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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118화 (118/301)

118. 무서운 사람들 (1)

지혁은 최 부회장을 따라서 카페로 들어왔다.

이렇게 된 이상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지혁이 벌인 일 뒤처리 하느라, 의전팀장은 입이 댓 발 나와 있었지만.

최 부회장과 시간 갖겠다는데, 막을 수는 없었다.

‘다음에 좀 잘해줘야지.’

그런 의전팀장을 보며 지혁은 생각했다.

“부회장님, 앉으시죠.”

부회장이라고 호칭하자, 카페 주변 사람들이 힐끔거렸다.

“호칭은 좀 생략하지.”

지혁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뭐 어떻습니까?”

최 부회장은 피식 웃고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자네 못지않게, 나 알아보는 사람도 꽤 많거든?”

“······.”

“그리고 어차피 회사 얘기 나눌 텐데. 옆에서 듣고 다른 곳에 전하면 어떡하나? 부회장님~ 부회장님~ 하면서 얘기하면 동네방네 소문 내달라고 등 떠미는 거지. 하하.”

최 부회장은 가볍게 웃었고.

지혁 또한 피식 웃었다.

하지만 긴장은 풀지 않았다.

최 부회장은 유일하게 지혁을 긴장시키는 남자였다.

‘속을 알 수 없고, 내공이 깊다.’

“알겠습니다. 조심하겠습니다.”

“뭐, 그렇게 정색해서 말할 필요는 없고.”

“······.”

두 사람은 가만히 서로를 응시했고.

최 부회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지?”

“······.”

지혁은 대답하지 않았고, 최 부회장이 이어서 말했다.

“오해하지 말게. 노 부회장님이 얘기해준 건 아니니까.”

“그럴 거로 생각합니다.”

얘기하지 않아도, 노 부회장이 최 부회장에게 말해줬을 거로 생각하진 않았었다.

‘부회장까지 한 인물이 뱉은 말을 가볍게 뒤집을 리 없지.’

그래서 더욱 궁금했다.

최 부회장이 어떻게 알았을지.

“미래기획실. 그리고 회장님을 보좌하는 비서실.”

최 부회장은 살짝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이 두 개 부서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그리고 서로 간에도 견제를 많이 한다네.”

그의 눈빛이 살짝 빛났다.

“특히, 젊고 유능해서 튀는 인물은 말이야.”

“뒷조사를 하신 거군요.”

최 부회장은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그건 아니고, 자연스럽게 들리는 거지. 미래기획실에 있다 보면 그래. 아!”

최 부회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혁에게 물었다.

“설마, 비서실장도 모를 거로 생각하는 건 아니지?”

***

지혁의 표정이 굳어졌다.

‘젠장, 비서실장이 내가 노 부회장 만난 걸 안다고?’

최 부회장은 그런 지혁을 보며 살며시 웃었다.

지혁은 그 미소를 보다가 생각났다.

‘잠깐, 나 최 부회장에게 비서실장에 대해 얘기한 적 없는데? 그건 또 어떻게 알았지?’

칼을 칼집에서 뽑지도 않았는데. 최 부회장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지혁은 소름이 돋았다.

‘사설탐정이라도 쓰는 건가.’

최 부회장은 이미 다 아는 눈치였고, 둘러대 봐야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이럴 땐 차라리 직접적인 게 좋다.

지혁은 최 부회장이 다 안다고 가정하고 말을 했다.

“제가 어떤 생각인지 안다면, 비서실장은 왜 가만히 있을까요?”

최 부회장은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역시, 보통 놈은 아니야. 당황할 만한데, 침착하군.’

“그거야 자네가 칼날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

“무기를 소지하고 있는 것만으로 문제 삼을 수는 없잖아. 아직 누굴 공격할지도 모르는데.”

최 부회장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자네 목 뒤에 이미 칼이 겨눠져 있을지도 몰라. 날을 드러내는 순간, 바로 쳐낼 수 있게.”

꿀꺽.

지혁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룹의 중심은 확실히 다르군. 만만히 생각할 사람들이 아니야.’

최 부회장은 천천히 말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

“아무리 강한 포식자라도 너무 튀면 쉽게 공격당해.”

최 부회장은 포식자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지혁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본 것이다.

지혁은 그의 말을 인정했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은 조언 감사합니다.”

“조언? 난 그냥 평을 한 건데. 뭐 좋을 대로 받아들이게.”

지혁은 비서실장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생각했다.

‘접근 방식을 달리하든지, 아니면 더 강하게 밀어붙이든지. 이대로는 안 되겠어.’

최 부회장은 고민하는 지혁을 흐뭇한 표정으로 보다가.

‘흠? 뭐지?’

갑자기 고개를 든 지혁이 눈빛이 달라져 있단 걸 느꼈다.

지혁은 강렬한 눈빛으로 최 부회장을 응시하다가 물었다.

“도와주실 겁니까?”

“뭘?”

“제가 앞으로 뭘 할 건지 짐작하시는 것 같은데. 도와주실 건지 물었습니다.”

지혁의 물음에 최 부회장은 웃으며 생각했다.

‘독고다이 같으면서, 필요할 때는 도움도 청할 줄도 알고. 볼수록 마음에 들어.’

“아니, 안 도와.”

최 부회장은 단칼에 거절했다.

“이기는 편 우리 편일세. 미래기획실이 얼마나 바쁜 줄 아나? 그런데 신경 쓸 여력 없어.”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지혁은 두 번 제안하지 않았다.

최 부회장의 이런 반응을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한 가지만 약속해 주십시오.”

“뭘?”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일에 관여하지 마십시오.”

“······.”

“저 안 도와주셔도 되니까, 비서실장도 도와주지 마십시오.”

최 부회장은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약간 협박처럼 들리는데?”

“······.”

“내가 관여한다면 어쩔 건데?”

“가만히 안 있습니다.”

“협박이 맞군.”

“······.”

지혁은 최 부회장의 말을 부인하지 않았고.

최 부회장은 그런 지혁을 보며 생각했다.

‘참 불나방 같은 놈일세. 어쩌려고 저렇게 뒤는 안 보고 살까.’

문득, 지혁과 정반대의 성향인 오종원 이사가 생각났다.

‘자식이 꼭 부모 닮으라는 법은 없지.’

최 부회장은 두 손을 들며 말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협박하지 마. 관여 안 할게. 하하.”

대화는 일단락되었지만, 지혁은 아직 궁금한 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최 부회장은 지혁의 말을 끊고 일어났다.

“커피 다 마셨지?”

“네?”

“인제 그만 일어나지. 근무시간이잖아.”

“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지혁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최 부회장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다음에.”

“······.”

“다음에 하자.”

지혁을 내려다보는 최 부회장이 눈빛이 복잡했다.

***

늦은 오후.

지혁은 사무실로 복귀하여, 밀렸던 업무를 처리하고.

탕비실로 커피 내리러 가는 길이었다.

‘음?’

먼저 온 한 여성이 커피를 내리고 있었고, 지혁은 뒤에서 차례를 기다렸는데.

커피를 다 내린 여성분이 몸을 돌리다가 지혁과 눈이 마주쳤다.

“어머.”

커뮤니케이션팀 홍 팀장이었다.

그녀는 놀라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지혁도 살짝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네, 안녕하세요.”

그리고 홍 팀장을 지나쳐 커피 머신으로 다가갔는데.

“저기······.”

홍 팀장이 기어서 들어가는 목소리로 지혁을 불렀고, 그녀를 향해 돌아보자.

“이번일······ 여러모로 고맙습니다.”

“뭐가요?”

지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바라봤다.

홍 팀장은 황급히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뭐, 브리핑 과정에서 제 의견 거들어 주신 것도······ 현장에서 약속되지 않았던 기자 질문 막아주신 것도 그렇고요······. 업무적으로 도움을 받았으니까요.”

말을 하는 내내 홍 팀장이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고.

‘흠······.’

지혁은 그런 그녀를 가만히 보다가 말했다.

“고마워하실 필요 없어요. 팀장님 도와드리려고 한 행동은 아니니까요. 그냥 일 한 거예요.”

“······.”

지혁은 그녀의 호감을 눈치챘고.

의도적으로 철벽을 치려 했다.

‘괜찮은 사람 같기는 한데, 여성은 좀 그래.’

그러나 홍 팀장은 지혁이 철벽 치는 모습까지도 멋져 보였다.

‘나보다 나이는 훨씬 어린데. 어쩜 이렇게 오빠 같아 보일까.’

지혁은 대화를 그만하려고 커피머신을 향해 다시 돌아섰는데.

“오 차장님······.”

홍 팀장은 아직 가지 않고 있었다.

지혁은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말씀하세요.”

“저 아는 사람 많아요.”

“······.”

“커뮤니케이션 팀에 있다 보면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거든요.”

지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그 얘기를 왜 하지?’

“여론을 만들기 좋다는 의미에요. 오 차장님, 그거 지금 필요하지 않아요?”

흠칫!

지혁은 놀라서 홍 팀장을 바라봤다.

그녀는 여전히 홍조 띤 얼굴로 수줍게 웃고 있었다.

“지금 무슨 소리 하시는 겁니까?”

“저도 알아요. 오 차장님이 누굴 상대하려고 하는지.”

지혁은 커피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미래기획실에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거야.’

홍 팀장은 수줍어하면서도 할 말은 다 했다.

“팬심이에요.”

“······.”

“선도물산에서 인터뷰하실 때부터 봐왔어요. 그냥 아줌마의 팬심일 뿐이니까. 오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지혁은 그녀에게 거리를 두려던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약간 민망했다.

“남편도 있고, 애도 있답니다.”

지혁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와······ 이 타이밍에 이런 TMI까지. 근데, 왜 이렇게 뻔뻔하게 느껴지지.’

지혁은 어머니와 수아 외의 여성은 거리를 두려는 생각이 강했었다.

희한하게도, 누군가의 아내이자 어머니라는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었다.

지혁은 방금 내린 커피를 개수대에 부으며 말했다.

“저랑 커피 한잔하실래요?”

***

두 사람은 본사에서 좀 떨어진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걸어오는 내내, 홍 팀장은 지혁의 뒤를 쫓아왔다.

“옆으로 오세요. 같이 가게.”

“부끄러워서요.”

지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저런 말 하는 게 더 부끄럽지 않나?’

수줍은 듯 노골적인 그녀가 참 신기했다.

카페에 자리를 잡은 뒤.

홍 팀장은 부끄러운 듯 계속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다.

“얼굴은 원래 그렇게 붉으세요?”

지혁의 물음에 홍 팀장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아니요. 호호.”

지혁은 이제 일 얘기를 해보려 했다.

“어떻게 아셨어요?”

“오 차장님께 관심이 많으니까요. 자연스럽게.”

“······.”

지혁이 황당해서 가만히 바라보자.

홍 팀장은 입을 가리고 깔깔대며 웃었다.

“흠. 단순히 절 돕고 싶어서 이 일에 관여하시는 거면······.”

홍 팀장은 도리질하며 말했다.

“아니요. 그뿐만은 아니에요. 저도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

“아까 얘기했죠. 제가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고. 미래기획실의 커뮤니케이션팀은 그룹의 홍보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안, 밖으로 만나는 사람이 많아요.”

일 얘기를 시작하니, 홍 팀장은 더 이상 웃지 않았다.

“그분의 가면을 예전부터 알아봤죠. 눈에 띌 정도로 조직에 해가 되는 일을 하지는 않지만, 차츰 잠식해 가는 게 있더라고요.”

“······.”

“저도 우리 회사 참 사랑하는데. 오 회장님이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오 부회장에 비서실장까지. 회사가 어떻게 될는지······.”

지혁이 물었다.

“근데, 왜 가만히 계셨어요.”

홍 팀장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일개 팀장인 제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요. 용기도 안 나고······ 그러다가 선도물산의 오 팀장님 얘기를 듣고.”

홍 팀장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죠.”

“······.”

지혁은 잠시 고민했다.

‘고맙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관두었다.

그런 얘기 하면 기름에 불붙이는 일이 될 것 같아서.

“그럼 믿어 보겠습니다.”

홍 팀장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비서실장을······.”

쉿!

갑자기 홍 팀장은 눈을 부릅뜨고, 입에 검지를 갖다 대었다.

“그 말을 함부로 입 밖에 내시면 안 돼요.”

홍 팀장은 불안한 눈길로 카페 한 곳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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