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102화 (102/301)

102. 지혁 라인

지혁은 어안이 벙벙했다.

-오지혁! 오지혁!

-팀장님~ 어서 앉으세요!

자리에 모인 사람들.

다들 웃고는 있지만,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윤 팀장이 다가와 말했다.

“어서 앉아. 밥 먹자.”

얼이 빠져있던 지혁은 윤 팀장의 손에 이끌려 앉았다.

지혁은 윤 팀장에게 물었다.

“윤 팀장님이 부르신 거예요?”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운은 내가 띄웠지. 근데 다들 같은 마음이라서······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나섰을 거야.”

“······.”

처음엔 윤 팀장을 심 부장 다음으로 내쳐야 할 사람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내보니 괜찮은 사람이었고. 오랜 시간 능력을 숨기고 있던 회사원이었다.

이제 윤 팀장은 지혁에게 누구보다도 든든한 지원자이자, 동료가 되었다.

“고맙습니다.”

지혁의 인사에 윤 팀장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고맙긴, 오 팀장이 해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그때, 개발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크게 소리쳤다.

“자, 주인공 오셨으니까. 모두 잔 들으시죠.”

모두가 잔을 높이 들었다.

“오 팀장님의 무궁한 영광을······.”

“진짜 너무하네~”

황 과장이 뾰로통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같이 이동하는데, 건배사 정도는 저도 좀 끼워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지혁은 빙그레 미소지었고, 황 과장은 볼멘소리로 말했다.

“저도 이동한다고요. 이럴 거면 난 부르지 말던가.”

개발팀장은 헛기침하고 다시 말했다.

“흠! 네네. 정정하겠습니다. 생각이 짧았네요.”

“······.”

“우리 오 팀장님과 황 과장님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위하여!

짠!

모두 함께 위하여를 외친 후, 깨끗이 잔을 비웠다.

그렇게 지혁과 황 과장의 송별회는 시작되었고.

약 10분 뒤.

“안녕하세요~ 제가 좀 늦었네요.”

순댓국집과는 어울리지는 않는 한 여성이 들어왔다.

신부 화장에 준하는 메이크업. 한껏 치장한 화려한 옷.

지혁은 낯익은 그녀의 얼굴을 보고, 생각하느라 미간을 찌푸렸다.

‘아~ 대성실업 김진아 과장.’

지혁의 첫 커리어 시작. 팍스버거 콜라보를 함께 했던 협력사 직원이다.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왔을까.’

하지만, 의아한 생각은 금세 해소되었다.

“자기야~!”

황 과장이 방긋 웃으며 한달음에 뛰어나갔다.

“어서 와~”

김진아 과장은 주변 눈치를 보며 말했다.

“나 진짜 와도 되는 자리지?”

“그럼~”

선도물산 직원들은 황당한 표정으로 이 풍경을 보고 있는데.

황 과장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소개해 드릴게요~ 제 여자친구인데요~ 송별회 참석하고 싶다고 해서 불렀어요~”

김진아 과장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성준 씨 여자친구 김진아라고 해요~ 호호.”

지혁은 웃으며 물었다.

“두 분 어떻게 된 거예요? 전혀 몰랐네?”

황 과장은 지혁에게 둘이 연인 사이가 된 걸 얘기 안 해줬었다.

“하하!”

황 과장은 큰 소리로 웃고는 지혁만 들리도록 작게 말했다.

“저번에 팀장님이 말씀해 주신 거 있잖아요. 적극적으로 구애하라고. 짐승도 하는 걸 왜 못하냐고.”

“······.”

“정말, 하니까 되더라고요. 많이 배웠습니다. 연애는 단순해야 한다! 하하!”

지혁은 가볍게 웃으며 생각했다.

‘하여간 임무 수행력 하나는 탁월해. 지나가는 말까지 놓치지 않는 거 보면.’

흐뭇한 표정으로 웃다가, 황 과장의 다음 말에 한번 더 놀랐다.

“저희 결혼도 할 거예요.”

“정말요?”

지혁은 곧바로 잔을 높이 들고 소리쳤다.

“다 같이 건배하시죠! 오늘 송별회가 중요한 게 아니네!”

사람들이 영문을 모르고 쳐다보자, 지혁은 큰 소리로 말했다.

“황 과장님 결혼한답니다! 하하!”

황 과장은 당황하여 지혁을 황급히 막으려 했으나, 한발 늦었다.

-우와~ 축하해요!

-황 과장님 좋은 일 많네~

황 과장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고.

옆에 있던 김진아 과장은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자기 결혼해?”

***

결혼 얘기는 김진아 과장과는 아직 얘기되지 않은, 황 과장의 바람이었다.

김진아 과장이 타박은 좀 하였지만, 싫어하는 내색은 아니었고. 프로포즈는 정식으로 다시 하라고 했다.

생각지 못한 이벤트는 즐거움을 더 해주었고.

지혁과 동료들은 웃고 즐기며 평일 밤을 지새웠다.

복직하여 회사생활 한 지, 2년도 채 안 되었다.

그런데도 할 얘기가 참 많았다.

지혁의 활약상을 얘기할수록 동료들은 떠나보낸다는 아쉬움은 커져갔다.

‘언제 또 이런 사람과 같이 일해볼 수 있을까.’

지혁이 지내온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시끄러웠고, 고성이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흔들림 없이 버티던 사무실 빌런들이 모두 사라졌다.

힘들었으나 분명한 결과가 있었으며.

가치가 있는 과정이었다.

“난 무엇보다도 심 부장님이 이동한 게 가장 큰 충격이었어.”

정 차장이 혀 꼬인 목소리로 말했다.

“뿌리 깊은 나무라고 생각했거든. 내가 그분과 친하다고 생각했지? 맞아. 친했지. 근데, 엄밀히 말하려면 친하려고 노력한 거야. 환경이 변할 수 없으면 내가 변하는 게 나으니까.”

상품기획 팀원들은 묵묵히 정 차장의 말을 들었다.

“아무리 상사가 엿 같아도 회사생활 해야 하잖아. 살아야 하니까. 애들 학원비, 생활비 있어야 하니까.”

쭉-

정 차장을 잔을 들이키며 말했다.

“근데, 심 부장님도 마찬가지거든. 자기만의 방식으로 생존해온 거지. 나이 많고, 연차 높은 사람이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그런 방식을 선택한 거야. 끊임없이 위기를 만들어내고, 사람을 솎아내며 자신의 자리를 견고히 하는······.”

윤 팀장이 웃으며 정 차장의 말을 받았다.

“그런데 웬 변종이 나타났지. 뒤집어 놓고, 휘저어 놓고. 처음엔 힘들었어. 큰일 났다고 생각했던 게 사실이야.”

그는 지혁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고맙게 생각해. 덕분에 나도 많이 변했고.”

멀찍이 숨어서 티 안 나게 일만 하던 윤 차장은 이제 상품기획 전체를 리드하는 선임 팀장이 되었다.

지혁의 상품기획 선배. 윤 팀장과 정 차장.

이 두 사람과 지혁은 서로 필요한 끈끈한 관계가 되어 있었다.

“지혁아. 아, 맞다.”

정 차장은 무심결에 반말로 부르고 나서, 살짝 눈치를 봤다.

“이렇게 불러도 돼?”

“여기 사무실 아니잖아요. 그리고 전 호칭은 신경 안 쓰니까. 편하게 하세요.”

“그래.”

정 차장은 싱긋 웃고는 물었다.

“너······ 비서실 가서도 이럴 거야?”

지혁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물었다.

“뭘요?”

손으로 살짝 지혁의 어깨를 밀치며 말했다.

“거기 가서도 다 뒤집어 놓고, 내치고, 찍어내고 그럴 거냐고~”

이 물음에 다른 동료들도 하던 대화를 멈추고, 지혁의 대답에 귀를 쫑긋했다.

“글쎄요.”

지혁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미래는 알 수 없죠. 하지만, 확실한 거 하나는.”

지혁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람 쉽게 안 변해요~ 하하.”

이 대답에 동료들은 열광했다.

-좋았어~!

-그래요! 가서도 매운맛 좀 보여줘요!

-비서실 사람들 콧대 높다던데, 오 팀장님 만나서 큰일 났네요~

-어머~ 기대돼~

윤 팀장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그 사람들······ 벌써부터 불쌍해 보이네.”

지혁은 잔을 들고, 소리쳤다.

“자~ 한잔하시죠!”

***

다음날.

지혁의 선도물산 마지막 출근날.

어제 술을 많이 마셔서 다들 숙취 때문에 힘들어했지만.

그래도 모두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서 여느 때처럼 일했다.

지혁은 오전 중에 업무 정리를 끝내고, 팀원들과 평소처럼 점심을 먹었다.

“팀장님과 먹는 마지막 점심이네요.”

지혁이 떠나는 걸 가장 아쉬워하는 손정진이 한마디 했고.

옆에서 정 차장이 쿡 찌르고 말했다.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안 그래도 기분 꿀꿀한데.”

“······.”

점심 식사 후, 오후 2시경.

지혁은 선도물산 건물 밖으로 나섰다.

걸어서 10분 거리. 룸 형태로 된 카페.

지혁이 약속된 장소에 들어가니,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상품기획 3팀장 윤현성 부장.

인사팀장 허용호 부장.

생산팀장 하재웅 부장.

개발팀장 고승윤 차장.

황성준 과장.

“모두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혁은 인사하며 가운데 자리에 앉았고, 그에 따라서 다섯 사람도 자리에 앉았다.

정적이 흘렀다.

서로를 알긴 하지만, 어색한 사이도 있었다.

“왜 이렇게 보자고 한 거야? 민망해서 혼났어.”

윤 팀장이 지혁의 귓가에 대고 작게 물었다.

“아, 맞다. 윤 팀장님께는 확실하게 안 물어봤었네.”

“뭘?”

지혁은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물었다.

“윤 팀장님은 제 사람이죠?”

“어?”

그는 눈을 깜빡이다가,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훑어보았고.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지혁이가 세력을 만들고 있었구나.’

지혁이 윤 팀장에게 확실하게 물어보지 않은 이유.

윤 팀장도 알고 있었다.

당연한 거니까.

물어볼 필요가 없는 당연한 거니까.

“그럼! 난 오지혁이 따라가지.”

지혁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섯 사람에게 말했다.

“전 회사생활에 목표가 있습니다.”

“······.”

“그래서 높이 올라갈 수밖에 없고요. 여기 다섯 분들도 저와 함께 올라갈 겁니다.”

지혁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고.

다섯 사람 또한 지혁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가 이미 보여준 모습들을 봤었기에.

“비서실에 가는 것도 그 과정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다섯 사람은 지혁의 말을 묵묵히 들었다.

“지금 황 과장님만 저와 함께 가지만, 머지않아 네 분도 곧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

“그때까지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검증된 분들과 손잡았기 때문에 굳이 당부의 말은 하지 않을게요. 알아서 잘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오 팀장님~ 걱정 마세요.

-이렇게 신경 써주시니 감사합니다.

지혁은 살짝 미소지은 후 말했다.

“제가 선도물산에 없는 동안, 윤 팀장님이 좌장 역할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내, 내가?”

윤 팀장은 개발팀장, 인사팀장, 생산팀장을 돌아보았다.

‘나보고 이 대단한 사람들 사이에서 좌장을 맡으라고?’

지혁은 윤 팀장을 제외한 세 사람을 보면서 말했다.

“윤 팀장님이 제 역할을 대신한다고 생각하시고, 잘 따라주세요. 앞으로 전할 일 있거나, 급히 논의할 게 있을 때 윤 팀장님 통해서 전파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윤 팀장님 잘 부탁드립니다.

-윤 팀장님이면 이견 없지~

다행히도 세 사람은 윤 팀장에 대한 이미지가 좋았다.

지혁은 선도물산에 남는 네 사람에게, 기대하는 역할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간략하게 얘기했다.

“그럼 근무시간이니까, 이 정도로 하죠.”

만난 지 30분 정도 지났을 쯤, 지혁은 자리를 정리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려다가, 잠시 고민한 후 말했다.

“어린 제가 이런 말 하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전 끔찍한 조직 생활을 몇 번 경험해 봤습니다. 그 생활을 끝마쳤을 때, 어떤 성과, 결과물보다도······.”

“······.”

“정말 믿을 사람 한 명 남기는 게, 훨씬 어렵더군요.”

지혁은 다섯 사람을 보며 말했다.

“다섯 분을 보니, 전 선도물산에서 확실히 성공한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지혁은 고개를 숙여 정중히 인사했고.

짝짝짝.

다섯 명은 일제히 큰 박수를 보냈다.

***

마지막 날, 지혁은 일부러 밤늦게까지 야근을 했다.

지혁의 떠나는 것에 동요하는 직원들이 많았기에.

분위기를 흐리고 싶지 않았다. 일부러 직원들 다 퇴근한 시간을 기다렸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선도물산 마지막 근무를 조용히 마쳤다.

하루가 지나, 선도본관 첫 출근 날이 되었다.

집 밖을 나서기 전, 지혁은 넥타이를 꽉 매고 거울을 보고 웃었다.

‘이 긴장감 좋아. 처음엔 관찰부터 해야겠지.’

“자기야~ 나 갔다 올게.”

“오늘 좀 일찍 가네?”

“초행길이니까. 뭐, 전철로 가니 헤맬 일은 없겠지만.”

지혁은 현관 밖으로 나왔고.

수아는 따라 나와서 크게 외쳤다.

“우리 신랑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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