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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107화 (107/301)

107. 매운 맛

‘이 개새끼들이······.’

안 그래도 의전팀장과 이 부장이 황 과장을 막 대하는 거 볼 때 아니꼬웠는데.

막상 현장을 목격하니, 지혁은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실실 쪼개고 있던 이 부장은 지혁을 보자마자, 표정을 싹 바꿨고.

의전팀장도 바로 목소리를 줄였다.

“뭐 하는 겁니까?”

지혁의 물음에 의전팀장은 바로 태도를 바꿨다.

“황 과장, 자기 생각해서 하는 말인 거 알지?”

황 과장은 갑자기 바뀐 의전팀장의 태도가 어이가 없었다.

‘생각해서 죽도록 패는 거야?’

지혁은 한바탕 쏟아내려다가, 의전팀장이 이렇게 나오니 멈칫했다.

“오 차장 왔어?”

의전팀장은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고.

이 부장도 다가와 지혁의 팔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왜 나왔어요? 좀 더 쉬지. 몸은 괜찮아진 거예요?”

“······.”

지혁은 대답 대신 두 사람을 노려봤다.

“제가 물었잖아요. 뭐 하는 거냐고. 황 과장님 이쪽으로 오세요.”

황 과장은 풀죽은 얼굴로 지혁의 등 뒤로 가서 섰다.

의전팀장과 이 부장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오 차장은 건드리면 안 돼.’

지혁의 소문이 어마어마하기도 했지만, 이틀 전 전시회장에서 괴한을 박살 내는 장면까지 보고 나니.

그가 더 어려워졌다.

의전팀장은 이 부장을 툭툭 건드렸고.

이 부장이 목소리 톤을 올려서 말했다.

“그냥~ 업무 얘기 좀 하고 있었어요.”

“비서실은 눈과 귀를 조심해야 한다더니, 업무 얘기를 그렇게 큰소리로 합니까? 밖에서 다 들리던데.”

이 부장은 은근슬쩍 의전팀장에게 공을 돌렸다.

“팀장님~ 목소리가 너무 크셨나 봅니다.”

의전팀장은 지혁의 눈치를 보더니,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러게. 앞으로 목소리 좀 줄일게. 황 과장 미안~”

의전팀장이 어깨를 쓰다듬으려 하자, 황 과장은 움찔했다.

‘이상해······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아무래도 따로 얘기를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황 과장님. 저랑 차 한잔하시죠.”

“아······.”

황 과장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의전팀장의 눈치를 봤고.

“어~ 갔다 와. 갔다 와~”

의전팀장은 사람 좋게 웃으며 손짓했다.

***

지혁은 황 과장을 데리고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의 카페를 찾아갔고.

자리를 잡은 뒤, 지혁이 말했다.

“뭐 드실래요?”

“앉아 계십시오. 제가 갔다 오겠습니다.”

황 과장은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잡일은 본인이 해야 한다고 세뇌된 듯했다.

“아닙니다. 계세요. 제가 갔다 올게요.”

그래도 일어서 있자, 지혁은 그를 억지로 잡아 끌어 앉혔다.

황 과장은 불편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전 아메리카노 따뜻한 거 마시겠습니다.”

“왜요? 아이스 좋아하시잖아요?”

“속이 허해서요. 따뜻한 거 마셔야겠습니다.”

“······.”

잠시 후, 지혁은 커피를 가져왔고. 황 과장은 두 손으로 커피를 꼭 잡고 호호 불며 마셨다.

몸을 웅크리고 커피를 붙잡고 있는 모습이······ 어쩐지 짠해 보였다.

“저 없는 동안 힘들었나요?”

지혁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 눈에 봐도 황 과장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머리숱도 좀 적어진 거 같고, 피부도 푸석해 보였으며.

눈 밑에 다크서클이 가득했는데, 아파 보일 정도였다.

‘도대체 뭔 일이 있었기에······ 며칠 새에.’

“······.”

황 과장은 커피를 마시며 대답하지 않았고.

지혁은 잠자코 기다렸다.

“오 차장님.”

“네.”

드디어 입을 연 황 과장은 슬픈 눈으로 지혁을 바라봤다.

“저······ 아무래도 회사 관둬야겠습니다.”

“······?!”

지혁은 깜짝 놀랐다.

우직한 소 같은 황 과장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왜, 왜요?”

너무 놀란 나머지 지혁답지 않게 말을 더듬었다.

“도저히 못 다니겠습니다.”

“······.”

“직무도 안 맞고요. 이 연차에 막내 생활하는 것도 너무 힘듭니다.”

“······.”

“집에서 출퇴근 시간 가까워진 거 말고는 좋은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황 과장의 눈은 다시 촉촉해져 있었다.

“솔직히······ 저 지금은 오 차장님이 좀 원망스럽습니다.”

쿵.

이 말에 지혁은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과장님······ 발령받은 지 아직 일주일도 안 지났는데······.”

황 과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회사생활 하루 이틀 해봅니까. 며칠 다녀보면 알죠. 시간이 갈수록 저에겐 더 지옥이 될 겁니다.”

“······.”

“아무리 상황이 엿 같아도, 사람이라도 맞으면 어떻게든 버티겠는데······.”

황 과장은 눈물을 찔끔 흘렸다.

“제가 자존감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바보 취급을 받으며 회사에 다닐 수는 없습니다.”

지혁은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병원에 입원해 있느라, 자리를 비운 거긴 했지만······.

“비서실에 계신 분들 다들 잘 나시고 대단한 거 알겠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사람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겁니까? 툭 하면 사람 다시 뽑아야 하냐 그러고, 업무 속도 좀 느리다고 하자 있는 사람처럼 취급하질 않나.”

“······.”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이상한 거 아니에요?”

황 과장은 격정적인 목소리로 물었고. 지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특출난 사람들밖에 없으니, 저 같은 범인이 이상한 사람 되는 거잖아요.”

미래기획실과 비서실은 선도그룹에서 내로라하는 인재들만 모인 곳이다.

특출남이 있는 수재 혹은 천재급들.

“똑똑하면 뭐 해. 인성이 거지 같은데.”

황 과장은 어울리지 않게 거친 말을 뱉어냈고.

지혁은 황 과장의 얘기를 들으며, 그의 고충을 파악했다.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어.’

지혁은 황 과장의 손을 잡고 말했다.

“과장님.”

지혁은 황 과장의 눈을 지그시 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모셔 왔으면 제가 더 세심하게 챙겼어야 했는데, 안일했네요.”

“······.”

“앞으로 딱 일주일만 계셔 보실래요. 그동안 제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

“그것도 긴가요? 그럼 3일만 버텨보세요.”

황 과장은 고개를 푹 숙였고.

지혁은 계속 말했다.

“전 머리 좀 좋은 사람들보다 황 과장님이 훨씬 더 많은 가치를 지니셨다고 생각해요.”

“······.”

“전 그런 걸 볼 줄 압니다. 그래서 황 과장님을 선택한 거고요.”

지혁은 잡은 손을 꽉 쥐고서 힘주어 말했다.

“자존감은 스스로 챙겨야 합니다. 별 볼 일 없는 인간들 때문에 기죽지 마세요.”

후우-

황 과장은 뭐라고 대답은 못 하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지혁의 눈이 무섭게 변했다.

그는 시계를 본 뒤 말했다.

“저 먼저 들어갈게요. 한 15분 정도 늦게 들어오세요.”

“어쩌시려고······.”

황 과장은 지혁의 성격을 알기에, 지금 뭔가 하려는 걸 눈치챘다.

“씨발, 내 사람 건드렸는데, 가만히 둡니까?”

***

덜컹!

지혁은 비서실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왔다.

“팀장님!”

지혁은 들어오자마자 크게 소리쳤다.

“의전팀장님!”

다시 한번 버럭 소리를 질렀고, 사무를 보고 있던 이 부장은 깜짝 놀라서 일어났다.

의전팀장은 팀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비서실 밖에서도 술렁이는 소리가 들렸다. 미래기획실에서도 지혁이 소리 지르는 걸 들은 것이다.

“어? 나 불렀어? 왜에?”

의전팀장은 쫄리는 얼굴로 지혁을 바라봤다.

“잠깐 대화 좀 하시죠?”

“지금? 나 바쁜데?”

그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걸 보고 피하려 했다.

“5분도 안 걸려요. 어서 오세요.”

기세에 눌린 나머지, 의전팀장은 쭈뼛쭈뼛 지혁 앞으로 다가갔고.

“이 부장님!”

지혁은 이 부장도 불렀다.

“네?”

“이리로 오세요. 같이 들으세요.”

이 부장도 지혁의 앞으로 갔다.

지혁은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두 사람을 바라봤고.

두 남자는 지혁 앞에 살짝 몸을 웅크리고 서 있었다. 위협을 앞에 두었을 때 나오는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지혁은 고개는 돌리지 않고, 비서실 밖에서 구경하는 사람들 들으라고 소리쳤다.

“구경하고 싶으면 안으로 들어오세요! 쥐새끼마냥 훔쳐보지 말고!”

이 말 한마디에 미래기획실 사람들은 싹 사라졌다.

꿀꺽.

지혁의 앞에 선 두 사람은 마른 침을 삼켰다.

“두 분.”

지혁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게 잘 나셨어요?”

“······.”

“얼마나 잘났으면 팀원 새로 오면 다 밀어냅니까? 혼자 일 다 하고 싶어서?”

이 부장은 천천히 두 손을 뒤로 돌려 뒷짐을 지었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마치 군대에서 분대장에게 혼나는 것 같았다.

지혁은 눈이 돌아가 있었고.

가려서 말하지 않았다.

“밀어내든 지랄을 하든 상관없는데.”

꿀꺽.

의전팀장은 시선을 내리깔고, 침을 꼴깍 삼켰다.

감히 지혁의 눈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자꾸 며칠 전 코엑스 전시회 장에서의 지혁의 모습이 떠올랐다.

“황 과장님 건드리지 마세요.”

“······.”

“저한테 하는 태도 보니까, 소문 좀 들으신 거 같던데.”

“······.”

“전 눈 돌아가면 직급, 절차, 규정, 가족 사정 이딴 거 안 따집니다.”

지혁은 짓이기듯 말했다.

“그냥 뒤집니다.”

“······.”

지혁은 두 남자의 눈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알겠죠?”

“······.”

“말로 하는 건 이번뿐입니다. 제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면, 황 과장님 계속 건드리시면 돼요.”

이 부장은 속으로 다짐했다.

‘앞으로 황 과장한테 정말 잘해야지.’

“질문?”

지혁은 두 사람에게 물었고.

“······.”

고개만 푹 숙이고 대답하지 않았다.

“5분 안 걸렸죠. 이제 가서 일 보세요.”

두 남자는 천천히 몸을 돌리고 걸음을 옮겼는데.

“아!”

지혁의 외침에 두 사람은 다시 자리에 얼어버렸다.

“앞으로 황 과장님한테 커피 심부름시키지 마세요.”

***

지혁은 황 과장에게 한 약속을 지켰다.

3일만 버텨달라고 했는데, 하루면 충분했다.

의전팀장과 이 부장은 지혁에게 한 소리 들은 이후로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고.

황 과장은 점점 자기 페이스를 찾아갔다.

뭔가를 할 때마다 타박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점점 자신감이 생겼고.

차츰 비서실에 적응했다.

이미 생산팀에서 상품기획실로 적응했던 경험이 있다.

적응력 하나는 좋았기에, 주변 환경이 도와주니 금세 자기 역할을 해나갔다.

의전팀장도 그런 황 과장을 보며 의외라고 생각했다.

‘우둔하고 어리바리한 줄 알았더니, 꽤 괜찮네?’

그렇게 비서실에서 지혁과 황 과장은 크고 작은 일을 겪으며 적응해 갔고.

어느새 2주가 지났다.

오 회장 일정에 따라 밤낮없이 움직이는 게 좀 힘든 부분이긴 했으나.

선도물산에서 지혁과 황 과장은 야근을 밥 먹듯 했었기에, 유동적인 업무 시간은 잘 감당해갔다.

월요일 비서실 주간 미팅.

일주일에 한 번. 의전팀과 지원팀이 함께 모여서 일정을 공유하고 주요 사항을 협의한다.

회의 중 의전팀장이 말했다.

“다음 주에 회장님 베트남 현지 공장 방문 일정이 잡혔어요.”

이 말에 비서실 사람들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해외 일정은 항상 있었던 거니까, 하던 대로 하면 되고. 의전팀에서는 두 명이 수행할 겁니다.”

비서실 사람들은 당연히 의전팀장과 이 부장이 동행할 거라고 생각했다.

해외 일정은 신경 써야 할 게 많기에 경험이 중요하다.

“회장님께서 특별히 오 차장을 지목했거든요.”

사람들은 놀라서 지혁을 바라봤다.

지혁 또한 의외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부장과 함께 갈 거니까. 두 사람은 출장 준비해 주세요.”

이 부장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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