올랐다.
‘역시, 우리 팀장님이야. 진짜 멋있어.’
지혁은 자리에 앉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 보고는 나한테만 해. 책임질 테니까. 무슨 말인지 알지?”
‘알고 계셨구나······.’
손정진은 미안한 마음에 큰 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지혁은 정 과장을 불렀다.
“정 과장님, 제 자리로 잠깐 오시죠.”
정 과장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지혁의 자리를 찾았다.
“나, 나는 왜?”
일단, 지혁이 부르면 다들 긴장한다.
“뭘 그렇게 긴장해요?”
팀장이 되기 전에 보여준 모습이 있었고, 존재 자체에서 풍겨 나오는 카리스마가 있다.
지혁은 팀원들에게는 꽤 잘해주는 편이지만, 다들 그를 어려워했다.
“과장님.”
“응?”
“말을 하면 좀 제 눈을 보세요.”
시선을 피한 채 대답하던 정 과장은 억지로 지혁을 보았다.
“과장님께서 좀 해주실 게 있는데.”
“내가? 에이~ 윤 차장님 있잖아.”
정 과장은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윤 차장을 들었다.
“상품본부에 아는 사람 있죠?”
“뭐, 있기야 있지. 윤 차장님도 있을걸?”
정 과장은 윤 차장 다음으로 상품기획에서 짬이 오래된 사람이다.
특히, 무슨 일 있으면 과시하고 다니는 걸 좋아해서, 여러 부서에 얘기 나누는 사람이 많았다. 상품기획 1팀의 최고 스피커였다.
지혁은 정 과장이 이 일을 시작해야, 뜬금없어 보이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고개 숙이세요. 다른 사람 들리지 않게.”
정 과장은 내키지 않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고, 지혁은 속삭였다.
***
“제기랄, 그거 어떤 놈인지 못 밝혀내?”
상품본부장은 블러인드의 본인 저격 글을 다시 봤다.
‘맛있다고 잘 처먹을 때는 언제고, 인제 와서······.’
반성보다는 억울한 마음이 더 컸다.
상품본부 직원 중의 한 명이 쓴 것 같다는 생각이었고, 그래서 다 꼴 보기 싫었다.
“추 차장. 혹시 자네는 아니지?”
“글 내용 보셔서 아시겠지만, 회사생활을 오래 한 사람 같아 보이진 않던데요.”
“왜?”
“말투가 좀 그렇지 않습니까.”
“연기하는 걸 수도 있지.”
상품본부장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일단 오늘 회식은 취소해.”
“알겠습니다.”
상품본부장은 속이 쓰렸다.
‘제기랄, 앞으로 무슨 낙으로 사나.’
젊은 직원들과 술자리 갖는 게 즐거웠었다. 혼술은 또 싫어한다.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마라ㅋㅋ’
‘ㅈㄴ 술 마실 사람 없어서 그런거임.’
‘팀 이동 전까지 엄청 힘들었음.’
글 내용보다도 댓글들이 더 뇌리에 박혔다.
부끄럽고, 화도 나고.
생각하니 속이 또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속이나 비우고 와야지.’
“추 차장, 나 화장실 좀 갔다 올게. 다음 미팅까지 시간 얼마나 남았지?”
“아직 15분 있습니다.”
“알았어. 그 전에 올게.”
본부장실은 상품본부 안에 있다.
덜컹!
문을 열고 나가니, 조용한 가운데 떠들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아, 그래서 홍썬이라는 여자가 울며불며 매달렸다니까?”
정 과장이 직원 한 명을 붙잡고, 심하게 입을 털고 있었다.
“스타덕 광팬이라지만, 어쩌겠어~ 못하게 되었는걸.”
멀찍이 있었는데도 워낙 큰 소리로 말하니 다 들렸고.
상품본부장은 걸음을 천천히 하며 귀를 쫑긋 세웠다.
“그 여자도 많이 아쉽겠지~ 이번에 의류 쪽에도 진출을 해보고 싶었나 봐. 아깝게 됐어. 했으면 대박인데.”
-에이~ 그래도 외주디자인을 쓰면 풍파가······.
정 과장은 머리를 쓸어올리며 말했다.
“그래서, 결국 관둔 거 아니야. 오 팀장이 쉽게 물러날 사람이 아닌데. 상품전략실에 불려 갔다 오더니, 태도가 싹 바뀌었어.”
-그래요?
정 과장은 비밀 얘기하듯 고개를 숙였는데, 목소리는 컸다.
“유 실장님한테 많이 혼난 거 같더라고. 그분이 유해 보여도, 할 때는 하나 봐.”
-유 실장님이 또라이를 잡은 거네?
정 과장은 손뼉을 치며 소리치듯 말했다.
“하하. 그렇지. 아~ 오 팀장이 보통 꼴통이 아닌데. 아무리 그래도, 임원한테는 어쩔 수가 없나 봐~”
상품본부장은 그 말을 들으며, 씩 웃었다.
‘오지혁이······ 생각보다 약한데?’
***
인사팀. 아침 조회.
배 대리의 보고 차례가 되었다.
“인사팀장님. 얼마 전에 지시하셨던 블러인드 건 관련하여, 상품본부장님 관찰보고 드리겠습니다.”
인사팀장은 불편한 얼굴로 다른 팀원들을 돌아보고 말했다.
“그건 나중에 보고하지.”
“네? 회사 명예와 관련 있다며, 밀착 관찰하라고 하셨잖아요. 급한 거 아니셨어요?”
'아오~'
인사팀장은 주먹을 꽉 쥐었다가 다시 폈다.
“나중에 하라면 나중에 해······.”
“네.”
잠시 후, 아침 조회가 끝났고.
인사팀장과 배 대리만 회의실에 남았다.
“배 대리!”
“네.”
“자네 왜 이렇게 눈치가 없어! 똑똑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이럴 때 보면 좀 헷갈려.”
“제가······ 뭘요?”
인사팀장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자네와 단 둘이 있을 때 지시한 일이잖아. 아무리 인사팀이라지만, 상급자 관찰을 대놓고 했다고 하면 어떡하나?”
“······.”
“은밀히 관찰해서, 조용히 내게만 보고해야지.”
“아······.”
인사팀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는 되었지만, 배 대리는 속으로는 짜증이 났다.
‘좀 콕 집어서 얘기 좀 해줘라. 내가 무슨 관심법이 있나······.’
인사팀장은 커피를 마시며 물었다.
“이제 보고해 봐.”
“네.”
배 대리는 블러인드 관련 보고를 시작했다.
“상품본부장에 대한 저격글은 그 이후에도 몇 개 더 올라왔습니다.”
“흠······ 연달아 다른 제보가 올라왔다는 말이네.”
“네. 근데, 희한한 건 글이 올라오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삭제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삭제할 수 없다며?”
“글을 올린 사람은 삭제할 수 있죠.”
“아······.”
인사팀장은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그렇다면 글 쓴 사람의 심경의 변화 혹은 어떠한 압박 때문일 텐데······.’
곧바로 상품본부장의 교활한 얼굴을 떠올렸다.
‘그 양반이라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냈겠지. 자신에게 흠집 날 일을 그대로 두고 볼 사람이 아니니까.’
“아, 그럼. 처음에 올라온 저격글도?”
“아닙니다. 그 글은 그대로 있습니다.”
“왜 그럴까?”
“글쎄요······.”
배 대리는 주변을 살핀 후, 조심스럽게 말했다.
“상품본부장님의 힘이 못 미치는 쪽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
인사팀장은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아니면, 출처를 못 찾고 있거나.”
배 대리는 인사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것도 가능한 얘기입니다. 어쨌든 이 일로 상품본부장님의 이미지는 좀 안 좋아졌습니다.”
“흠······ 그래서 뭐 혹시 태도가 달라지시거나 하진 않았나?”
이 말에 배 대리는 고개를 저으며 탄식 섞인 말을 했다.
“달라진 정도가 아니라.”
“······.”
“새로운 사람이 됐습니다.”
***
상품본부장은 그날 이후로 달라졌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그랬다.
우선 블러인드에 거론된 ‘회식’과 관련된 행동은 완전히 사라졌다.
주 2회 하던 술자리가 사라지니, 술독에 잿빛이 되어가던 상품본부의 사원, 대리들의 얼굴이 환해지기 시작했고.
언제나 사무실에서 풍기던 은은한 소주 향도 사라졌다.
“블러인드 내용이 신경 많이 쓰이긴 하시나 보다.”
인사팀장은 중얼거리듯 말했고.
배 대리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직원들이 하고 있고, 그만큼 소문도 빨리 퍼지니까요.”
“그렇지. 임원급 정도 되면 평판 때문에 치명타를 받을 수 있으니깐.”
아무리 일 잘해도, 경영자가 직원들의 인심을 잃으면 아웃되기 십상이다.
인사팀장은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어쨌든 이 일은 해결된 거네. 상품본부장님께서 변하신 거니까.”
“네, 일단 표면적으로는요.”
인사팀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그리고 뭐 더 특이사항은 없었나?”
배 대리는 눈을 치켜뜨고 궁리를 하다가.
“아! 송 상무님 관찰하면서, 좀 희한한 걸 봤습니다.”
“그래? 뭔데?”
“상품기획 1팀 팀원들이 송 상무님 주변을 맴도는 것 같더라고요.”
“뭐? 상품기획 1팀?”
인사팀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오 팀장님의 팀이잖아. 왜 그 팀이 상품전략실도 아니고. 상위 부서인 상품본부에서······.’
이상한 기분에 재빨리 물었다.
“주변을 맴돌기만 해? 뭐 특별한 행동은 없었고?”
“아······ 뭐, 별거 아닐 수도 있는데. 패턴이 있기는 했어요······.”
배 대리는 괜한 소리를 했나 싶어서 머뭇거렸는데.
인사팀장은 재촉했다.
“판단은 내가 할 테니, 그냥 본 대로만 얘기해 봐.”
“알겠습니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비슷한 얘기를 반복하더라고요. 특이점이 있다면, 주변에 송 상무님이 꼭 있었습니다.”
“무슨 얘기를 하는데?”
“홍썬라인?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인사팀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홍썬? 홍썬은 너튜버인데?”
“네, 저도 압니다. 홍썬라인을 아쉽게 못 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유 실장님이 오 팀장보다 확실한 상위 실력자라는 얘기를 반복하더라고요.”
“······.”
“예를 들어, 어제는 정성재 과장님이 송 상무님 주변에서 얘기했다면, 다음날에는 문규태 대리님······ 뭐 이런 식으로요. 상품본부 직원들과 대화 중에 언급하기도 하고, 혹은 혼잣말로 안타까워서 중얼거리기도 하고······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주변에는 꼭 송 상무님이 있었습니다.”
인사팀장 직감적으로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마치 들으라는 듯 얘기했다는 건데.’
“송 상무님은? 그에 대해 특이한 행동은 없고?”
“네, 별다른 건 없는데. 그런 얘기가 들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뭔가 있다.”
“······.”
인사팀장은 순간 느낌이 왔다.
블러인드 상품본부장 저격글부터.
지금 배 대리가 얘기한 일련의 상황설명까지.
‘상품본부장, 오 팀장 사이에 뭔가 있어. 아마, 유 실장도 껴 있겠지. 셋 다 지금 선도물산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인데······.’
머지않아 회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큰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 대리. 내 말 잘 들어. 지금부터 더 집중해서 관찰해. 상품본부장님, 오 팀장님, 그리고 유 실장님까지.”
“네? 유 실장님도요?”
인사팀장 긴장된 눈빛으로 말했다.
“우리는 적재적소에 인원을 배치하는 인사담당자이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조직의 안정에 있어.”
“······.”
“중요한 일이니까, 잘 신경 써야 해.”
“알겠습니다.”
***
아침, 출근 시간 8시 55분.
지혁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고.
저벅. 저벅.
한 남자가 옆에 섰다.
띵동!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두 남자 외에 타는 사람은 없었다.
엘리베이터 안.
적막이 흘렀다.
“자네는 상급자를 보고 인사도 안 하나?”
함께 탄 사람은 상품본부장이었다.
“누구시죠?”
물론 그의 얼굴을 알며, 옆에 있다는 것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물었다.
지혁이 상품본부장과 만난 건 처음이었다.
“저 아세요?”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상품본부장은 당황했다.
“흠! 난 상품본부장이야. 자네, 오 팀장 맞지?”
“아······ 그러시구나. 안녕하세요. 몰라봐서 대단히 송구합니다.”
과도한 사과로 비꼬듯이 말했다.
상품본부장의 이마에 핏줄이 섰지만, 참았다.
‘블러인드······ 조심해야지.’
그 일이 뇌리에 박혀있었다.
“잘됐네요. 안 그래도 상품본부장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었는데.”
“뭔가?”
“홍썬라인 하게 해주시면 안 돼요?”
“······.”
커뮤니티, 팀원, 유 실장 등 여러 방법을 통해 상품본부장을 기만했지만.
그를 더욱 완벽하게 안심시키면서, 떠볼 목적으로 역으로 물어본 거였다.
“투자한 시간이 많았거든요. 제품 잘 될 거 같고······ 유 실장님은 절대 안 된다고 하셔서 속상합니다.”
상품본부장은 속으로 웃었다.
‘진짜 안 하는 게 맞군.’
일말의 의심까지도 완벽히 거두는 순간이었다.
지혁은 그의 미세한 얼굴 근육을 살피며, 그의 속마음을 읽고 있었다.
‘됐다. 때가 됐어.’
상품본부장은 안타까운 얼굴로 대답했다.
“미안하지만 난 무슨 사안인지 잘 모르겠네. 상품전략실 일은 자네 직속 상사를 잘 설득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
띵동!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상품본부장은 한껏 밝아진 목소리로 인사하며, 먼저 내렸다.
“그럼, 수고하게~”
그의 뒷모습을 보며 지혁도 환히 웃었다.
‘여름 다 가도록 못 가는 줄 알았는데. 이제 가도 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