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70화 (70/301)

70. 나의 이름은 (1)

출근길.

지혁의 얼굴이 푸석했다.

며칠 전 오 사장을 만난 이후, 잠을 편히 못 자고 있었다.

‘이름에 대해서 아버지께 여쭤봤어?’

오 사장과 했던 대화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런 생각조차 안 하고 살았었지.’

이상하게도 지혁 부모님은 가족과 뿌리에 대한 얘기는 전혀 하지 않았었다.

어차피 외동아들인 데다가, 친척도 없으니 지혁 또한 관심 가질 이유가 없었다.

본관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희귀한 성씨라는 것. 이름이 돌림 자 등 혈연에 관한 것은 회사에 복직한 후에 알게 되었다.

지혁은 오 사장과 헤어진 후 오 씨 종친회에도 연락해 보았다.

지혁의 아버지 이름은 ‘오종원’이다. 선도그룹 오종건 회장과 돌림자 ‘종’자가 같다.

‘오종원 님 이름은 있으나, 직계존속 관계가 지워져 있네요.’

‘이유가 뭡니까?’

‘글쎄요. 그건 저희도 알 수가 없죠.’

‘요청한 사람은요?’

‘그것도 기록에 없습니다. 근데, 통상 본인이 직접 요청하지 않는 한 그런 조치는 안 해 드립니다.’

‘그럼 아버지가 직접······.’

‘그럴 가능성이 높죠. 근데, 확실하진 않아요.’

지혁은 의구심이 생기면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다.

의구심이란 건 결국 빙산의 일각인 경우가 많았으며.

‘그 세계’에서 이럴 때 적당히 넘어갔다가, 뒤통수 맞은 경우를 몇 차례 겪었었다.

[이번 역은 강남. 강남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어느덧 강남역에 도착했다.

‘역시······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만약 뭔가 있다면.

정말 만에 하나 뭔가 있다면, 어머니가 모를 리 없다.

어머니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한층 더 강하게 들었다.

과거 얘기, 특히 아버지 얘기는 어머니에게 상처가 될 수 있기에 말 꺼내기가 불편했지만.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일일지도 몰라. 피하지 말자.’

어려운 얘기를 꺼낸다는 것.

자신이 알지 못했던 과거와 맞닥뜨린다는 것.

지혁에게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기를. 그저 의구심으로 끝나고 지금과 같기를 바라지만.

어쨌든, 직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른 척해서는 안 되는 일이야.'

지혁은 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수아야, 이번 주말에 어머니 댁에 가자.]

***

8시 55분.

지혁이 사무실에 들어서자, 상품기획 1팀은 일제히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정진이 큰 소리로 인사했다.

“팀장님! 안녕하십니까!”

“어~ 안녕.”

“홍썬라인 상황 보고 드립니다. 어제 매출액은······.”

손정진은 지혁이 시키지 않아도, 아침마다 상황 보고를 한다.

지혁은 책상에 가방을 올려놓으며 유심히 들었다.

“이상! 보고 마칩니다!”

“그래~ 수고했어. 이제 긴급한 시기는 지났으니까, 상황 보고 안 해도 돼.”

지혁은 손정진을 배려해서 한 말이었는데.

“······.”

손정진은 대답하지 않고, 미묘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왜? 할 말 있어?”

“계속하면 안 되겠습니까?”

“뭐?”

“이런 거라도 해서 팀장님께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지혁은 앉은 상태에서 손정진을 멍하니 바라봤다.

‘눈빛이 좀 부담스러운데.’

지혁이 먼저 시선을 피했다.

먼저 시선을 거두는 건 지혁에게는 웬만해선 잘 없는 일이었다.

“어······ 그래. 알았어. 너 불편할까 봐 그랬지. 하고 싶은 대로 해.”

“하나도 안 불편합니다! 원하시면 점심시간과 퇴근 전에도 한 번 더 보고 드릴 수 있습니다!”

“아니야······ 한 번만 하자.”

지혁은 대화를 맺고 싶었다.

“어서 자리로 돌아가. 수고했어.”

“네! 팀장님!”

지혁은 고개를 갸웃했고.

옆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누군가 음성으로 노크 소리를 내었고.

사무실 입구를 가장 먼저 본 정 과장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안녕하십니까!”

영업본부장 한원철 상무.

곧 전무가 될 거라는 소문이 자자했으며, 직원 중에 그 소식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전쟁의 결과였다.

상품본부장이었던 송 상무가 내려가고, 영업본부장이었던 한 상무가 올라가는 것.

승자와 패자에 따른 결과.

이걸로, 이 일의 전말은 이제 모든 직원이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 좋은 아침이야.”

영업본부장의 등장에 상품기획팀 전원이 일어나서,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단 한 명.

지혁만은 그러지 않았다.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영업본부장에게 다가갔다.

“아침부터 웬일이세요?”

곧 있으면 전무가 될 사람이 사무실을 직접 찾아왔는데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영업본부장 또한 지혁의 이런 태도를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오 팀장이랑 차 한잔하려고 왔지. 나눌 얘기도 있고.”

“무슨 얘기요?”

영업본부장은 뒤에 직원들을 눈치로 가리킨 후 말했다.

“어떻게 할지, 상의해야지.”

“아······.”

논공행상을 의논하려고 온 것이다.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좀 빠르지 않아요?”

“뭐······ 더 두고 볼 거 있나?”

홍썬라인은 이미 초대박이었고.

천지가 개벽하지 않는 한, 결과가 어떨지는 눈에 훤했다.

영업본부장은 목소리를 낮추고 지혁에게만 들리게 말했다.

“승진 철 얼마 안 남았어. 그리고 윤 차장 거취는 빨리 결정해야지. 그 정도 직급은 자리 만들기 어려워.”

지혁은 곁눈질로 윤 차장을 슬쩍 보았다.

“왜? 마음 바뀌었어?”

영업본부장이 묻자, 지혁은 자리를 이동하며 말했다.

“나가시죠.”

영업본부장은 지혁을 뒤따라 사무실을 나가려다가, 뒤돌아서 말했다.

“상품기획 1팀! 정말 고맙네. 영업부에서 모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 하하.”

-아닙니다!

-저희가 고맙습니다!

-영업부 아니었으면 이렇게 못 했습니다!

분위기가 아주 훈훈했다.

“조만간 자리 한번 만들게. 수고~”

그리고 영업본부장은 지혁의 뒤를 재빨리 따라갔다.

정 과장은 두 사람이 사라진 곳을 멍하니 보다가 중얼거렸다.

“지혁이가······ 이제 노는 물이 다르네.”

옆에서 잠자코 있던 윤 차장이 한마디 했다.

“이제 그렇게 이름 부르지 마라. 큰일 난다.”

“······.”

정 과장은 침을 꿀꺽 삼켰다.

***

차로 5분 거리의 카페.

영업본부장을 처음 만났었던 곳에 왔다.

“뭐 굳이 이렇게까지.”

카페에 들어오면서 영업본부장이 말했는데, 지혁이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상 주는 일만큼은 조심해야죠. 결정되기 전에 알려지면 난감해질 수 있잖아요.”

영업본부장은 자리에 앉았고,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하여간, 자네 행동하는 거 보면······ 젊은 사람 같지 않단 말이야.”

“저 아직 이십 대인데.”

“나중에 얘기 좀 해줘 봐. 자네 청년 시절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해. 우리 아들 키울 때 참고하게.”

지혁은 이 말에 그냥 웃고 말았다.

‘그 세계’에서 지혁이 지낸 얘기를 들으면, 그 말이 쏙 들어갈 것이다. 경험 쌓게 한다고 아들이 목숨 걸게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럼,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허허. 하여간 오 팀장. 성격 참 급해.”

아직 주문한 차도 나오지 않았지만, 지혁은 중요한 얘기를 빨리 끝내고 싶었다.

“일단 자네 생각을 말해보게. 웬만하면 뜻대로 할 테니까.”

“······.”

“그러니까, 너무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거절하지 않도록.”

지혁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무리한 요구 안 해요.”

“······.”

“회사 기네스 매출을 기록하고 있고, 그에 합당한 요구를 할 거니까요.”

“그래, 일단 말해 봐.”

“상품기획 1팀 팀원, 그리고 파견근무자까지.”

지혁은 눈도 깜빡 않고 말했다.

“모두 특진시켜주세요.”

“뭐? 그 많은 인원을 다?”

영업본부장은 황당해서 눈을 끔뻑였다.

“네.”

“자, 잠깐.”

한, 두 명 특진시키는 것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근데 지금, 지혁이 요구한 수준은······.

“아니, 나도 주요 담당자는 특진시켜야 한다고 생각은 했네. 하지만 전원은 아니지.”

“왜요? 저희는 팀으로 움직였는데.”

영업본부장은 차분히 설명했다.

“이봐, 형평성을 생각해야지. 아무리 팀으로 움직였다고 하지만, 팀원 전체가 동등한 성과를 받는다면, 더 수고한 사람은 기분이 어떻겠나?”

“······.”

“경중을 나눠야지. 그리고 특진은 우리 회사에 잘 없기 때문에, 지금 상품기획팀이 받는 결과가 선례가 되는 거야. 그래서 더 신중해야 하는 거고.”

그리고 영업본부장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머지않아, 자네는 이 자리에 올 사람이잖아. 아무리 내 사람이라도 주변 신경을 쓰면서 챙겨야 해. 내 사람이 남이 되고, 남이 내 사람 되는 거······ 조직에선 아주 흔한 일이니까.”

지혁은 잠시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는 말씀이네요. 따르겠습니다.”

“고맙네.”

지혁은 메모지에 팀원들 이름을 적어놓고, 한 명씩 가리키며 말했다.

아무리 외부에 독립된 공간이라도 이름은 거론하지 않으려 했다.

“그럼, 이렇게, 이렇게 특진시켰으면 합니다. 이번 일에 주 담당자였으니까. 이건 누가 봐도 이견이 없을 것 같은데요.”

영업본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근데, 이 사람은 좀 그렇지 않아?”

그는 한쪽을 가리키며 물었고, 지혁이 곧바로 대답했다.

“이번 일에 영향력은 적었으나, 팍스버거 리오더를 맡아서 잘 마무리 지었습니다. 정기 승진 시기도 되었고, 충분히 자격 있다고 봐요.”

“흠······ 그래. 특진은 이렇게 정리하고.”

영업본부장은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친구는 이번엔 그냥 넘어가자. 팀 포상을 따로 받잖아. 그걸로 충분해.”

“······.”

“솔직히 한 일도 적었고. 난 존재감을 못 느꼈어. 자네한테는 어떨지 모르지만.”

지혁은 입술을 깨물고, 잠시 생각했고.

“이봐, 내가 하나 양보했으면, 자네도 좀 놓는 게 있어야지. 사람이 참······.”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영업본부장은 다짐을 받듯 물었다.

“그럼 이렇게 정리한 거다? 내가 인사실장이랑 얘기할 테니까.”

“네.”

그리고 지혁은 이름을 적어놓은 메모지를 아주 잘게 찢었다.

“본부장님, 그리고 윤 차장 이동 건은······.”

“알았어. 일전에 자네가 요구한 대로 할 테니까, 그건 염려하지 마. 나도 수긍하는 부분이고.”

“네, 고맙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얘기해주는 건데, 발령 내기 전에는 따로 불러서 설명을 해줘야 하네. 그건 아랫사람에게도 지켜야 할 예의야.”

“네.”

***

주말이 되어, 오랜만에 용인 어머니 집에 왔다.

주차하는 동안, 어머니는 차 소리를 듣고 이미 집 밖으로 나와 계셨다.

“아이고~ 왔어?!”

반가움에 어머니의 목소리가 한껏 고조되어 있었다.

“어떻게 알고 나오셨어요~ 어머님~”

수아가 차에서 내리며 인사하자, 어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좀 큰 차를 끌고 다녀야지. 이 조용한 동네에 캠핑카가 들어오는데, 모를 수가 있니? 호호.”

어머니는 캠핑카를 볼 때마다 웃으신다.

“어머니, 별일 없으셨죠.”

“그래~ 어서 오렴.”

어머니는 평소처럼 따뜻한 미소로 지혁을 맞았으나.

두근. 두근.

지혁은 회사에서 중요한 일을 앞두었을 때보다도, 지금이 더 긴장되는 기분이었다.

“어서 들어가자~ 배고프지?”

지혁은 어머니의 뒤를 따라 들어가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필요한 일은 해야 하는 거야. 피하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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