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81화 (81/301)

81. 적과의 조우 (1)

“에이~ 그 인간 진짜 비호감이야.”

윤 팀장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직에도 도움 안 되고, 직원들은 불편해하고.”

“······.”

“이거 모르는 사람 없을 텐데. 이상하게 자리에 오래 있단 말이야.”

“그분 잘 아시나 봐요?”

“당연히 알지! 내가 직접 일로 부딪힌 적은 몇 번 없지만, 디자이너들한테 얘기를 많이 들으니까.”

“······.”

“얼마 전에 복도에서 그 난리를 벌였던 것도, 디자이너가 소재를 넘긴 지 한참 됐는데도 진척이 안 되는 거야. 지나가다가 얼굴 본 김에 가볍게 물었더니, 그 지랄을 떠네.”

윤 팀장은 소매를 걷어붙이며 말했다.

“아오, 내가 그때 오 팀장만 아니었어도 진짜. 멱살이라도 잡으려고 했는데.”

“······.”

지혁은 가자미눈을 뜨고, 윤 팀장을 바라봤다.

분명히 그때 윤 팀장은 밀리는 모습이었다.

윤 팀장은 지혁의 눈빛을 읽고, 헛기침하며 말했다.

“흠! 어찌 됐든. 뭐, 그런 사람이야.”

“송 상무와 비교하면 어때요?”

“송 상무?”

윤 팀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송 상무가 훨씬 낫지! 그 사람은 음흉해서 그렇지 또라이는 아니잖아. 난 또라이가 제일 싫어. 도대체가 행동 예측이 안 되거든.”

지혁은 왠지 욕 들은 기분이라 고개를 갸웃했고.

윤 팀장은 웃으며 재빨리 화제를 바꾸었다.

“하하. 내가 구상한 거 들어볼래?”

지혁은 술잔을 보며 물었다.

“지금 일 얘기하면 술맛 떨어지지 않겠어요? 전 상관없지만.”

윤 팀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괜찮아. 자기랑 일하면 빡세긴 해도 이상하게 부담은 안 되더라고. 일만 하면 될 것 같다고 할까?”

지혁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그럼, 얘기해 보세요.”

윤 팀장은 술술 얘기하기 시작했다.

조직쇄신안의 큰 방향은 이미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했다.

‘디자인실은 해체 하지 않는 것.’

현 조직을 유지한다는 건데, 그러기 위해서는 성과를 내야 한다.

그래서 주제는 ‘일하는 방식 바꾸기’로 자연스럽게 전환되었다.

윤 팀장은 구상한 내용의 핵심만 간략하게 설명해주었고.

지혁은 듣는 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데요?”

“이상적인 얘기지.”

“이상을 현실화시키면, 그때부터는 이상이 아니죠. 망할지라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아요.”

“어?”

윤 팀장은 의아해서 바라봤다.

지혁은 ‘그 세계’를 떠올리고 한 말이었다. 조금 안전해졌다고 쉘터에 오래 머물렀다가, 적의 불시공격 혹은 내부적으로 안 좋은 일이 생겼었다.

위험할지라도 계속 주변을 살피고, 이동하고,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생존한다.

“오 팀장이 동의해줘서 고맙긴 한데, 그래도 좀 더 검증해보고.”

“아니요.”

지혁은 앞의 술잔을 털어 넣고, 웃으며 말했다.

“명백한 일을 검증하는 건 시간 낭비죠. 그리고 뭐 잘못된다고 해서 돈 드는 것도 아닌데. 뭘 망설여요.”

“······.”

“일단 시도해 보는 거죠. 일어날까요? 내일 부지런히 움직이려면.”

“응? 어어.”

***

다음날.

“안녕하십니까!”

상품기획 3팀의 팀원들은 사무실에 들어온 사람을 보고 일제히 일어났다.

상품기획 1팀의 오지혁 팀장.

3팀에 그보다 어린 사람은 없었지만, 그의 직책······ 무엇보다도 명성이 그들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게 했다.

“안녕하세요.”

지혁이 웃으며 말했다.

“앉으셔서 일 보세요. 불편해 마시고.”

팀원들이 뻘쭘하게 있자.

“어서들 앉아! 괜찮아!”

윤 팀장이 말하자, 그제야 엉거주춤 자리에 앉았다.

“볼일 있으면 부르라니까, 팀원들이 어려워하잖아.”

“자주 오면 안 어려워지겠죠.”

“그러지 마······.”

윤 팀장은 지혁이 싫지는 않지만, 자주 보는 건 달갑지 않았다.

지혁과 가까이 있으면 일거리가 생겨나서.

“근데, 아침부터 웬일이야?”

“음?”

지혁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말했다.

“개발팀 만나러 가기로 했잖아요.”

“지금?!”

지금 시각은 아침 9시.

지혁은 출근하자마자, 윤 팀장을 찾아온 것이다.

“왜요. 지금 가면 안 돼요?”

“나,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막상 개발팀 만나서 불편할 얘기할 생각을 하니, 망설여졌다.

“시간 지나면 마음의 준비 돼요?”

“······.”

“그냥 어차피 할 거, 빨리 해결하시죠. 일어나세요.”

그리고 지혁은 곧장 뒤돌아서 나가버렸고.

윤 팀장은 당황하여 쫓아갔다.

“같이 가!”

복도를 함께 걸으며 지혁은 윤 팀장을 보았다.

표정이 잔뜩 굳어서는 결사 항전을 치르러 가는 군인 같았다.

‘이래서 개발팀장을 상대할 수 있을까?’

어제 두 사람은 작전을 짰고.

윤 팀장이 자진해서 개발팀장을 맡겠다고 했었다.

술기운에 한 말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지혁은 걸어가면서 넌지시 물었다.

일이 제대로 되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괜찮겠어요?”

“뭐가.”

“개발팀장 상대하는 거요. 제가 해도 상관없어요.”

윤 팀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이건 협박과 술수로 해결해서는 안 되는 일이야.”

“······.”

“경험과 지식으로 상대해야 해. 그리고 어쨌든 내가 이 일의 주를 맡기로 했으니까.”

“······.”

“감당해야지.”

윤 팀장은 잔뜩 긴장한 얼굴이지만,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고.

지혁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역시, 짬은 무시 못 한다니깐.”

“뭐?”

어느덧 개발팀 앞에 도착했고.

지혁은 대뜸 사무실 문을 잡고 말했다.

“그럼 들어갑니다.”

똑. 똑.

확-

지혁은 망설이지 않았다.

노크 두 번 하고, 바로 밀고 들어갔다.

***

“안녕하십니까~”

개발팀 사람들은 얼어버렸다.

사무실 안에 들어온 사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지만, 강단 앞에서, TV를 통해서도 봤었다.

오지혁 팀장.

마치 연예인을 본 것 같았다.

임원이라도 들어온 양.

하던 일을 멈추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 중엔 심 부장도 있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심 부장은 내키지 않았지만, 팀원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니 어쩔 수 없었다.

“오지혁이라고 해요. 반가워요.”

지혁은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팀장님은 어디 계세요?”

“잠깐 화장실 가셨습니다.”

“아, 네.”

지혁은 빈 의자 아무 곳에 앉았다.

“좀 앉아서 기다릴게요. 윤 팀장님도 앉으세요.”

“아니야. 난 됐어.”

윤 팀장은 심 부장에게 다가가 깍듯이 인사했다.

“선배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 그래. 잘 지냈어?”

“네. 선배님도 잘 지내셨죠?”

“응······ 그냥 뭐······그렇지.”

그 기세등등하던 심 부장이 아니었다. 윤 팀장은 그의 이런 모습을 보기가 좀 짠했다.

“진작에 인사도 드리고 했어야 했는데.”

“아니야. 다들 바쁘게 살잖아. 이렇게 보면 됐지 뭐.”

심 부장의 비굴한 미소.

이건 오랜 담금질에서 스며 나오는 미소였다.

‘얼마나 갈굼을 당했으면······.’

미우나 고우나 오랜 기간 모셨던 상사다.

개발팀장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에, 심 부장을 어떻게 대했을지 뻔히 그려졌다.

뜻하지 못하게, 윤 팀장 가슴속에 불길이 치솟아, 점점 전투력이 상승하고 있었다.

덜컹.

그때 사무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이건 뭐야?”

개발팀장은 놀라서 말했다.

또라이는 단어 선택부터 남다르다. 확실히 지혁과 같은 과였다.

“오지혁입니다.”

지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가 개발팀장에게 악수를 청했다.

“네? 아, 네.”

일전에 한 번 마주친 적이 있다.

지혁은 그와 악수하며, 이마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분홍색’

분홍색은 빨강과 흰색의 중간색이다. 빨간색의 성향을 따라서, 열정적이며 성격도 강한 편이지만.

우유부단한 성향도 함께 갖고 있으며, 자신의 감정에 매우 솔직하다. 어찌 보면 순수하다고 할 수 있는데.

진분홍색의 사람은 안 좋은 쪽으로 순수하고, 연분홍색의 사람은 좋은 쪽으로 순수하다.

개발팀장은 빨강에 가까운 ‘진분홍색’이었다.

다만, 이 성향의 사람들에게 약점이 하나 있는데.

‘생각보다 겁이 많다.’

그들이 지랄하는 건, 자신의 약함을 숨기기 위해서다.

지혁은 개발팀장의 행동을 보며 어느 정도 짐작은 했었으나, 이마의 색을 통해 확신했다.

‘심 부장과 색이 같네.’

희한하게도 대부분의 팀장급은 ‘분홍색’을 띠고 있다.

진분홍이냐, 연분홍이냐. 채도의 차이만 좀 있을 뿐.

“뭐 하세요?”

개발팀장은 손을 잡고, 자신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지혁이 이상해 보였다.

지혁은 코를 찡긋하고는 손을 풀었다.

“잠시 딴생각을 했네요.”

악수를 푼 후, 개발팀장은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았다.

‘뭔 짓을 한 거야?’

별다른 건 없어 보여서, 다시 시선을 지혁에게 두고 물었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저희는 유관부서 건너뛰고 일하는 건 하지 않는데.”

디자이너만 상대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온 목적을 말하기도 전에, 방어막을 치는 개발팀장에 지혁은 비아냥댔다.

“절차를 엄청나게 따지시네······.”

지혁은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다.

“일 참 편하게 하시네요.”

“뭐요?!”

개발팀장이 눈을 희번덕거렸다.

“떠 먹여주는 일만 하겠다는 거잖아요? 대학 나온 사람이 그렇게 일하고 민망하지도 않나.”

키득.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렸다.

개발팀장의 얼굴은 새빨개졌고.

“야이······.”

한바탕 퍼부으려다가, 지혁의 싸한 눈빛과 마주하고는 입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뭐, 뭐야. 눈깔이 왜 이래.’

순간 겁먹었다.

함부로 말을 뱉었다가는 뼈도 못 추릴 것 같은 본능적인 위협.

결국, 개발팀장은 입만 벙긋거리다가 그의 말을 받아치지 못했고.

지혁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일하러 온 거 아니고요. 뭐 좀 조사하려고 왔어요.”

“당신이 뭔데, 우릴 조사해요?”

윤 팀장이 나서서 말했다.

“상품본부장님으로부터 조직쇄신안을 만들라고 지시받았거든요.”

직속 상사의 지시.

아무리 개발팀장이 개차반이라고 해도, 그걸 무시할 정도의 깡은 없었다.

“뭘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윤 팀장이 말했다.

“좀 불편한 얘기를 해야 할 수도 있어서, 팀장님은 따로 얘기하시죠.”

그리고 윤 팀장은 눈으로 회의실을 가리켰다.

“이렇게 셋이서요?”

개발팀장은 지혁 하나도 버거운데, 두 사람을 상대하는 건 꺼려졌다.

“아니요. 저랑만 얘기하시면 됩니다.”

“오 팀장님은 밖에 계시고?”

이 말에 지혁이 대답했다.

“네.”

개발팀장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좋습니다. 들어가시죠. 뭐, 맘대로 해보세요.”

그는 윤 팀장을 만만하게 봤다.

‘오 팀장만 아니면 뭐.’

쾅!

개발팀장은 호기롭게 회의실로 먼저 들어갔고.

지혁은 윤 팀장을 향해 작게 말했다.

“겁이 많은 사람이에요. 세게 나가세요.”

지혁은 이마에서 본 색을 기준으로 윤 팀장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그걸 오 팀장이 어떻게 알아?”

“그냥 알아요.”

“······.”

윤 팀장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쾅!

윤 팀장까지 들어가자, 이제 사무실에는 지혁과 개발팀원들만 남았다.

“자, 지금부터.”

지혁은 개발팀원들을 향해 말했다.

“마음의 편지 받겠습니다.”

황당한 얼굴로 바라보는 개발팀원들을 향해, 지혁이 설문지를 나눠주며 말했다.

“팀장의 좋은 점 아쉬운 점. 그 외에도 일하면서 어려웠던 점 등을 아주 솔직하게 적어주시면 됩니다.”

“······.”

“여러분의 의견은 익명으로 전달될 거고요. 타당하다 판단되면, 분명히 반영될 것을 약속드립니다.”

지혁은 인사팀장을 떠올리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인사팀이 제 말을 아주 잘 들어주거든요.”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