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101화 (101/301)

101. 응원한다

황 과장은 이 상황이 너무 황당했다.

“제가 아무리 팀장님을 따르지만, 이건 좀······.”

‘비서실이라니······. 갑자기 왜? 비서가 뭐 하는 건데?’

황 과장은 믿기지 않는 듯, 모니터 창을 다시 확인했다.

그때, 문 대리가 황 과장을 밀치며 말했다.

“복에 겨운 소리 하고 있어. 그룹비서실이 어떤 곳인데?”

“어떤 곳인데요?”

“승진 코스잖아. 젊을 때 그룹비서실 거치면 대부분 임원까지 가는 거 몰라? 한 전무님도 비서실 출신인데.”

황 과장은 눈을 끔뻑였고.

지혁은 문 대리의 말이 흥미로웠다.

‘문 대리가 그걸 어떻게 알았지?’

지혁도 아는 사실이지만, 짐짓 모른 척 물었다.

“문 대리님은 어떻게 그리 잘 아세요?”

“물류에 있다 보면 많은 이야기를 접하게 됩니다~ 오래되신 분들이 마지막 코스로 오는 곳이라서, 옛이야기 들을 일이 많거든요.”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심스러운 마음을 거두었다.

잠자코 있던 손정진은 뾰로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황 과장님 싫으시면 제가 가면 안 돼요? 전 팀장님 가까이 있고 싶은데.”

“나도 오 팀장님 따라가고 싶다. 어디든.”

문 대리도 한마디 거들었고.

황 과장은 생각했다.

‘좀 당황스럽긴 하지만······ 그래, 팀장님이랑 같이 가는 거니까.’

“누, 누가 싫다고 그랬어요? 그냥 좀 갑작스러워서 그런 거지.”

황 과장은 큰 소리로 말했고.

그 모습을 보며 지혁은 피식 웃었다.

‘사람 참 순진해. 이래서 내가 황 과장을 좋아하지.’

황 과장이 지혁에게 물었다.

“근데, 그룹비서실이 어디예요? 선도빌리지 안에 있어요?”

지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태평로에 있는 거 같더라고요.”

“태평로?”

“시청 쪽이요. 선도본관이라고 불리더군요.”

“아······.”

이 말에 황 과장의 얼굴이 금세 밝아졌다.

“출퇴근 시간 단축되겠네. 하하.”

“그래요?”

“네~ 저 대학로 쪽에 살거든요.”

황 과장은 싱글벙글 웃었다.

참, 단순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상품기획 1팀에 그 말고 웃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손정진이 지혁의 팔을 붙잡고 물었다.

“팀장님,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지 않습니다.”

“······.”

“다시 돌아오시는 거죠?”

지혁은 묵묵부답이었다.

지금 발령받은 사람에게 너무 바보 같은 질문이었지만.

팀원들 모두 기대하는 눈빛으로 지혁의 입만 바라봤다.

그만큼 지혁을 의지하고 있었고. 빈말이라도 듣고 싶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지혁은 그 기대를 무시하고 손정진의 물음에 시니컬하게 대답했다.

“주어진 상황에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지.”

“팀장님······.”

지혁은 손정진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쓸데없는 감정에 빠지지 말고, 각자 살길 찾아. 상황 받아들이고.”

이건 손정진뿐만 아니라, 모두를 향한 말이었다.

“이제 이 팀에 난 없는 거야. 받아들여.”

말을 뱉고 난 후 지혁은 서운해하는 팀원들 얼굴을 보았고, 한쪽 가슴이 아렸다.

‘생각보다 힘드네.’

팀원들에게 정이 들었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감정이 생기면 아프다는 걸 알기에, 눈을 질끈 감고 마음을 다잡았다.

몸에 칼 맞았을 때 보다 더 아팠던, 동료를 떠나보냈던 경험.

그 경험을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내 가족만으로도 충분해.’

“자! 어서 일들 해요.”

지혁은 차갑게 뱉고,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

그날 상품기획 1팀은 조용했다.

전화 통화 소리도 없었고, 평소 농담을 주고받던 문 대리와 황 과장도 조용했다.

그렇게 오전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저벅. 저벅.

뛰는 듯한 걸음 소리가 사무실 밖으로부터 들려왔다.

덜컹.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인사팀장이었다.

헉- 헉-

얼마나 빨리 걸어왔는지, 숨소리가 거칠었다.

“오팀장님!”

그는 사무실로 들어오자마자, 지혁을 큰 소리로 불렀다.

다급한 표정이었다.

지혁은 그의 방문을 예상했다는 듯, 태연히 자리에서 일어나 맞았다.

“어서 오세요.”

“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인사팀장 또한 아침에 그룹인사팀으로부터 갑작스러운 인사발령 메일을 받았고.

그 정황을 파악하고 오느라, 시간이 좀 필요했었다. 즉, 지혁이 인사발령을 ‘당했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뭐야, 인사팀장님도 모르셨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팀원들은 인사팀장의 반응에 술렁거렸다.

인사팀장은 주변 반응은 개의치 않고, 지혁에게 말했다.

“이 인사발령이 정말 오 팀장님께서 요청하셔서······.”

“쉿-”

지혁은 검지를 입술 위에 가져다 댄 후, 말했다.

“따라오시죠.”

그리고 지혁은 회의실로 들어갔고.

인사팀장은 회의실로 따라 들어와서, 황망한 얼굴로 물었다.

“정말 오 팀장님께서 인사발령을 요청하신 겁니까?”

“······.”

지혁은 무응답으로 긍정을 대신했고.

인사팀장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지혁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 이런 법이 어딨습니까?”

20년간 어느 세력에도 소속되지 않고, 청정지역으로 살던 인사팀장.

그가 지혁이 편에 서기로 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다.

근데, 간단다.

선도물산에서 떠난단다.

뒤통수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그룹 비서실.

아무리 파워가 있는 곳이라지만, 인사팀장은 선도물산의 인사팀장이며.

이렇게 연이 끊긴다고 생각했다.

“미래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너무······ 당혹스럽습니다.”

원래 그의 성향답게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있었다.

지혁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인사팀장님.”

“네?”

“제가 누굽니까?”

“······.”

“다른 데 간다고 해서 제 출신이 어디 갑니까?”

지혁의 희망적인 메시지에 인사팀장의 얼굴은 금세 또 환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룹 비서실입니다. 오 회장님 측근이라고요.”

“······.”

지혁은 눈썹을 찡긋하고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어떤 의미인지······ 모르시겠어요?”

오 회장 자제 중에 비서실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혁을 오 회장의 막내아들이라고 믿고 있는 인사팀장은 어찌 보면 이게 어떤 사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인사팀장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근데, 왜 비서실장이 아니라, 팀원입니까?”

오너일가가 부서의 장으로 발령받지 않는 게 좀 의아했다.

지혁은 서로를 위해 적절한 거짓말을 했다.

“팀장님, 아무리 저라도 낙하산처럼 보이면 안 되죠. 아실 만한 분이 뭘 그런 뻔한 질문을.”

“······.”

“제가 선도물산에 팀장으로 입사했습니까?”

“아~!”

더 설명이 필요 없었다.

팀원으로 시작하지만, 머지않아 곧 비서실장이 될 거라는 암시.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암요! 암요! 아~ 그렇구나!”

인사팀장은 자기 머리를 두들기며 인상을 쓰며 웃었다.

“제가 너무 놀라서, 머리가 잠깐 멈췄었나 봅니다. 하하!”

지혁은 빙그레 웃었다.

“그럼 설명 끝났으니, 저 업무 마무리 좀 해도 될까요? 출근할 날이 오늘, 내일밖에 없어서.”

지혁은 이틀 뒤부터 그룹비서실 출근해야 한다.

“아, 네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네, 인사팀장님. 전 어디를 가나 항상 오지혁이니까요. 제 힘이 되어주셔야 해요.”

인사팀장은 고개를 숙이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인사팀장이 헤어진 뒤, 지혁이 자리로 가서 모니터를 켰더니.

[옥상으로.]

사내메신저로 윤 팀장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왜 안 부르나 했다.”

***

인사팀장 미팅으로 메시지 확인이 늦었고, 그 때문에 약간 늦게 올라갔다.

휴우-

비상문 밖으로 나가보니, 옥상은 불피워 놓은 것처럼 연기가 자욱했고.

난간에 선 윤 팀장 주변에 담배꽁초가 여러 개 널려 있었다.

“참 한결같네.”

지혁은 널려진 담배꽁초를 보며 말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덕분에 담배 많이 피웠잖아.”

“그걸, 핑계라고. 왜 불렀어요?”

“어떻게 된 거야?”

윤 팀장은 다짜고짜 이렇게 물었고.

지혁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몇 번째야 이게. 전 직원 모아놓고 한 번 설명하든가 해야지.”

“······.”

지혁은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었지만.

윤 팀장의 얼굴은 심각했다.

“흠! 간단히 설명할게요.”

지혁은 비서실로 가게 된 일련의 과정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다만, 홍 대표와 관련된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건 오 부회장과의 약속이었으니까.

“정말 더 출세하고 싶어서 비서실을 자원했다고?”

“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못 속여. 오 팀장 그런 사람 아니잖아.”

“······.”

윤 팀장은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출세욕 있는 사람이 매사에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었을까? 절대 못 그러거든.”

“······.”

“진짜 이유가 뭐야?”

사실을 얘기해줄 수도, 그렇다고 뻔한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때가 되면······ 알려 줄게요.”

“······.”

“지금은 그냥······ 응원해 줬으면 좋겠네요. 아니면 무시해도 되고.”

윤 팀장의 눈빛이 일렁였다.

“응원? 무시?”

“······.”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야?”

윤 팀장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회사생활 편하게 하려던 사람을 이렇게 앞으로 끌어내 놓고. 싹 빠지겠다고? 그리고 도와주겠다며?”

“······.”

“이렇게 가는 게 어딨어. 난 이제 시작인데!”

윤 팀장은 아쉬웠다. 그래서 화가 났다.

피하고만 싶은 사람이었던 지혁이 이제는 없어선 안 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윤 팀장님.”

지혁은 표정 없는 눈으로 윤 팀장을 바라봤다.

“팀장님은 도움 필요 없어요.”

“······.”

“다른 사람을 도와주셔야 할 분이지. 도움받을 분이 아니에요.”

윤 팀장은 주먹을 꼭 쥐었다.

“저도 윤 팀장님과 더 함께 일하지 못하게 된 거 아쉬워요.”

“······.”

“하지만, 머지않아 함께 일하게 될 거예요.”

윤 팀장은 지혁의 말을 들으며 가만히 있었다.

지혁은 웃으며 그의 어깨를 잡았다.

“이제 일하러 가죠.”

***

“외근 다녀오겠습니다.”

오후 5시부터 외근이 있다며, 팀원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갔다.

‘뭔 외근을 퇴근 시간 다 되어 나가나.’

팀원들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터치를 안 하는 스타일이기에, 의아하지만 그러려니 했다.

오후 6시 10분. 퇴근 시간이 좀 지났을 쯤.

“오 팀장!”

윤 팀장이 사무실 입구에서 지혁을 불렀다.

“네?”

“곧 갈 사람이 뭔 야근이야? 약속 없으면 저녁이나 같이 먹자.”

지혁은 끝마무리를 깔끔히 하고 싶었다.

‘배는 고프니까. 먹고 와서 하자.’

“좋습니다. 메뉴는······.”

윤 팀장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순댓국 먹자고? 알았어~ 가자~”

지혁은 윤 팀장과 함께 항상 가던 단골 순댓국집으로 향했다.

“이 집도 이제 자주 못 오겠네요. 그건 좀 아쉽다.”

윤 팀장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

“우리랑 헤어지는 건 안 아쉽고?”

“······.”

“쿨한 척하기는. 내가 오 팀장 속을 모를 줄 알아?”

지혁은 대답 없이 싱긋 웃었다.

어느덧 순댓국집에 도착했고.

지혁이 들어가려 하자, 윤 팀장이 막아섰다.

“잠깐만 기다려.”

그리고 윤 팀장은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오 팀장! 이제 들어와!”

지혁은 고개를 갸웃하고 들어갔더니.

펑-!

갑자기 폭죽이 터졌다.

놀란 지혁은 반사적으로 기마자세와 함께, 두 주먹을 교차하여 앞을 막으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오 팀장님! 축하드립니다!

-무조건 응원합니다!

-오 팀장님이 가시는 길은 옳은 길이죠!

-지혁아~ 다시 돌아와야 해!

빌딩 숲 사이에 있는 아담한 순댓국집.

그곳에.

상품기획 1팀 팀원들, 윤 팀장, 생산팀장, 인사팀장, 개발팀장, 영업팀장, 디자인팀 이승주 대리 등······.

지혁을 아끼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떻게······.”

지혁의 다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씩 보다가, 순댓국집 벽에 걸린 플래카드로 시선이 옮겨졌고.

감정을 누르기 위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언제 어디서든 응원합니다! 선도물산의 자랑 오지혁 팀장님!]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