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웃는 얼굴 뒤에 (2)
선도물산 인사팀.
인사팀장은 두 손으로 핸드폰을 받치고 통화 중이었다.
“팀장님, 잠시만요.”
인사팀장은 자리를 옮겼다.
‘비서실장’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부터 심상치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자리 옮겼습니다. 이제 편하게 말씀하시죠. 혹시······ 무슨 일 있으십니까?”
인사팀장은 지혁이 비서실장을 거론했다는 게 의외였다.
그룹 내에서 평판도 좋으며, 오 회장의 신임을 받는 사람이다.
괜히 비서실장 자리에 있는 게 아니다.
[구린 냄새가 나서요.]
아무도 없는 회의실이지만, 인사팀장은 목소리를 죽이고 말했다.
“혹시 비리 건입니까?”
[아니요. 그런 건 아닙니다.]
인사팀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비서실장이 아랫사람에 실수할 스타일은 아닌데······ 도대체 무슨 일로. 발령받으신 지도 얼마 안 됐는데.’
아무리 생각에도 이해가 잘 안 됐으나.
그의 손은 이미 노트북을 켜고, 연락처 목록을 뒤지고 있었다.
비서실장과 오래 근무했던 사람과 입사 동기들부터 추리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알아보실 수 있으세요?]
“그건 오 팀장님 원하시는 수준에 따라서······.”
지혁은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시간은 좀 걸려도 좋으니, 자세히 알아봐 주셨으면 합니다.]
인사팀장은 마치 지혁이 옆에 있기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속도보다는 퀄리티에 집중하겠습니다. 맡겨주십시오. 이번에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오 팀장님께 꼭 필요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
지혁은 전화로도 인사팀장의 열정이 느껴졌다.
‘원래 이런 사람인가, 일부러 이러는 건가.’
인사팀장을 대할 때면 간혹 헷갈렸다.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오 팀장님. 성심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충······.”
인사팀장은 경례 구호를 붙이려다가, 과하다 싶어서 관두었습니다.
[아, 인사팀장님.]
전화를 끊으려는데, 지혁이 다시 불렀다.
“네, 팀장님. 무엇이든 말씀 주십시오.”
[오 회장님 셋째아들, 오진원 님 알죠?]
“네 압니다.”
[그분도 알아봐 주세요. 지금 어디 사는지, 뭐 하고 있는지 등.]
인사팀장은 잠시 생각했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흥신소도 아니고.’
어려울 것 같다고 얘기하려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니야. 일단 오더를 받으면 해야지. 죽을 힘을 다해서 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말씀드려야지.’
“네! 알겠습니다!”
인사팀장의 우렁찬 대답 소리에.
지혁은 전화기에서 귀를 뗐다.
***
다음날.
지혁은 출근하여, 비서실장실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비서실장실을 관찰한다고 해서 허점이 보이는 것도 아닌데.
먹잇감이 생기면 계속 주시하는 것.
‘그 세계’에서 훈련된 지혁의 습관적인 행동이었다.
점심시간에 밥 먹는 모습.
지나가는 사람들과 인사하는 모습 등.
지혁은 비서실장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했다.
‘내가 잘못 봤나.’
아무리 관찰해도 이상한 점은 없었다.
비서실장을 대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기분 좋은 얼굴이었으며.
그 또한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했다.
황 과장의 말처럼, 전무씩이나 되는 임원이 일반 직원들에게 이런 친절한 태도를 보인다는 건 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잘못 봤나 싶은 의구심이 들 때쯤 한 남자를 발견했다.
‘지원팀의 이경식 차장.’
비서실에서 보기 드문 사십 대 중반의 차장이다.
비서실과 미래기획실은 선도그룹 승진 코스며, 직급 대비 젊은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사십 대 중반 차장이면, 일반 회사에서의 기준으로는 승진 시기를 많이 놓친 건 아니지만.
비서실에서는 굉장히 늦은 편이었다.
지혁은 그에게 접근했다.
‘분명 불만이 있을 거야.’
“이 차장님 안녕하세요.”
지혁이 다가가서 인사하자, 이 차장은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네~ 오 차장님 안녕하세요. 식사는 하셨어요?”
비서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친절이 몸에 배 있다. 본심 여부를 떠나서.
“네~”
이 차장은 지혁을 특별하게 봤다.
지혁의 소문을 들어 익히 알고 있기도 했지만, 얼마 전 베트남 출장에서 목격한 그의 활약 때문이 더 컸다.
“바쁘세요? 커피 한잔하실래요?”
“아~ 좋죠. 가시죠.”
두 사람은 선도본관 1층 로비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가볍게 얘기를 나누다가.
지혁은 천천히 운을 띄웠다.
“차장님은 승진하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이 차장은 이 질문에 살짝 불편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도 안 나네요~ 한 6년 됐나? 하하.”
지혁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너무 오래됐네요~ 지원팀장님이 잘 안 챙겨주세요?”
이 차장은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달갑지 않았지만, 상대가 지혁인지라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에요~ 저희 팀장님 좋아요. 아시잖아요.”
지혁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본 지원팀장은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몇 년째 팀원들이 바뀌지 않고 자리 유지를 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평가를 받을 만했다.
“그럼 왜 그럴까요? 제가 보기엔 이 차장님 열심히 하시는 거 같은데.”
이 차장은 씁쓸히 웃었다.
“열심히야 하죠~ 열심히 안 하는 회사원이 있겠습니까.”
‘은근 많은데.’
지혁의 시각에서는 대부분의 회사원은 월급 때문에 일한다고 봤다.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그럼, 성과를 못 내셔서 그렇다는 말씀인가요?”
“······.”
이 차장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이건 그렇지 않다는 뜻이었다.
이 차장은 열심히 일했고, 자기 몫은 충분히 하는 사람이었다.
“혹시······ 비서실장님 때문은 아니고요?”
이 물음에 이 차장은 흠칫 놀랐고.
지혁은 속으로 생각했다.
‘일 제대로 하고, 팀장도 괜찮은데. 승진을 못 하는 거라면······ 뻔한 거지.’
비서실 최고 인사권자인 비서실장이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 차장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지혁은 긍정으로 받아들이고 다음 질문을 했다.
“혹시 뭐 실수한 적 있으세요?”
“······.”
이 차장은 눈을 내리깔고,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5년 전쯤에 비서실장님 앞에서 실수한 적이 있습니다. 근데, 너무 사소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 영향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혁은 잠자코 그의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비서실장님 좋은 분이잖아요. 아래 직원들한테 항상 잘해주시고. 제가 승진 못 했을 때는 꼭 미안하다고, 다음에 잘해보자고 얘기해 주시거든요.”
지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입으로만 양치는 새끼네.’
차라리 대놓고 빌런이 낫다고 생각했다. 정황을 알아갈수록 비서실장은 지혁이 가장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이 차장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누구 탓도 아니에요.”
“······.”
“이제 일어날까요? 저 일정이 있어서.”
그는 정중하게 묵례를 한 후,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
일주일 뒤.
“팀장님, 저 외근 좀 다녀오겠습니다.”
“외근?”
지혁의 말에 의전팀장은 눈을 끔뻑거리며 물었다.
“비서가 웬 외근이야?”
“그럴 일이 있네요. 왜요. 같이 가실래요?”
지혁이 눈에 살짝 힘을 주며 말하자, 의전팀장은 바로 도리질을 했다.
“하하. 아니~ 일 보고와~ 급한 일 있으면 연락할게. 멀리 가나?”
“아니요. 멀지 않아요. 주소도 알려드려야 해요?”
“······.”
옆에 있던 황 과장은 속으로 웃었고, 의전팀장은 식은땀이 났다.
‘대화를 길게 하지 말아야지.’
“주소는 내가 알아서 뭐 해~ 하하. 그래~ 갔다 와~”
황 과장도 지혁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다녀오세요~”
선도본관에서 전철로 두 정거장 거리.
문벅스 카페에서 지혁은 오랜만의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어이구~ 오 팀장님~”
지혁이 카페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인사팀장은 황급히 달려 나와 맞았다.
“하하. 오랜만이에요.”
“너~무 보고 싶었어요~”
인사팀장은 주인 만난 강아지처럼 팔랑거렸다.
각종 미사여구를 섞으며, 인사를 하였고.
지혁은 이 모습을 보며 그냥 웃었다.
‘참 여전하시네.’
“언제까지 서 계실 거예요?”
“네?”
지혁의 말에 인사팀장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의 호들갑이 이목을 끌었고, 카페에 있는 사람들이 두 남자를 힐끔거리며 보고 있었다.
“아, 앉으시죠.”
인사팀장은 고개를 숙이고 재빨리 맡아 놓은 자리에 가서 앉았다.
지혁은 맞은편에 앉은 뒤,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알아보셨네요.”
“네? 그럼요! 물론이죠. 오 팀장님께서 요청하신 일인데, 최우선 순위로 했습니다. 덕분에 업무는 좀 밀렸지만~ 하하.”
인사팀장은 말 한마디를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모든 게 참 부담스러웠다.
‘이것도 능력이다. 진짜.’
“네, 그럼 알아보신 거 말씀해주세요. 궁금합니다.”
일 얘기를 시작하자, 인사팀장의 눈빛이 달라졌다.
“비서실장 강전철 전무는 오 회장님의 신임을 받고 있습니다. 그건 알고 계시죠?”
“네.”
“가장 큰 이유가 오 회장님의 어두운 면을 해결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
“왕자의 난이라고 불리는데.”
지혁의 눈이 커졌다.
“오진양 부회장을 둘러싼 후계 자리 다툼이 있을 때, 유일하게 오 회장과 오 부회장 편에 섰던 최측근입니다. 다른 측근들은 오 부회장이 후계자가 되는 걸 반대했거든요.”
지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최측근 대부분이 반대할 정도면 오 부회장 자질을 의심해야 정상인데······ 제가 옆에서 본 오 회장님은 경청을 잘하는 분이거든요? 왜 그렇게 측근들 의견을 안 들었을까요?”
인사팀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경청을 중시하시고, 수첩 기록을 열심히 하며, 배움의 자세를 항상 가지려 하는 분이란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크고 작든 트라우마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수 있죠.”
‘트라우마?’
지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장자권에 대한 집착이 있으시답니다.”
“장자권이요?”
“네. 장자가 우선적으로 물려받아야 한다는 강한 집념이요.”
지혁은 이해가 될 듯 말 듯했다.
‘장자권이라······.’
인사팀장은 목소리를 죽이고 말했다.
“오 회장님이 이런 태도를 갖게 된 데에는 뿌리 깊은 사연이 있습니다.”
인사팀장은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거 알아내는 게 가장 힘들었는데. 선도그룹 원로분들 찾아뵙고 겨우 얘기 들었습니다.”
인사팀장은 좀 부담스러워 그렇지, 확실히 일은 잘하는 사람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뿌리 깊은 사연에 관여한 사람도 비서실장입니다. 그때부터 오 회장과 깊은 인연이 시작된 거죠.”
두근. 두근.
지혁의 심장이 방망이질 쳤다.
아직 얘기를 다 듣지 않았지만,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 팀장님.”
인사팀장은 지혁을 나직이 불렀다.
“오종원 이사라는 분이 계셨답니다.”
“······.!”
“선대회장님의 막내아들인데, 꽤 특출난 분이셨다고 합니다. 어느 때부턴가 행방이 묘연하고······.”
지혁은 테이블 아래 주먹 쥔 손을 부들부들 떨었고.
인사팀장은 얘기를 계속했다.
“그 분 때문에 오 회장님은 후계 자리에 대한 불안함을 느꼈고, 내칠 계획을 세웠는데.”
“······.”
“그 계획을 세운 장본인이자, 일등 공신이 비서실장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