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104화 (104/301)

104. 본능(1)

지혁과 황 과장은 의전팀장을 따라서 복도를 걸어갔다.

의전팀장과는 약 2m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황 과장은 볼멘소리로 지혁에게 말했다.

“저분 왜 지혁 씨한테는 존대하고, 저한테는 반말하는 걸까요?”

“글쎄요.”

“아무리 직급 차이가 있지만, 둘 다 같은 부하직원인데······.”

황 과장은 반말 듣는 것 자체는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자신을 대하는 게 지혁을 대하는 것과 확연히 다르니 불쾌감이 느껴졌다.

지혁은 황 과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황 과장님이 동안이라 저보다 어려 보이나 보죠.”

둘은 네 살 차이다.

황 과장은 지혁의 말에 기분이 좀 나아졌다.

“그리고 제가 팀장직에 있었다는 걸 아셔서 그럴 수도 있어요. 곧 저한테도 말 놓겠죠.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지혁은 황 과장에게만은 참 다정했다.

황 과장은 지혁의 말이 고마워서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알았어요.”

덜컹.

의전팀장은 비서실 문을 열며 소리쳤다.

“이 부장!”

검은색 슈트를 깔끔하게 차려입은 한 남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170 정도의 크지 않은 키에 다부진 체격의 소유자였다.

“네! 팀장님!”

그는 의전팀장의 부름에 재빨리 앞으로 달려왔다.

“신입······.”

의전팀장은 지혁의 눈치를 보고는, 단어를 바꿔서 말했다.

“이분들 안내 좀 해줘. 난 회장님 모실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이 부장은 지혁과 황 과장을 번갈아 보며 의전팀장에게 물었다.

“오지혁 차장님 오신 건가요?”

“그래. 거기 오른쪽에 계신 분.”

이 부장은 지혁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의전팀 이동환 부장이라고 합니다.”

“네, 반갑습니다.”

이 부장은 황 과장을 아예 투명인간 취급했다.

황 과장은 입맛을 다시다가, 먼저 인사했다.

“부장님, 안녕하세요. 전 황성준 과장이라고 합니다.”

이 부장은 시선을 지혁에게 둔 채, 황 과장 인사에 건성으로 대답했다.

“아······ 그래요. 반가워요. 두 분 이쪽으로 오시죠.”

***

의전팀장은 팀장실로 들어갔고, 사무실에는 세 사람밖에 없었다.

꽤 넓은 공간. 빈 책상도 많이 보였다.

지혁이 이 부장에게 물었다.

“비서실 직원 수가 어떻게 됩니까?”

이 부장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비서실장님 제외하고 팀장님 포함 총 7명이에요.”

“근데 왜 아무도······.”

이 부장은 빈자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비서는 외부 업무가 많거든요. 회장님 근거리에서 보조를 맞춰야 하니까.”

“아······.”

“특히 지원팀의 경우는 더 그렇죠.”

“지원팀?”

지혁이 고개를 갸웃하자, 이 부장이 말했다.

“잘 모르시겠구나. 제가 간단히 설명해 드릴게요. 자세한 건 지내면서 알아가시고.”

“네, 부탁드립니다.”

이 부장은 황 과장에게 말했다.

“우선······ 황 과장님이 비서실 전체 막내예요.”

“저 과장인데요.”

“과장이니까요. 과장 비서는 몇 년 만에 받아보네.”

황 과장의 동공이 흔들렸다.

‘내가 회사생활 몇 년을 했는데······ 막내라고? 나보고 막내 생활을 다시 하라고?’

불길한 예감이 현실화되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저기에 드립 커피 있는데, 석 잔만 좀 가져올래요? 손에 든 거 없이 대화 나누려니까 어색하네.”

이 부장은 자연스럽게 황 과장에게 심부름을 시켰고.

막내 황 과장은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지혁은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어 같이 일어나려 했다.

“같이 안 가셔도 돼요. 트레이 있거든요.”

지혁은 다시 자리에 앉았고.

커피를 타러 가는 황 과장의 뒷모습을 보는 게 불편했다.

‘아······ 엄청 미안하네.’

황 과장을 이곳으로 데려온 장본인이기에 미안함을 느꼈다.

“비서실에는 의전팀과 지원팀이 있는데요.”

지혁은 커피를 타고 있는 황 과장을 보며 말했다.

“황 과장님 오시면 설명해주시죠.”

“나중에 오 차장님이 설명해주면 되잖아요. 시간 없으니까, 바로 얘기할게요.”

‘아무리 막내라지만, 너무 막 대하네.’

들이받고 싶은 마음이 약간 들었으나, 첫날이니까 좀 두고 보자 싶었다.

이 부장은 설명을 이어갔다.

“의전팀 4명. 지원팀 3명. 이렇게 총 7명이에요. 팀장님들 포함해서요.”

지혁은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그럼 9명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저희 두 명 새로 왔으니까.”

“7명이에요. 의전팀 두 명은 지난주에 다른 부서로 이동했거든요.”

“아······.”

이 부장은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혼자서 정말 힘들었거든요? 오래오래 잘 버텨주세요. 부탁드릴게요.”

그때, 황 과장이 커피를 가져 왔고, 지혁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이 부장은 당연한 듯 커피를 받은 후, 말을 이어갔다.

“지원팀은 회장님 생활 전반 경호 및 보조 업무를 하고요. 의전팀은 공식 외부활동의 일정 조율, 이동 경로, 사전답사, 미팅 장소 섭외, 휴식공간 마련 등의 일을 해요.”

이 부장의 설명을 들으며, 왜 의전팀과 지원팀으로 나뉘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아무래도 지원팀이 회장님과 더 가까이 지낼 수 있겠네. 좀 아쉬운데.’

이 생각에 이르자, 지혁은 이 부장에게 물었다.

“팀 간에 이동도 하나요?”

이 부장은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해요. 자리가 생겨야 이동이 되는데······ 지원팀은 몇 년째 확고해서. 아, 뭐 지원팀에서 의전팀으로 이동하는 건 가능하겠네. 의전팀은 자리가 잘 생기니까. 하하.”

자리가 잘 생긴다는 건 문제가 많다는 의미다.

황 과장 또한 오랜 회사생활로 이 사실을 알고 있기에, 얘기를 들으며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부장은 지혁과 황 과장의 표정을 살피다가 물었다.

“두 분 비서직은 처음이시죠?”

지혁이 대답했다.

“네 처음입니다.”

“흠······ 고도의 스킬이 필요한 업무는 아닌데. 일반직과 다른 게 있다면······ 근무시간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 정도죠. 아, 그리고 반드시 기억해야 할 몇 가지 철칙이 있어요.”

회장의 동선을 맞춰야 하므로, 근무시간이 유동적일 거라는 생각은 했었다.

“철칙이 뭔지 알려주시죠. 유념하겠습니다.”

이 부장은 중요함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보고도 못 본 척. 입을 무겁게 할 것.”

“······.”

“이게 가장 중요한 철칙이니, 꼭 명심하세요. 이 외에도 많지만, 그건 차츰 알아가기로 하고요.”

“알겠습니다!”

황 과장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이 부장은 시계를 보며 말했다.

“시간 됐네. 이동합시다.”

꿀꺽.

황 과장은 겁이 확 났다.

‘뭐야? 벌써 시작이야? 설마······ 아니겠지? 오늘 왔는데.’

“저······ 어디로 이동합니까?”

황 과장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디긴요. 우리가 누구 비서입니까?”

겁먹은 황 과장과 달리, 지혁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만나겠구나.’

“갑시다.”

이 부장은 한 마디 뱉은 후, 곧바로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

성북동.

거대한 성 같은 저택 앞에 멈췄다.

검은색 외제 차 3대를 저택 앞에 세운 뒤, 기다렸다. 의전팀장도 함께 왔다.

“여보세요? 추 팀장님.”

이 부장이 지원팀장에게 전화했다.

“저희 도착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의전팀장이 물었다.

“뭐래?”

“10분 정도만 기다려 달랍니다. 회장님께서 갑자기 화장실 들어가셨다고.”

의전팀장은 시계를 보고 말했다.

“안 늦겠지?”

빨리 가도 늦게 가도 안 된다. 시간은 항상 정확하게 맞춰야 한다.

오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내려왔지만, 그는 여전히 바쁘게 지냈다.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쓰는 습관은 버리지 않았다.

의전팀장은 지혁과 황 과장을 불렀다.

“두 사람. 이리로 와봐.”

의전팀장이 말했다.

“이제 말 편하게 했으면 하는데, 괜찮을까?”

의전팀장은 지혁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그는 상남자 타입인데도, 이상하게 지혁을 좀 어려워했다.

“네, 전 괜찮습니다. 편하게 하세요.”

“저도 괜찮습니다!”

황 과장의 대답까지 들은 후, 의전팀장이 말했다.

“이 부장에게 설명은 들었겠지만, 오늘 회장님은 코엑스 가전전시회를 방문하실 거야. 선도전자가 주관하고 세계에서 주목하는 행사거든?”

두 남자는 묵묵히 그의 말을 들었다.

“일정은 길지 않아. 약 15분 정도 참관할 예정인데. 뭐, 회장님 마음에 따라서 일정은 바뀔 수도 있어.”

“······.”

“오늘 처음이잖아. 두 사람한테 바라는 거 없어. 그냥 조용히 주변에 서서 이 부장이 어떻게 일하는지 관찰해. 아무것도 하지 마.”

의전팀장은 한번 더 강조했다.

“다시 말하는데, 뭔가 하려고 하지 마. 오늘은 관찰만 하는 거야. 알겠지?”

“알겠습니다.”

저벅. 저벅.

그때, 대문 안에서 여러 사람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지원팀장이 문을 열었고.

오종건 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럴 수가······.’

주륵.

지혁은 그의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무표정한 얼굴에서 물방울 하나가 떨어졌다.

표정만 보면, 눈이 시려서 눈물을 흘린 것처럼 보였는데.

‘아버지······.’

두근. 두근.

지혁의 심장은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마치 사진 속의 아빠를 실제로 만난 것 같았다.

사진 속 젊었을 적 아빠를 수십 년 뒤 나이 들어 만난 듯한 기분.

오 회장의 얼굴을 몰랐던 건 아니다.

뉴스와 신문에서 심심치 않게 보이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실제로 만나보니 달랐다.

설명하기 힘들지만, 자석에 이끌리듯 강하게 끌리는 느낌이랄까.

기억에 없는 아버지.

지혁의 삶에 없었던 아버지를.

만난 것 같았다.

“오 차장님······.”

찰나의 순간이지만, 황 과장은 바로 옆에 있어서 지혁의 눈물을 봤다.

‘아니겠지? 잘못 본거겠지?’

오 회장은 차에 타려다가, 지혁과 황 과장을 봤다.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

의전팀장은 오 회장 앞으로 달려와서 말했다.

“네, 의전팀에 새로 온 비서들입니다.”

“그래. 반갑네. 잘 부탁하네.”

오 회장은 손을 내밀었고, 지혁과 황 과장은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악수를 받았다.

악수를 마친 뒤, 오 회장의 시선이 지혁의 얼굴에 꽂혔고.

그의 눈빛이 일렁였다.

지혁 또한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잠시 그렇게 서로를 보다가.

오 회장은 안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지혁에게 건네었다.

“필요하면 쓰게.”

오 회장은 차에 탔고, 의전팀까지 각 차에 나눠탄 후 출발했다.

***

찰칵! 찰칵!

현장에 도착하니 난리였다.

카메라 셔터 소리에 정신이 하나도 없고, 대낮인데도 조명 때문에 눈을 뜨기 힘들 정도였다.

현장에 있던 경호팀은 오 회장 주변으로 몰려드는 기자들을 육탄방어로 막았다.

“와······ 대박.”

황 과장은 놀라서 입을 벌리고, 이 광경을 바라봤다.

사무실에서 근무만 하던 사람으로서, 이런 풍경이 놀랄 만했다.

[선도 직업병 책임져라!]

[소비자 화학물질 알 권리 보장하라!]

[가학적 노무관리 해결하라!]

한쪽에서 머리에 띠를 두른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외치는 소리도 들렸다.

국내 최대 대기업 총수.

오 회장의 등장 여파는 엄청났고.

코엑스 전체가 들썩거리는 것 같았다.

이 정신없는 상황 속.

지혁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한 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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