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63화 (63/301)

63. 조준, 발사 (1)

황 대리는 연락을 받고, 급하게 회사를 나섰다.

“팀원들 다 데려가셨으면서 굳이 왜······.”

그는 ‘다운점퍼’ 사고 이후, 상품기획팀 파견근무를 멈췄다.

그리고 지혁을 쫓아다니는 것보다는 현업을 더 챙겼고, 일을 꼼꼼하게 하려 노력했다.

지혁도 이런 황 대리의 변화를 이해해주었다.

사람마다 깜냥이 있는 건데, 황 대리는 동시에 두 가지 일을 못 하는 사람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황 대리가 여러 사람 앞에서 시련을 겪은 것에 대한 책임 의식도 있었고.

도보로 약 10분.

스타덕 강남점에 도착했는데······.

“이, 이게 뭐야······.”

황 대리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어서, 처음엔 뭔가 싶어서 까치발을 들고 봤는데.

사람 벽이 막고 있는 건 강남점이었으며, 쇼윈도가 안 보일 지경이었다.

지금 시각은 오후 4시.

‘어제 물류 입고됐으니까, 매장 입고된 지 얼마 안 됐을 텐데.’

“와······ 대박.”

매장에 가까이 갈수록, 인산인해에 어이가 없었다.

‘팍스버거 콜라보’와는 비교도 안 됐다.

“잠깐만 지나갈게요!”

사람 벽을 보고 어쩌지 못하고 쩔쩔매다가, 결국 황 대리는 평영을 하듯 손을 쑤셔 넣었다.

-뭐야! 어딜 찔러!

-힘으로 밀지 말아요!

-헤이! 돈 터치 미!

외국인도 있었다.

황 대리는 근무 중이었고, 일해야 하니까. 무리해서 파고 들어갔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스타덕 직원이에요! 잠시만요!”

겨우 뚫고, 매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매장 안 대부분의 사람은 ‘홍썬’이 디자인한 제품에 몰려 있었다.

-너튜브로 알려준 날짜에 딱 맞춰서 입고됐네.

-역시 홍썬은 약속을 잘 지켜.

-아직 도착 안 했지?

홍썬은 너튜브에서 ‘홍썬라인’에 대한 홍보를 했고.

소식을 접한 구독자들이 일제히 강남점으로 몰려온 것이다.

-옷 너무 이쁘다~

-강아지 귀여워~ 어떡해~

-뭘 어떡해? 사면 되지.

-벌써 사이즈가 없대. 힝······.

‘홍썬라인’이 진열된 곳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는데, 서로 옷을 가져가려고 손을 뻗었고.

한 곳에만 손이 너무 집중되니까, 기괴해 보일 정도로 좀 섬뜩했다.

황 대리는 인상을 찡그렸다.

‘좀비 떼 같아······.’

“황 대리님!”

사람 벽 너머로, 지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쪽으로 오세요!”

***

“안녕하세요. 오 팀장님.”

“어서 오세요. 수고 많으셨어요.”

지혁은 황 대리를 보자마자, 대뜸 악수부터 청했고.

황 대리는 얼떨결에 그의 손을 잡았다.

“아, 네 감사합니다. 제가 한 게 뭐 있다고.”

“황 대리님이 입고시킨 거잖아요.”

지혁은 상품기획 팀원들을 향해 말했다.

“제품이 제날짜에 맞춰서 들어온 건 당연한 게 아니라 잘한 거예요. 생산 담당들 보면 꼭 축구 수비수 같다니까요. 잘하면 당연한 거고, 못 하면 티 확 나고.”

황 대리는 이런 지혁의 말이 고마웠다. 특히, 상품기획 팀원들 앞에서 말해줘서.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지혁은 가볍게 박수를 치며 말했다.

“감사의 의미로 모두 박수 한번 칩시다.”

짝짝짝.

지혁의 말에 따라 상품기획 팀원들은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쳤고.

황 대리는 기분 좋아서 빙그레 미소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자, 그럼 감사는 여기까지 하고.”

지혁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윤 차장님.”

“어.”

“1차 입고 물량이 어떻게 되죠”

“이번 주는 20% 들어왔어. 8 스타일 6만 장.”

“앞으로 계획은요?”

“주차 간격으로 입고 돼서, 3주 후면 40 스타일 25만 장 전량 입고 완료야. 일정 변경 없죠? 황 대리님?”

윤 차장은 황 대리를 바라보았고.

황 대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네, 이상 없습니다. 날짜 못 맞출 것 같으면, 에어 선적이라도 해서 맞추겠습니다. 생산공장과는 협의가 끝났습니다.”

윤 차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깔끔하네.”

지혁은 팀원들을 집중시켰다.

“오케이. 지금 바로 리오더 진행합니다. 일단 오늘 입고된 스타일 8 스타일 6만 장에 대해서는 두 배 물량으로 준비해주세요.”

“두, 두 배?!”

윤 차장은 놀라서 되물었다.

“그 정도 물량 다 팔려면 봄 다 지날 텐데.”

“제가 보기엔 이거 봄 지나도 팔려요. 계절 탈 제품이 아니에요.”

“그걸 어떻게 확신해?”

상품기획 베테랑답게 윤 차장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지만.

지혁은 거침없었다.

“감이죠.”

“헐······ 감으로 12만 장을 지른다고? 발주액으로 72억인데.”

“100% 감만은 아니니까. 지르라면 그냥 지르세요.”

지혁은 매장에 도착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고객 관찰을 했다.

그들이 제품을 터치하는 횟수, 입어보는 횟수, 입어본 후의 표정, 제품에 대한 얘기 등 모든 것을 관찰하며 종합적인 판단을 했다.

매니저의 의견도 들었다.

“알았어······.”

윤 차장은 이제 지혁에게 뻗대지 않는다. 한 번 정도 반론을 제시해도, 지혁이 밀어붙이면 그냥 한다.

이 또한 ‘다운점퍼 사고’ 이후의 변화다.

“황 대리님, 얼마나 걸릴까요?”

“사전에 구매해 놔서 자재는 준비되어 있거든요. 근데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물량을 요청하셔서······ 한 2주 정도 예상합니다.”

“네, 한 번에 입고시킬 생각 마시고, 완성되는 물량 먼저 끊어서 입고시켜주세요. 물류비 좀 올라가도 괜찮으니까. 지금부턴 속도전이에요.”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네, 바로 오더 내리세요.”

담당인 윤 차장도 고개를 끄덕였고, 황 대리는 바로 공장에 전화했다.

그때.

-꺄아악~

밖에서부터 비명이 들려왔다.

-홍썬이다아~!

-홍썬~!

***

새빨간 옷을 입은 홍썬이 커다란 강아지 인형을 안고, 강남점 앞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누나! 여기 좀 봐~!

-와, 졸라 이뻐.

-손 한 번만 흔들어줘요~

홍썬은 미소로 군중들의 환호에 화답해 주었다.

-옷 너무 이뻐요~

-새로운 사업 축하해요~

홍썬은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전 그냥 디자인만 한 거예요. 호호.”

그때, 매장 안에서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 나왔다.

얼핏 보면, 경호원처럼 보이는 날렵하면서도 강인해 보이는 체격.

쏙 들어간 볼살과 날카로운 눈매 때문에 인상은 차가워 보였고.

전형적인 미남이라고 할 순 없지만, 묘한 매력이 뿜어져 나오는 남성이었다.

“오 팀장님~”

홍썬은 그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오 팀장?

-경호원을 그렇게 부르나?

-근데 경호원이 왜 매장에서 나와.

-위험 사항 없는지 감지하려고 먼저 온 거겠지.

-아······.

지혁은 주변 얘기엔 신경 쓰지 않고, 홍썬에게 다가갔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와 많이 다르시네요.”

작업실에서 봤던 부스스한 모습과 오늘은 완전히 달랐다. 그냥 연예인 같았다.

“호호. 당연히 와야죠~ 저의 첫 아이들인데.”

디자이너들은 보통 자신의 작품을 ‘아이’라고 표현한다.

“안내할게요.”

“네~”

홍썬은 자연스럽게 지혁의 팔짱을 끼었고.

흠칫!

지혁은 살짝 놀랐다. 오감에 극도로 예민한 몸이라······.

“손 좀······.”

“이런 곳에서는 신사가 숙녀 에스코트해 주는 건 기본이에요.”

찰칵! 찰칵!

여기저기서 셔터 소리가 들렸고.

지혁은 영 신경이 쓰였다.

‘수아가 알게 되면 싫어할 텐데.’

“전 신사가 아니거든요.”

결국, 홍썬의 낀 팔짱을 풀어버렸고.

“치.”

홍썬은 콧잔등을 살짝 찡그리고 말았다.

매장으로 들어와서.

진열된 제품들과 매장을 둘러보며 홍썬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좋네요. 옷도 생각한 것보다 이쁘게 나왔고요.”

“잘 디자인해주신 덕분이죠.”

“판매 반응은 어때요?”

홍썬은 기본 디자인 비용 없이, 판매 수량에 대한 커미션을 받는 거로 계약을 진행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매출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고,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협조했다.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너튜브에서도 여러 차례 직접 광고를 할 정도였으니.

이 또한 지혁이 의도한 거였다.

“뭐······ 보시다시피”

매장 안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고, 카운터 앞에는 줄이 서 있다.

“오늘 입고된 6만 장 곧 다 팔릴 거 같고요. 오늘 12만 장 리오더 했어요. 그리고 더 입고되어야 할 수량은 19만 장이고요.”

굳이 계산해 볼 필요도 없었다. 홍썬은 좋아서 입이 벌어졌다.

“어머······ 어떡해. 너무 좋아~ 호호.”

지혁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제가 돈 많이 벌게 해드린다고 했죠?”

홍썬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약속한 건 꼭 지키신다고 했어요!”

홍썬은 갑자기 소매를 걷어붙였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매니저 역할을 하며 손님 응대를 하기 시작했다.

***

‘홍썬라인’ 1차 제품 입고는 월요일이었고, 화요일부터 매장 판매를 시작했으니, 금요일인 오늘이 4일 차다.

1차 입고된 ‘홍썬라인’ 6만 장은 이틀 만에 완판(완전판매)되었으며.

완판된 걸 모르고 홍썬라인을 구매하러 온 손님들은, 다른 걸 대신 구매해 가는 기현상도 나타났다.

즉, 팍스버거 때처럼 덩달아 다른 옷들의 매출도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영업부에서는 즐거운 비명을 질렀고.

어서 빨리 성과 보고를 하고 싶었으나, 지혁의 요청에 따라 기다리고 있었다.

‘오 팀장님! 영업본부장님이 난리에요. 이제 오픈하면 안 돼요?’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제가 메일로 신호 줄 테니까.’

영업부도 그렇고, 상품기획팀도 더는 숨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매주 금요일에 ‘스타일별 매출 보고’를 하는데, 지혁은 그때 터트릴 생각이었다.

어제 메일을 다 작성한 뒤, 손정진에게 오탈자나 문장 등 이상 없는지 점검해 두라고 했었다.

금요일 출근길.

‘Smooth criminal' by Michael Jackson.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그 어느 때 보다 흥겨운 발걸음으로 회사로 향했다.

‘큰 위협을 제거할 때만큼 짜릿한 기분은 없지.’

‘그 세계’에서 많은 위협을 겪었다.

때로는 힘이 부족해서 혹은 볼모로 잡힌 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위협을 감당하며 살아야 했다.

하지만 때가 되어, 그 위협의 등에 칼을 꽂거나, 목을 그었을 때.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그 짜릿한 기분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짜릿함은 상대가 강할수록 더 크다.

‘거대함을 꺾어낼 때의 쾌감이란······.’

자유로워지며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기분.

짓누르던 게 사라지는 것이다.

‘상품본부장.’

이제 걸어놓고 난도질만 하면 되는 일.

지혁은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Smooth Criminal의 마지막 소절.

『너는 당한 거야. 어쩌면 당할 수밖에 없었던 건지 몰라.』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사무실에 도착했다.

8시 55분.

덜컹!

지혁이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사무실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그 세계’에서의 전투 투입 직전의 분위기 같았다.

인사도 나누지 않았다.

모두 지혁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정진!”

“네! 팀장님!”

“오탈자 검수 다 했냐?”

“네! 다 했습니다!”

“별다른 이상은 없었고?”

“없습니다! 깔끔합니다.”

후우-

지혁은 심호흡을 하고, 씩 웃으며 말했다.

“씨발, 날려.”

클릭.

손정진은 메일 발송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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