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조준, 발사 (3)
“뭐요?”
상품본부장은 놀라서 눈을 부릅떴고.
회의실에 모인 다른 임원들도 모두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기습공격.’
이건 말 그대로 기습공격이었다.
그룹 내에서 덕장으로 알려져 있으며, 항상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다니는 영업본부장이기에······.
회의실에 있는 임원들은 더욱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상품본부장은 영업본부장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다.
‘지금이 기회라 이거지?’
호시탐탐 자신을 견제해 왔다는 걸. 사람 좋은 미소 뒤에 비수를 숨기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
영업본부장의 기습 질문 이후, 회의실에 정적이 흘렀고.
상품본부장은 대답 없이 영업본부장을 바라봤다.
숨겨져 있던 칼이 보이니, 오히려 머리가 차가워지는 기분이었다.
‘어쩐지 유 실장이랑 오 팀장이 너무 겁 없이 날뛴다 했는데. 영업본부장이 있었군······.’
상품본부장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능함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디자인실을 불신하지도 않고요.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그럼 25만 장이나 되는 기획라인을 왜 외부인에게 의뢰했나요? 그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 안 하셨는데.”
상품본부장은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지금 제가 해명하는 자리입니까?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잖아요. 제가 불법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묻는 태도가 좀 불쾌하네요. 대답하고 싶지 않습니다.”
상품본부장은 어떻게든 이 주제를 벗어나려 했다. 평소의 유한 성격의 영업본부장이라면 여기서 멈췄겠으나.
“태도가 중요합니까? 지금?”
오늘은 달랐다. 평소의 영업본부장이 아니었다.
회의실에 차가운 공기만 감돌았다.
“우리 회사 디자인실이 있음에도, 외부 디자인을 쓴 일입니다. 더욱이 기존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큰 성공을 거뒀고요. 이게 결과만 좋으면 넘어갈 만한 일로 보이십니까?”
상품본부장은 입을 꾹 다물었고.
영업본부장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보아하니, 송 상무님도 이 일을 잘 몰랐던 거 같은데······.”
꿈틀.
불쾌함에 상품본부장의 표정이 일그러졌으나.
영업본부장은 개의치 않고, 말을 계속했다.
“아까 소식 듣고 많이 놀라시는 거 여기 계신 분들 모두 봤죠. 덕분에 회의 중단까지 되었었고요.”
“말조심 하세요!”
상품본부장은 흥분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건 화가 나서가 격양된 게 아니라,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자자, 두 분 진정 좀 하세요.”
결국, 대표이사가 나섰다.
***
선도 물산의 대표이사, 홍남일 사장.
곧 환갑을 눈앞에 두고 있는 그는, 오 회장과 선도그룹의 격동기를 함께 겪었었다.
산전수전 다 겪어본 백전노장. 그는 지금 영업본부장과 상품본부장의 얘기를 들으며, 사안이 가볍지 않다고 생각했다.
‘영업본부장답지 않게 날카롭고, 상품본부장답지 않게 흥분하고.’
대표이사는 일이 생겼을 때, 관련 있는 사람들의 태도를 먼저 관찰한다. 속뜻을 파악히기 위해서 그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죄송합니다. 대표이사님. 회의 자리에서.”
상품본부장은 위기를 모면할 기회라 생각하여 곧바로 대표이사의 말을 받았고.
“······.”
대표이사가 나서니, 영업본부장으로서는 더 어쩔 수 없었다.
대표이사는 회의를 마치려 했다.
“혹시 더 논의하고 싶으신 분 있나요?”
그때 홍보실장이 살짝 손을 올렸다.
“대표이사님.”
“네.”
“회의 중에 언론사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평소 같으면 고민할 것도 없이 받아들이겠지만, 지금 두 분의 대화를 들으니······ 인터뷰 요청을 수락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대표이사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고 물었다.
“지금 두 분이 얘기했던 홍썬라인 관련 인터뷰인가요?”
“네, 파급력이 굉장합니다. 이번 주말까지 보내고 나면 어떻게 될지······.”
대표이사도 헷갈렸다.
‘압도적인 성과는 냈으나, 우리 회사의 디자인 자산으로 이뤄낸 일이 아니야. 이게 언론에까지 알려지면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생각할수록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과 벌이 뭔지, 우선 내부적으로 정확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어. 결국, 오너에게 까지 알려질 만한 일이야.’
회사생활 30년을 넘게 한 사람이다. 대략 봐도 사이즈가 나온다.
“홍보실장은 일단 인터뷰 수락하는 거로 언론사에 얘기하게. 좋은 일로 요청하는데, 거부하는 게 더 이상해 보이지.”
“네.”
“다만, 시일을 너무 촉박하게 잡지는 말게. 인터뷰 요청대상은 누구지?”
“이 일의 최선 실무자인, 오지혁 팀장입니다.”
“오지혁?”
대표이사는 이름이 생소하지 않았다.
‘낯익은데.’
가까이 있던 CHO(인사 최고책임자)가 말했다
“지난 정기승진 때 특진했던 직원입니다. 최연소 팀장이 되기도 했죠.”
“아~ 팍스버거 콜라보! 그 친구구만.”
대표이사라도 ‘팍스버거 콜라보’는 기억한다. 워낙 이슈가 되었던 일이기에.
또한, 지혁의 인상적인 모습도 기억하고 있었다.
‘곧 보게 될 거예요.’
임명장 받으러 올라와서는 대표이사에게 이런 당돌한 말을 하는 직원은 한번도 본적이 없었으니까.
“참나······ 진짜 보게 되겠네.”
“네?”
대표이사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아닐세. 상품본부장.”
“네.”
대표이사가 지시했다.
“이 일에 대해서 내가 좀 알아야겠으니, 금일 오후에 자리 만들게.”
“겨우······ 이 일 때문에요?”
상품본부장은 순간 당황했다.
“참석자는 자네와 영업본부장, CHO, 홍보실장, 상품전략실장, 그리고······ 오지혁 팀장.”
꿀꺽.
상품본부장은 마른 침을 삼켰다.
‘오지혁······.’
일전에 ‘다운점퍼 사고’ 건으로 회의 중에 한번 데인 이후로, 지혁과의 대면은 극도로 피했었다.
“대표이사님께서 일개 팀장을 만나실 필요는 없습니다. 상품전략실장이 이 사안에 대해 잘······.”
상품본부장은 지혁이 대표이사와의 미팅에 참석하는 것만큼은 막고 싶었다.
하지만······.
“자네 말을 이상하게 하는군. 일개 팀장이라니?"
"......."
"난 진짜 일을 진행한 실무자 얘기를 들어봐야겠네. 오지혁 팀장 오라고 해.”
상품본부장에게 거절할 명분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
오후 2시.
대표이사와의 미팅 시간은 오후 4시이며, 아직 시간이 있다.
상품본부장은 점심도 굶다시피 하고.
일찌감치 본부장실로 와서 초조하게 시계만 보고 있었다.
“왜 이렇게 안 오냐······.”
잠시 후.
똑똑.
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리자, 상품본부장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들어와!”
덜컹.
본부장실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지혁이었다.
“무슨 일이세요? 저를 다 보자고 하시고.”
“어서 와. 이리 앉아.”
상품본부장은 웃으며 지혁을 맞이했다. 얼굴에 비굴함이 가득했다.
“식사는 맛있게 했어?”
“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지혁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말했다.
“1시 반에서 2시 사이에 온다고 했잖아요. 2시에 왔으니 늦지는 않은 것 같은데.”
“하하. 그렇네~ 늦지는 않았네. 내가 자네를 너무 기다렸나 봐.”
지혁이 상품본부장을 대면하는 건 엘리베이터, 그리고 ‘다운점퍼 사고’ 이후 세 번째다.
‘아주 태도가 확 달라졌군.’
지혁은 그 이유를 짐작하기에, 피식 웃었다.
“왜 부르셨어요?”
“자네, 이번에 큰일을 했더군. 정말 대단해. 내가 치하하고 싶어서 불렀네.”
지금은 왜 자신을 기만하고, ‘홍썬라인’을 진행했냐고 따질 타이밍이 아니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며, 압도적인 결과까지 만들었으니까.
“감사합니다. 전 상품본부장님이 이렇게 마음이 넓으신 분인 줄 몰랐네요.”
비꼬는 거였다. 상품본부장은 불쾌함에 미간이 꿈틀거렸으나, 참았다.
“자네 말이야. 나와 함께 할 생각 없나?”
“갑자기?”
“뭐?”
지혁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너무 놀라서 저도 모르게, 말이 짧게 나왔네요. 저 싫어하시는 거 아니었어요?”
상품본부장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싫어하다니~ 내 사람을 왜 싫어하나? 우린 상품본부 한 가족인데.”
“······.”
“난 자네를 싫어한 적이 없어.”
지혁은 고개를 저으며 감탄했다.
“와······ 참 대단하십니다.”
“······.”
“카멜레온이 따로 없네. 이런 건 좀 배워야 하는데. 진심이에요.”
지혁은 고개를 저으며 박수까지 쳤고.
상품본부장은 황당한 얼굴로 이런 지혁을 바라봤다.
‘난 이래서 또라이가 싫어. 도대체가 행동을 종잡을 수가 없어.’
그래도 억지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지혁은 그런 상품본부장을 보며 생각했다.
‘궁지에 몰렸군.’
경험상, 궁지에 몰린 쥐는 물지 않는다.
그냥 갖고 놀면 되는 거였다.
“원하는 게 있으면 그냥 까놓고 얘기를 하세요. 갑자기 불러서 함께 하자느니, 이상한 소리 마시고.”
“······.”
꿀꺽.
상품본부장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지혁을 바라보았고.
지혁은 천천히 다시 한번 말했다.
“뭘 원하세요?”
“이번 한 번만 넘어가 주라.”
“······.”
“자네가 이겼어. 그러니까······.”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묵묵히 얘기를 들었다.
“지금까지 비효율적으로 운영했던 조직, 성과 비대칭, 아래 직원들한테 막대했던 것 등 다 쇄신할 테니······ 이번만 넘어가자.”
잠자코 있는 지혁의 모습을 호의적이라고 생각했는지, 상품본부장은 일말의 희망을 갖고 계속 말했다.
지혁은 잠자코 그의 자아비판을 다 듣다가.
“본부장님의 진심은 알겠어요.”
“그래, 오 팀장. 이번만 넘어가 주면 내가······.”
상품본부장의 얼굴이 환해지려는데.
“근데, 어쩌죠. 난 싫은데.”
“어?”
“난 정의의 사도가 아니에요. 목적에 따라 움직일 뿐이에요.”
“······.”
“그리고 얘기 듣고 나니 더 싫어지네요. 왜 조직 운영을 그렇게 했을까.”
상품본부장은 눈을 부릅떴다.
‘이럴 거면 고개는 왜 끄덕인 거야? 이 자식이······ 날 갖고 논 건가.’
지혁의 입가에 지어진 옅은 미소.
상품본부장은 방금 들었던 의구심에 확신이 들었다.
더 비굴하게 나가야 할지, 아니면 포기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지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머지 얘기는 대표님 앞에서 하시죠. 먼저 갈게요. 더 추한 모습 보기 싫어서.”
상품본부장이 말릴 새도 없이, 지혁은 나가버렸다.
***
오후 4시.
대표이사실.
CHO, 홍보실장, 상품본부장, 영업본부장, 유 실장, 지혁이 모였고.
대표이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현재 언론사 4곳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다고 하는데.”
아침과 상황이 또 달라졌다.
‘홍썬라인’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상품 자체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에 더해 홍썬이 너튜브에서 집중 홍보를 하고 있으니······.
‘판매 커미션’의 계약조건은 홍썬의 눈에 불을 켜게 했다.
“오 팀장이 언론사 인터뷰를 해야 해.”
“네.”
“영업본부장 말로는 이 일이 히스토리가 있다고 하던데. 인터뷰 나가기 전에 내가 좀 확인을 했으면 해서 보자고 했네.”
지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 팀장이 설명을 좀 해주겠나?”
지혁은 상품본부장을 바라봤다.
“왜 상품본부장은 디자인실의 무능함을 모른 척했을까요. 그것도 3년이나.”
“······.”
“침몰하고 있는 게 뻔히 보이는데 다들 보고도 못 본척했고요. 전 저희 팀이 살아남을 길을 외부에서 찾았습니다. 지금 결과가 과정을 입증하고 있고요.”
대표이사는 눈살을 찌푸렸고.
“침몰하는 배라고?”
“네.”
“자세히 좀 설명해보게.”
지혁은 상품본부장을 바라보았고.
그는 꽉 쥔 주먹을 덜덜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