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67화 (67/301)

67. 인터뷰

지혁은 방송사 정문 앞에 서서 중얼거렸디.

“참나······ 내가 TV에 나오다니.”

웬만한 일에는 눈도 깜짝 않지만, TV출연은 좀 달랐다.

정문으로 들어가서, 바로 안내데스크로 찾아갔다.

“오늘 인터뷰하러 온 선도물산 오지혁이라고 해요.”

“아, 네 안녕하세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직원이 바로 어딘가로 전화를 했고.

잠시 후, 포니테일 헤어스타일에 안경을 쓴 남자가 내려왔다.

“오지혁씨 되세요?”

“네, 맞습니다.”

그는 바로 지혁에게 악수를 청하며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전 김진수 피디라고 합니다. 늦지 않게 오셨네요.”

지혁은 ‘TV고려 뉴스 10’에 초대받았다.

평일 오전 10시에 하는 뉴스 프로인데, 주로 경제와 생활에 관련된 이야기를 다룬다.

“네, 늦지는 않았죠.”

TV고려에서 가급적이면 9시. 늦어도 9시 30분까지는 도착해달라 했는데, 정확하게 9시 30분에 도착했다.

“어서 올라가시죠. 서둘러야겠습니다.”

“네.”

스튜디오에 도착하니, 여성 앵커가 중앙에 앉아 있었다.

지혁이 가까이 다가가자, 앵커는 피디에게 물었다.

“누구세요? 오늘 회사원 인터뷰라고 하지 않았어요?”

날카로운 얼굴에, 날렵하며 탄탄한 체격.

앵커는 지혁을 처음 보고, 개성파 액션 배우로 생각했다.

“이분이세요. 홍썬라인 기획하신 분.”

“어머!”

앵커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혁에게 악수를 청했다.

“너무 반가워요~ 저 스타덕 정말 좋아해요.”

“감사합니다.”

“이번에 홍썬과 함께 대박 내셨던데. 옷 사고 싶은데~ 매장에 다 팔리고 없어서 결국 못 샀어요.”

“······.”

“너무 갖고 싶은데······.”

앵커는 살짝 눈을 흘기며 말했다.

샘플 하나 챙겨주길 바라는 눈치를 보낸거였으나.

지혁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틀 뒤에 입고돼요.”

“······.”

“정오에 입고되니까, 시간 맞춰 가시면 구매하실 수 있을 거예요.”

지혁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고급 정보 드리는 겁니다. 인터뷰 기념으로.”

“······.”

앵커는 황당했다.

‘좀······ 특이한데?’

스튜디오 바깥쪽에서 피디 목소리가 들렸다.

“자리 앉아주시고요. 빨리 들어가서 지혁 씨 메이크업 좀 봐주세요. 15분 뒤에 들어갑니다!”

지혁은 앵커 건너 쪽 자리에 앉았다.

***

[하이~ 큐!]

앵커는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화제의 기업인을 모셨습니다. 작년 7월에 ‘스타덕’과 ‘팍스버거’가 콜라보하여 메가 히트 된 제품 기억하시나요? 신문 기사로도 났었죠? 그 히트상품을 만드신 분이 반년 만에 또 사고를 쳤습니다. 이러면 도저히 안 모실 수가 없죠. 스타덕 상품기획팀의 오지혁 팀장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카메라 앵글에 지혁의 모습이 잡혔고, 지혁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도물산 스타덕 상품기획팀의 오지혁이라고 합니다.”

“네~ 반갑습니다. 전 팀장님이라고 하셔서 못해도 40대는 넘었을 거로 생각했는데······ 실례지만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29입니다.”

“와······ 정말 대단하네요. ‘선도’는 우리나라 최고의 대기업 그룹인데, 조직 분위기가 꽤 수평적인가 봐요?”

“네, 우리 회사는 능력만 되면 그에 합당한 직급과 직책을 줍니다.”

“그렇군요~ 그러니까, 29세 팀장님이 있는 거겠죠. 호호. 정말 멋진 회사네요.”

“네, 우리 회사 좋습니다.”

앵커는 웃으며 말했다.

“연이어 이런 히트 제품을 만든 비결이 궁금한데요. 알려주실 수 있나요? 아, 혹시 회사 기밀이라면,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기밀일 게 없습니다.”

지혁은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말씀드리는 건 어렵지 않은데, 너무 뻔한 얘기라고 생각하실까봐요. 근데, 이게 사실이라서······.”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답은 고객에게 있습니다.”

“······.”

“제품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철저하게 구매할 사람 입장에서 비즈니스를 한다면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앵커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렇네요. 고객의 마음을 잘 안다면 성공할 수밖에 없겠죠. 근데, 그걸 알기가 어려운 게 아닐까요?”

지혁은 카메라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특별한 게 아닙니다. 고객에게 물어보고, 관찰하면 되거든요. 더 쉽게 말씀드리자면, 그런 소스는 도처에 널려있어요. 자세히 보고 줍기만 하면 되는데, 그걸 안 하는 겁니다.”

“아······.”

지혁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이건 특별함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입니다.”

“의지의 문제라······ 호호. 말씀하시는 게 흥미롭군요. 예를 들어, 주실 수 있을까요?”

“그 세계에서······.”

“그 세계?”

지혁은 황급히 말을 취소했다.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생방송이라 지혁도 긴장이 되어 실수할 뻔했다.

‘이해도 못 할 말을 할 뻔했네.’

“예시로, 이번 홍썬라인을 기획하게 된 배경을 말씀드리죠.”

“어머, 좋습니다. 흥미로운데요.”

“애견인구 1,500만 명 시대며, 최근 너튜브 안 하는 사람은 없죠······.”

지혁은 가감 없이 홍썬라인 기획 배경을 설명해 갔다. 숨기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

선도생명 사장실.

굽 높은 빨간색 하이힐에, 베이지색 미디스커트 차림의 중년여성.

선도그룹 오종건 회장의 둘째이자, 장녀인 오혜진 사장이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지혁의 인터뷰를 지켜보고 있었다.

“저 친구 참 솔직하네요.”

그녀의 맞은편에 앉은 남자가 대답했는데.

“네, 원래 솔직하고 거침이 없습니다.”

선도물산 영업본부장 한 상무였다.

전 상품본부장인 송 상무의 인사발령이 난 이후, 일련의 상황을 보고 하기 위해 그녀를 찾아왔다.

“날카로운 칼이 될 거라고 하더니······ 역시 한 상무님 눈은 틀리지 않네요.”

“과찬이십니다.”

[디자인이라든지, 제품 설계는 누가 한 건가요? 홍썬님이 많이 관여했다고 알고 있는데. 그분은 컨셉만 주신 건가요?]

[그건 다 같이 했습니다. 제품이 만들어지는데, 특정인이 다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지혁은 선도물산 대표이사와의 약속을 지켰다.

민감한 질문이었으나, 원론적인 답변으로 잘 피해갔다.

“거친 듯하면서도 센스가 있네요.”

“경험이 많다고 해야 할까요.”

“경험?”

“네, 통찰력이라는 말이 더 알맞을 것 같습니다. 젊은 사람이지만, 본질을 꿰뚫는 시야가 대단합니다.”

“통찰력이라······ 겨우 29세가 말이죠?”

이 말에 영업본부장은 흠칫 놀랐다.

“오 팀장 나이를 아십니까?”

“제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겠어요?”

그리고 오 사장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것 말고도 저 친구 흥미로운 점이 많던데.”

“······.”

오 사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핸드폰을 켜서 캘린더를 본 후 말했다.

“자리 한번 만들어 주세요.”

“네? 직접 만나시려고요?”

오 사장은 웬만해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오너일가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다.

“네, 앞으로도 유용한 쓸모가 있을 것 같은데.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네요.”

“······.”

영업본부장은 오 사장의 적극적인 태도에 적잖이 놀랐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자리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로 할까요?”

“말 나온 김에 빨리 봤으면 하는데. 내일 저녁 어떨까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 사장님.”

“네?”

“한 가지 부탁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요?”

영업본부장은 송 상무의 빈자리를 유 실장에게 주기로 한 약속을 얘기했다.

“아······ 그런 약속을 하셨었구나.”

“어쩔 수 없었습니다.”

오 사장은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일단 자리에는 앉혀주면 되는 거잖아요.”

“네?”

“기간까지 약속한 건 아니죠?”

“네······ 거기까진······.”

“그럼 됐어요.”

***

‘TV고려’ 스튜디오.

벌써 20분 가까이 지났다.

기본과 상식에 대한 이야기.

특별한 얘기를 하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 귀를 사로잡았다.

“와~ 오 팀장님 얘기를 듣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네요.”

“네,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끊으시는 게. 이제, 그만 좀 물어보시고요.”

“······.”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니, 긴장이 풀렸다.

장소가 바뀌고 생방송이라고 해서 지혁의 성격이 바뀌는 건 아니었으니까.

거침없는 말에 앵커는 당황했지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인터뷰를 마치려 했다.

“호호. 말씀을 참 재밌게 하시네요.”

“······.”

“마지막으로 시청자 여러분께 끝인사 부탁 드립니다. 뭐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면 하셔도 되고요.”

지혁은 잠시 카메라를 바라보다가, 앵커에게 물었다.

“전국에 방송되는 거죠?”

“네, 물론이죠.”

지혁은 미간을 찌푸리고 고민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래는 모르는 일입니다.”

앵커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갑자기 웬 미래?’

“좋은 일이 있을 수도 있고, 나쁜 일이 있을 수도 있죠.”

“······.”

“그러니까, 당장 내일 죽어도 아쉽지 않도록 인생을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일이든 놀이든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요.”

일상적인 얘기지만, 어딘가 의미심장했다.

“그리고 운동 열심히 하세요. 특히, 호신술과 함께 간단한 무기 하나 정도는 다룰 수 있게 배워 두시길 추천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

앵커는 갑자기 비장해진 분위기에 할 말을 잃었고.

피디가 빨리 진행하라고 손짓하는 걸 보고, 급하게 마무리 지었다.

“이상 인터뷰 마칩니다. 오지혁 팀장님 감사합니다. 다음 뉴스 전해 드립니다······.”

***

다음날.

8시 55분. 출근 시간.

지혁이 선도물산 로비에 도착한 순간.

누가 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로비에 있던 많은 인파가 정문에서 게이트까지 갈라졌다.

지혁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갔고.

사람들은 그를 신기한 듯 바라봤다.

-오 팀장님이다.

-어제 TV에 나온 거 봤어?

-근무시간이라 못 봤지. 얘기만 들었어.

-난 너튜브로 나중에 봤는데.

-저 사람은······ 그냥 난 사람이야.

회사는 소문이 빠르다.

상품본부장이 경질된 ‘인사명령’은 전체 메일로 보내졌고.

그 일에 대한 속사정도 알게모르게 선도물산 전체로 급속하게 퍼졌다.

‘팀장이 본부장을 보내버린 일.’

지혁은 이제 더는 평범한 직원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분위기에서 어색해하기 마련인데.

‘뭘 이렇게 쳐다봐. 거슬리게.’

지혁은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너무나 당당했고, 그래서 사람들의 이목을 더 강렬하게 끌었다.

사무실 도착.

지혁은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정진부터 찾았다.

“정진! 현황보고.”

그는 암기하듯 말했다.

“오늘 아침에 2차 입고 완료했습니다. 내일 정오까지는 전 매장 분배되는데 이상 없는 거로, 영업부와 확인 했습니다.”

지혁은 윤 차장을 바라봤다.

“리오더는 어떻게 돼가나요?”

“스케줄 이상 없어. 요즘 황 대리가 일을 아주 잘해주고 있어.”

지혁은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앉을 새도 없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했고, 상품본부장 관련 사후정리 등 신경 써야 할 게 많았다.

위이잉-

진동음에 핸드폰을 확인했다.

‘영업본부장’

'어? 아침부터 웬일이시지.'

곧 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오지혁입니다.”

지혁은 잠자코 듣다가.

이내 곧 심각해진 표정으로 되물었다.

“오늘 저녁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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