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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106화 (106/301)

106. 거짓말을 할까

‘오 회장이 어머니 얼굴을 알 텐데.’

아무리 세월이 지났어도, 오 회장과 지혁의 어머니는 몇 년간 봐온 사이다.

오 회장이 어머니를 못 알아볼 리 없다고 생각했다.

어머니 또한 당혹스러운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더니.

“엄마 먼저 가야겠다.”

“네? 저희 지금 왔는데요?”

아무것도 모르는 수아는 황당한 얼굴로 어머니를 바라봤다.

지혁은 어머니의 심정을 알기에 선뜻 말릴 수 없었다.

“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

수아는 어머니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걱정스럽게 물었고.

그럴수록 어머니는 더 초조해했다.

‘이러다가 마주치겠어.’

빨리 병실을 떠나고 싶었다.

오 회장을 만나는 게 껄끄럽기도 하지만, 왠지 아들에게 피해 줄 것 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자기야! 안 말리고 뭐 해? 어머니 가신다잖아.”

지혁은 고민했다.

‘오 회장이 어머니를 만나게 되면, 내 정체를 알게 되겠지. 아직 일러. 하지만······.’

많은 걸 잃더라도 이성적으로만 판단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

지금은 어머니가 자리를 피해 주는 게 상황적으로 유리했지만.

‘이건 도망치는 거잖아.’

어머니를 도망치게 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목표 때문에 가족을 욕되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가 뭘 잘못했다고.’

“어머니 가지 마세요.”

지혁은 단호하게 말했다.

“지혁아······.”

“가지 마세요. 왜 피해요?”

수아는 눈을 끔뻑거렸다.

“피해? 뭘 피해?”

어머니는 수아의 눈치를 본 후, 지혁에게 말했다.

“얘야······.”

“그냥 계세요. 정 불편하시면 오 회장님보고 돌아가라고 할게요.”

“······.”

말을 하다 보니 지혁은 짜증이 났다. 스스로에 대해, 그리고 이 상황에 대해서.

“왜 숨냐고! 대체!”

버럭 소리를 지른 후, 지혁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어머니는 안쓰러운 눈으로 지혁을 바라보다가.

“지혁아, 엄마는 괜찮아.”

“······.”

“별일 아니야. 다 때가 있어.”

어머니는 핸드백을 들고,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집에서 보자. 몸조리 잘하렴.”

어머니는 몸을 돌려서 병실 밖을 나갔고.

지혁은 어머니를 차마 잡을 수 없었다.

***

똑똑.

의전팀장이 문을 두들기고 들어왔다.

“오 차장, 오 회장님 들어오시네.”

“네.”

잠시 후.

저벅. 저벅.

묵직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오 회장이 나타났고.

그 뒤로 비서실과 경호원 대여섯 명이 따라 들어왔다.

시커먼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떼 지어 들어오니, 수아는 위압감을 느꼈다.

“안녕하세요?”

오 회장은 수아를 향해 인사말을 건넸다.

“아, 안녕하세요.”

수아는 말을 더듬으며 인사했다.

TV에서만 보던 대한민국 최대 기업 총수를 만나니,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직원 걱정이 되어서 왔습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아닙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아는 공손하게 회장의 말을 받았다.

오 회장은 지혁이 앉아 있는 맞은편 병상에 서서 물었다.

“몸은 좀 어떤가?”

“괜찮습니다. 일어나서 뵙지 못해 송구합니다.”

“환자잖아. 괜찮아.”

오 회장은 병실 주변을 돌아보며 물었다.

“뭐 불편한 건 없나?”

“없습니다.”

“지원팀장.”

오 회장은 나직한 목소리로 지원팀장을 불렀고.

“네!”

지원팀장이 어디선가에서 바람처럼 나타났다.

“병실이 너무 건조한 거 같은데? 이래도 되나?”

“안 됩니다! 바로 가습기 추가 조치하겠습니다.”

“흠······.”

지원팀장은 어딘가로 전화를 하며, 나갔고.

오 회장은 앉아 있는 지혁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자네와 얘기를 좀 나누고 싶네만······.”

이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뒤에 있던 수행원들이 병실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고.

옆에서 긴장된 얼굴로 서 있던 수아는 잠시 생각하더니.

“아, 자기야. 나 차에 뭐 좀 놔두고 와서. 잠깐 갔다 올게.”

“차? 병원에 캠핑카 끌고 온 거야?”

“조용히 해.”

수아는 주먹을 살짝 들어 보이고는 오 회장에게 웃으며 말했다.

“두 분 대화 나누세요~ 천천히 올게요.”

오 회장은 옅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드르륵-

수아까지 문을 닫고 나간 뒤.

병실에는 오 회장과 지혁만 남았다.

지혁은 병상 옆의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회장님, 앉으시죠.”

“그래.”

오 회장은 자리에 앉은 뒤 물었다.

“팔 정말 괜찮나?”

“네, 괜찮습니다. 뼈에도 이상 없고요. 지금 당장 생활해도 무리 없을 것 같습니다.”

지혁이 아무리 또라이여도 오 회장 앞에서는 깍듯했다.

어찌 보면 대한민국에서 5년마다 바뀌는 대통령보다도 더 힘 있는 사람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큰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래, 아까 왜 그런 건가?”

“······.”

“왜 그렇게 무모한 짓을 했어? 자네 임무도 아니었잖아. 경호원들이 있는데.”

간단한 질문이지만, 지혁으로선 대답하기 어려웠다.

왜냐면······ 스스로도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본능입니다.”

“뭐?”

“그냥 몸이 반응했습니다. 특별한 생각은 없었습니다.”

오 회장에게 위협이 되는 상황이 보이자, 몸이 반응한 거였다.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눈에 띄고자 한 행동은 아니었다.

지혁 또한 그런 자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오 회장은 지혁이 대답이 의외라는 듯, 고개를 젓고는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

“회사 오기 전에 특별한 일을 했었나 보군.”

오 회장은 본능적으로 그런 행동이 나온 건 몸에 익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네, 그렇습니다.”

지혁은 설명하기 애매한 부분이라 그냥 수긍했다.

“그리고 말이야.”

오 회장은 지혁의 눈을 유심히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 혹시 만난 적 있나?”

“······.”

“왜 이렇게 낯익은 기분이 들지?”

오 회장은 저택 앞에서 지혁을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다.

‘처음 온 직원이고, 예전에 만났을 리가 없는데······.’

혹시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싶어서 물은 거였지만.

“만난 적 없습니다.”

“······.”

“전 언론을 통해서만 회장님 뵈었었고요. 실제로는 오늘 뵌 게 처음입니다.”

“그렇지?”

오 회장은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그리고, 아까 왜 그랬나? 자네 눈물 흘린 거 말이야.”

“제가 찬 바람 불기 시작하면, 알레르기가 심합니다.”

“아, 그래서 그런 거였구먼. 어쩐지.”

지금은 9월. 잡초류 알레르기가 심할 때다.

지혁은 혹시 오 회장이 물어볼까 봐, 눈물에 대한 사유를 생각해뒀었다.

“손수건은 잘 썼습니다. 잘 세탁해서 돌려드리겠습니다.”

“됐네. 가지든지 버리든지 하게.”

두 사람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안부는 전했고, 어딘가 모를 낯익은 인상에 관해서도 확인했다.

더 나눌 얘기는 없었지만, 오 회장은 뭔가 아쉬웠다.

‘이상해. 왜 이렇게 찜찜한 기분이 들까.’

“아, 그러고 보니.”

오 회장은 지혁을 바라봤다.

“자네도 오 씨네?”

“네?”

지혁은 순간 당황하여 반문했다.

“오지혁이 아닌가?”

“맞습니다.”

“본관이 어딘가?”

지혁은 순간 고민했다.

여기서 본관을 물어볼 거라고는 생각 못 했었다.

‘거짓말을 할까?’

대한민국 희귀 성인 ‘연일 오 씨’라고 하면, 오 회장이 이상하게 볼 것 같았다.

‘아니야. 어차피 인사기록 카드에도 있고. 회사에 아는 사람도 몇 있잖아. 들통날 가능성이 높아. 거짓말하는 게 더 이상해.’

생각이 이에 이르자 지혁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연일입니다.”

.

.

.

.

“연일?!”

오 회장은 눈을 부릅떴다.

“진짜 연일이라고? 자네 본관이?”

“네, 맞습니다.”

“맙소사.”

예상했던 것보다 오 회장은 더 놀랐다.

‘내가 80 평생 살아오면서 내 가족 말고는 연일 오 씨를 본 적은 거의 없는데.’

“아버지는? 아버지 무슨 일 하시나?”

두근!

오 회장은 대뜸 아버지를 물었다.

지혁은 일이 꼬여감을 느꼈다.

‘제발 성함까지는 묻지 마라.’

지혁은 고민하다가.

“오래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아······ 그래. 미안하네. 괜한 질문을 했군.”

“아닙니다.”

지혁은 대답한 후, 곧바로 왼쪽 팔을 붙잡고 인상을 썼다.

오 회장은 놀라서 물었다.

“왜? 팔 아픈가?”

“오래 앉아 있었더니 좀 불편하네요.”

지혁은 연기한 것이다. 대화를 빨리 끝마치기 위해.

“어쩌다 보니 말이 길어졌군. 지원팀장!”

[네!]

병실 문이 열리며, 지원팀장이 한달음에 뛰어 들어왔다.

“갈 준비 하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지혁 차장 부인 들어오시라고 해.”

지원팀장은 이 지시에 약간 움찔했다.

‘오지혁 차장? 이름을 다 아시네. 몇 년간 가까이서 일했어도 이름 불려본 적은 없는데.’

잠시 후.

수아가 쭈뼛쭈뼛 들어왔다.

약속이 되어있는 듯, 지원팀장은 오 회장에게 봉투를 건네었고.

오 회장은 받은 봉투를 수아에게 주며 정중하게 말했다.

“약소하지만, 위로금입니다.”

“어머······.”

“병원비는 회사에서 다 알아서 할 거니까요. 이 건 요긴한데 쓰세요.”

“뭘 이런 걸 다······.”

수아는 봉투를 받아도 되나 싶어서 지혁의 얼굴을 바라봤는데.

돈 좋아하는 지혁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어서 받으라고.

“감사합니다.”

“제가 감사하죠. 오 차장 덕분에 큰 위험을 피했어요.”

오 회장은 지원팀장에게 말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 불편한 거 없도록 잘 조치하게.”

“알겠습니다.”

오 회장은 수아를 향해 살짝 웃으며 말했다.

“밤늦게 실례가 많았어요.”

“별말씀을요. 살펴 가세요.”

오 회장은 지혁에게도 한마디 했다.

“몸조리 잘하게.”

지혁은 정중하게 묵례했고, 오 회장과 수행원들은 모두 나갔다.

“휴- 숨 막혀.”

오 회장이 나간 뒤, 수아를 한숨을 크게 쉬었다.

“포스 장난 아니다. 그룹 회장님이라 그런가?”

“뭐, 그렇겠지.”

수아는 지혁을 유심히 보며 말했다.

“근데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더라?”

“아니야. 나도 많이 긴장했었어.”

수아는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쨌든~ 자기 덕분에 그룹 회장님한테 봉투도 받고~ 아! 지금 확인해 보자.”

수아는 싱글벙글 웃으며 봉투를 열었다.

“그룹 회장님이니까, 백 단위는 주지 않았을까?”

이때만큼은 지혁도 신나서 말했다.

“그 정도는 주셨겠지. 근데 봉투가 좀 얇은데?”

지혁이 아쉬워하는 낯빛을 보이자, 수아가 웃으며 말했다.

“실망은 내용물 본 뒤에 하자. 호호.”

천천히 봉투를 열어서, 금액을 확인했고······.

“어머······.”

분명 봤지만, 두 눈을 의심했다.

“미쳤나 봐······ 이거 받아도 되는 거야?”

지혁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얼만데 그래?”

수아가 대답 대신 들어 보인 건.

1,000만 원권 수표 세 장이었다.

‘3,000만 원’

***

병원에서 이틀을 보내고.

집에서 하루 더 쉰 뒤, 회사에 좀 늦게 출근했다.

왼팔에는 아직 붕대를 감고 있었으나, 옷 밖으로 보이진 않았다.

선도본관 27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는데.

멀리서 고성 소리가 들렸다.

[머리는 장식으로 들고 다녀?]

[왜 시키는 일도 제대로 못 하나?]

지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비서실 쪽에서 들리는 소리 같은데.’

[사람 다시 뽑아야 해? 어?!]

[마지막 경고야! 여기 오고 싶어 하는 사람 줄 섰어!]

비서실에 가까워질수록 고성 소리는 점점 커졌고.

지혁은 미간을 찌푸리고, 문을 열었다.

비서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황 과장이 서 있었고.

그 앞에 의전팀장이 삿대질하고 있었다.

“어?”

의전팀장은 지혁의 얼굴을 보고 당황했고.

“오 차장님······.”

황 과장은 촉촉한 눈으로 지혁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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