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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119화 (119/301)

119. 무서운 사람들 (2)

홍 팀장의 말에 지혁은 놀라서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누가 있었나?’

회사에서 꽤 떨어진 거리에 있는 카페였고, 위협을 느끼지 못했었다.

홍 팀장은 황급히 제지했다.

“팀장님, 그렇게 티 나게 두리번거리면 더 이상해요.”

지혁은 황당했다.

‘내가 홍 팀장에게 코치를 당하다니.’

지혁과 달리, 마치 이런 일을 자주 겪어본 듯 홍 팀장은 매우 침착했다.

지혁은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미래기획실은 어떤 곳이야.’

부서 배치받은 지 석 달이 다 되어 가는데도,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내부인의 눈과 귀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그렇고.

‘정말······ ‘그 세계’ 못지않은데.’

선도물산보다 확실히 한 수 위였다. 진짜 정글 같았다.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네?”

지혁이 말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이라 좀 당황했었으나, 지혁은 지혁이었다.

화장실로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주변을 스캔했고.

어렵지 않게 의심스러워 보이는 한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잠시 후, 화장실에서 돌아온 지혁이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빨간 넥타이군요?”

“맞아요.”

“처음 보는 얼굴 같은데.”

“미래기획실에 사람이 몇 명인데요. 기억 안 나실 수도 있죠.”

지혁은 고개를 갸웃하고 말했다.

“그래 봐야 243명 아닙니까? 그 정도 얼굴은 기억하죠.”

“······.”

이번엔 홍 팀장이 놀랐다.

‘농담이겠지?’

하지만 지혁은 너무 당연한 듯한 표정이었고.

어쨌든 지혁의 말이 맞았기에, 홍 팀장은 수긍했다.

“흠! 네. 미래기획실 사람은 아니에요.”

“그럼요?”

“선도본관에는 선도화재 본부도 들어와 있거든요.”

“아······.”

“거기 직원이에요. 그분의 인맥이죠. 사람 좋잖아요.”

“······.”

“겉보기에는 말이죠.”

비서실장을 말한 거였고, 홍 팀장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그분이 시켜서 이런 일 할 가능성이 크지만.”

그녀는 빨간 넥타이의 남자를 힐끔 보고는 말했다.

“그분이 필요로 하는 일임을 알고, 스스로 자원했을지도 몰라요. 잘 보이고 싶어서요.”

이 말에 지혁은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홍 팀장 또한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러니까, 무서운 사람이죠. 사람을 아주 갖고 논다니까요.”

***

지혁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자리를 옮겨서 얘기할까요?”

홍 팀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의미 없어요. 어차피 마찬가지예요. 그냥 저분한테 들리지 않게 조심히 얘기하죠. 그분 지칭하는 단어는 피하면서요.”

그분은 비서실장을 지칭하는 거였다.

“도청 장치 있으면 어떻게 하나요?”

“호호.”

홍 팀장은 지혁의 말에 큰 소리로 웃었다.

“그 정도까지는 안 해요. 그래도 회사원인데.”

지혁은 생각했다.

‘어느 수준까지 조심해야 할지 모르겠네.’

일단, 홍 팀장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목소리를 더 줄이고 말했다.

“그룹 내부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고 하셨잖아요.”

“네.”

“그분에 대해 비우호적인 사람들도 있나요?”

“······.”

“아무리 봐도 그 양반은 이미지 관리를 너무 잘하는 것 같아서요.”

지혁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했다.

“편하게 얘기해도 되죠? 우리 그분에 대해서 같은 입장인 거 맞죠?”

“네, 맞아요.”

홍 팀장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분에게 비우호적인 사람들이 있죠.”

“······.”

“하지만, 수줍어요.”

“수줍다뇨? 그게 무슨 말이죠.”

“음······ 그러니까.”

홍 팀장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다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적절히 표현할 말이 안 떠오르네요. 샤이 피플이라고 해야 하나.”

“샤이 피플?”

“네. 분명 그분에게 불만이 있지만, 차마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요.”

“아······.”

지혁은 어렴풋이 홍 팀장이 하는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원래 샤이한 사람들인가요? 아니면 비서실장에 대해 그런 건가요?”

홍 팀장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비서실장과 연이 있다면 어떤 사람들이겠어요. 다 나름 한자리하고 있을 텐데, 원래 샤이한 사람은 아니겠죠.”

“직급도 높고요?”

“네.”

지혁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근데 뭐가 불만이죠? 직급도 높고, 한자리하시는 분들이면······.”

“주변인들에게는 화려해 보이죠. 하지만······.”

홍 팀장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자리라도, 본인이 원치 않는 일을 하고 있다면.”

“······.”

“그걸 몇 년째 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오로지 한 사람의 필요 때문에 말이죠.”

지혁은 정적인 것과 숫자를 싫어한다.

만약 그에게 회계팀에서 회계보고서만 수년째 만들라고 한다면······.

‘돌아버릴 것 같은데.’

아무리 월급 받고 하는 일이라도, 끔찍할 것 같았다.

“어떤 분은 10년 넘게 한 자리에만 계시기도 해요.”

지혁은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그걸 시키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나.”

홍 팀장은 검지를 펼치며 말했다.

“그분이 가스라이팅의 고수라 가능한 거죠.”

‘가스라이팅······.’

상대방의 자주성을 교묘히 무너뜨리는 언행. 그런 언행을 통해, 행위자는 피행위자가 자신에게 의존하게 만든다.

‘왜 황 과장님이 떠오를까.’

지혁은 이상하게 찔리는 기분이었다.

“갑자기 표정이 안 좋으신데, 어디 불편하세요?”

“아닙니다.”

지혁은 생각했다.

‘내가······ 실수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홍 팀장은 자신이 아는 한에서 비서실장이 특정인들에게 벌이는 일들을 설명했고.

지혁은 얘기를 들을수록 더 마음이 불편해졌다.

비서실장의 행태를 알기 위해 만든 자리인데······.

‘내가 그 인간과 비슷한 짓을 벌였던 건가.’

목적을 위해서, 적도 아닌 사람을 이용하는 것.

홍 팀장에게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이상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적으로 삼고 있다는 느낌.

‘황 과장님의 진짜 속마음을 들어봐야겠어.’

조만간 황 과장과 자리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분 진짜 싫어하시나 봐요. 얘기 듣는 것 자체도 이렇게 불편해하시는 거 보면.”

지혁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그러니까. 샤이한 그들을 움직여야겠네요.”

“맞아요. 그분은 평판에 신경을 많이 쓰거든요. 유일하게 흔들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여야 효과가 있겠죠?”

“······.”

“그 인간이 대비할 수 없도록요.”

지혁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샤이한 분들 정보 좀 주세요.”

홍 팀장이 궁금한 얼굴로 바라보자, 지혁이 말했다.

“제가 직접 설득할 겁니다.”

홍 팀장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이렇게 바로요?”

“필요한 일은 망설이지 말고 바로 시작해야 합니다.”

지혁은 어금니를 깨물고 말했다.

“그래야 만약 일이 잘못되면, 빨리 돌아오죠.”

***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의 상가.

베가 커피.

좁은 홀 안. 최 부회장은 나이가 지긋한 신사를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문벅스 가자니까요. 좋은 거 드시라니까.”

“굳이 비싼 커피 먹어서 뭐 하나? 난 여기가 좋아. 양도 많고. 왠지 마음이 편해.”

노 부회장의 말에 최 부회장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예나 지금이나. 참 알뜰하십니다.”

노 부회장은 현역에 있을 때도 돈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부회장이나 되는 사람이 해외 출장을 가도 5성급 호텔에는 묵지 않으려 할 정도였으니까.

“사람 쉽게 안 변해. 알잖아. 하하”

노 부회장은 최 부회장에게 말했다.

“근데, 요즘 왜 자꾸 찾아오나? 한가해?”

“······.”

“자네도 그렇고······ 별별 사람들이 다 찾아와.”

최 부회장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부회장님이 도움이 되니까 그렇겠죠.”

“아무래도 맨입으로는 안 되겠어. 다음부터는 빈손으로 찾아올 생각 하지 마.”

최 부회장은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드려도 안 받으실 거면서.”

노 부회장은 싱긋 웃었다.

“왜 온 거야?”

“오지혁이 왔다 갔었죠?”

“오지혁?”

“오종원 이사 아들이요.”

“아.”

노 부회장은 살짝 눈치를 보고 말했다.

“그 친구가 얘기하던가?”

“아니요. 제가 요즘 그 친구 지켜보고 있습니다.”

“하여간 무서운 사람이야. 난 몰라. 말하지 말랬어.”

긍정의 대답이었지만.

어쨌든 노 부회장은 이렇게 대답하며 지혁과의 약속을 지켰다.

“부회장님 보시기에 오지혁 어떻습니까?”

노 부회장은 그 질문을 받고 인상을 찡그렸다.

“흠······.”

잠시 생각하다가 되물었다.

“어떤 측면에서 말인가?”

“······.”

“명확히 말해줘야지.”

최 부회장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아시잖아요. 그 친구가 누구 아들인지.”

노 부회장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최 부회장을 보았다.

“자네 지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

“왜 분란을 일으키려 그래?”

최 부회장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충치는 고통스럽더라도 치료하든가 뽑는 게 낫습니다. 그대로 둔다고 해서 썩은 이가 건치 되지 않죠. 그 작업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참 차갑게 말하는군.”

노 부회장은 지금 최 부회장이 누구를 충치에 비유하는지 알고 있었다.

“평생을 몸 바친 회사입니다. 가족도 뒷전으로 하고 내 젊음을 바쳐 온 회사라고요. 그건 노 부회장님도 마찬가지지 않습니까?”

“흠······.”

노 부회장은 앓는 소리만 낼 뿐, 반박하지 못했다.

“오 부회장······ 그 인간은 안 됩니다.”

“······.”

“그건 동의하시잖아요? 아닙니까?”

“그거야. 말이 필요하나. 내가 왜 미래기획실장에서 내려오게 되었는데.”

노 부회장 또한 오 회장의 최측근이다.

미래기획실장에서 은퇴하게 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오 부회장의 승계를 적극적으로 반대한 거였다.

“전 지혁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최 부회장은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진 듯했다.

“조금 더 두고 봐야겠지만, 인물입니다. 정통성도 있고요.”

노 부회장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다가,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오진원도 있지 않나? 그 친구는 포기한 건가?”

오 회장의 셋째아들. 당시 최측근들이 오 회장의 후계자로 밀었던 사람이다. 물론, 실패로 끝났지만.

“그 친구는 행방이 묘연해서요.”

노 부회장이 못 내켜 하는 모습을 보며, 최 부회장이 말했다.

“오진원을 찾게 되면 다시 논의 드리겠습니다. 어쨌든, 그 두 사람의 의지에 달린 일입니다. 누가 되든, 힘 실어주실 거라 믿겠습니다.”

노 부회장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가 하는 일이라면······.”

***

금요일 오후.

지혁은 오랜만에 강남역에 왔다.

“이게 얼마 만이냐. 한 3개월 됐나.”

선도본관으로 발령받은 이후, 이상하게도 강남역에 올 일이 없었다.

입사부터 선도본관으로 발령받기 전까지.

근 3년간 근무했던 선도빌리지 A동.

‘선도물산’에 도착했다.

지혁은 1층 아래에서 선도물산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이런 일로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홍 팀장이 알려준 샤이 피플 중, 지혁이 아는 인물이 한 명 있었는데.

그 사람은 비서실장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이기도 해서, 지혁으로서는 선도물산에 오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선도물산 정문에 들어가려다가, 멈칫했다.

‘되게 어색하네.’

생판 모르는 회사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색했다.

지혁은 입술을 꽉 다물고, 정문 안으로 한 발짝 떼었고.

예전에 로비에만 나타나도 연예인 나타난 듯 뜨거운 반응을 보이던 직원들을 생각했다.

‘이제, 예전 같지 않겠지.’

하지만······ 그건 지혁이 바람일 뿐이었다.

다다다.

어디선가 뜀박질 소리가 들렸고.

“팀장님~! 팀장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팀장님!”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손정진이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달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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