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92화 (92/301)

92. 생각 못 했던 곳 (2)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황 과장은 업체를 통해 가격을 확인했음에도 믿기지 않았다.

'이렇게 가격 차이가 많이 나다니······ 신경도 안 썼던 자재가······,'

“박스와 폴리백 많이 쓰지 않아요?”

지혁의 물음에 황 과장이 대답했다.

“당연히 많이 쓰죠. 연간 박스만 해도 10만 개가 넘을 것 같은데요. 폴리백은 뭐······ 말할 것도 없고요.”

“많이 해 먹었겠네.”

지혁은 무심결에 중얼거렸고.

황 과장은 깜짝 놀라서 물었다.

“네?”

“아니에요.”

아무리 황 과장이어도 아직은 말할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황 과장이 미심쩍은 얼굴로 말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네요. 혹시 박스와 폴리백 업체는 자회사 아닐까요?”

“흠, 글쎄요.”

지혁은 황 과장에 물었다.

“박스와 폴리백 업체 연락처 아세요?”

황 과장은 곧바로 대답했다.

“네! 알죠. 제가 직접 주문한 적은 없지만, 연락처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죠.”

“그럼, 지금 확인해 보시죠. 자회사인지.”

“잠시만요.”

황 과장이 전화 걸기 전에, 지혁은 당부했다.

“자회사 여부만 확인하시고, 다른 얘기는 마세요.”

“알겠습니다.”

통화가 연결되자, 황 과장답게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사장님 안녕하세요~ 선도물산 황 과장입니다. 하하. 네~ 잘 지내셨죠? 새로운 부서요? 아유~ 좋죠~ 행복합니다~”

간단한 걸 물으려 전화한 건데, 황 과장은 인사하는 데만 한참 걸렸다.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정원피케이가 혹시 우리 회사 소속인가요? 네? 아~ 그냥요. 너무 친근해서. 하하.”

지혁은 잠자코 듣기만 했다.

“아······ 그렇죠? 그럴 줄 알았어요~ 하하. 네. 알겠습니다~ 그럼 건강하시고요~ 네에~”

전화를 끊자마자, 지혁이 물었다.

“뭐래요?”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그러시네요.”

지혁은 곰곰이 생각했다.

‘실마리는 잡았어. 이제 어떻게 몰아가느냐만 생각하면······.’

“황 과장님, 오늘 저녁 시간 되세요?”

“네?”

황 과장은 지혁이 또 일 시키는 줄 알고,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수고해주셨는데, 제가 맛있는 거 사드리려고요. 일 얘기는 안 할게요.”

“······.”

황 과장은 쉽게 못 믿는 눈치였으나, 지혁은 활짝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 말했다.

“믿으세요. 진짜니까.”

***

지혁은 황 과장과 얘기가 끝난 후, 생산팀장을 찾아갔다.

똑똑.

덜컹.

-엇!

-안녕하십니까!

-오 팀장님 오셨습니다!

지혁이 생산팀에 등장하자, 생산팀원들은 일제히 일어서서 인사하느라 난리였다.

오랜만의 방문.

최근 팀장 역할을 정 차장이 대신했었고, 지혁은 현업을 챙기지 않았기에 잘 올 일이 없었다.

선도물산의 유명 인사.

실세 중의 실세.

지혁의 등장에 생산팀장은 하던 일을 멈추고, 지혁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오 팀장님 안녕하십니까.”

“네, 팀장님. 잘 지내셨죠?”

“네. 저야 뭐. 근데, 무슨 일로······.”

생산팀장은 지혁이 어려우면서도 무서웠다.

그가 나타나는 곳에는 꼭 특별한 일이 생겼었기에.

“간단한 것 좀 여쭤보려는데. 단둘이 대화 좀 할 수 있을까요?”

생산팀장은 회의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들어가시죠.”

“네.”

회의실.

지혁이 먼저 들어가서 기다렸고, 생산팀장이 커피를 들고 들어왔다.

“따뜻한 거 드신다고 하셨죠?”

“네.”

지혁은 커피잔을 받으며, 가만히 생산팀장을 관찰했다.

‘이마의 파란색이 더 선명해졌네. 생산팀장처럼 정의로운 사람이 알고 그랬을 것 같진 않고······.’

그의 이마에 보이는 파란색은 정의로움을 나타낸다. 더군다나 채도가 높은 파란색. 정의에 대해서 만큼은 결벽에 가깝다는 걸 말한다.

“이제 말씀하시죠. 밖에서는 안 들립니다.”

지혁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우리 회사에서 쓰는 박스와 폴리백이요.”

“네.”

생산팀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지금 비싸게 쓰고 있는 거 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너무 순순히 대답하는 게, 지혁은 의아했다.

“가격 차이가 꽤 많이 나는 거 같던데.”

“그래요? 제가 자세히는 안 봤어서.”

“어쨌든, 그 업체 걸 쓰시나요?”

“회사 지정업체니까요.”

생산팀장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오래전 제 전임자 때부터 써온 업체입니다. 가격은 좀 비쌀지 모르지만, 퀄리티도 좋고 일 처리 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지혁은 좀 헷갈렸다.

‘혹시 생산팀장도 홍 대표와 연관이 있는 거 아니야?’

약간 무례하게 들릴 수는 있겠지만, 반응을 보기 위해 찔러봤다.

“삼자가 보기엔 지금 상황이 많이 이상하거든요? 비싼 걸 알면서도 쓰고 있다는 게.”

“······.”

“혹시······ 모종의 거래가 있는 건 아니겠죠?”

쾅!

생산팀장은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쳤다.

“무슨 말씀입니까?!”

아무리 상대가 지혁이래도, 그가 최우선으로 지향하는 ‘정직’의 가치를 의심하는 건 견딜 수 없었다.

“그런 말씀은 함부로 하시는 게 아닙니다! 모종의 거래라뇨!”

“······.”

지혁은 흥분한 생산팀장의 눈을 가만히 바라봤다.

흔들리지도 주저함도 없었다.

‘뒷거래가 있어 보이진 않네.’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릴게요. 그런데, 충분히 볼만한 시각이지 않습니까? 전 속마음을 그대로 말씀드려본 거고요.”

“······.”

“업체선정을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지정업체든 뭐든, 경쟁력 없으면 바꿔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요?”

지혁은 생산팀장을 움직여보려 했다.

발주처 변경은 생산팀장의 권한이고, 그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서 박스와 폴리백 업체를 바꾼다면······.

‘배후의 뭔가가······ 움직임이 있겠지.’

“······.”

지혁의 말에 생산팀장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배임’

완곡하게 말하고 있지만, 생산팀장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

지금 지혁은 ‘배임’을 말하는 거였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생산팀장의 눈빛이 바뀌어 있었다.

***

“오 팀장님 말씀이 일리가 있네요. 제가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

“지정업체라고 해서, 예전부터 써왔다고 해서, 그대로 쓸 이유는 없는 거죠.”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긍이 빠르고 합리적이네. 확실히 생산팀장도 인물이긴 해.’

생산팀장은 지혁을 향해 미소지으며 말했다.

“좋은 조언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근데, 저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네, 말씀하세요.”

“이 일을 왜 신경 쓰시는 건가요?”

“······.”

“원래 생산 업무에는 전혀 관여 안 하셨잖아요. 원가와 스케줄도 저희가 피드백 드리는 대로만 보셨고.”

지혁은 전문 영역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타입이다.

“이렇게 디테일한 부분을 집어서 직접 요청하시는 게······ 의아하네요.”

“그게 뭐 그렇게 의아해할 일인가요?”

지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합리적인 의혹은 활발할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나요?”

생산팀장은 잠시 생각한 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틀린 말씀은 아니십니다.”

지혁은 나갈 채비를 하며 말했다.

“얘기가 길어졌네요. 그럼 저 마지막으로 하나만 말씀드리고 갈게요.”

지혁은 생산팀장의 눈을 쏘아보며 말했다.

“만약 업체선정 후에 어딘가에서 압박이 들어온다면······ 저한테 꼭 도움을 청하세요.”

“네?”

생산팀장은 황당했다.

'쓸데없는 얘기를 하시네. 요즘 때가 어느 때인데, 압박이 왜 들어와. 큰일 나려고.'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요즘 누가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만약 있다면요. 꼭 그렇게 해주세요.”

“······ 알겠습니다.”

“네, 그럼.”

지혁은 인사 후,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

생산팀장은 회의실에서 나오자마자, 부자재 담당자를 불렀다.

“김 대리! 빨리 이리로 와 봐.”

“네, 팀장님.”

생산팀장은 곧바로 업무지시를 했다.

“지금 박스와 폴리백 자재, 업체선정 다시 해.”

“네? 거긴 본사 지정 업체 아닙니까?”

“여러 말 말고 어서 해! 경쟁력 있는 곳으로 가야지. 자기 돈 같으면 같은 걸 더 비싸게 주고 사겠어?”

김 대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업체 사장님이 난리 칠 텐데.’

정원피케이 사장은 갑 같은 을로 유명하다.

“안 움직이고 뭐해?”

“아, 알겠습니다.”

“겁먹지 말고 해. 뭐 문제 생기면 나한테 얘기하고.”

“네.”

부자재 담당자는 곧바로 공문을 보내어 업체 수배하고.

선정된 업체들로부터 비딩을 진행하여, 단가를 받았다.

최저가를 제시한 세 업체의 퀄리티를 받아서, 최종 진행 여부를 심사했는데.

최종 후보에 오른 업체 중에 정원피케이는 없었다.

가격 경쟁력에서 한참 떨어졌다.

“팀장님, 보고 드립니다.”

결국, 업체 변경되는 것으로 보고를 하였고.

생산팀장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결재했다.

“진행해.”

“······.”

“비딩 참여한 업체들에게 결과 알려주고, 참여해줘서 감사하다는 말씀 꼭 드리고.”

“네······.”

생산팀장은 수심 가득한 부자재 담당자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만약, 정원피케이 연락 오면, 나한테 얘기해.”

“알겠습니다.”

비딩 결과 발송 후.

5분도 안 되어, 바로 전화가 왔다.

“팀장님, 정원피케이에서 연락 왔습니다.”

“바꿔 봐.”

[하재웅입니다.]

[생산팀장님, 정원피케이입니다~]

[네, 사장님. 안녕하세요.]

[방금 이메일로 결과 받았는데요. 농담하시는 거죠?]

피식.

생산팀장은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저 그렇게 한가하지 않습니다.]

[몇 년간 거래한 곳과 하루아침에 이렇게 끊는 게 어딨습니까?]

[송구합니다만, 경쟁력 차이가 너무 나서요. 비딩하기 전에 공문으로 충분히 안내 말씀드린 거로 압니다.]

[이봐요!]

정원피케이 사장은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우리가 누군지 몰라요?!]

[누구긴 누굽니까. 박스, 폴리백 업체죠.]

생산팀장은 로봇처럼 말했다.

[와······ 말이 안 통하네. 귀에 쇠말뚝 박으셨나.]

심한 말을 들었지만, 생산팀장은 개의치 않았다.

[전 더 들을 얘기 없는데, 이만 끊겠습니다.]

[말하고 있는데 어딜 끊어요! 경우가······.]

정원피케이 사장은 흥분하여 말하기 시작하는데.

생산팀장은 가만있지 않았다.

[그만 하세요. 한마디만 더 했다가는 비딩 기회조차 안 줄 거니까.]

[······.]

[끊습니다.]

하지만······,

전화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

다음 날.

여느 때처럼 지혁은 야근을 하던 중이었다.

위이잉-

다 퇴근하고 혼자만 있는 사무실.

핸드폰 진동음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

[메시지 : 생산팀장]

저녁 8시.

이 시간에 생산팀장에게 메시지 온 게 이상했다.

바로 버튼을 눌러 내용을 확인했다.

[늦은 시간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잠깐 통화할 수 있으십니까?]

생산팀을 예의주시하고 있었기에, 어제 박스, 폴리백 업체선정이 끝났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예상대로 흘러가네.’

짐작이 되었다. 업체선정으로 인해, 뭔가가 있는 것이다.

지혁은 생산팀장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네, 오지혁입니다. 무슨 일로 연락 달라고 하셨어요?”

수화기 너머로, 지혁은 잠자코 생산팀장의 얘기를 듣다가.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잘 믿기지 않아서 다시 물었다.

“잠깐만요. 누구한테 연락 왔었다고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