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72화 (72/301)

72. 보상과 정리 (1)

피식.

지혁은 실소가 절로 나왔다.

‘하여간, 눈치 하나는 기가 막혀.’

지혁은 그 물음에는 답하지 않고 말했다.

“카페 갈래요~ 아니면 옥상 갈래요?”

평소 담배를 많이 태우는 윤 차장을 생각해서 한 말이었다.

“옥상으로 가자.”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래요. 먼저 올라가 계세요. 캔커피 사서 올라갈 테니까.”

잠시 후, 옥상.

윤 차장은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평소에 운동은 해요?”

“숨차서 못해.”

지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거 꼭 해야 해요? 몸에 좋지도 않은 거.”

윤 차장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자기 기준으로 생각하지 마. 난 담배 끊어보려다가, 금단 증상 세게 와서 죽을 뻔했어.”

“······.”

지혁은 그의 말이 이해는 안 갔지만, 그러려니 했다.

딸깍!

지혁은 캔커피를 따서 한 모금 마신 후, 천천히 말했다.

“고생 많았어요.”

“······.”

“홍썬라인 담당해서 잘 마무리 해줬잖아요. 정말 수고 많았어요.”

분명 수고했다고 하는 말인데.

윤 차장은 이런 지혁의 말이 이상하게도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제가 빚 갚을 때가 됐는데.”

예전에, 심 팀장 뒤를 이어 윤 차장을 팀장 시켜주겠다고 제안했다가, 그 말을 철회했었다.

물론 윤 차장의 요청으로 ‘취소한 약속’이 되었지만, 어찌 됐든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마음의 빚이 있었다.

그만큼 약속이란 건 지혁에게 정말 중요했다.

“다음 주에 승진식이 있는데, 윤 차장님은 ‘부장’이 되실 거예요.”

이 말에 윤 차장은 눈을 부릅떴다.

임원 아래로 가장 높은 자리인 ‘부장.’

중간관리직의 최종 보스 격 자리.

통상 부장이 되기 위해선 인맥, 학벌, 근무 평가, 운 등이 따라줘야 한다.

단순히 일 잘한다고 올라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진······짜?”

윤 차장은 좋아서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선도물산에서 부장은 몇 명 되지 않는다. 차장까지는 어느 정도 일 좀 하고 연차가 쌓이면 승진시켜주지만, 부장은 잘 안 달아준다.

그리고 부장부터 연봉 1억 원이 넘는다.

“네. 확정된 거니까 얘기하는 거예요.”

후우- 후우-

윤 차장은 좋아서 숨을 몰아쉬다가, 소리쳤다.

“하하! 대박!”

그는 지혁의 손을 잡고 흥분하여 말했다.

“오 팀장! 진짜 고마워! 나 앞으로 더 열심히 할게!”

“······.”

“와······ 심 팀장 따까리를 그렇게 열심히 해도 난공불락 같던 일이······ 하하!”

윤 차장은 연신 흥분하여 어쩔 줄 몰랐고, 당장이라도 아내와 아이들에게 전화해서 알리고 싶었다.

“승진식 하기 전까지는 참아야겠지?”

윤 차장이 헤벌쭉한 얼굴로 물었고, 지혁이 대답했다.

“당장 얘기해도 상관없어요. 결정되었다니까요.”

윤 차장은 주먹을 불끈 쥐고 계속 좋아하다가.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좋은 얘기를 전하면서.

지혁의 표정이 계속 싸늘하다고 느낀 것이다.

윤 차장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물었다.

“혹시······ 더 할 말이 있는 거야?”

“······.”

지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승진한 후, 다른 팀으로 발령 날 거예요.”

***

윤 차장은 승진 소식 들었을 때보다 더 놀랐다.

“내, 내가? 왜?!”

“······.”

“에이~ 내가 가긴 어딜 가~ 싫어~”

윤 차장은 기쁨과 당혹스러움이 교차한,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난 스타덕 밖에 없어. 내가 이 팀에 몇 년을 있었는데.”

윤 차장은 상품기획 1팀. 즉, 스타덕 상품기획팀에 10년을 넘게 있었다.

팀에서 근무한 기간만 따지면 심 팀장보다도 길다.

스타덕의 역사를 함께 했으며, 그의 회사생활은 곧 스타덕이었다.

“오래 계셨죠. 그러니, 이제 갈 때가 됐죠.”

윤 차장 얼굴에서 미소는 완전히 사라졌고, 당혹스러움만 남았다.

“오 팀장······ 왜 그래. 나 가기 싫어.”

“······.”

“오 팀장······.”

윤 차장은 사정했지만, 지혁은 미동도 없었다.

그의 부장 승진이 결정된 것처럼, 이 또한 이미 결정된 듯 보였다.

“물류나 개발팀으로 가는 거 아니에요.”

“······.”

“상품기획 3팀, 팀장으로 발령 날 거예요.”

“3팀?”

상품기획 3팀은 SPA브랜드를 맡고 있는데, 최근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었다.

SPA 마켓 상황 자체가 좋지 않다.

현재 3팀장도 고생만 엄청나게 하다가, 최근에 경질되었다.

“나보고 불구덩이로 들어가라는 거야?”

윤 차장의 표정이 분노로 바뀌었다.

“이거 누구 생각이야? 유 실장? 아니면 영업본부장?”

“······.”

“아니, 왜 멀쩡히 회사생활 잘 하는 사람을 갖다가······.”

“제가 건의했어요.”

“뭐어?!”

지혁을 바라보는 윤 차장의 동공이 흔들렸다.

“너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

“나한테 왜 그래?! 나 열심히 했잖아!”

지혁은 그런 윤 차장을 감정 없는 눈빛으로 보다가.

“열심히 했고, 성과 내셨죠. 그리고 부장으로 특진했고. 전 도리는 다 했다고 생각해요.”

“······.”

“거기까지예요. 저와 일하는 중에 본인이 한 행동을 돌아보세요. 제가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이 들겠는지.”

윤 차장은 계속 헷갈리게 행동했었다.

그는 지혁을 따라야 하는 위치에 있었지, 견제하는 위치에 있었던 게 아니다.

본분을 망각한 애매한 행동은 결국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

지혁의 핵심을 찌르는 말에 윤 차장은 할 말을 잃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진짜 너무하네. 쓰고 버리겠다는 거야?”

“쓰고 버릴 거면, 상품기획 팀장으로 보내겠어요?”

“······.”

“그냥 때가 되어, 이별하는 거죠.”

.

.

.

.

한동안 두 사람 간에 말이 없었다.

지혁은 윤 차장의 반응을 보고 있었고.

윤 차장은 어떻게든 이 결정을 번복할 수 없을까 궁리하고 있었다.

지금은 팀장 자리에 대한 환상이 사라졌고, 가늘고 길게 일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더군다나, SPA 브랜드 상품기획. 3팀장······ 현재 상품기획 팀장 중에 가장 어려운 자리라고 할 수 있다.

“받아들이세요. 회사를 나가지 않는 한, 이 결정은 번복되지 않을 거예요. 인사명령이니까.”

“······.”

“그리고 제가 평소 윤 차장님께 궁금했던 게 있는데.”

지혁은 윤 차장을 똑바로 보고 물었다.

“언제까지 숨기실 거예요?”

“······.”

“똑똑하시잖아요? 일 잘하시잖아요?”

“······.”

“도대체 그거 언제까지 숨기실 거예요? 10년 넘게 숨겼으면 충분하지 않아요?”

윤 차장은 황당한 얼굴로 지혁을 바라봤다.

“이제 능력 발휘 좀 하세요. 더 숨기지 마시고.”

“······.”

“제가 윤 차장님을 3팀장으로 건의한 건, 최적임자라고 여겼기 때문이에요. 도리어 윗분들은 잘 모르셔서 의구심을 표했지만.”

윤 차장은 묵묵히 지혁의 말을 들었다.

“전 충분히 잘 감당하실 거라고 봅니다.”

지혁은 옥상 출입구를 향해 몸을 돌렸다.

“얘기는 다 한 거 같은데. 더 하실 말씀 없으시죠.”

“오 팀장······ 진짜 나는······.”

윤 차장은 마지막까지 지혁을 잡고 싶었다. 본인보다 후배며 나이 어린 팀장이라는 것 말고는, 지내고 보니 이만한 팀장이 없었다.

계속 아쉬웠다.

하지만······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먼저 내려갑니다.”

지혁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

2월이 되었다.

‘홍썬라인’은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고, 선도물산 뿐만이 아니라 전 국민이 다 알 정도의 히트 상품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주기 위한 자리가 마련되었고.

선도물산의 전통에 따라서, 전 직원이 강당에 모였다.

오전 9시 55분.

승진식 10시가 되기 5분 전.

강당 안은 직원들로 꽉 차 있었다.

다만, 가장 앞줄만 비어 있었는데.

이번 승진과 포상 대상자들이 앉을 자리였다.

끼이익-

강당 앞문을 열고, 지혁이 모습을 드러내었고.

그의 등장과 함께, 웅성거리던 강당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지난 승진식 때는 지혁이 나타나자 수군거렸었다.

하지만 이제 정적이 흘렀다.

그는 이제 평범한 직원이 아니다. 선도물산 직원들이 어려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지혁의 뒤를 따라서 상품기획 1팀 팀원들이 줄줄이 들어왔고.

앞줄 빈자리에 모두 앉았다.

그 빈자리는 모두 상품기획 1팀의 자리였다.

다만.

“오셨어요?”

바로 뒷줄에 앉은 황 대리가 인사했다. 그 옆에는 생산팀장도 있었다.

지혁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일찍 오셨네요?”

“오 팀장님은 항상 시간에 딱 맞춰서 나타나시네요. 하하.”

생산팀장도 옆에서 빙그레 웃다가 말했다.

“오 팀장님, 고맙습니다. 저까지 챙겨주시고.”

지혁은 웃으며 말했다.

“황 대리님 파견 보내는 거 협조해주셨잖아요. 그리고 챙기다니요. 누가 들으면 오해합니다. 하하.”

오해가 아니다.

상품본부장이 경질된 지 한 달이 지났고.

이제 선도물산에서 알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 일의 배후에 누가 있었는지. 지금 지혁이 어떤 영향력을 가졌는지.

[직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승진식 및 포상 수여식 진행하겠습니다. 오늘 승진자가 좀 많으니까요. 시간이 좀 걸릴 수 있는 점, 감안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정기 승진자입니다.]

-먼저?

-이번에도 특진이 있는 건가.

-요즘 우리 회사 왜 그래?

-그러게. 5년을 근무해도 못 봤던 일을 1년간 두 번을 보네.

웅성거림은 곧 한 곳을 향했다.

-뻔하지 뭐.

-이번에도 저기야?

-부럽기도 하면서도······ 좀 얄밉다.

-결과가 좋긴 했지만, 스타덕 브랜드 빨도 무시 못 하잖아.

지혁은 이런 직원들의 반응도 살피고 있었다.

‘너무 튀었나?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사돈이 땅을 사면 배 아픈 법이다.

하지만 모든 반응이 이런 건 아니었다.

-하지만 매출 기네스 올리는 게 쉬운 일이야?

-맞아.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브랜드 빨 때문이라면, 전에는 왜 못 했겠어.

-오 팀장님이 탁월한 거지.

-그러니까. 난 사람 같더라고.

-팀원들 부럽다.

정기 승진식이 먼저 끝난 후.

사회자가 말했다.

[다음 특별승진 및 포상식이 있겠습니다. 우선 팀원 급부터 진행하오며, 대상자 호명하겠습니다.]

***

‘특별승진’

윤현성 : 차장 -> 부장

정성재 : 과장 -> 차장

황성준 : 대리 -> 과장

[이상 세 분은 단상 위로 올라와 주세요.]

짝짝짝.

세 사람은 큰 박수를 받으며, 승진 임명장을 받았고.

지혁 또한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며 축하해 주었다.

[다음 팀원 개인 포상입니다. 문규태 대리님 올라와 주세요.]

문 대리는 특진은 못 했지만, 개인 포상을 받았다.

지혁은 팀장급 특별승진에서 곧 호명되겠지만.

상품기획 1팀에서 딱 한 명. 호명되지 못한 사람이 있다.

지혁은 옆에 앉은 손정진을 힐끔 보았다.

그는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서운하냐?”

지혁의 물음에 손정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솔직히 제가 한 건 별로 없었지 않습니까.”

“흠······.”

지혁은 안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봉투를 하나 꺼내었다.

“받아.”

손정진은 지혁이 건넨 봉투를 물끄러미 보다가 물었다.

“이게······ 뭡니까?”

“포상.”

“네?”

손정진은 헷갈렸다.

왜 포상금을 지혁이 주는지.

“미리 주는 포상이야. 받은 만큼 다음에 꼭 성과 내라.”

“아······.”

“너 먹튀하면 알지? 성과 반드시 내야 해.”

시니컬하게 말해서 더 와닿았다.

서운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녹고, 그 자리에 고마움이 채워졌다.

“이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어허, 받아.”

손정진은 망설이다가, 떨리는 두 손으로 봉투를 받아들었다.

“팀장님, 고맙습니다.”

“······.”

“저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지금도 잘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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