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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120화 (120/301)

120. 그가 왔다

지혁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선도본관과 선도물산은 꽤 거리가 있었지만.

그래도 안심할 수 없었다.

‘일반 카페까지도 쫓아와서 지켜볼 정도면······.’

“팀장님~!”

손정진은 지혁이 도망갈세라, 소리를 지르며 전속력으로 달려왔고.

-팀장님?

-엇! 저분 오지혁 팀장님 아니야?!

-어머. 어머.

-여전하시네~

손정진의 열정은 선도본관 1층 로비를 불붙이고 있었고.

지혁은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보며, 걱정하던 마음을 내려놨다.

‘이미 끝났다. 미행이 안 붙었어도 선도 본관까지 소문나는 건 시간문제야.’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음 편히 먹기로 했다.

선도본관에서 만날 사람이 누군지만 모르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손정진.”

어느새 앞에 다가온 손정진을 부르며 지혁이 웃었고.

손정진은 양손으로 지혁의 손을 꼭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팀장님······.”

지혁은 손정진과 악수하며 물었다.

“잘 지냈어?”

“못 지냈어요.”

손정진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톡 보내도 답장도 없으시고.”

지혁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말했다.

“난 원래 톡은 잘 안 해. 핸드폰 터치하는 거 귀찮아서. 같은 팀에 있을 때도 톡은 잘 안 보냈잖아.”

“그거야······.”

“우리 아내한테도 톡은 잘 안 보내.”

이렇게까지 말하니, 손정진은 더 할 말 없었지만.

“어쨌든요! 서운합니다! 팀장님!”

“하하. 자식. 시간이 지나서 그런가? 내가 많이 편해졌나 봐?”

살짝 눈을 치켜뜨며 말하자, 손정진은 뜨끔한 표정을 지었고.

장난이라는 듯 지혁은 웃으며 손정진의 어깨를 토닥였다.

“근데 어쩐 일이세요? 저희 보러 오신 건 아닐 테고······.”

손정진은 지혁을 잘 알고 있다. 친목질하려고 일부러 찾아올 사람은 아니다.

지혁은 손정진 어깨에 손을 올리고, 로비를 걸어가며 말했다.

“일이 있어서 오긴 했는데······.”

웅성. 웅성.

-팀장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새로 가신 곳은 어때요?

지혁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다가와 친한 내색을 했다.

손정진도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했다.

‘회사에 이렇게 아는 분들이 많았나?’

하지만, 이내 곧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선도물산 직원 중에 우리 팀장님 모르는 사람은 없지.’

안면은 없는 사이지만.

오랜만에 돌아온 유명 인사에게 직원들은 용기 내어 말 거는 거였다.

지혁은 점점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걸음을 빨리했다.

“정진아.”

“네, 팀장님.”

“빨리 가봐야겠다.”

손정진은 지혁의 팔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일 끝나고 오실 거죠?”

“어?”

“여기까지 오셨는데, 볼일만 보고 가신다고요?”

지혁은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다급히 말했다.

“다음에.”

“다음 언제요. 3개월 동안 연락 한번 없으셨으면서.”

“······.”

“대답 안 하시면 손 안 놓습니다.”

웅성. 웅성.

직원들은 더욱더 몰려들고 있었고.

지혁은 당혹스러웠다.

‘손정진이······ 많이 컸네.’

상황을 이용하여 몰아세우는 손정진의 태도. 지혁은 이 와중에도 그게 대견했다.

“잠깐 손 놔봐.”

지혁은 곧바로 핸드폰을 터치했다.

“팀장님, 저 오지혁입니다.”

의전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급한 일이 생겨서, 오늘 오후 반 차 좀 내겠습니다. 갑작스럽게 죄송합니다.”

손정진은 좋아서 입이 귀에 걸렸다.

“네. 내일 뵙겠습니다.”

지혁은 전화를 끊은 뒤, 손정진을 향해 피식 웃고는 말했다.

“됐냐?”

***

그래도 커피 한 잔은 해야 한다는 손정진을 겨우 돌려보내고.

지혁은 목표를 향해 걸어갔다.

비서실장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그리고 지혁과도 안면이 있는 사이.

지혁은 ‘디자인실’ 문 앞에 서서 생각했다.

‘이 사람이 비서실장과 연결되어 있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막상 오기는 했지만, 아직도 잘 믿겨 지지 않았다.

똑똑.

지혁은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디자인실의 여직원들은 지혁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

-오 팀장님?!

-어쩐 일이세요~ 잘 지내셨어요?

다들 반가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데, 가까이 다가오지는 못했다.

지혁은 눈인사하며 말했다.

“오랜만에 뵙네요.”

지혁은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을 대부분 기억한다.

디자인실 여직원들은 디자인실장 및 디자인 팀장들과 미팅할 때 만났었다.

“디자인실장님 안에 계세요?”

“그럼요~ 약속하고 오신 건가요?”

“네.”

지혁은 오기 전에 디자인실장에게 미팅을 요청했었다.

“그럼 들어가세요. 아니면 제가 오셨다고 말씀드릴까요?”

지혁은 친절한 여직원에게 웃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아는 사인데, 굳이 그럴 필요가.”

“네, 들어가세요.”

지혁은 디자인실장실 문을 두드렸다.

똑. 똑.

“실장님. 오지혁입니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니.

디자인실장은 일어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그녀는 미소를 머금고, 지혁에게 악수를 청했다.

지혁 또한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네,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죠?”

“호호, 덕분에요.”

지혁은 밝고 자신감 넘치는 디자인실장을 보며 생각했다.

‘이런 사람이 샤이 피플이라고?’

분명 지혁이 기억하던 디자인실장은 ‘샤이’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오늘 만나봐도 그랬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디자인실장에 대한 홍 팀장의 정보는 미덥지 않았었다. 핵심 인물이기에 디자인 실장을 가장 먼저 만나러 왔지만, 홍 팀장의 정보력을 시험해 보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어쩐 일로 절 찾아오셨어요? 연락받고 깜짝 놀랐잖아요. 호호.”

지혁의 기억에 디자인실장은 이렇게 잘 웃고 밝은 사람이 아니었다. 좀 달라진 것 같았다.

지혁은 무슨 좋은 일이 있나 싶어서 물었다.

“얼굴이 많이 좋아지신 것 같습니다. 뭐 좋은 일 있으신가요?”

이 물음에 디자인실장은 씩 웃고는 말했다.

“어느 유능한 팀장님 덕분에 요즘 너무 좋죠.”

“네?”

지혁이 되묻자 디자인실장은 웃으며 말했다.

“일하는 방식 바꾸기요. 오 팀장님이 떠나기 전에 하셨던 거.”

디자인실장은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제가 디자인실장을 맡은 지 꽤 오래되었는데, 디자이너들 업무 만족도가 이렇게 높았던 적은 없었어요.”

“새로운 프로세스가 잘 지켜지고 있나 보네요.”

“호호.”

이 말에 디자인실장은 큰 소리로 웃었다.

“그때 오 팀장님이 회사의 명령이니 따르라고. 안 따를 사람은 나가라고 하셨잖아요. 그렇게 못을 박았는데, 안 지켜질 리가 있겠어요? 호호.”

지혁은 그때 생각이 떠올라, 약간 멋쩍어졌다.

‘좀 오버하긴 했었지.’

지혁은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좀 앉아도 될까요?”

“어머, 내 정신 좀 봐. 어서 앉으세요.”

***

지혁은 자리에 앉으며 디자인실장에게 말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긴장되는데요?”

디자인실장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지혁이 어떤 사람인지 경험해 봐서 안다. 분명 특별한 이유가 있기에 찾아왔을 거로 생각했다.

“팀장님 연락받고 많이 놀랐어요.”

디자인실장은 지혁에게 어제 오후에 연락받았고, 그의 갑작스러운 미팅 요청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불안해······.’

지혁이 칼바람 일으키는데 전문인 걸 알기에.

“저, 뭐 잘못한 거 아니죠?”

“······.”

지혁은 어떻게 얘기할까 고민하다가.

‘그래, 아는 사람끼리 뭘······.’

본인 스타일대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비서실장님이 좀 문제가 있어 보이는데요.”

흡!

숨 막히는 호흡 소리와 함께.

디자인실장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지혁은 그녀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그룹 비서실장님이요. 강정철 전무님.”

지혁은 명확하게 비서실장의 이름과 직책까지 말했고.

디자인실장의 입술이 떨렸다.

지혁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아시죠?”

“······.”

“비서실장님 아시죠?”

후- 후-

디자인실장은 당황한 표정을 숨기려 했으나.

거칠어진 호흡은 어쩔 수 없었다.

마치, 손대지 말아야 할 부분을 건드린 듯.

좀 전에 유쾌했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지혁은 잠시 기다려 주었고.

디자인실장은 감정을 좀 추스른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엔 비서실장님인가요?”

“아시냐고 물었는데.”

디자인실장은 대답을 피하려 했다.

“오 팀장님은 발령받으면, 직속 상관 쳐내는 일부터 하나요?”

상냥했던 그녀가 방어적인 태도로 바뀌었고, 이 모든 변화를 지혁은 유심히 보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어딜 가나 쳐내야 할 분들이 꼭 있네요.”

“비서실장님이 어때서요? 그룹에서 중요한 일을 하시는 분이잖아요. 품성도 좋으시고······. ”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지혁의 물음에 디자인실장은 멈칫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먼저 얘기해주세요. 왜 비서실장님인데요?”

‘지금은 솔직해야 해.’

진심 어린 조력을 받으려면, 숨기는 게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이에 이르자, 지혁은 망설이지 않았다.

“비서실장은 암적인 존재거든요. 굳이 따지자면 췌장암 같다고 할까요?”

“······.”

“제가 그 병을 앓아봐서 아는데. 죽을 때 되어서야 심각성을 알게 되죠. 그전까지는 몰라요. 그놈이 내 몸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걸요.”

“······.”

“소리 없이 찾아와서 끝장을 봅니다. 모든 암 중에 치명률 1위. 치사율 90%.”

췌장암. 몇 년간 지혁의 몸속에서 함께 살았던 놈이다.

지혁은 다시 디자인실장의 눈을 보았다.

“이 정도 얘기했으면, 실장님은 충분히 아실 거로 생각합니다. 몇 년간 비서실장이라는 췌장암을 품고 살고 계신 장본인이시니까요.”

지혁은 양손을 뻗으며 말했다.

“이제 디자인실장님 얘기 좀 들어봤으면 하는데······.”

디자인실장은 무릎 아래서 손톱을 뜯고 있었다.

“괜찮으니까. 얘기하세요.”

***

디자인실장은 망설이는 마음이 있었지만, 선도물산에서 보았던 지혁의 모습을 기억했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전 비서실장님을 존경합니다.”

“네, 그럴 거로 생각합니다.”

그녀는 불안한 듯 손으로 무릎을 두들기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분 덕분에 전 임원 자리에 올랐고, 선도물산의 디자인실장이 되었죠.”

지혁은 그녀의 말을 집중해서 들었다.

“근데, 제가 의류 디자인 출신이 아니거든요?”

“네?!”

지혁은 어이가 없었다.

‘디자인실장이 디자이너 출신이 아니라고?’

디자인실장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그룹 관계사 중에 선도기획이라고 있는데. 아시나요?”

“네.”

선도기획은 광고 촬영과 그래픽 분야에서 국내 1위 회사며, 선도그룹의 관계사다.

“전 거기서 그래픽 및 설치 아티스트였고, 제 일에 만족하며 지내고 있었어요.”

“······.”

“그렇게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가다가, 부장 승진 후에 경영자 승진 교육과정에서 비서실장님을 처음 뵈었는데.”

디자인실장은 그날을 회상하며 살며시 미소 지었다.

“완벽히 매료됐었죠. 특히, 강연이 인상적이었는데. 말씀도 너무 잘하시고, 젠틀하시고. 사람을 생각하는 인본주의 마인드가······.”

꿈틀.

지혁은 이 말에 소름이 돋았다.

‘인본주의는 개뿔.’

“비서실장님과 가까워지고 싶었고, 교육과정 중 기회가 생길 때마다 다가갔죠. 순수하게 인간 대 인간으로······ 멘토로 삼고 싶은 그런 거요. 무슨 의미인지 알죠?”

“네, 압니다.”

디자인실장은 혹시나 지혁이 남녀관계로 오해할까 봐 한 소리였다.

“교육과정 마지막 날 저녁.”

디자인실장이 한숨을 쉬고 말했다.

“비서실장님이 잠깐 보자고 부르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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