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나의 이름은 (2)
“어서들 앉아라. 배고프지?”
평소 지혁이 좋아하는 김치찌개와 밑반찬들이 식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어머니~ 냄새만 맡아도 너무 맛있어요~”
수아도 지혁 못지않게 어머니 음식을 좋아하기에 신나서 말했고, 우리는 곧바로 식사를 시작했다.
어머니가 물었다.
“근데, 갑자기 웬일들이야? 왔다 간 지도 얼마 안 됐잖아? 나야 뭐, 너희들 자주 오면 좋지만~”
어머니의 물음에 수아가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서방님이 이번 주말에 어머니 댁 가야 한다고, 주초부터 얘기하더라고요~”
“그래? 지혁이가 웬일이냐?”
지혁은 정확히 한 달에 한 번 어머니 댁에 오고 있다.
“아주 그냥, 일수 찍듯이 딱딱 날 맞춰서 오는 애가?”
수아가 옆에서 키득대며 웃었고.
지혁은 멋쩍은 미소로 답했다.
“어머니, 가끔 봐야 더 반가운 법이에요.”
“난 매일 봐도 반갑거든~”
어머니가 눈 흘기며 말하자, 지혁은 장난스럽게 콧잔등을 찡그리며 말했다.
“요즘 따라 어머니가 많이 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왔어요.”
“어머.”
어머니는 놀라서 수아를 바라봤다.
“얘 뭐래니?”
수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게요. 나한테도 안 쓰는 말을······.”
‘보고 싶었다.’
지혁과는 좀 안 어울리는 말이었다.
장난스럽게 한 말이었는데, 말을 뱉고 나서 아차 싶었다.
“실종되기 전에도 이런 말은 안 썼거든.”
“그러니까요. 어디서 배웠대? 수상한데?”
두 여자는 추궁하듯 장난을 쳤고.
지혁은 후회했다.
‘아······ 괜한 말을 했다. 대화만 했다 하면 항상 말리는 기분이야.’
“하하. 배우긴~ 앞으로 부드러운 말 좀 써보려고.”
난감해하는 지혁은 보며, 두 여자는 깔깔대며 웃었고.
지혁도 빙그레 웃었다.
그렇게 따뜻한 저녁 식사 시간을 보내고······.
“얘들아~ 굿나잇~”
“어머니, 안녕히 주무세요~”
각자의 침실로 들어갔다.
수아가 지혁의 옆구리를 파고들며 말했다.
“어머니 집에 오면 참 포근해.”
수아가 잠자리에 들자마자 이렇게 달라붙으면, 은근한 신호를 보내는 거였다.
하지만, 오늘 어머니와 나눌 중요한 얘기가 있었기에, 지혁은 혈기를 눌러야 했다.
‘수아가 잠들고 나면······.’
오래지 않아, 수아의 고른 숨소리가 들렸고.
지혁은 그녀가 확실히 잠들었는지 확인한 후,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머니가 계신 안방 앞으로 갔다.
후우-
막상 어머니와 얘기할 생각을 하니······ 긴장이 되었다.
‘난···... 준비가 된 걸까?’
과거와 맞설 준비.
사실, 모르고 살아도 그만이다.
약간 망설였으나,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도, 가야지.’
지혁은 천천히 손을 들어, 방문을 두드렸다.
***
똑똑.
“음? 누구니?”
잠자리에든지 얼마 안 된 시각이라, 어머니는 아직 잠들지 않았다.
[지혁이에요. 들어가도 돼요?]
“어, 들어오렴.”
덜컹.
지혁은 안방으로 들어왔다.
잘 자라고 인사까지 나눴는데, 밤중에 갑자기 찾아오니 어머니는 놀랐다.
“웬일이니? 혹시, 어디 안 좋은 거 아니지?”
얼마 전까지 죽을병을 앓았던 아들이다.
평소 하지 않던 행동에, 어머니는 걱정하는 마음부터 앞섰다.
그런 어머니를 안심시키려고 지혁은 웃으며 말했다.
“저 괜찮아요.”
“근데, 왜? 뭐 필요한 거 있어?”
용건이 있는 지를 먼저 묻는 어머니를 보며, 지혁은 좀 반성이 되었다.
그동안 지혁이 어머니께 다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머니와 너무 대화를 안 했었나 보다.’
죄송스러운 마음에 지혁은 더 공손히 얘기했다.
“어머니와 대화 좀 나누고 싶어서요.”
“대화? 이 밤중에?”
어머니는 지혁을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곧바로 지혁의 태도와 분위기에서 느꼈다.
‘얘가 뭔가 중요한 할 말이 있구나.’
“지금 해야 하는 거니?”
“네.”
어머니는 일어나서 방에 불을 켰다.
“그래, 뭔데? 얘기해봐라.”
“······.”
지혁은 막상 말하려니, 어떻게 얘기를 꺼낼지 고민됐다.
어머니한테 기만전술을 쓸수는 없으며, 놀라게 해서 불게 하는 기술을 쓸수도 없다.
그답지 않게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머니.”
“응?”
“지혁······ 진짜 제 이름이 맞아요?”
어머니는 놀라서 지혁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건 분명히 황당함에서 나오는 표정이 아니었다.
이 단순한 질문에.
어머니는 손이 떨리고, 입술을 떨었다.
지혁은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니?”
어머니 댁에 오기 전에 다짐했던 대로.
지혁은 피하지 않았다.
“진실을 알고 싶어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
“우리 가족······ 오종건 회장과 관계가 있나요?”
.
.
.
.
어머니는 고개를 숙이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고.
지혁은 기다렸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입을 열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고개 숙이고 있던 어머니가 물었다.
“너······ 어디서 무슨 말을 들은 거니?”
“들은 거 없어요.”
“······.”
“최근 회사에서 제 성씨와 관련하여 주변 흐름이 좀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느꼈어요.”
지혁은 어머니를 향해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알고 있는 사실도 없고, 들은 것도 없어요.”
“······.”
“어머니께서 지금부터 해 주시는 말씀이 제겐 유일한 사실이자, 진실일 뿐이에요. 이 일에 대해서 제가 확인할 수 있는 분은 어머니밖에 없으니까요.”
“······.”
“사실을 말씀하시든, 왜곡하여 말씀하시든 전 믿을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어머니는 한숨을 쉬고 대답했다.
“너 참 잔인하게 말하는구나. 왜 이렇게 엄마한테 부담을 주니?”
“죄송해요. 하지만, 그게 사실이니까요.”
어머니는 다시 침묵했고.
뭔가 망설이는 듯 입술만 달싹였다.
지혁은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한마디 더 했다.
“어떠한 사실이든 전 지금처럼 회사계속 다닐거고. 어머니께 걱정 끼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지혁은 이제 기다렸다.
이제 어머니가 하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그녀가 어떤 말을 하든.
지혁은 믿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아니라고 말씀하시면, 그냥 그걸로 끝내는 거야.’
다른 데서 확인할 곳도 없다. 그냥 어머니의 말이 진실이다.
한편으로는 어머니가 전혀 관계없다고 말해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
어머니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선도그룹에 입사 한다고 했을 때부터 혹여 이런 날이 올까봐 조마조마 했는데······.”
그리고 어머니의 입에서 놀라운 말이 흘러나왔다.
“오종건 아주버님과 관계가 있다.”
***
지혁은 눈을 부릅떴다.
‘설마 했는데······.’
방금 귀로 분명히 들었지만, 믿기지 않았다.
몸이 떨렸다.
세상이 바뀐 것도, 자신에게 달라진 것도 없다.
그저, 몰랐던 사실을 알았을 뿐인데.
약간 가능성 있던 일을 확인했을 뿐인데.
충격이 컸다.
지혁은 정신줄을 부여잡고 물었다.
“아주버님이라고 하시면······.”
“맞아. 네 큰 아버지야.”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해도 믿겠다고 했는데.
막상, 말을 듣고 나니 쉽게 믿기지 않았다.
“정말, 오종건 회장이 제 큰 아버지라고요?”
“······그래.”
어머니는 다시 한번 확실히 정리했다.
“그러니까. 선도그룹 창시자, 오성근 선대회장이······ 네 친할아버지란다.”
꿀꺽.
지혁은 마른 침을 삼켰다.
이걸 사실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몇 가지 이해 안 되는 게 있었다.
“아버지와 오 회장님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데······.”
아버지가 만약 지금 생존해 계신다면 64세인데, 오종건 회장은 80에 가까운 고령으로 알고 있다.
어머니는 불편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머니가 달라.”
“아······.”
배다른 형제라는 뜻이다.
어머니는 부연 설명을 했다.
“불륜 같은 건 아니야. 할아버지가 혼자이실 때 결혼하셨으니까. 정식으로 결혼식도 하셨고.”
“그럼 사별을 하셔서······.”
“아니, 이혼.”
“······.”
친할머니 얘기를 하자, 어머니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친할머니 참 좋은 분이셨어. 배다른 자식들이라고 해서 차별하지 않았고, 정성 들여 키웠어. 엄마한테도 참 잘해주셨었고.”
“······.”
“하지만 시아버님 돌아가시고 나서, 모든 게 다 바뀌었지.”
어머니는 분노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리 낳아주신 어머니가 아니더라도, 키워준 정이 있는데. 아버지 돌아가셨다고 하루 아침에······.”
얘기하는 중에 한숨을 몇번을 쉬었다.
“게다가 분쟁의 여지 없도록 할머니와 아버지 눈 귀 다 막고 상속 처리를 다 했더구나.”
“······.”
“우리는 쫓겨나다시피 집에서 나오게 되었고, 머지않아 너희 아버지는 몹쓸 병에 걸리고······.”
아버지를 죽음으로 앗아갔던 췌장암을 말하는 거였다.
“할머니는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슬픔 속에 몇년 더 사시다가, 곧 따라가셨지.”
막상 말을 시작하자, 어머니는 숨겨진 가족사를 다 얘기해주었고.
지혁은 듣는 내내 너무 놀라워서 두려운 마음마저 들 정도였다.
상상도 못 했던 과거와 마주한다는 것.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왜? 불편하니? 그만할까?”
하지만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요. 계속해주세요.”
지혁은 오종건 회장에 대해서, 그리고 아버지가 어쩌다가 형제들과 연을 끊고 살 게 되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들었다.
어느덧 시간은 새벽 1시를 넘어갔고.
“얼추 다 얘기한 거 같구나.”
“네······.”
“네가 해달래서 하긴 했는데. 이게 잘한 건지 모르겠구나.”
어머니의 걱정스러운 표정을 보며, 지혁이 말했다.
“어머니, 저 강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는 지혁을 물끄러미 보다가, 마지막 말을 했다.
“네 이름이 뭐냐고 물었었지?”
“······.”
“진혁이였어.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지.”
지혁에게도 ‘진’자 돌림을 쓴 이름이 있었다.
“하지만 네 이름은 ‘지혁’이야. 아버지께서 널 그렇게 부르기로 했으니까.”
지혁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말했다.
“네, 어머니. 말씀해주셔서 고마워요.”
“······.”
“늦었네요. 어서 주무세요.”
지혁은 인사 후, 방을 나갔고.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
어머니 집에서 돌아온 뒤.
주말 내내 지혁은 생각했다.
처음엔 정체성이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과거일 뿐이고, 현실은 똑같으니 별거 없을 거로 생각했는데.
꽤 여파가 컸다.
그동안 믿어왔던 것들이 부정당하고, 그동안 살아오면서 들었던 의구심들이 하나, 둘씩 짜 맞춰지는 기분.
깊숙이 고민 했다.
고민에게서 도망가려 하지 않았다.
고민과의 처절한 싸움 끝에.
간단한 결론을 이끌어냈다.
‘이용한다.’
지혁은 다짐했다.
‘그래, 달라진 건 없어.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한 좋은 무기가 생긴 것뿐이야. 단순하게 생각하자.’
오너일가의 진짜 일원이라는 것.
그걸 이용한다면, 오 부회장에게 가까이 가기 훨씬 수월해진다.
더는 착각이 아니다. 진짜다.
자신의 신분을 확인시킬 방법도 어머니가 알려주었다.
필요할 때에 꺼내면 되는 카드였다.
그리고 상속 문제도 파헤쳐 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작전을 잘 짜보자.’
이렇게 결론을 내고 난 후에는 더 고민하지 않았다.
월요일.
지혁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출근길을 나섰고.
8시 55분. 사무실에 도착했다.
“안녕하십니까!”
손정진의 우렁찬 인사를 들으며, 지혁은 미소지었다.
“얀마, 이제 기합 좀 빼도 돼. 입사한 지 1년 지났잖아.”
“아닙니다!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지혁은 피식 웃고는 윤 차장을 불렀다.
“윤 차장님!”
“응? 왜?”
지혁이 말했다.
“저와 커피 한잔하시죠.”
“커······피?”
이 말에 윤 차장은 긴장이 되었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자고 할 때면, 꼭 특별한 얘기가 나왔었기 때문에.
“왜?”
“뭐 좀 할 얘기가 있어서요.”
윤 차장은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설마, 나 이동시키려는 건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